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 김갑수의 살아있는 날의 클래식
김갑수 지음 / 오픈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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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라니. 글쎄, 다른 건 몰라도 클래식을 두고 이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그리 낯익은 것이 아니다.

중학생 때 열심히 대중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노래를 즐기던 내게 반 친구는 자신은 그런 저급해보이는 음악은 듣지 않는다는 말을 했고 그것은 사실 과히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음악에 있어 고급과 저급의 기준이 뭔지 여전히 모르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굳이 지들끼리 향유하는 고급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클래식을 들을 때, 뭔가 좀 알아야 들을텐데... 라는 생각은 내 음악적 취향과 감흥과는 상관없이 다들 좋다고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는걸까 싶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이든다.

나는 강박관념처럼 태생적으로 클래식의 취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무심코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그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에 확 마음이 꽂힌적이 있다.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려고 했을 때 첫번째로 선택해 볼 수 있는 것은 흔히 말하는 추천명반이었고 나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유명하고 잘 팔린다는 음반을 두어개 사서 들어보곤 한 것이 전부인 내게 그 선율은 뭔지 모르게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고 고요와 평화로움 속에서 행복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때 아마 비로소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별다른 감흥이 없는 내게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라는 물음은 이해될 듯 하면서도 완전히 공감하게 되지는 않아서 도대체 저자가 어떤 말들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글을 어렵게 쓰는 편이 아닌데, 그래서 글을 읽는 동안은 너무 재미있게 읽어나가는데 막상 책을 덮고 그 책에 대해 생각을 떠올려보려고 하면 뭔가를 톡 끄집어낼수가 없다. 이건 전체적인 맥락에서 얘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겠지.

 

오랫만에 클래식 시디를 꺼내들었다. 오디오가 망가진 후 컴으로만 가끔 음악을 들었기때문에 꺼내지 않고 먼지와 함께 묵혀둔 것들 중에서 무엇을 꺼내나... 고민하다가 거의 들어보지 않았던 쇼스타코비치를 꺼내들었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가 평론가 모임에 좀 진지하게 음악감상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꺼내들었던 것이 쇼스타코비치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겨우 십여분을 넘기고 산만해져버린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사는 시대 분위기가 이렇다고 단정짓는 저자의 말에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무겁고 진지한 것은 억압으로 다가온다. 최대한 가볍고 부담 없고 경쾌해야 한다. 개개인의 탓을 할 순 없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중압감이 우리더러 깃털처럼 가벼워져라 요구한다. 침중한 영혼의 19세기는 이제 철 지난 유행, 앤티크 숍의 진열품으로 전락해 버렸다"(79)

 

아니, 그런데 역시 나도 집중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시간이 넘는 연주에 집중하기는 커녕 금세 다른 음악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클래식 음악 탓이겠는가. 나는 대중가요조차 긴 시간 집중을 하지 못하고 책을 읽다 집중하게 되면 라디오 소리가 시끄러워 꺼버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클래식을 탓하지말자.

서너번 들었을까 싶은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는 지금의 내게 조금은 흥미롭게 들리기도 한다.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여러번 들어 익숙해진 라흐마니노프와 우연히 들은 음악에 반해 이거 좋다, 라고 느낌으로 먼저 알았던 베토벤이겠지만 고장난 오디오를 대신할 것이 갖춰지지 않는 이상 음악에 미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왠지 그 느낌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그 아득한 지하 공간에서도 시국이며 남북 관계, 자본주의 위기와 중산층 붕괴 문제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고급한 커피 문화를 향유하면서 멋진 연애에 대한 선망도 떨치지 못하건만 생체실험에 몸을 팔아야 하는 가련한 하급병사의 음악 스토리에 또한 이끌린다. 위선이거나 위악이거나.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몹시 궁금하다. 19세기를 사는지 21세기를 살고 있는지, 정말로 고립돼 있는지 온 세상에 촉수를 뻗고 있는지. 왜 사는지. 정말로 왜 사는지.

음악도 그렇게 무지와 미지로 존재한다. 한 떨기 꽃이 피어난 이유를 설명하지 않듯이,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 했듯이 닥치고 음악이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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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키워드 한국문화 6
최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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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무섭더니 이제는 보이는 것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특히 어둠이 내려앉은 길을 지나는 사람 하나 없을 때, 내 뒤를 덮칠것만 같은 귀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행여나 나를 해코지하려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야 하는 낯선 사람 하나가 더 무섭다. 좁은 골목길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일부러 덮칠듯이 나를 위협하는 사람과 마주쳐봤거나 일부러 자신의 신체를 보여주며 성추행을 하는 미친 사람들과 마주쳐봤다면 더 그럴 것이다.

