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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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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가 쓴 자서전인데 책의 제목이 조지프 앤턴인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조지프 콘래드와 안톤 체호프의 이름을 조합해서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이 조지프 앤턴이며 '악마의 시'로 이슬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살만 루슈디가 사용하는 가명이 조지프 앤턴이다. 그렇게 이중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세월이 십수년, 그는 "상징적 인물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실존 인물이 되고 싶었다"(476)라고 항변하고 있다. 조지프 앤턴으로 살아야 하는 그 시간들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어렴풋이 알 듯 하면서도 나는 온전히 그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물론 나의 체험이 아니기에 그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득 엊그제 읽은 황경신의 에세이가 떠오른다. "삶이란 둘 중의 하나. 이것 아니면 저것. 그런 것들이 쌓여 운명이 되고 인생이 된다"

 

"책은 작가의 책상을 떠나면서 변모한다.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니 더는 작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책이 자유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말해도 좋다. 책은 제멋대로 여행할 테고 작가가 간섭할 방법은 없다. 작가 자신도 문장 하나하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제 남들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달라 보인다. 책은 이미 세상으로 나아갔고 세상은 책을 바꿔 놓는다.

'악마의 시'도 그렇게 집을 떠났다. 그리고 작가의 책상 바깥의 세상에서 이 책은 유난히 극단적인 변형과 탈바꿈의 과정을 겪었다. (129)

 

나는 '악마의 시'를 읽어본 적이 없다. 이슬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비유에 대한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문학이 전하는 은유의 세계를 이해할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우리 동네 아이들'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종교의 지도자들이 왜 종교적 금기 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인간의 행위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노골적인 신성에 대한 모독은 그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행하는 모독처럼 느껴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릴때 읽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리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악마의 시에 대한 관심은 아예 갖지 않았다. 호기심에 슬쩍 들춰본 적은 있지만 내 기억에 악마의 시는 이해할 수 없는 긴 연작시같은 느낌뿐이었다. 그러니 나는 살만 루슈디와 악마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인 조지프 앤턴을 읽다보니 이슬람을 좀 더 이해하고 싶고 악마의 시를 읽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는 분명 이슬람을 모독하려고 글을 쓰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표현처럼 작가의 책상을 떠나 책이 된 '악마의 시'는 바깥의 세상에서 극단적인 변형과 탈바꿈의 과정을 겪으며 그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그리 쉽지 않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조지프 앤턴은 파트와 기간동안 살만 루슈디라는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자유로움도 속박당하면서 지내야 했던 13년간의 기록이다. 처음 글을 읽을 때는 그 기록의 의미에 대한 생각은 커녕 그저 단순히 살만 루슈디의 자저전이라는 인식조차 별로 없이 막연하게 한 작가의 삶, 정도로만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자신의 삶에 대한 변명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호기심이 가득한 상태로 재미삼아 읽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집중하며 빠져들기보다는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3인칭 화자로 쓰여졌기 때문에 소설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조지프 앤턴은 살만 루슈디 자신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의미로 행동을 하고,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느낌을 갖는지, 특히 세상 사람들의 온갖 편견과 오해에서 어떤 상처를 받고 어떤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는지... 그의 마음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것들이 살만 루슈디 자신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세상에 드러내고 항변하지 못하고 억눌러야 했던 그 자신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부터 이 책은 단순한 자서전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문학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문학은 우주를 조금 더 열어보려고 노력한다. 인류가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총량을 조금이라도 증가시켜 결국 인간의 가능성을 확대하려고 노력한다. 위대한 문학은 이미 알려진 세계의 변경까지 나아가 언어, 형식, 잠재력의 한계를 확장함으로써 세계가 전보다 더 크고 더 넓게 느껴지도록 한다"(811)

 

조지프 앤턴을 읽기 전까지는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잠시 해 봤을 뿐이지만 이제는 읽고 있는 책들이 좀 정리가 되면 빠른 시일내에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학의 '의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조지프 앤턴의 자서전을 풀어내는 살만 루슈디의 글솜씨로 봐서는 그의 소설들은 정말 흥미롭겠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것도 그의 작품을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한 몫을 하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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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 정호승 시선집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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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무실 화장실에는 좋은 문구가 하나씩 걸려있는데 그 중 한 곳에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가 걸려있다. 가끔 되내이곤 하면 왠지모를 위안을 받게 되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로 시작하는 그 시.

