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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 여성 잔혹사
서명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일보 Book Section에서 <흡연 여성 잔혹사> 기사를 읽었을 때,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작년에 <담배 피우는 아줌마>를 읽었기에, 그 엇비슷한 내용인지 알았다. "담배 하나 피는데 남편 눈치를 봐야 되냐? 난 담배 피우는 아줌마다!" 뭐 이런 내용.
저자 서명숙 선생님을 여행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이 책을 읽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 그 신나는 여행에서 참가자들이 인사하는 자리. 내 앞에 앉아 있는 서명숙 선생님을 가리키며 주최측에서
" 전 시사저널 편집장이자 <흡연 여성 잔혹사>의 저자"라고 소개했다. 이렇게 서명숙 선생님과의 유쾌한 만남이 시작되었다.
나이, 직업, 살아온 환경 그 모든 차이를 훌쩍 뛰어 넘어 서명숙 선생님과 나는 목이 쉬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대화를 하면서, 속이 후련해짐을 느꼈다.
그 아찔하고 황홀한 카.타.르.시.스!
아쉬운 1박 2일의 여행을 마치고,난 서울에 오자마자 책을 주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생님이 쓴 책을 직접 읽어 봐야지!"하는 생각 정도였지, 이 책이 이토록 나를 빨아 당길지는 몰랐다.
그런데 오늘,
난 이 책을 읽다가 삼매경에 빠져 두 정거장이나 지나서 지하철에서 내리고 말았다.(그래서 약속시간에 가볍게 5분 늦고 말았다.)
<흡연 여성 잔혹사>는 니코틴 만큼이나 읽는 사람을 쏙쏙 빨아당긴다.
먼저, 이 책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솔직한 책이다.
단언하건데, 난 이렇게 솔직한 책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뭐 솔직한 척 하면서 은근히 자기를 과시하는 그런 에세이들이야 많이 읽어 봤지만, 이렇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솔직하게 쓴 책은 정말이지 한번도 읽어 본 적이 없다.
<흡연 여성 잔혹사>는 정말 대담하고 솔직한 책이다.
서점에 있는 많은 에세이집/수필들을 보라.
베스트셀러 수필에는 크게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유명한 작가들이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으고,양심상 거기에 새로운 글 한두편 첨가하고, 애교로 칼러 삽화를 보너스로 넣어 새색시 처럼 뽀얀 얼굴을 내미는 책들이다.
다른 하나는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 한번 따라해 보세요!" 이런 책들이다. 물론 솔직한 책들이 있긴 하지만, 자기 과시를 위해 솔직한 경우가 많다. "난 이렇게 까지 했다. 얼마나 대단하냐? 박수!!!"
그런데.....
<흡연 여성 잔혹사> 처럼 이렇게 쩍팔림을 무릅쓰고 솔직한 책은 정말 처음이다. 이 솔직함은 충격에 가까우며, 대책 없이 느껴지기 까지 한다. 한 마디로, 무대뽀다.
저자는 고백한다.
만삭 때도 담배를 피웠다고.
병원에 가기 바로 몇 시간 전에도 담배를 피웠다고.
담배는 여태까지 만난 모든 사물 가운데 가장 영적인 카리스마가 있는 존재였다고.
그리고 자신의 이런 중독현상을 '비정한 모정'이라 표현한다.
더 이상 솔직할 수가 있을까?
책의 내용, 구성, 문장력 뭐 이런걸 다 떠나서
나는 이 책의 "가식 없음"에 박수를 보낸다.
막 목욕탕에서 나온 젖은 머리 여자의 맨 얼굴 같은 책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내용의 "깊이" 다.
그냥 " 나 27년 동안 담배 피웠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하면서 자기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하는 수준이 아니다.
책을 읽으며, 이 책 한권을 쓰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취재"를 하고,"조사"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흡연 여성을 수도 없이 만나고,
금연 사이트에 들어가 주부들의 구질구질하기까지한 사연을 듣고 또 듣고,
흡연에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읽고 정리하고,
흡연을 역사적으로, 거시적으로 고찰하고,
흡연을 사랑한 역사속의 여자들을 하나씩 찾아서 추억하고...