그런데 처녀 귀신이라니. 이건 그냥 무서워하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겠지? 물론 이 책은 기담이야기가 아니다. 귀신 이야기에 담겨있는 우리 문화의 인문학적 접근이라고해도 될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귀신의 내력은 분명하다. 그것은 그들이 더는 현실에서 살아갈 수 없었던 비극을 겪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슬픈 사연은 모종의 음모와 억압에 연루되어 있다. 귀신들은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현실로 돌아와 억눌렸던 자신의 내면을 '귀곡성'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한국인에게 귀신의 이미지가 유독 처녀귀신으로 고착된 것은 미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 희생의 그림자를 반영한다"(173)

 

추석 때, 세월호 유가족 중 누군가가 세월호가 가라앉은 곳으로 찾아가 제를 올렸다던가. 아직 뭍으로 올라오지 못한 실종자들의 귀환과 어쩌면 너무 원통하고 기가 막혀서 그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이 있을까봐 그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고 한을 풀어주고 싶다했던가. 처녀귀신의 이야기와 넋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유가족의 이야기는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귀신 이야기가 단지 무서운 전래동화처럼 이어져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그저 한여름밤에 더위를 잊기 위해 단지 무섭자고 꺼낸 수다속에서 '영혼'을 믿는 사람들이 무신론자들보다 더 귀신의 존재를 믿는거 아니겠냐는 한마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도 내 기억과 느낌이 실제인지 구분을 못하겠는데, 몇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아직 그 소식을 전해듣지 못한 나는 젖은 머리를 말리며 마루로 나오다가 평소 아버지가 즐겨 앉으시던 소파에서 얼핏 아버지의 그림자를 본 듯한 기억이 있다. 몇달 동안 병원에 계셨기 때문에, 그리고 곧 전화를 통해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어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냈기 때문에 나는 환상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가끔은 아버지가 하늘로 가시기 전에 즐겨 앉으시던 그 자리에 앉아 내 모습을 보고 가신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곤 한다.

 

세월호와 함께 바다속으로 가라앉아버린 수많은 생명은 어떠할까. 그 파도에, 그 짧은 시간에도 수십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는 어부들의 외침은, 충분히 구해낼 수 있는 이들을 너무도 어이없이 허망하게 수많은 생명을 보내버렸다는 분노를 떨굴수가 없다. 내가 이러한데 그들은 얼마나 원통하고 분하고 어이가 없을까. 세상과 이별해야만 했던 그들, 그 아이들의 마지막은 어떠했을까.

세월호를 타고 들뜬 기분으로 친구들과의 여행을 즐기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도착을 기다리던 아이들이 보낸 마지막을 떠올려볼 때면 너무나 끔찍하고 두려워서 바로 그 생각을 떨쳐버리고 만다. 잊지않겠다,라고 결심했지만 그들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구조를 기다리며, 지금 이 시간들은 훗날 엄청난 일로 추억하게 될 하나의 사건일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미래없는 과거가 되어버렸다.

 

"여자 귀신은 공포를 환기시키며 현실로 귀환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들은 결코 무서운 파괴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억울하게 현실에서 쫓겨난 자임을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추방됐다는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은 죽음의 세계에도 정착할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여자 귀신은 이승에도 저승에도 머물 수 없는 난민이다. 그들은 오직 이야기하는 주체, 언어적 존재로서 신생한다"(66)

 

자신들이 빠져죽은 바다를 떠나지 못해 그곳에서 떠돌고 있을까봐 그 혼을 위로하고 고이 보내주고 싶다는 어느 유가족의 마음을, 단지 미신같은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귀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사회가 소외시키고 배제시킨 대상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발성하는 증표가 된다. 그것이 화들짝 놀라는 단발성 공포의 형식일지라도, 전율이 발생하는 바로 그 순간만큼은 사회의 그늘을 들추는 불편한 진실과 목도하게 된다. 그래서 공포의 순간은 차라리 신성하다"(176)

그래서 오히려 귀신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월호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안개속에 가려져있고 현재로서는 그 안개가 모두 걷히기를 바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야기 속에서라도 사회의 모순을 뼈아프게 들추는 진실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은 불편한 일이며, 바로 이 '불편함'이 귀신 이야기가 형성하는 공포의 요체다"(175)

