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존재 1 - 담박한 그림맛, 찰진 글맛 / 삶과 욕망이 어우러진 매콤한 이야기 한 사발
들개이빨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담백한 그림맛, 찰진 글맛.

그말을 철썩같이 믿고 기다려왔다. 래핑을 뜯지도 않은 채 책탑 맨 위에서 애타게 읽히길 기다리는 것보다 조금 더 강하게 읽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누르며 담백하고 찰진 글그림맛을 절정으로 느끼고 싶을 때 펼쳐보려고 기다리다가 결국 배터지도록 꾸역대며 음식을 먹고 드러누운 저녁에 하나의 의식을 집행하듯 경건하게 래핑을 뜯고 책을 펼쳤다.

그렇게 조금은 엉뚱한 경건함으로 책을 펴들었건만 이 책은 당황스럽게도 첫머리부터 욕망의 적나라함을 보여주고 있다.

 

 아침 출근길, 척 봐도 브런치 따위에 환장하게 생긴 언니가 수치심을 무릅쓰고 미어터지는 지하철 안에서 맥스봉을 깠다는 거는 죽도록 배가 고프다는 얘기임을 떠올리며 배고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여간 배고픔이란 질 낮은 양아치 새끼 같은 거야. 웬만한 악질도 하루 3회 이상 수금하진 않는데 이 새낀 아주 어김이 없고 무엇보다 평생을 따라다니니".

출근하기 싫다,라는 대부분의 월급 생활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유양의 출근길 지하철 풍경은 언젠가의 내 퇴근시간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평소 버스를 잘 타지 않는데 그날따라 피곤하고 비도 내리고 배도 고프고 해서 퇴근길에 버스를 탔는데 사람들로 미어터진 버스 안은 비때문에 창문도 다 닫아놔서 차안 공기마저 사람을 숨막히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저쪽에 앉은 양복을 빼입은 남자 하나가 부시럭 거리더니 뭔가를  꺼내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딱 5초 정도 후에 차안에 퍼진 냄새는 그 남자가 만두를 먹고 있음을 보지 않아도 알게 해 주었는데 속이 느글거리고 그 생각없는 남자의 만두 봉지를 패대기치고 싶은 기분이 떠오른다. 하아, 그런데 그게 바로 배고픔,의 솔직함이었던 것이었겠구나.

 

강렬한 첫 시작과 더불어 이야기는 유양의 사회생활과 그녀와는 거의 모든 면에서 상반되는 친구 조예리, 그리고 그녀들의 남자친구까지 등장하며 먹는 존재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음식 이야기와 맞물려 펼쳐진다. 사실 적나라하고 거침없는 표현들이 살짝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떡볶이의 MSG의 맛에도 뇌리에 폭죽을 일으키는 표현으로 결국 히힛거리게 만들어버린다. 음식의 맛 표현을 19금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이나 남의 살을 탐욕하는 육식동물인 사람의 위장이 남의 몸뚱이를 씹어 삼켜서 주물럭거리고 온몸에 흡수시키는 위장을 하나씩 몸에 달고 돌아다니는 현실에 대한 적나라함은 이 책이 맛깔나는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먹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임을 다시 실감하게 해 준다.

삶과 욕망이 어우러진 매콤한 이야기 한 사발은 내 속을 화끈하게 자극하며 쓰리고 뒤틀림을 전해주고 있기도 하지만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식탐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듯 빠져들게 하고 있다. 따뜻한 메밀국수가 그리워지고 당장 초코파이를 사 들고 와서 전자렌지에 돌려먹어버고 싶은 나는 다른 모두와 똑같은 먹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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