많은 수필들이 자신의 얘기를 주저리 주저리 풀어내는 신변잡기에서 끝난다. 자신의 추억을 불러내서 얘기하는 것이므로,취재도 자료 조사도 필요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철저한 취재와 조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기에 깊이가 있고, 힘이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온갖 쩍팔림을 무릅쓰면서, 긴 시간 취재를 하고 온갖 자료를 조사하면서 이 책을 썼을까?
재테크 책들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꺼다.
어떤 책들은 요리조리 정보를 더하고 뺴서 얼굴만 성형한다.
이런 책들은 재테크 관련 서적 붐에 편승한 허접한 후발주자들이다.
그런데 가끔씩 만나는 유명하지 않은 저자의 책에서 감탄할 떄가 있다.
" 이 사람은 정말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려 이 책을 썼구나.재산을 증식시키는 자신의 방법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구나!" 하면서, 고마운 맘이 울컥 드는 책이 있다.
<흡연 여성 잔혹사>가 바로 그런 책이다.
자신의 경험을 온세상에 까발리면서까지,
27년간 담배 피웠다고 말 많은 세상 사람들을 상대로 고해성사를 하면서 까지,
임신했을 때도 담배를 피웠다고 고백하면서 까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책을 통해서...
단순히 금연을 권하기 위해서?
이 책에서 나는 서명숙 선생님의 간절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담배를 피는 것이 대단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
그런 사회를 향한 갈망.
" 담배 피세요?" 누가 물었을 때,
" 네 " 하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한 갈망.
담배를 피고 향수를 뿌리고, 껌을 씹고, 온갖 호들갑을 떨고
집에 가지 않아도 되는, 담배를 핀다는 이유만으로 질 나쁜 여자라는 편견을 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에 후배들이 살기를 바라는 선배로서의 갈망, 미리 겪어 본 자로서의 그 말못할 안타까움을...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저자는 쩍팔림을 무릅쓰고 세상을 향해 고해성사를 하는 것이다.
지금도 cafe 한 구석에 앉아, pc방에 앉아,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화장실에서 가슴을 졸이며 담배를 피고 있는 수많은 여자들.
혹 남편한테 흡연 사실을 들킬까봐 바들바들 떠는 많은 여자들,
담배 한대 피기 위해 카페에 가야 하는 많은 여자들...
그 많은 여자들 중에,
" 나 담배 피워요!"하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여자는 얼마나 될까?
그 많은 여자들 중에,
회식을 할 때 부장 앞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필 수 있는 여자는 얼마나 될까? 옆자리에서 남자 신입 사원이 연기를 내뿜고 있을 때...
TV 토크쇼에서 " 이번 영화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 많던데 힘들진 않으셨어요?"라고 질문할 때, " 아니요, 저 원래 담배 피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여자 연예인이 얼마나 될까?
이 속에서 저자는 대신 말을 해 준 것이다.
여자의 흡연이 금시기 되는 사회에서 여자의 고통을.
그 부조리한 메카니즘을.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워야 하는 여자들의 구차함을...
이 시대의 화두는 "웰빙".
이 시대의 코드는 "금연".
이런 세상에 왜 뒤늦게 여자들의 흡연을 얘기하냐?
필라면 피지 왜 말이 많냐?
몸에 나쁜거 피워서 뭐 하겠다는 거냐?
필라면 곱게 피지 왜 다른 여자들을 부추기냐?
남자들이여!
이 책의 제목만 보고, 이렇게 쉽게 말하지 않기를....
이 책은 여자들이 아니라, 남자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주변의 많은 남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이 글을 읽는 방문자들은, 꼭 한번 읽기를 강추!)
<담배 피우는 아줌마>를 읽고,
바로 옆에 있는 누나가, 엄마가 그런 고통을 겪고 있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철쭉님의 독서일기 처럼,
<흡연 여성 잔혹사>를 읽고,
상상도 못했던 그런 고통이, 우스꽝스럽기까지한 고통이
항상 당신의 바로 옆에서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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