페어리랜드 1 - 셉템버와 마녀의 스푼
캐서린 M. 밸런트 지음, 공보경 옮김, 아나 후안 그림 / 작가정신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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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정의 나라, 라고 하니 왠지 작고 귀엽고 통통 튀는 매력이 넘치는 요정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받아든 책의 표지에는 황금열쇠를 등 뒤로 숨긴 소녀가 날개를 자물쇠로 묶인 비룡 - 용과는 달리 앞발이 있기 때문에 비룡이라고 한다, 라는 이야기가 책의 본문에 나온다 - 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뭔가 평범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책을 읽어가다보니 이건 '이상한 나라의 셉템버와 초록재킷과 비룡의 마법나라 여행'같은 느낌이 든다. 책을 읽는 내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고,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도로시가 생각났다. 아, 그러고보니 이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바치는 오마주이자 오마주를 뛰어넘어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될 작품이라고 홍보되는 책이었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가 단지 환상과 동화의 나라를 그려낸 이야기책이 아닌 것처럼 페어리랜드의 이야기도 무심코 책장을 넘겨버리면서 가볍게 읽기만 할 수 있는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왜 하필이면 자신이 뽑혔을까, 라는 생각에 빠져있는 셉템버에게 '선택받은 자'는 없다며 현실세계에서든 어디서든 그 모든 것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여 길을 떠났음을 일깨워주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는데, 지극히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소녀가 페어리랜드로 떠나 모험같은 여행을 하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과 사물들 - 가구들 역시 아무런 의식이 없으리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면 안된다)을 만나게 되면서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기도 하고 의미가 있기도 하다.

셉템버는 그렇게 목적없이 길을 떠난 듯 보이지만 그 길에서 목적이 생기고, 목적이 생김으로써 길을 잃기도 하고 길을 되찾게 되기도 하고 헤어짐과 만남을 체험하게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이 책에 실려있는 삽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 페어리랜드가 애니메이션으로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어린아이들에게는 환상과 모험이 가득한 판타지의 세계인 페어리랜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좀 더 많은 은유와 풍자를 볼 수 있는 어른들은 현실세계의 반영인 페어리랜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억압과 구속, 불합리...같은 세계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어쨌든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그림자를 희생시킨 - 언젠가 읽었던 피터팬의 새로운 버전에서 그림자를 훔치는 악당들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셉템버가 스스로 넘긴 그림자가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지고 있다. 다음 이야기에는 셉템버의 그림자가 등장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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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 셀프 포트레이트 비비안 마이어 시리즈
비비안 마이어 사진, 존 말루프 외 글,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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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젠가 자동차를 타고 길을 가고 있을 때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백미러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데 똑같은 모습이지만 똑같지만은 않은 나의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을 찍는 것은 재미있어하기 시작했다. 그림자를 찍는 것은 단순히 나를 온전히 드러내기 싫어서였지만, 현실 그대로가 아닌 거울이나 유리창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내가 아닌 타자의 시선으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내 모습인 듯 하여 조금은 재미있게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반세기도 더 전에 살다 간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진작가의 시선과 눈빛을 보는 순간, 나의 장난같은 사진은 완전히 잊혀져버렸다. 그녀의 셀프포트레이트 -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는 그리 놀랍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흔해져버린 구도와 사진 촬영기법이라는 생각에 별다른 느낌없이 사진을 넘기게 되는데 쉽사리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된다. 사진기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은 단순한 셀피사진 한 장을 넘어선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 관음증, 혹은 관찰자의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형형한 눈빛을 담아 무표정과 무감정의 얼굴에서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받기도 하는 듯 하다.

 

그녀의 그림자가 찍혀있는 사진은,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게만 느껴지다가도 여러장을 넘겨보다가 문득, 뭔가 이게 아니야 라는 생각으로 다시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까맣기만 한 그녀의 그림자에서 그녀의 시선이 느껴지고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되고 만다.

그녀의 시크한듯 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이 보이는 사진도 좋고, 낙엽을 가슴에 품고 있는 그림자 사진도 좋은데 잔디위의 노란 꽃을 품고 있는 그림자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신비롭기만한 그녀의 삶이 궁금해지는만큼 그 꽃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에 담긴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비비안 마이어의 셀프포트레이트는 뭔가 아쉬움이 남지만 그 이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래서 또 다른, 그녀가 찍어두고 고이 간직해오기만한 그녀의 수많은 다른 사진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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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8-10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시회 함 가야하는디~
 






온갖 이야기가 섞여있는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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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눈 - 세계를 뒤흔든 최고의 만평들
장크리스토프 빅토르 지음, 조홍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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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세계를 뒤흔든 최고의 만평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사실 그 말에 부정을 하지는 않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오래전에 한겨레신문에 실리기 시작한 박재동님의 만평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쩌면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는, 그 시대의 흐름을 따라 그 시기에 적절하게 날린 촌철살인의 한 컷을 봐 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의 만평은 일단 한쪽으로 미뤄두고 - 이 책은 외국인이 편집한 세계의 만평집이니까 - 다른 나라의 만평가들이 그려낸 만평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을 보는 예리한 시각, 풍자와 유머, 예술감각의 총체인 만평이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한컷의 그림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최고의 의미전달 언어인 것만은 분명해진다.  

그리고 책에 실려있는 모이어의 만평 중 하나인 "도망가! 버스에 만평가가 탔대"라는 그림을 보면 만평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는 1989년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로 인한 이슬람교도들의 종교적 암살에 대한 만평에서부터 시작하여 89년의 세계 정치사의 변화를 거쳐 전세계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연도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그냥 '만평'일 것이라 생각하며 책을 펼쳤는데 뜻밖에도 만평으로 바라보는 세계사를 마주한 느낌인데다 각 만평에 대한 상세 해석과 설명이 있어서 간혹 내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책장을 술술 넘기며 읽었다. 책에 실려있는 해설과 외국어로 씌여있는 글 - 두 사람의 대화, 군중 속의 피켓 하나, 등장하는 그림 한구석에 쬐끄맣게 적혀있는 글 하나까지도 다 의미가 있는 것이라 꼼꼼히 번역글을 넣어준 것도 맘에 들고. 물론 번역이 없다고 해도 세계적인 이슈가 된 사건에 대한 비판과 풍자, 해학이 담겨있는 만평 그림은 보는 순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챌 수 있는 것들이지만 해설과 해석은 더 깊이있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그림 하나로 서로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만평의 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이 책을 펼쳐들면서 왜 하필 살만 루시디에서부터 시작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때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베를린 장벽의 철거라든가 중국의 천안문 사태같은 일이 있었던 해라는 의미만을 떠올렸었는데 그건 어쩌면 샤를리 에브도에 실린 무함마드 만평으로 인한 이슬람의 테러와 더 연결이 되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으로 살해위협을 받으며 조지프 앤턴으로 살아야했던 살만 루시디의 삶과 만평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며 만평이 비판의 칼날을 세우고 풍자와 해학이 넘칠수록 적을 만들수도 있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한 눈을 결코 감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만평의 의미를 느끼게 된 것도 있지만 책에 실려있는 만평들을 읽다보니 삼십여년의 현대사가 스치듯 지나쳐갔다. 만약 이 책처럼 우리나라의 만평을 책으로 엮는다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봤는데 풍자와 해학을 느끼기 이전에 아픔과 분노가 더 클 것 같아서 과거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갈등이 생긴다. 하지만 "풍자와 비판의 펜은 강자를 향해 날을 세우고 약자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라는 말을 떠올리면 우리의 현대사를 그려낸 만평을 살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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