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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 과학수사와 법의학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드라마의 영향이 큰 탓인지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땐 막연히 다모나 별순검 같은 형태의 추리소설로만 생각을 했더랬다. 거기에다 가상이 아닌 실제로 조선시대에 일어났던 살인사건들의 이야기라니!
살인사건에 얽혀있는 깊이와 무게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흥미만을 가지고 읽어나가려했다.
그랬으니... 재미와 흥미만으로 책을 읽으려 한 느낌과 많이 다른 책의 흐름에 당황하는 정도로만 멈춘것이 아니라 책읽기가 더뎌지고 새삼 ''조선시대''의 이야기라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 죄의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권력을 등에 업고 무죄방면되고, 오히려 진실을 좇아 옳고 그름을 판가름 하려는 자가 죄를 뒤집어 쓰게 되는 건 이 시대뿐만 아니라 좀 더 거슬러 올라간 과거에도 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씁쓸해지기도 했다. 사채업자의 배경이 되는 조폭들이 신체포기각서를 쓰게 하며 사람 죽이기를 쉽게 하는 것 역시 물질만능시대라 불리는 현대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 또한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신분제였던 조선시대에 노비는 가축보다 못한 값으로 매매되기도 했으며, 노비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라는 범죄로 여기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신분제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권력이든 재산이든 가진자의 죽음과 가지지 못한 자의 죽음이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 그러고보면 조선시대가 몇백만년전, 몇십만년전도 아닌 겨우 오백여년의 세월만 거슬러 가면 되는 시대였지? 그동안 이런 살인사건들이 되풀이 되고 있었던것이었을까.... 아, 어쩜 이리도 똑같은지... 가진자들의 횡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아니, 하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인 역사만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남성우월주의가 지배하는 신분제 사회에서 수동적인 삶만을 살았을것이라 생각했던 조선의 여성이 이외로 강한면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들도 있다. 무고한 소문에 시달리다 결국 복수를 한 여인, - 물론 사사로운 복수심으로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죄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수많은 여인들이 자결을 택하게 하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지만 꿋꿋하게 굴하지 않고 자신의 무죄를 드러낸 여인, 누명을 쓰고 죽은 남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십사년동안이나 증거를 찾아 헤매다 끝내 누명을 벗기고 진범을 찾아 낸 여인, 살인 누명을 쓰고 돌봐주는 이 아무도 없는 감옥에서 십년동안 견뎌내어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여인....
사건들 자체도 놀라웠지만 그런 고통을 겪어낸 사람들에게 감탄하게 된다.
주검은 입이 아닌 자신의 몸으로 수많은 말을 한다. 권력으로 진실을 은폐시키려 해도, 재물로 사람들을 속이려 해도, 무고한 이에게 누명을 씌우려 해도 결국 주검은 진실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것은 온갖 시기, 질투, 탐욕으로 인해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시대가 사라지는 것이겠지.
"과학수사와 법의학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다시 생각해본다. 섣부른 흥미로 조선시대의 CSI수사대 이야기 아냐? 라며 장난스럽게 얘기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사리에 맞는 판단과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며 권력에 맞서고 부당함을 이겨낸 이들의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예나 지금이나 어쩌면 이리도 똑같냐, 라는 한탄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지금의 시대에도 살인은 있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이 생겨버렸는지도 모른다. 살인이 없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그런 일이 생기게 된다면 불의나 억울함이 없도록 두 눈 크게 뜨고 주검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몫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