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마크 수사가 진심으로기원했다.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캐드펠 수사가 중얼거렸다. 마크 수사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았다. "하지만 하느님이 당신뜻대로 하시려 할 때 인간들도 작게나마 도움의 손길을 얹어야 할 텐데." - P38

마크 수사를 꼼짝 못하게 붙들어둔 건, 약속이나 한 듯 그자를 감싸는 환자들의 행동이었다. 아무런 이야기도 설명도 없이, 고통받고 있는 환자 모두가 침묵의 연대로 그의 불행을 함께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마크 수사는 경솔한 사람이아니었다. 감히 그 물결을 거스르거나 그들의 판단에 대해 옳고그름을 따질 수는 없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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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릴적부터 모진 삶을 살아왔다. 처음 마지못해 이 피난처로 들어오기 전까지, 궁핍과 잔인함과 고통은 그에게 가까운 벗처럼 친숙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죽음은 달랐다. 죽음은 너무도 소름 끼치고 너무도 어두운 것이요, 유예의 가능성도 없이 즉각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학대당하고, 못 먹고, 쉴 새 없이 일만 하며 사는 삶도 여전히 삶이었다. 하늘이 머리 위로 보이고,
나무와 꽃과 새들이 주변에 있으며, 색채와 계절과 아름다움이있었다. 살아 있는 한, 삶은 친구요 죽음은 낯선 것이었다.
"이보게. 죽음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네." 마크 수사를 지켜보던 캐드펠이 말했다. "작년 여름 마을에서 아흔다섯 명이 죽있지.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그저 편을 잘못 들었다는 이유로 죽은 게야. 죽음은 전쟁 중엔 죄 없는 여인들에게 떨어지고, 평화로울 땐 악인에 의해 저질러지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선한 일을 하며 살아온 노인들에게, 잔인하고 무분별하게 떨어진다네. 하지만 저세상에는 균형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돼. 자네가 보는건 완벽한 전체에서 부서져 나온 조각에 불과하네." - P258

어쨌거나 나라가 두 파로 갈려 있으면, 양쪽에서 이익을 챙기느라 다투고, 사람을 팔고, 경쟁자들에게 복수하기 마련이지요. 그 와중에 다른 사람의 토지를 제 것으로 취하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요. 어떤 악마가 이 일을 꾸몄는지는 몰라도, 이제 그 결실은 영원히 맺지 못하게 됐습니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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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노력이란 얼마나 신묘하며, 그 보상은 또 얼마나 갑작스럽고도 과분하게 돌아오는가! 캐드펠은 생각하며 떡 벌어진입을 다물었다. 아니, 과분하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겸손하게 제 일을 하던 마크 수사에게 이런 보상이 떨어졌으니 말이야.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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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피를 흘린다고 이 세상에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하지만 자네의 손과 힘과 의지. 자네 안에 아직 남아 있는 그모든 미덕은 세상에 큰 쓸모가 될 걸세. 무슨 벌이든 달게 받고 속죄하겠다고 했지? 그러면 죄 갚음을 하라는 명을 내리겠네. 알으로 자네의 삶을 살되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을 배려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감으로써 자네의 부채를 갚으라고 명령하겠네.
자네가 행한 선의 총계가 악행을 모두 합친 것의 수천 갑절이 되도록 노력하게나. 이것이 내가 자네에게 내리는 벌일세."
메이리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캐드펠을 올려다보았다. 그의얼굴에 떠오른 것은 환희나 안도의 표정이 아니라 당혹감 그 자체였다. "정말입니까? 그게 제가 받을 벌이라고요?"
"그렇다네. 그것이 자네가 해야 할 일이야. 회개하게 살아가면서 죄지은 자를 만나면 자네의 잘못을 떠올리고, 죄 없는 사람을 만나면 경의를 표하며 힘닿는 만큼 그를 돕게. 자네가 할 수있는 것을 모두 하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기게나. 성자라도 그이상은 못 할 걸세." - P308

하느님, 제가 소년에게 먼저 제안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캐드펠은 신실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이미고결한 행위를 하려고 마음먹은 순간 선의를 강요받는 것만큼 젊은이의 짜증과 분노를 자아내는 일도 없으리라. - P328

그는 문간에 서서 멀어지는 두 소년을 지켜보았다. 뜰을 가로질러 문지기실 쪽으로 가면서도 둘은 여전히 팔을 걸고 아웅다웅 다투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 또래의 아이들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압박 속에서도 영웅적인 충성심과 용맹함을 보이고 숭고한 목적을 위해 열심을 다하는가 싶다가도, 온 세상이평화로워지자 순식간에 어린 강아지로 돌아가 싸우며 뒹구니 말이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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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법이 절대 오류를 범하지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캐드펠은 이 소년에게 당당하게 법정에 나가 무죄를 주장하라고 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다. 재판에는 반드시 죄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행정관은 자신의 수사 방향이 옳다고 믿고 있으니 다른 가능성은 일절 염두에 두려 하지 않을 터였다. 캐드펠의 증언에 귀를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경멸스럽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노인네가 교활한 어린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비꼬지 않겠는가. 130

만일 법이 절대 오류를 범하지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캐드펠은 이 소년에게 당당하게 법정에 나가 무죄를 주장하라고 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다. 재판에는 반드시 죄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행정관은 자신의 수사 방향이 옳다고 믿고 있으니 다른 가능성은 일절 염두에 두려 하지 않을 터였다. 캐드펠의 증언에 귀를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경멸스럽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노인네가 교활한 어린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비꼬지 않겠는가.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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