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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부터의 탈출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2월
평점 :
"기억 잃은 백세 노인들의 예측불허 미래탈주극"이라 되어 있는 이 소설은 정말 말 그대로 '예측불허'의 이야기가 이어지며 그 탈주극이 어떤 결말을 보여줄지 궁금해 계속 읽게 되는 흥미로움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저 재미로만 읽다가 어느 순간 '인간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아니, 생각이 존재증명으로 흐르다가 결국 인간에 대한 개념규정에서부터 생각을 다시 해야하나 하게 된다. 옮긴이의 말처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 털어놓을 수 없지만 결국 되돌이표처럼 찍는 이야기의 흐름과 생각은 그리 나쁘지 않다. 특히 사부로가 상대방을 대하는 행동에서도 차별이나 선입견을 갖지 말아야하는것임을 깨닫게 하는 사소한 문장들은 더욱 좋았다.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부로는 늘 반복되는 생활속에서 무료함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이상함을 느낀다. 하루하루가 똑같지는 않지만 이틀 전, 사흘 전의 일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티비 속 스포츠 중계 역시 생방송은 아닌데 다들 처음보는 것처럼 열중하며 보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사부로에게만 이상하게 보이는 것일까,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니, 그 이전에 프롤로그가 있다. 이것이 미래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스스로 의문점을 갖고 주의깊은 통찰력으로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게 된 사부로는 요양원에서 무엇인가가 자신들을 통제하고 있음을 느끼고 탈출을 시도한다. 휠체어 없이는 걷는 것도 힘들고 휠체어를 타고 탈출은 커녕 건물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혼자 힘으로 탈출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사부로는 함께 할 동료를 찾기 시작하는데...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순간부터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이 시작되고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이 소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는 마음은 자꾸만 줄거리를 따라 책장을 넘기라고 하는데 문장의 맥락에 숨어있는 그 의미에 대해서는 자꾸만 곱씹어보며 생각을 해보라며 멈춰있게 한다. 존재에 대해 퍼센트로 따질 수 없음을 이해하지만 역시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똑같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했고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 그렇다고해서 이 소설이 심각하게 고찰을 하거나 논리전개를 통해 존재증명을 하거나 의미를 찾는다거나 하는 무겁기만한 소설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책을 읽다가 터미네이터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을 갖게 되기도 하고 매트릭스를 보는 듯한 놀라운 전개가 이루어지는 느낌을 갖게 될 때는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짓게 되고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소설 속 장면들이 더 화려해지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게 된다면 결말의 놀라움에 성급히 읽느라 놓쳤던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 같은 기대감도 더해지니 역시 '고바야시 월드'는 기대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