그러니 진실을 알게 되는 불편함을, 그 모든것이 주는 공포를 두려워하지 말자. 잊지 않겠다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해주자. 어쩌면 진짜 귀신 이야기보다 더 무서운 세월호 사건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추방된 자의 항변에 귀 기울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며 죽은 이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의무임을 잊지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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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셀프 트래블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20
박정은 지음 / 상상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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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게 크로아티아는 꽃보다 누나,가 나오기 이전부터 이곳의 모습이었다.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하면서도 언젠가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정해두고 있는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이 사진은 플리트비체의 국립공원의 모습이고 폭포의 아름다움과 맑고 깨끗한 물의 흐름은 정말 절로 감탄이 나올것만 같은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 셀프트래블은 이렇게 멋진 풍경을 집어넣은 사진집이 아니다. 크로아티아 여행을 위해 크로아티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자유여행은 물론 혼자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소심한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도 이 책은 많은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셀프트래블'이라는 말에 걸맞게 이 책은 역시 자유여행을 위한 가이드북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꽤 알찬 구성으로 크로아티아의 매력을 마음껏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크로아티아의 주요 도시와 아름다운 소도시를 효과적으로 즐길 수 있는 도보 루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무엇을 봐야 하나?'하는 고민이 없도록 세심하게 도보 루트를 담은 것이다.  각 장은 여행자들을 위한 반나절 루트부터 하루 루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로아티아는 역사 문화 유적 중심이라기보다는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이 최대 볼거리이다. 모든 여행이 다 비슷하겠지만 어떤 도시를 얼마 만에 볼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편안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것인가를 더 고민하면서 여행 일정을 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각 장마다 비슷하게 되어있는데 지역으로 들어가기전에 크게 그 지역에 대한 지도를 보여주고 상세한 정보를 주고 있다. 숙소는 호스텔에서부터 아파트먼트, 호텔에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선택해볼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 교통편, 일반적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법에서부터 관광객을 위한 교통 안내, 저렴하게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 정보, 유명관광지와 박물관, 시장도 소개해주고 있다.

풍성한 사진으로 각 지역의 관광지와 먹거리에 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간략히 설명해 주는 여러가지 팁은 실제로 여행할 때 꽤 유용한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많아서 정말 실질적인 여행안내서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프롤로그와 스페셜 가이드는 크로아티아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가 담겨있다. 크로아티아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크로아티아의 역사와 계절, 휴일과 축제, 크로아티아의 출입국과 여행전에 알아두면 좋은 기본 정보, 즉 사용되는 통화와 환전, 음식과 쇼핑 등에 대해서도  꼼꼼히 알려주고 있다.

우선 첫머리에 크로아티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경험, 음식, 술, 쇼핑 추천 기념품, 오직 크로아티아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는데 셀프트래블이 아니더라도 크로아티아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고 지금 당장은 떠나지 못한다하더라도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고 있다.

도움되는 일정짜기 팁, 같은 내용도 도움이 되지만 실제로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것들, 우리의 문화와 다른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에 따라줘야 한다는 내용들은 꼭 기억해둬야겠다는 생각이다. 크로아티아의 1인분은 혼자 먹기에 양이 좀 많지만 그렇다고 두명이 음식 하나만을 주문해서 나눠먹는 것은 그들의 문화에서 이해받기 힘든 것이라 꼭 요리가 아니더라도 사이드 디시 정도를 추가해주는 것이 좋다는 것이나 식당에서 자신이 갖고 다니는 물병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보다 수돗물tap water을 달라고 하는 것이 기본 예의라는 것 등은 나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어서 기억을 해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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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존재 1 - 담박한 그림맛, 찰진 글맛 / 삶과 욕망이 어우러진 매콤한 이야기 한 사발
들개이빨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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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그림맛, 찰진 글맛.

그말을 철썩같이 믿고 기다려왔다. 래핑을 뜯지도 않은 채 책탑 맨 위에서 애타게 읽히길 기다리는 것보다 조금 더 강하게 읽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누르며 담백하고 찰진 글그림맛을 절정으로 느끼고 싶을 때 펼쳐보려고 기다리다가 결국 배터지도록 꾸역대며 음식을 먹고 드러누운 저녁에 하나의 의식을 집행하듯 경건하게 래핑을 뜯고 책을 펼쳤다.

그렇게 조금은 엉뚱한 경건함으로 책을 펴들었건만 이 책은 당황스럽게도 첫머리부터 욕망의 적나라함을 보여주고 있다.

 

 아침 출근길, 척 봐도 브런치 따위에 환장하게 생긴 언니가 수치심을 무릅쓰고 미어터지는 지하철 안에서 맥스봉을 깠다는 거는 죽도록 배가 고프다는 얘기임을 떠올리며 배고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여간 배고픔이란 질 낮은 양아치 새끼 같은 거야. 웬만한 악질도 하루 3회 이상 수금하진 않는데 이 새낀 아주 어김이 없고 무엇보다 평생을 따라다니니".

