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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인명구조대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재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열심히 사는 것도 좋습니다만, 그냥 살아도 됩니다!
이부자리에 배를 깔고 누우면 자신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심각하게 죽으려 하기보다, 경박하게 삽시다!
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술집 아가씨가 있는 가게라도 갑시다!
- 본문 184쪽
어쩌면 이 구호들이 어이없다, 라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은 나는 이들이 얼마나 '생명'이라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기에 슬며시 미소 지으며 이 구호들을 외쳐댈 수 있다.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이라고 하면 심각하게 얼굴 굳히고 '어떻게 해야....'하며 막막해 했을 듯 한데, 이 책에서 등장하는 '유령인명구조대'의 대원들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1. 열심히 사는 것도 좋습니다만, 그냥 살아도 됩니다.
지하철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감에 불안을 느끼고 있음을 알고 외쳐댄 구호가 저 위의 구호들이다. 어이없어 웃기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뿐인가? 사실 나도 '열심히 사는 것도 좋습니다만, 그냥 살아도 됩니다!'라는 구호를 보고 푸핫, 거리고 웃고 말았다. 하지만 바로 '그래, 그렇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단지 픽, 하고 웃어넘기는 말 한마디일 뿐이지만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 이것이 바로 '유령인명구조대'의 엄청난 매력이다!
2. 이부자리에 배를 깔고 누우면 자신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이 책을 연휴기간동안 집에서 이부자리에 배를 깔고 누워 읽었다. 사실 책을 읽으며 존재를 실감했다기보다는 유령인명구조대의 활약을 읽으며 내 삶을 심각하게 만들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해야하고, 내가 세상을 위해 공헌해야하는 사명감을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태어남 자체가 나의 존재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더운 여름에 땀 삐질 거리며 배깔고 책 읽는 것도 좋긴 했지만 조금은 시원하게 아이스크림 빨아먹으며 유령인명구조대를 읽었어도 좋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살아있는 존재'니까 그 자체로 행복한 시간인 것이다.
3. 심각하게 죽으려 하기보다, 경박하게 삽시다!
괜히 심각해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경박하게? 라는 말로 끝내지는 말자. 구호가 이렇다고 '유령인명구조대' 역시 가볍고 경박하고 허황된 허구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생각하면 이 훌륭한 책을 놓치게 되어버린다. 저자 다카노 가즈아키가 참고한 자료를 보면 혼자 대충 술렁술렁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글을 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13계단에서 '사형'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했다면 유령인명구조대는 '자살'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게 만든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자신의 삶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에 자살을 하는것일까? 똑같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누군가는 죽음을 떠올리지만 누군가는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으로 새로운 삶을 떠올린다. 그 차이는 뭘까? 이런 고민거리는 '자살'이라는 것이 삶을 포기해버린 그 누군가가 혼자 떠맡게 되는 책임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누군가의 자살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살아있는 유령인명구조대의 명예회원 자격을 얻게 된 것 같았다.
4. 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술집 아가씨가 있는 가게라도 갑시다!
외롭고 지친 영혼에게는 '안녕?'이라는 말 한마디로도 그 영혼에게 웃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술집 아가씨가 있는 가게라도 갈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일지 모르겠지만 - 술집 아가씨라는 표현에 토달지 말아주시라.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그 표현에 걸고 넘어져야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럴수도 없는 외로운 영혼은 유령인명구조대의 명예회원이 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위로와 안식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건 전문적이어야 하거나 힘든것이 아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면 충분할 수 있고, 그것이 수많은 영혼을 살리고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아아 그렇다고 심각해지지는 말자. 정신질환이나 우울증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치유는 전문적인 의사에게 맡기면 된다. 우리 유령인명구조대의 명예회원의 역할은 자신의 삶에 대해 자포자기한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끈을 부여잡을 수 있는 연결선이 되어주는 것이다.
유령인명구조대원의 대원 네명은 모두 자살한 유령이다. 그리고 그들이 또 다른 자살자들을 막기 위해 활동하는 이야기 속에서 하나 둘씩 유령인명구조대원들의 자살 이유가 밝혀진다. 아니, 밝혀진다, 라는 말로 끝내서는 안된다. 그 자신들이 인명구조대원으로서 활약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간다. 내게는 이 모든 것이 감동이었다. 도적적인 것을 이야기하거나 교훈을 심어주려고 하는 느낌이 아니라 '치유되어 가는 느낌'인 것이 감동이라는 것이다.
이 감동을 나 혼자만 알고 넘기기에는 너무나 안타깝다. 모두에게 권하고 싶어지는 감동인 것이다.
아,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감성을 자극하는 감동인것만이 아니라 이야기의 구조 자체가 딱 맞물려가며 진행되는 멋진 소설책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