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습니다 - 연꽃 빌라 이야기 스토리 살롱 Story Salon 2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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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평생 할 분량의 일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하기 싫은 일도 불합리한 일도 전부 다 참으면서요. 그만큼 월급이 많았기 때문에 참을 수 있는 한 참고, 돈을 모아서 그만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할 마음은 더 이상 없습니다"(97)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자신 스스로의 결정에 자신감을 갖고 "일하지 않습니다" 라고 당당히 이야기 하는 교코가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처음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을 때, 이 책의 제목이 정확히 '일하지 않습니다'인지 '일하지 않겠습니다'인지 헷갈려했었는데 이제는 정확하게 알겠다.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교코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연꽃 빌라'에 살면서 겪는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화자는 대형 광고 회사에 근무하다 위에 언급한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오래되어 조금 센 지진이 있을 때마다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할만큼 낡은 연꽃빌라에 세들어 살게 된 교코이다. 연꽃 빌라에는 시시콜콜 간섭하는 할머니들과는 달리 적당한 관심과 무관심을 보일 줄 아는 구마가이 씨, 집에 살기보다는 여행을 떠나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여행자 고나쓰 씨가 살고 있다.

그리고 너무 낡아 더이상 세입자는 받지 않을 예정이었는데 어느 날 새로운 이웃이 생기게 되는데, 이사를 하는 첫날부터 젊은 아가씨가 리어카를 끌고 온다. 새로 이사 오는 키 크고 늘씬한 모델 인상의 지유키 씨는 생김새와는 전혀 다르게 털털한 모습으로 별다른 가구도 없이 소박한 이삿짐을 친구 리어카를 빌려 직접 옮겨온 것이다.

네 명의 여자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별다른 커다란 사건없이 소소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이 이야기들이 의외로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아마 나 역시 나이를 먹으면서 행복이란 것이 특별한 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소소한 일상에서 자연과 벗하며 산책을 하고, 자수놓기 같은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며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연꽃 빌라의 낡은 모습이 어떠할지 상상하기는 조금 힘들지만, 이제 조금씩 오래된 집 티를 내고 있는 우리 집의 모습에서 연꽃 빌라를 떠올려본다. 수도가 누수되고, 전기가 깜빡거려 내부 전기를 점검해봐야 하고, 비가 오면 빗물이 새어드는 곳이 없는지 조금은 불안에 떨면서 지켜보기도 해야하고, 하얀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는 구석구석을 깨끗이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왠지 깔끔하고 깨끗이 정리된 아파트보다는 낡고 오래되어 먼지가 내려앉아 있는 지금의 우리집이 더 좋다. 지유키 씨가 좋은 집을 세 주고 연꽃 빌라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상상하는 그대로보다는 가끔은 반전이 있는 쪽이 훨씬 재미있다"(54)는 교코의 이야기에 들어맞는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내일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해결해야 하는 일의 순서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 행복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누군가에게 재촉당하거나 뭔가에 쫓기거나 하는 생활은 아니라는 것"(55)에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다.

소소한 일상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야기속에서 스며드는 듯한 행복이 보이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연꽃 빌라에 살며 일하지 않는 교코는 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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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꿈결 클래식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이병진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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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 유명한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이제야 읽어봤다. '도련님'이라는 단어에 집중해보지는 않아서 그저 하나의 풍자를 위한 단어의 선택인가, 싶은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책을 다 읽고나니 그 느낌이 달라지고 있다. 내게 도련님이라는 호칭에 대한 선입견은 왠지 귀하게만 자라 세상물정 모르고 허투루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철부지 어른을 지칭하는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역시 그와 다르지 않게 천방지축으로 생활하는 청춘이었고. 이 소설의 첫 문장 자체가 "나는 타고난 무모함으로 어린 시절부터 손해만 보고 살았다"이니 도련님이 얼마나 멋대로였을지 짐작이 갔다. 게다가 우리의 도련님은 성격마저 급한 다혈질이라 어떤 돌출행동이 나올지, 어떤 사고를 일으킬지 예측할수가 없다.

