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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인문학 -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시드페이퍼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그것은 인식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이사를 와서 지금까지 계속 같은 집에서 살면서 같은 골목을 지나 학교를 다니고 출퇴근을 하고 있으면서도 간혹 집의 위치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하면 새삼스럽게 우리 동네에 뭐가 있나... 생각하게 되는데 정확한 묘사를 하지 못하곤 했었다. 사실 그전까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관찰의 인문학을 받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날 하루만큼은 출근길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그런데 평소보다 조금 느린 걸음으로 더 세세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출근을 해 봤지만 별다른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나 자신의 시선이 바뀌지 않았는데 뭔가 새로움을 발견하리라는 기대가 가당찮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이라는 말 속에 나의 인식이 갇혀버려서 내가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만을 생각해서 그런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 책을 읽기시작하면서 내 주위를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해보려고 했지만 여지없이 나는 내 눈에 먼저 보이는 것만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엊그제 여행지에서 간식을 사려고 설명을 읽는데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던 한글이 옆에 있던 친구에게는 바로 보인다고 했는데 한글로 적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도무지 금세 찾아내지 못하고 헤매다가 겨우 한글 설명을 찾아내고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수밖에 없었다. '본다'는 것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책을 조금 더 읽어보니, 같은 길을 나 혼자만 걸으며 관찰하고 인식하며 시선을 달리하여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같은 길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걸음의 반경이 달라지고 나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길을 걷는다는 말에서 풍경과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만을 떠올렸는데 함께 길을 걷는 사람의 직업에 따라 풍경뿐만 아니라 건물의 건축에 시선이 머물거나 건물을 상징하고 설명해주는 간판의 글씨체와 디자인에도 관심을 갖고 길을 걷다보면 같은 길이라도 무척 낯설고 신선해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아주 오래전에 친구와 산행을 갔을때가 떠오른다. 나는 그저 조금 더 올라가면 출입이 가능한 정상까지 금세 닿을 수 있다는 것과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좋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친구는 별다를 것 없어보이는 커다란 바위를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이곳은 정말 공기가 좋은 곳인것 같다'라는 말에 깊은 산속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는 내게 바위를 가리키며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이끼는 정말 깨끗한 환경이 아니면 자라지 않는 것이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고보니 '관찰'이라는 것과 '인문학'이라는 말이 얼마나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것인가. 그저 시선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시선에 따른 생각의 변화와 그 생각안에 더 깊이있는 인문학적 사고를 담아낼 수도 있는 것이다.
"당신은 자세히 살펴보는 행위에 가치를 두는 새로운 문화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관찰하는 사람의 눈앞에는 하찮은 동시에 굉장한 것들의 어마어마한 지층이 모습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