정호승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서울의 예수]라는 시집을 통해서였다. 나는 그렇게 서정적인 언어로 단지 감정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와 '연민'을 느끼게 하는 시인의 시에 충격 비슷한 것을 느꼈고 곧 그의 시에 빠져들었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그의 시는 한편의 짧은 에세이같은 느낌이기도 했고, 삶의 고달픔에 짓눌려 지친 나를 위로해주는 노래 같기도 했다. 차마 위로의 말을 건네기 힘든 상황일 때 나는 정호승 시인의 시를 펼쳐들고 그 시를 옮겨 적어 건네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시는 큰 위로가 된다.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내가 사랑하는 사람) "아가야 너는 길을 가다가/ 한 송이 들꽃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라/ ... 아가야 너는 길을 가다가/ 눈물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라"(새벽에 아가에게)

그러니까 그의 시를 읽다보면 그늘이 없는 사람, 올곧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사람조차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가서는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의 시가 더 좋은 이유는 듣기 좋은 언어로만 포장을 한 이쁜 시가 아니라 그 안에 결연히 일어서게 하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슬픔과 절망을 묵묵히 견디어 내어 끝내 굳건히 일어나야 하는 그런 마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꽃)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 되어야 한다/..... 산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을 내려와야 하고/ 사막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깊은 우물이 되어야 한다"(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

인생의 길을 가다 넘어지는 내게 따뜻한 손을 내밀고만 있는 것 같은 위안이 되는 것이 바로 정호승 시인의 시이다.

그리고 오늘은 특히 나의 마음을 울리는 시 한편을 넘길수가 없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꽃을 보려면, 전문)

봄 지나 꽃이 피었다 져버리기 전에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먼저 볼 생각이다. 아니, 올 봄에는 꽃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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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레몽 드파르동 지음, 정진국 옮김 / 포토넷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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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 드파르동의 방랑을 읽다보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방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솔직히 처음 사진에세이를 읽기 시작할 때 나는 막연히 '방랑'에 대한 겉멋으로 인해 이 에세이 안에 어떤 사진이 담겨있을까,가 무척 궁금했었다. 생각과는 달리 뭔가 개념이 잡히지 않는 사진들과 쉽게 와 닿지 않는 그의 글들이 '방랑'앞에서 당황하게 하며 방향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아, 이건 뭘까. 사진과 글을 연결해보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런데 문득 그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방랑에 주제는 없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하지도 부자를 고발하지도 않는다. 나는 구름을 찍고 땅바닥을 찍는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또 너무너무 잘 보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또 너무너무 잘 봐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잘 볼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막연히 '멋'으로만 글과 사진을 훑어가려고 한 것이어서 당혹감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방랑은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처럼 이리저리 시선이 가는 곳의 모습이 사진에 찍혀있다. 왜곡시키지도 않고 거짓을 말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풍경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사진들.

