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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ㅣ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사신死神의 이름은 치바. 치바가 일을 하면 언제나 비가 내린다 한다.
으음... 요즘 내가 왜 이럴까? 13계단은 13일에 읽어주는 센스를 보여주더니, 사신 치바는 양동이로 퍼붇듯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읽었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일을 할때면 항상 비가 내린다는 문장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괜히 비교를 해 보자면 우리나라 저승사자들은 아주 똑똑한데, 일본의 사신들은 어딘가 좀 모자라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모자라는 느낌의 사신들이 인간들과 나누는 대화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말이 너무 많은것이다. 은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신 치바는 엉뚱하게 - 때로는 귀엽기까지 한 물음을 내뱉지만 한순간 멈춰서서 그의 말을 생각해보게 하는 뭔가가 있다. 그래서 술렁술렁 넘기며 빨리 읽을 수 있는 이 책이 책장의 마지막을 덮어버릴때까지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 어려운 것도 없고, 사실 치밀한 구성도 없다. 하지만 막판에 꼬리를 잡고 뒤흔들 듯 뒤집으며 보여주는 막판 뒤집기가 '앗, 재밌는걸?'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처음에 잠깐 항상 비를 몰고 다니는 치바가 맑은 날을 보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해 봤었는데... 그래, 쨍,하고 맑은 하늘을 보는 치바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은유'라는 걸 모르는 단순한 치바인데 말이다.
치바가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일을 하는 것은 '죽음'의 사신으로서 오는 것이지만, 왠지 치바를 미워할 수만은 없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과 무관할 수 없으며, 치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까.
항상 비를 몰고 다니며 음악만 있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치바, 대화의 포커스가 미묘하게 빗나간다고 하지만 나는 그 미묘하게 빗나가며 내뱉는 치바의 대화가 무척 마음에 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느낌이 아니라 쏴~ 하고 내리는 비를 몰고 다니는 느낌의 치바 역시.
아침부터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하늘을 뒤흔들었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저 멀리 파란 하늘이 보인다. 사신 치바를 읽기에 딱 좋은 날이었던 것은 오늘 내게 주어진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