이런 도련님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형이 건네 준 돈으로 학교를 다니고 졸업 후 시코쿠 근처의 중학교 수학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도련님의 주된 활약 이야기는 중학교에서 이루어진다.

솔직히 천방지축인 도련님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글은 술술 읽혔다. 유명세에 편승해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고전,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왠지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 술술 읽다보면 또 어느새 나쓰메 소세키가 말하려고 하는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건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어떤 말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치졸한 놈들이다. 자신이 한 일을 말하지 못하겠으면 애당초 하지 말았어야지. 증거를 잡지 못하면 시치미를 뗄 작정으로 뻔뻔스럽게 능청을 떨고 있다. ... 거짓말을 해서 벌을 피할 거면 애당초 장난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한다. 장난에는 벌이 따르는 법이다. 벌이 있기에 장난도 기분 좋게 할 수 있다. 장난만 치고 벌은 싫다는 비열한 근성이 어느 지역에 유행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돈은 빌리지만 갚는 것은 싫다는 놈들은 모두 이런 놈들이 졸업해서 하는 짓이다. 도대체 중학교에는 뭐하러 들어온 것인가. 학교에 들어와 거짓말을 하고 속여서 남 뒤에서 치사하고 건방지게 장난을 치고, 그러다가 졸업이라도 하면 의기양양하게 자신은 엘리트라고 착각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다."(75-76)

 

도련님이 부임한 중학교 아이들의 장난을 이야기하면서 도련님 자신의 감정을 쏟아부어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치졸한 놈들, 거짓말을 하고 속여서 남 뒤에서 치사하고 건방지게 장난을 치다가 졸업이라도 하면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엘리트라 착각하는,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라고 한다. 그뿐인가. "세상은 희한하다. 맘에 들지 않는 놈이 친절하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나쁜 놈이라니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 조만간 불이 얼어붙고, 돌덩어리가 두부로 바뀔지도 모른다"(110)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백년전의 세상이 지금의 세상과 그리 달라진 것이 없을까.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에 감탄하면서 한편으로는 좀 씁쓸해지고 만다.

철부지 도련님인줄로만 알았는데 불같은 다혈질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간사한 놈들에게 하늘을 대신해 천벌을 내리고 아무리 교묘한 말로 변명을 하더라도 정의는 용서하지 않는다'며 호통을 친다.(243) 이 정도의 다혈질이라면 좋아할 수 있는 성격 아니겠는가.

 

세상살이를 하면서 오해도 받고, 모함에도 빠지고 - 나는 누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나를 벼랑끝에서 밀어내는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사람을 알게 되었다. 인간적인 관계맺음은 끝낸지 오랬지만 사회적인 관계맺음은 어쩔수가 없어서 자주 마주치는데 교묘하게 나를 괴롭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게끔 만드는 거짓된 말을 흘리고 다니는 것을 알게된 후 정말 미칠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지만 권력을 등에 업은데다가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착하게만 보고 있어서 괜히 성격대로 욱했다가는 온갖 흙탕물을 내가 뒤집어 쓰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묵묵히 지내고 있을뿐이다. 정직하지 못한 그런 사람과 싸움을 해 봐야 내 기분만 더러워질 뿐이니까. 이것을 이미 백여년전에 나쓰메 소세키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아무튼 좋은 사람은 아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인간은 대나무처럼 올곧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정직한 사람과는 싸움을 해도 기분이 좋다"(158)

 

도련님의 이야기는 재미있는데다가 이처럼 마음을 깊이 파고드는 문장이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거침없는 도련님의 행동은 어떤면에서는 대리만족같은 통쾌함마저 준다.