주제도 없이 목적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떠도는 것 같지만 어쩌면 방랑은 그래서 더 자신의 주변을 가감없이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이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과는 또 다르다. 의미없이 그저 떠도는 것이 아니라 방랑 속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바라보려면 고독해야한다. 방랑은 단순한 광기보다 더하다. 자취를 남기고, 시간을 붙잡는다. 늙을까 겁내고 죽을까 겁내지 않을까"

솔직히 이 책을 한번 읽어보고는 도무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잘 알수가 없었다. 그런데 잠시 멈추고, 문장을 다시 한번 더 읽어보고 사진을 들여다보고... 그렇게 시간을 들여 바라보고 있으려니 글 하나하나가 세상을 방랑하듯 살아가고 있는 나의 삶을 들여다보게 하고 있다. 사진의 의미는 그렇게 잘 알수는 없지만, 사실 레몽 르파르동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일치할수도, 일치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괜히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이게 뭔가, 하는 생각으로 고민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니 얄팍하지만 결코 가볍게 읽을수만은 없는 사진에세이가 조금은 더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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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 2015-04-13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다이어리에 나오는 사진들인가요? 궁금궁금...*^^

chika 2015-04-13 20:54   좋아요 1 | URL
프랑스 다이어리를 안봐서리...
오늘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를 받아서 그 책 사진을 볼랍니다
 
머메이드
아이린 크로닌 지음, 김성희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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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 살 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의 첫 문장은 뭔가 앞으로 전개 될 이야기가 어떠할지 수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이 그래픽 노블인 줄 알았고, 머메이드 - 인어, 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한편의 동화를 떠올렸었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고 아름다운 그래픽 노블이 전개되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두툼한 한 권의 소설책이 내 앞에 놓였고, 이 소설은 저자 아이린 크로닌의 자서전적인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리가 없이 태어났고 손가락도 온전치않아 갈퀴처럼 되어버렸지만 아이린은 집에서 그리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러한 그녀의 일상 이야기가 더 감동이었다. 다리가 없는 그녀가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뒤뚱깡총이라고 부르는데, 아이린은 그것을 운동 종목이라 우기며 강아집다 빨리 뛸 수 있다며 자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 역시 그녀가 살고 있는 가톨릭 신앙이 강한 그녀의 동네에서는 그리 문제될 것이 없지만 동네밖에서는 그와 같지 않다는 것도 말하고 있다.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가 되면서,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녀가 가족들과의 관계와 학교생활, 친구들, 첫사랑...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저 무덤덤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글을 읽다보면 아이린이 다리가 없는 기형으로 태어나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냥 '아이린'이라는 한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어린 시절의 추억과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 물론 기형으로 태어났고, 어머니가 자신을 임신하고 있을 때 먹은 약으로 인한 기형 장애를 갖고 있음으로 해서 자신의 임신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얼마든지 멋진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훌륭한 엄마가 되는 것 역시 가능했다. 하지만 세상이 그 아이를 어떻게 대할까? 다른 이들에 대한 나의 신뢰는 이미 다 깨져버렸다. 나는 더 죄악인 습관에 빠져들고 있었다. 바로 두 개의 팔과 두 개의 다리를 가진 모든 이를 불신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의 모든 인류에게서 등을 돌려야만 했다"(498)

쉬운 일이 아니지만 결국 아이린은 모든 것을 이뤄냈다. 머메이드,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녀가 특별하거나 위대한 무엇인가를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할 뿐이지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 마음을 크게 울리는 것은, 아이린에게뿐만 아니라 내게도 큰 울림을 주고 있는 프리다 칼로의 글이다. 그녀의 그림에는 고통의 메시지가 담겨있다,라고 하지만 내게는 고통을 뛰어넘은 위대함이 보이는 듯 했다.

"나에겐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는데 발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536)

프리다 칼로, 아이린, 그리고 나, 아니 우리 모두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는데 발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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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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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으로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전혀 짐작이 안됐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어떤 은유를 담고 있는지 알겠다. 솔직히 처음엔 뭔가 알쏭달쏭한 느낌에 집중이 힘들었는데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그 흐름을 잡게 되니 손에서 책을 놓을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또 단숨에 읽어제껴버리면서 이 책의 내용을 잘 정리해서 이야기해주는 것이 힘들어졌다. 이것을 나의 언어로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괜히 더 안타깝기만 하다. 책의 내용이 더 흥미롭고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여서 더욱 그런 마음일 것이다.

