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과잉 진료로 비싼 진료비를 낸 고객들에게 보험금을 내어줘서 적자가 나도, 보험회사는 다음 해에 모든 가입자한테 더 많은 보험료를 거둬서 새어나간 보험금을 메꾸면 그만이야. 그뿐만이아니잖아. 병원의 과잉 진료로 건강보험공단 재정까지 축나서 건강보험료마저 오르고 있잖아."
김 과장이 덧붙여 말했다.
"맞아요. 건강보험료도 오르고, 실손보험료도 오르고, 갈수록 힘들어요."
"국민들만 호구인 거야. 저것 봐. 노른자 땅에 죄다 보험사 빌딩이잖아. 다드림 손해보험에서 일하는 선배 말로는 올해 성과급이 우리연봉 절반만큼 나왔다."
김 과장은 씁쓸한 듯 입맛을 다셨다.
"병원도 마찬가지죠, 뭐. 환자가 실손보험 믿고 고가 치료도 스스럼없이 받으니 그야말로 ‘장사‘가 잘 되잖아요.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치료의 질을 올리는 데 쓰는 게 아니라 죄다 병원 건물 리모델링하는 데에 쓰질 않나, 의사들 품위유지비로도…………."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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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의 말 - 제16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다카야마 하네코 지음, 손지연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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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가득 들어찼던 자료들이 가치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미나코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모를 것이다. 미나코는 다만 이 건물에 드나들면서 매 순간 자료 정리에 성실히 임했을 뿐이다. 진실은 그 순간부터 과거의 것이 된다. 그런데 그 순간의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훗날 필요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145)


오키나와와 관련된 문학작품, 자료실에서 일하는 미나코, 세개의 단어로 유추하는 퀴즈 게임... 이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미군기지가 있어 황페해진 곳이었고 일본 패망 직전에는 자살특공대를 강요해 수만의 오키나와 주민을 말살시켰고, 그 이전에는 류큐 독립왕국이었으나 일본으로 복속이 되어버렸고, 그 이전에는....

그렇게 하나하나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들은 바 있고 그 역사속에 오키나와는 자연발생한 태풍마저 처음으로 맞이하는 섬,이라는 것 역시 우리나라 제주의 역사와 비슷해서 더 관심이 가는 곳이었다. 사실 일제시대때 오키나와가 없었다면, 아니 2차세계대전이 조금 더 길게 갔다면 아름다운 섬 제주는 일제의 병참기지가 되어 더 황폐해졌을 것이다. 강정에 군사기지가 들어서며 구럼비가 파괴되기 전에, 4.3사건이 있기 전에, 일제시대에 이미 산과 들 곳곳을 파헤치고 군사시설을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있는 제주와 다를 것 없는 오키나와의 역사는 그래서 더 궁금한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간단하게 줄거리만을 놓고 보자면, 오키나와로 이사 간 미나코는 그곳에서 요리 씨가 운영하는 오키나와 도서 자료관을 중학생 시절부터 드나들다가 결국 그곳에서 아카이브 정리를 하고 온라인으로 접속한 이들에게 퀴즈를 내는 일을 맡게 된다. 퀴즈를 풀기 위해 접속한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그들을 통해 미나코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 집 마당에서 발견한 동물의 정체도 확인하게 된다. 

며칠 전 티비에서 몽골의 축제에서 말의 경주는 어느 말이 빠르냐가 아니라 이쁘게 빨리 들어오느냐가 승패를 가른다는 것을 보면서 웃었었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말 역시 오키나와의 전통문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류큐 경마는 속도가 아닌 아름다움을 겨루는 경기"(116)라고 하는 설명과 함께 그 화려했던 경마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 언급해주고 있다. 

미나코의 집 마당에서 발견된 슈리의 말,을 통해 오키나와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나 싶었지만 계속 읽어봐도 왠지모를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어쩌면 작가도 소설 속 등장인물도 오키나와 주민이 아니라는 이유에 더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한걸음 떨어져 오키나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는데 이것이 역사 속 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진실은 그 순간부터 과거의 것이 된다. 그런데 그 순간의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훗날 필요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145)


도서 자료관 정리라거나 온라인 퀴즈 대결이라거나 태풍이 지난 후 갑자기 등장한 슈리의 말이라거나 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이어지고 있어서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또 등장인물들의 개인사와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또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소설이다. 뭔가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을 것처럼 전개되다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버린 듯한 이야기가 또 쉽게 이해할 수 없기도 했지만 이것 또한 어쩌면 우리 모두가 오키나와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반어적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소설 속에서 가장 놀라웠던 이야기는 반다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 국경 없는 장소가 마음에 듭니다. 힘으로 제압하기 위해 기세 좋게 주먹을 휘두르다 자신이 오히려 뒤로 나자빠지는, 중력에 의한 힘의 세기를 완전히 무력화시켜 버리는 그런 곳 말입니다. 혼자라서 지루하기도 하고 가끔 외로움과 불안감에 짓눌려 미쳐버릴 것 같을 때도 있지만"(100) 그런 곳이 지금의 우리 현실보다 더 낫겠다, 싶은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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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이상한 것을 이상하게 바라보면서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 사람이랄까. 94

"나는 이 국경 없는 장소가 마음에 듭니다. 힘으로 제압하기 위해 기세 좋게 주먹을 휘두르다 자신이 오히려 뒤로 나자빠지는 중력에 의한 힘의 세기를 완전히 무력화시켜 버리는 그런 곳 말입니다. 그야 혼자라서 지루하기도 하고 가끔외로움과 불안감에 짓눌려 미쳐버릴 것 같을 때도 있지만 그건 지구에 있는 사람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겠죠."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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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해 잘 안다고 할수는 없지만.