출근하기 싫다,라는 대부분의 월급 생활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유양의 출근길 지하철 풍경은 언젠가의 내 퇴근시간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평소 버스를 잘 타지 않는데 그날따라 피곤하고 비도 내리고 배도 고프고 해서 퇴근길에 버스를 탔는데 사람들로 미어터진 버스 안은 비때문에 창문도 다 닫아놔서 차안 공기마저 사람을 숨막히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저쪽에 앉은 양복을 빼입은 남자 하나가 부시럭 거리더니 뭔가를  꺼내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딱 5초 정도 후에 차안에 퍼진 냄새는 그 남자가 만두를 먹고 있음을 보지 않아도 알게 해 주었는데 속이 느글거리고 그 생각없는 남자의 만두 봉지를 패대기치고 싶은 기분이 떠오른다. 하아, 그런데 그게 바로 배고픔,의 솔직함이었던 것이었겠구나.

 

강렬한 첫 시작과 더불어 이야기는 유양의 사회생활과 그녀와는 거의 모든 면에서 상반되는 친구 조예리, 그리고 그녀들의 남자친구까지 등장하며 먹는 존재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음식 이야기와 맞물려 펼쳐진다. 사실 적나라하고 거침없는 표현들이 살짝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떡볶이의 MSG의 맛에도 뇌리에 폭죽을 일으키는 표현으로 결국 히힛거리게 만들어버린다. 음식의 맛 표현을 19금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이나 남의 살을 탐욕하는 육식동물인 사람의 위장이 남의 몸뚱이를 씹어 삼켜서 주물럭거리고 온몸에 흡수시키는 위장을 하나씩 몸에 달고 돌아다니는 현실에 대한 적나라함은 이 책이 맛깔나는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먹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임을 다시 실감하게 해 준다.

삶과 욕망이 어우러진 매콤한 이야기 한 사발은 내 속을 화끈하게 자극하며 쓰리고 뒤틀림을 전해주고 있기도 하지만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식탐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듯 빠져들게 하고 있다. 따뜻한 메밀국수가 그리워지고 당장 초코파이를 사 들고 와서 전자렌지에 돌려먹어버고 싶은 나는 다른 모두와 똑같은 먹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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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 그리고 강하다
슈테판 볼만 지음, 김세나 옮김 / 이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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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서 왠지 그동안 읽었었던 페미니즘에 대한 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에 실려있는 목차를 통해 언급되고 있는 인물들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아직까지도 책을 읽어볼까 라는 마음이 오락가락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 슈테판 볼만이 이야기하고 있는 인물들의 반은 대략적으로나마 그들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반은 생소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이들의 삶이 페미니스트라거나 페미니즘 운동과 연관되어서만 유명한 이들이 아니라 각자의 다양한 분야에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고 내가 좀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이었기에 슈테판 볼만이 언급한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책을 펼쳤을 때 이 책은 내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여성 해방은 결코 단순히 정치적인 평등을 이루려는 투쟁이 아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남성들이 지극히 당연하게 누렸고 지금도 누리고 있는 그만큼의 자유를 여성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여자'라는 주제는 그저 생각하는 행위나, 여성과 관련한 특정한 논쟁만으로 포함하지 않는다. 그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에서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도 늘 따라붙는다"라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더 강하게 와 닿는다.

 

사실 처음 책을 펼치면서 생각했던 것은 굳이 성별을 구분할 필요없이 이 시대에 한번쯤은 생각해볼 문제들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거나 그들의 업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인물들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 정도.. 였다. 스무명이 넘는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책의 분량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고 그래서 각 인물들에 대한 요점 정리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건 단순한 요약 정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각 한권의 책으로 평전을 쓸수도 있을만큼 자세히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각 인물들에 대한 주요 핵심만을 끄집어 내면서 그들의 삶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그저 그런 이야기로만 생각해서 허술하게 이야기를 읽으려던 나를 반성하며 책장을 넘겨갈수록 좀 더 깊이있게 읽게 되었다.

 

편견과 차별을 깨고 여성의 강함과 자주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와 찬사만을 늘어놓지는 않는다. 정치적인 인물이라면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확실히 언급하면서 그들의 객관적인 평가와 현재의 모습을 말하고 있기도하다. 사실 내가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지식습득처럼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수준이라 선뜻 나의 생각을 늘어놓을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스스로 의문을 갖고 있던 인물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그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주듯 언급하고 지나가고 있기에 더 신뢰를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만큼 이 짧은 이야기 속에는 저자의 방대한 자료수집과 노력이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더 찬찬히 깊이있게 읽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그리고 강하다'라는 제목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차별과 편견, 억압과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실천한 삶을 살아간 이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며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강함을 지닌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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