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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평점 :
벌써부터 이 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중섭과 조양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글을 마쳤다는 아쉬움은 내게는 더욱 더 큰 아쉬움이기 때문이다. 조양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중섭은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고 그의 기구한 삶과 그림들은 이미 유명해졌기에 뭐가 아쉬울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가 살았던 코딱지만한 방을 보고, 그가 그렸던 그림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중섭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과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이 무척이나 듣고 싶다.
그런데 지금 이 책에 실려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한꼭지한꼭지씩 신중하게 들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내 느낌을 글로 표현하려고 하니 막막해진다. 스폰지처럼 스며드는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쥐어짜버린것처럼 금세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저자는 유독 개념을 중시하는 작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 개념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규정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개념안에 담겨있는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질문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월북작가 이쾌대와 입양인 작가 미희는 저마다 다른 이유에서 '우리'의 범주에서 배제되어왔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쾌대와 미희를 불러온 의도는 그들을 포함한 새로운 '우리 개념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기 위해서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란 무엇이며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폭넓고 깊은 대화를 독자와 나누고 싶다고 했는데, 이미 이 책을 다 읽은 나는 과연 그러한 물음을 마음에 품고 답을 찾아가고 있게 된 것일까?
언젠가 라디오를 듣다가 문득 영어로 된 케이팝은 엄밀한 의미에서 케이팝일까?라는 물음을 던지게 됐다. 한국말이 서툴고 오히려 영어가 편한 가수들, 그리고 처음부터 영어로 만들어진 노랫말을 부르고 있는 가수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그리 의문을 갖지 않았으면서 왜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한국노래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을까. 아무튼 뜬금없는 궁금증에 라디오 진행을 하던 그 누군가는 영어로 된 노래지만 엄연히 케이팝이라고 확신어린 답을 해 줬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 물음에 이어지는 물음과 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에 실려있는 대부분의 그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신육복과 부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홍성담을 빼고는 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들과 그림이다. 홍성담의 작품은 얼마전 미술관에 갔다가 특별전을 하고 있는 작품들 사이에 커다랗게 걸렸있는 실물을 처음으로 봤는데 역시 작품은 책을 통한 것이 아니라 직접 봐야한다는 것을 느끼며 돌아온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 안에 담겨있는 의미에 대해 '사람이 아름다웠다'라는 부록글을 보니 좀 더 가까이 다가서는 느낌이다.
신윤복의 그림들에 대해서는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가 상영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도대체 신윤복을 여자로 등장시킨댄다!'라는 어이없는 외침을 들은 기억뿐 작가가 왜 그리 표현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나 신윤복이라는 화가에 대해, 그의 작품에 대해 좀 더 깊이 느껴보고자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다시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그만큼 신윤복이라는 화가와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져간다.
이미 알고 있던 작가와 작품에 대해 좀 더 깊고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에 정연두, 윤석남, 이쾌대, 미희=나탈리 르무안, 송현숙에 대해서는 그저 스폰지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좀 더 보고 싶다는 여운이 생겨난다.
저자가 바란대로 폭넓고 깊은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발견을 가능케 하고 시야를 넓히게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새로운 발견을 통해 우리 미술에 대해 시야를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음은 확신한다. 지금 이 책에 다 이야기하지 못한 이들을 더하여 나의 조선미술 순례 두번째 권이 나오기를 희망하듯이 우리 미술에 대해 더 깊이 관심을 갖고 그들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를 또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