 

이야기가 앞서가고 있지만 책을 읽으며 '세금'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연말정산을 하면서 뉴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는 계속 세금이 증가했다고 떠들어대고 있는데, 연말정산에 대해 세무서 직원이나 관련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전과 달리 세액공제를 하기 때문에 세금 감면 효과가 크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질적으로 세액공제를 하면 세금감면효과가 크려니.. 생각했지만 경로우대를 받는 80세 1인 세대주가 연간 삼천도 안되는 소득에 나온 결정세액이 오십만원이 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도대체 뭐가 세액감면이라는 것이지?

책을 읽으며 가만 생각해보니 관공서 직원들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연말정산의 세액공제 어쩌구 설명을 하면서 결론적으로 세금감면혜택,이라는 말에 그저 그런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프레임의 덫'이라는 것이 이런것이겠구나...

 

사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미 집에서 어머니와 뉴스를 보면서 '프레임'의 허구와 그 안에 담겨있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느끼고 있었다. 특히 경제 관련 뉴스는 나도 잘 개념이 안잡히는 것이 많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대기업을 살리는 정책이라는 것이 곧 우리 국민의 경제를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기업이 호황을 누려 순이익이 늘어난다고 한들 그 수익금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아무 생각없이 뉴스를 듣다보면 그들의 흥망성쇠가 곧 우리 가정의 경제와 똑같이 되는 듯한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인해 대기업이 경제적인 성장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라는 뉴스만 흘러나오고 그로 인해 우리의 농업이 무너지고 가격경쟁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더 많은 부담을 하게 된다는 것은 은폐된다는 것을 간과하게 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솔직히 나도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는데 뉴스를 보면서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가만히 듣다보니, 내게는 뷔똥같은 고가의 가방 가격이 낮아지거나 말거나 별 상관이 없고 매일 밥반찬을 고민하면서 시장에 가서 사야하는 나물 가격이 더 중요한데 뉴스에서는 오로지 뷔똥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한번 그런 것을 깨닫기 시작하니 이제는 뉴스의 헛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누군가의 표현처럼 정말 뉴스쇼일뿐이지 우리가 진짜 알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뉴스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언젠가 친구가 '기획뉴스'의 맹점에 대해 열변을 토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이 봇물터지듯 나오게 되는 책이지만 아직은 나의 말이 아니라 그냥 이 책을 건네주며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그래서 이미 책을 읽는 사이에 선물하려고 다시 구입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한가지 언급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흔히 사회복지를 위해 자금을 투입하려면 정부에서는 세금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하고, 그것은 곧 우리의 세금이 올라가는 것이라는 등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공동선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은 좋지만 수입이 한정되어 있는 나의 소득에서 세금명목으로 더 떼어가는 것은 싫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나 역시 그렇고. 하지만 공적자금, 공공재, 공공선을 위한 투자라는 것은 우리의 세금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세수를 늘려야 한다는 말에는 은연중에 우리 서민들의 세금이 올라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개인주의를 슬금슬금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상속세, 증여세... 최상위층에 - 말 그대로 최상위층, 수적으로 반발이 커질수도 있는 중상위정도가 아니라 - 누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세금의 증가는 왜 그리 어려운 것인지와 함께 말이다.

 

아직 정리가 다 되지 않은 이 글을 잠시 묵혀두고 있었는데 더 잘 정리하려다가는 책을 읽고 또 읽게 될 듯하여 그냥 나의 말을 줄이고 이 책을 직접 읽어보라는 말을 되풀이할수밖에 없겠다. 더 놀라운 내용을 말하고 싶지만 내 어설픈 이야기보다는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을 읽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저자가 정말로 중요하다고 정리한 네 가지 지침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이다. 나 역시 그 지침을 다시 새겨본다.

 

상대를 존중하라

프레임을 재구성하여 대응하라

가치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발언하라

자신의 신념을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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