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상하이 출장 때, 상하이 사무소 직원인 Lin(83년생 남자)이
자기가 한국 노래를 할 줄 안다고 했다.
불러 보라고 하니깐, 기다렸다는 듯이 율동까지 하며 노래를 했다.

"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아빠곰은 뚱뚱해
엄마곰은 날씬해
아기곰은 너무 귀여워. ♬♬♬"

놀라며 물었다.
" 이 노래를 어떻게 알아? "

한국 드라마(아마도 <풀하우스>였던 것 같다.)에서 주인공이 이 노래를 자주 불러서
자기 친구들도 다 이 노래를 안다고 했다.

Lin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어렸을 때 기억들이 소록소록 떠올랐다.
난 이 노래를 아주아주 좋아했다.

노래 가사처럼 우리 아빠는 뚱뚱했고, 우리 엄마는 날씬했다.
지금도....그렇다.

엄마는 내년이 환갑임에도 불구하고 아주아주 날씬하다.
주위 아줌마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아빠는?
꾸준한 운동과 참선으로 많이 빠지셨지만 여전히 뚱뚱한 "편"이다.

내가 가끔 폭음이나 폭식을 하면
아빠는 막 뭐라 하신다.
"젊은 애가 자기 관리를 그렇게 못해서 어떡해?"
"절제를 할 줄 알아야지."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아빠도 젊었을 때 폭음과 폭식을 자주 하셨다.

"투사"라고 하나?
아빠는 폭식,폭음하는 사람, 뚱뚱한 사람을 싫어하신다.
특히 비만 증세를 보이는 젊은이들을 무척 싫어하신다.

한 번은 소개팅을 하고 들어왔는데 아빠가 어땠냐고 물어 보셨다.
" 음...괜찮은 편인데 넘 뚱뚱해. "
( 그 남자는 성악 전공자였다. 파바로티 까지는 아니지만, 중형차 좌석이 작아 보일 정도로 뚱뚱했다.)

아빠는 그 한마디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웬만하면 한 번 더 만나 보라는 평소와 달리 말도 짧게 하셨다.
" 됐다. "

가끔씩 나는 이런 아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 너 요즘 체중이 너무 나가는 거 아니냐? "
" 운동 좀 해라. "
가끔 장기간 출장을 갔다 오면
" 애가....불어서 왔네. "

며칠 전이었다.
그 날은 저녁을 먹지 않고 운동을 했다. 그것도 빡 세게.
강도를 높혀서 근육 운동을 했다. 땀을 뚝뚝 흘리면서.
샤워까지 하고 나니 10시.

집에 가는 버스에서 미치도록 배가 고팠다.
근육통인지 뭔지 온 몸이 욱신욱신 했다.
책도 읽지 못하고, 배고픔과 몸의 통증으로 그저 피곤하고 멍~했다.
필름이 도는 것처럼 여러 가지 음식들이 머리 주위를 빙빙 돌았다.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두유 하나로 견디려 했으나, 뭔가 너무.....먹고 싶었다.
부엌에 들어가서 가스렌지 위에 있는 냄비 뚜껑들을 열어 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먹을 건 미역국 밖에 없었다.

미역국을 뜨고 있을 때였다.
국자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반응하는 아빠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 지금 뭐 하는 거냐? 이 한밤중에 뭘 먹으려고? 그걸 못 참고...."

난 순간....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 아빠나 잘하세요! "
시위하듯이 미역국을 원샷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고꾸라져서 잤다.

그 다음날, 내내 후회했다.
왜 그랬을까?
아빠한테 왜 그랬을까?

그 순간엔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늦은 밤에 뭘 먹는다는 사소한 일 하나까지 통제(?)당하고
잔소리를 듣는 게 너무나 화가 나고 싫었다.

좀 모른 척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 저녁 안 먹었니? " 한마디 하면 그만일 일을,
아빠는 정말 왜 그러나?....생각했다.

내 홈피에 자주 놀러 오는 친구들은 말한다.

"넌 아빠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
"넌 참 효녀인 것 같아."
"나도 너처럼 아빠랑 친했으면 좋겠어."

그래, 난 아빠를 좋아한다.
효녀는 아니지만 잘 하려고 노력한다.
"마마 걸" 보다는 "파파 걸"에 가까울 만큼 아빠랑 얘기도 많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춘기를 겪는 중딩처럼,
안 되는 일은 다 부모 탓으로 돌리는 싸가지 없는 고딩처럼,
그렇게 아빠가 미울 때가 있다.

좀 자식을 내버려 두지 못하고,
항상 훈화말씀과 충고로 자식을 선도하려는 아빠의 목회자 같은 태도에
참지 못할 만큼 화가 날 때가 있다.

어떤 관계에나 애증은 있다.
뚱뚱한 아빠 곰과 너무 귀여운 아기곰 사이에도 애증은....있다. 있을 꺼다.
"아버지"에 대한 그 많은 소설을 쓰고 요절한 김소진 만큼은 아니지만,
(김소진의 거의 모든 소설은 "아버지" 얘기다.)
나도 아빠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
언젠가....소설이 될지도 모른다.

아빠 곰은 뚱뚱해~ ♬♪♬
며칠 내내 이 노래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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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7-2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나침반님,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네...."감정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참...쉽지 않아요.
나침반님도 곰 세마리 노래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귀여운 아기곰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은 애물단지가 된 것 같다는...ㅎㅎㅎ
나침반님, 인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2006-07-29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7-3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은 엄마곰은 뚱뚱해,랍니다.
저도 간섭이나 잔소리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딸아이에게만은 예외가 되더군요.
얼마나 간섭하고 싶은지.ㅎㅎ
애정의 잘못된 표현방식이지만, 그것도 귀엽게 봐주심 안될까요?
늙어가는 부모의 권리랄까.
그리고 수선님 마음도 편하게.....^^

2006-07-31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31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02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06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