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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 아이들
커티스 시튼펠드 지음, 이진 옮김 / 김영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무섭도록 솔직하고 믿을 수 없이 섹시하다'라는 건 이 책을 광고(!)하고 있는 뉴욕타임즈의 평, 일것이다. 책을 다 읽고 겉장을 덮으니 빨간글씨의 이 문구가 먼저 눈에 띄어버린다. 무섭도록 솔직하다 라는 건 책을 다 읽은 지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데 '믿을 수 없이 섹시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뉴욕타임즈의 평은 무엇이었는지, 그 말을 우리말로 저렇게 옮긴 사람의 뜻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나도 사립고등학교를 다녔지만, 그거야 학교 설립자가 사재를 털어넣었다는 뜻일 뿐 일반 고등학교와 다를 것 하나 없었다. 그래서 굳이 '사립'이라는 것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왜 쟤네들이 말하는 '사립'에는 귀족주의 같은 냄새가 풍겨나오는 것일까? - 아, 이 질문에는 또 긴 대답이 나올듯하니 이제 슬슬 말을 돌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한 소녀의 시선을 통해 그려낸 사립 기숙학교에서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솔직하고 또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었다. 저 소녀취향의 표지그림을 보며 조금은 가볍게 읽어보려고 책을 꺼내 든 내 선입견이 당황스러움을 더 가중시켰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작가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리 피오나'에 대해서도 과장된 꾸밈이나 아무런 환상없이, 아니 오히려 더 지독하게 평범하게 그려냈다. 모든 이야기는 아무런 포장없이 리 피오나의 시선을 통해 나오며, 그 이야기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책을 읽는 독자에게 달려있다. 아니, '판단'이라니, 그런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책을 읽는 독자마다 다 다른 느낌일 것이라는, 뭐 그런 뜻이다.
물론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아무런 비판없이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일화들에서 비판과 문제제기를 느낄수도 있고, 생각할꺼리가 쏟아져나오기도 한다. 빈부, 인종, 동성연애, 성적, 성 같은 문제에 대해 뚜렷하게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기숙학교 아이들이 겪는 생활이야기에서 뭔가 툭, 하고 던져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이 책이 결코 심각하기만 한 책은 아니라는 것은 명확히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아주 섬세하다. '다큐멘타리' 같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그리고 또 직설적이지도 않아 이 책이 '문학'임을 느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리 피오나의 이야기에는 청춘이 있다. 우정이 있고, 사랑이 있고, 학생으로서 겪는 학교성적이 있고 청춘이 겪게 되는 기쁨과 희망뿐 아니라 좌절, 분노, 실망, 배신도 있다. 이것이 이 두툼한 책을 던져버리지 않고 읽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뱀다리. 내가 사는 곳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몇년 전에 기숙사를 세웠다. 입소 자격은 전교 성적 상위 10%이내. (아니, 상위 몇프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흘려들었기 때문에. 하지만 성적순으로 입소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확실하다) 통학시간과 쓸데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노닥거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기숙사, 라는 소문이 나 있다. 명문대 진학율에 목숨 걸고 있는 학교겠지. 문득 우리나라에서 입시학교인 공교육기관에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들의 청춘이 부럽다는 생각보다 먼저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버린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에게도 역시 빛나는 청춘,의 시절은 있는것이다. 그렇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