간도특설대 자체가 일본놈들이 독립군 잡으려고 만든거라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복무한 이력이 있는 백선엽이 왜 여전히 우리에게 장군인 것일까.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 당원이었다는 것이 조선독립군으로서의 명성을 깎아내릴 수 있는 이유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여전히 우리가 일제식민국가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한미일군사동맹이 득이라고 주장하는 국힘도의원의 플래카드를 볼때마다 저걸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놈들 역시 동해가 아니라 일본해라고 공식 발표하고 있다는데 그들이 우리와 동맹이라면 미제놈들 역시 일제놈들과 똑같고 우리는 식민지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된다. 미친 세상, 그 이상이다.

문득 인스타그램에서 본 모출판사의모사장님글이 생각난다.

대통령을 대통령이라 부르지 못하고. 개새끼를 개새끼라 부르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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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3-09-03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국민의 힘‘ 당도 분열시키는 재주가 있더군요. 간도 대학살이 100년 전에 정말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chika 2023-09-04 08:15   좋아요 0 | URL
백년밖에 안된 일을 없었던 일처럼 거짓말하는 것도 믿기지않는 일이죠.

NamGiKim 2023-09-06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도 독립운동가 김일성의 존재는 필수적으로 언급되죠.

chika 2023-09-07 09:05   좋아요 1 | URL
요즘 뉴스를 보고 있자니... 우리의 친일청산은 언제나 제대로 될지, 언제까지 식민주의사관,반공사관의 역사를 들어야할지....

NamGiKim 2023-09-07 09:09   좋아요 1 | URL
기본적으로 숭미적 사고에 친일적사고가 깔린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극우반공주의가 무섭고요.
 
그림자 인간 - 오야부 하루히코 문학상 수상작
츠지도 유메 지음, 장하나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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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인간'은 사귀고 있던 남녀가 이별을 통보하며 벌어진, 요즘 많이 발생하고 있는 연인간의 범죄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별 생각없이 그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이려니 하고 있었는데 사건의 피의자가 무호적자라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별을 고한 남자친구를 칼로 찔렀다고 순순히 자백한 하나는 막상 경찰서에 가서는 그 자백을 부인하며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그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하나의 뒤를 쫓던 경찰 리호코는 노숙자로 알고 있던 하나가 창고이기는 하지만 공장 안쪽의 독립된 공간에서 여러명의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은 모두 무호적자이며 무호적3세인 아이 미라이까지 열여섯명의 사람들이 수십년을 그곳 폐쇄된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와 그의 오빠 료가 공장부지에 버려진 시기 즈음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새남매 - 친모로부터 유기되어 새들과 함께 자라 새장속의 새와 같은 행동을 보였던 남매는 구조가 되어 복지시설에서 잘 지내는 듯 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유괴되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라진 새남매가 하나와 료 남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과거의 유괴사건과 현재의 무호적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이 소설의 핵심인가 싶었는데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사회파미스터리일까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다가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이 떠오를만큼 미스터리 요소가 사라진다. 그러다가 또 이야기는 어느새 미스터리를 떠올리게 하는 반전의 반전으로 흘러가고 이 이야기의 끝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전 지금까지 경찰로서 일반 사회에서 여러 가지 규칙을 따르며 살아왔어요.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법이나 조례에 근거해 범죄자를 잡는 게 제 일이자 사명이었죠. 하지만 이번 일로 뼈저리게 느낀게 있어요. 제가 믿었던 일반 사회는 전혀 완벽하지 않았구나, 나는 수많은 법률과 규칙을 만들어낸 사회 자체를 의심했어야 했다고요."(410)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문장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법 제도 안에서 보호를 받고 당연한 권리를 행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실 최근 제주4.3사건 이후 무호적자인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무호적자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영아 유기 살해, 매매 같은 흉흉한 사건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그나마 병원에서 출생해 그 존재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역시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으면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경우 이후의 대안이 없는 것이다. 


법제도의 헛점과 자신들의 처지 개선을 위해 노력을 해보고 싶어도 자신들을 위한 법제도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들도 너무 공감이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결국은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을 생각나게 하는 지극히 소설적인, 아니 이 소설이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무호적자들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의미를 떠올려보게 되기도 했다. 내가 스스로 찾아보면 되기는 하지만 일본의 제도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무호적자들에 대한 지원은 어떤지 역자의 말이나 편집자주가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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