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 김갑수의 살아있는 날의 클래식
김갑수 지음 / 오픈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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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라니. 글쎄, 다른 건 몰라도 클래식을 두고 이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그리 낯익은 것이 아니다.

중학생 때 열심히 대중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노래를 즐기던 내게 반 친구는 자신은 그런 저급해보이는 음악은 듣지 않는다는 말을 했고 그것은 사실 과히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음악에 있어 고급과 저급의 기준이 뭔지 여전히 모르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굳이 지들끼리 향유하는 고급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클래식을 들을 때, 뭔가 좀 알아야 들을텐데... 라는 생각은 내 음악적 취향과 감흥과는 상관없이 다들 좋다고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는걸까 싶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이든다.

나는 강박관념처럼 태생적으로 클래식의 취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무심코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그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에 확 마음이 꽂힌적이 있다.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려고 했을 때 첫번째로 선택해 볼 수 있는 것은 흔히 말하는 추천명반이었고 나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유명하고 잘 팔린다는 음반을 두어개 사서 들어보곤 한 것이 전부인 내게 그 선율은 뭔지 모르게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고 고요와 평화로움 속에서 행복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때 아마 비로소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별다른 감흥이 없는 내게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라는 물음은 이해될 듯 하면서도 완전히 공감하게 되지는 않아서 도대체 저자가 어떤 말들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글을 어렵게 쓰는 편이 아닌데, 그래서 글을 읽는 동안은 너무 재미있게 읽어나가는데 막상 책을 덮고 그 책에 대해 생각을 떠올려보려고 하면 뭔가를 톡 끄집어낼수가 없다. 이건 전체적인 맥락에서 얘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겠지.

 

오랫만에 클래식 시디를 꺼내들었다. 오디오가 망가진 후 컴으로만 가끔 음악을 들었기때문에 꺼내지 않고 먼지와 함께 묵혀둔 것들 중에서 무엇을 꺼내나... 고민하다가 거의 들어보지 않았던 쇼스타코비치를 꺼내들었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가 평론가 모임에 좀 진지하게 음악감상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꺼내들었던 것이 쇼스타코비치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겨우 십여분을 넘기고 산만해져버린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사는 시대 분위기가 이렇다고 단정짓는 저자의 말에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무겁고 진지한 것은 억압으로 다가온다. 최대한 가볍고 부담 없고 경쾌해야 한다. 개개인의 탓을 할 순 없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중압감이 우리더러 깃털처럼 가벼워져라 요구한다. 침중한 영혼의 19세기는 이제 철 지난 유행, 앤티크 숍의 진열품으로 전락해 버렸다"(79)

 

아니, 그런데 역시 나도 집중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시간이 넘는 연주에 집중하기는 커녕 금세 다른 음악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클래식 음악 탓이겠는가. 나는 대중가요조차 긴 시간 집중을 하지 못하고 책을 읽다 집중하게 되면 라디오 소리가 시끄러워 꺼버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클래식을 탓하지말자.

서너번 들었을까 싶은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는 지금의 내게 조금은 흥미롭게 들리기도 한다.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여러번 들어 익숙해진 라흐마니노프와 우연히 들은 음악에 반해 이거 좋다, 라고 느낌으로 먼저 알았던 베토벤이겠지만 고장난 오디오를 대신할 것이 갖춰지지 않는 이상 음악에 미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왠지 그 느낌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그 아득한 지하 공간에서도 시국이며 남북 관계, 자본주의 위기와 중산층 붕괴 문제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고급한 커피 문화를 향유하면서 멋진 연애에 대한 선망도 떨치지 못하건만 생체실험에 몸을 팔아야 하는 가련한 하급병사의 음악 스토리에 또한 이끌린다. 위선이거나 위악이거나.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몹시 궁금하다. 19세기를 사는지 21세기를 살고 있는지, 정말로 고립돼 있는지 온 세상에 촉수를 뻗고 있는지. 왜 사는지. 정말로 왜 사는지.

음악도 그렇게 무지와 미지로 존재한다. 한 떨기 꽃이 피어난 이유를 설명하지 않듯이,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 했듯이 닥치고 음악이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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