그리고 꿈결 클래식에서 출판된 도련님은 주석과 해제가 있어서 좀 더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자의 해제를 상세히 읽어버리면 그의 관점에서 소설을 보게 될 듯 해 해제는 넘겨버렸지만 중간중간 실려있는 사진을 꽤 흥미롭게 봤다. 사진을 보다가 알게되었는데 도련님의 작품 모델이 된 마쓰야마 중학교 교원들의 실존은 놀라웠다. 등장인물의 별명 그대로 사진 속 인물을 설명하고 있으니 괜히 더 뚫어져라 보게 되는데 이것 또한 이 책을 읽은 소소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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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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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었다. 제주 뉴스에서는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화물기사분의 자살시도 소식이 탑뉴스로 나오고 있었다. 그분은 혼자 도망쳐나온것도 아니고 수많은 아이들을 구해내고 살아난 분이었지만 화물차는 바다속으로 빠져버리고 생계가 막막한데다 자꾸만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지옥같다고 했다...

 

가끔 세월호에 남아있던 아이들뿐 아니라 모두의 마지막을 떠올리다보면 너무나 끔찍해져서 잠시 몸과 마음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고 아무것도 할수가 없게 되곤한다. 애써 그들을 떠올리려 하지 않으려고 하는바람에 한동안은 세월호 관련 뉴스가 나오면 외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외면하고 잊으려 하는 것, 그 순간의 괴로움을 떨쳐 버리려고 하는 나의 모든 행동과 마음은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하며, 더욱 철저히 원인을 찾아내어 두번 다시는 그런 참혹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의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참담한 기분이었지만 세월호와 관련한 많은 뉴스를 찾아봤다. 내가 지금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는 이유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엊그제는 미사 중 신부님의 강론 시간에 아이들을 구하다 숨진 승무원 박지영양의 이야기를 하셨다. 우리는 어느덧 그들을 잊어가고 있는데 오히려 외국에서 타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며 짧은 동영상을 제작해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고.

 

며칠 후면 제주 4.3 67주기가 되고 올해는 우연찮게도 성금요일과 겹쳤다. 수난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수난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새삼 생각해본다.

오늘 제주 뉴스에서는 제주4.3이 있던 당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미의회에 진상규명조사를 위한 청원을 하러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님과 제주대 교수가 미국으로 갔다는 뉴스가 나왔다. 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은 훨씬 이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모든 것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숨죽여 살아온 세월을 나는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육십년도 훨씬 더 지나서야 목소리를 내어 진상조사를 해야한다고 말을 꺼내고 있는 현실이 조금은 답답하지만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려 한다는 것에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데 말이다. 21세기, 이천년대를 훌쩍 넘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세월호의 끔찍한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이제 겨우 1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벌써 그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프다.

 

4.3이 지나면 부활절이고 부활의 시기에 세월호 1주기가 된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펼쳐 부모님들의 인터뷰를 읽고 있으면 자꾸 먹먹해지고 마음이 아파온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그들 모두를 잊지 말아야지, 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세상을 떠나 더이상 볼 수 없는 이들을 떠올리며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보다 그들을 추억하며 결코 잊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마지막 순간에 서로를 위해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용기를 잃지 않고 희망을 가졌던 모습을 기억해야한다. 많은 꿈을 갖고 있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는 꿈이 되어버린 그 아이들의 꿈은 우리가, 우리의 미래가 이어받아 이루게 될 것이라 믿는다. 부활의 시기에 세월호 1주기를 맞이하는 것이 그저 상징적인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부활의 신비와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에 연연하며 슬픔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두번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게 되기를 바라며 진실을 향해 모두가 다같이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슬프고 아프겠지만 이 인터뷰집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가만히 글을 읽다보면 그 슬픔의 깊이를 미처 다 알아챌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희망을 찾으려는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우리는 결코 그들 모두를 잊지 않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있으리라 믿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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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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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이라는 수학자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주 오래전에 영화를 통해서였다. 그 영화에서는 이미 전쟁이 끝난지 오래되었는데 혼자 전쟁상태의 가상세계에 살면서 온갖 암호화된 문자를 풀어대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정신질환자가 잠깐 등장하였고, 그 사람이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그 영화에 대한 에피소드로만 알고 지나갔었는데 알고 보니 그가 바로 앨런 튜링이었다. 아마 그 영화감독은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 세계대전의 종전을 앞당기는 수훈을 세웠지만 정작 그 자신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던 앨런 튜링에 대한 헌정으로 그 가상의 인물을 영화에 등장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때의 영화에 대한 기억에 더하여 최근에 개봉한 이미테이션 게임때문일까, 처음 생각했던 이야기의 흐름과는 많이 달라서 조금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앨런 튜링의 평전같은 느낌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책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은 앨런 튜링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의 죽음에서 시작하여 그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앨런 튜링이라는 사람과 그의 위대함을 하나씩 보여주고 있는 글이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이야기의 전체 흐름이 앨런 튜링의 수학자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동성애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춰져있는 것 같아서 그리 재미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물론 앨런 튜링이 그의 위대한 업적과는 달리 수많은 기록에서 삭제되고 세상에서 그를 지워나가버리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그의 동성애성향때문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소설에서 이야기는 앨런 튜링이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숨진 후, 그 사건을 조사하게 된 경관 코렐을 중심으로 이어져간다. 그리고 코렐을 통해 앨런 튜링의 생애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고 왜 그가 위대한지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코렐 경관의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동성애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영화와 비슷하리라는 선입견때문에 큰 흐름을 파악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앨런 튜링의 삶에 대해, 그리고 그보다 더 그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고 그것은 나름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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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인문학 -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시드페이퍼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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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그것은 인식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이사를 와서 지금까지 계속 같은 집에서 살면서 같은 골목을 지나 학교를 다니고 출퇴근을 하고 있으면서도 간혹 집의 위치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하면 새삼스럽게 우리 동네에 뭐가 있나... 생각하게 되는데 정확한 묘사를 하지 못하곤 했었다. 사실 그전까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관찰의 인문학을 받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날 하루만큼은 출근길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그런데 평소보다 조금 느린 걸음으로 더 세세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출근을 해 봤지만 별다른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나 자신의 시선이 바뀌지 않았는데 뭔가 새로움을 발견하리라는 기대가 가당찮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이라는 말 속에 나의 인식이 갇혀버려서 내가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만을 생각해서 그런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 책을 읽기시작하면서 내 주위를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해보려고 했지만 여지없이 나는 내 눈에 먼저 보이는 것만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엊그제 여행지에서 간식을 사려고 설명을 읽는데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던 한글이 옆에 있던 친구에게는 바로 보인다고 했는데 한글로 적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도무지 금세 찾아내지 못하고 헤매다가 겨우 한글 설명을 찾아내고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수밖에 없었다. '본다'는 것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책을 조금 더 읽어보니, 같은 길을 나 혼자만 걸으며 관찰하고 인식하며 시선을 달리하여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같은 길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걸음의 반경이 달라지고 나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길을 걷는다는 말에서 풍경과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만을 떠올렸는데 함께 길을 걷는 사람의 직업에 따라 풍경뿐만 아니라 건물의 건축에 시선이 머물거나 건물을 상징하고 설명해주는 간판의 글씨체와 디자인에도 관심을 갖고 길을 걷다보면 같은 길이라도 무척 낯설고 신선해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아주 오래전에 친구와 산행을 갔을때가 떠오른다. 나는 그저 조금 더 올라가면 출입이 가능한 정상까지 금세 닿을 수 있다는 것과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좋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친구는 별다를 것 없어보이는 커다란 바위를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이곳은 정말 공기가 좋은 곳인것 같다'라는 말에 깊은 산속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는 내게 바위를 가리키며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이끼는 정말 깨끗한 환경이 아니면 자라지 않는 것이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고보니 '관찰'이라는 것과 '인문학'이라는 말이 얼마나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것인가. 그저 시선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시선에 따른 생각의 변화와 그 생각안에 더 깊이있는 인문학적 사고를 담아낼 수도 있는 것이다.

"당신은 자세히 살펴보는 행위에 가치를 두는 새로운 문화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관찰하는 사람의 눈앞에는 하찮은 동시에 굉장한 것들의 어마어마한 지층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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