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雜多: [잡다] - 비평가 땡빵씨, 문화의 숲을 거닐다
김동식 지음 / 이마고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어제, 오랜만에 광화문 교보에 갔다.
비가 많이 왔는데도 교보는 북적북적했다. 소란스럽기도 하고.
고객용 도서검색 PC로 김동식의 <잡다>를 찾았다.
이 책의 위치는 "12 번 정치/법률/사회 419-2 1번째 대중문화".
이 책은 문화비평서들 사이에 얌전히 꽂혀 있었다.
음....문학비평가가 쓴 문화비평이라....
웬지 '드라이'하거나 '아카데믹'할 것 같은 '필'이 왔다.
( 아... 이 영어 남용이란! 근데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 보니 상당히 '소프트' 했다.
쉽게 읽어지고, 가끔 미소도 지어졌다.
내가 교보 담당자라면 이 책을 문화비평서로 분류하지 않고,
비소설 에세이에 포함시켰을 지도 모르겠다.
왜냐? 이 책은 문화비평서라기 보다는 김동식이라는 개인의 '체험'을 쓴 에세이에 가깝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다양한 문화현상 - 애니매이션,추리소설,프로 레슬링, 인터넷 소설, 일본 음악, 드라마/영화/개그 콘서트, 월드컵 응원전 등 - 들은 모두 저자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다. 즉, 저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전문용어로 무장한 비평가의 입장이 아니라, 독자로서, 청취자로서, 참가자로서 자신의 체험을 평이한 문체로 썼다.
관찰이 아닌 체험!
" 일상과 매개된 문화에 대한 생각, 그리고 여기에 모은 글들을 쓰면서 가졌던 생각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문화가 우리의 몸을 관통하며 무의식을 구성하는 운동성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화는 취향의 무의식이 발현되는 독특한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문화를 향유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며, 문화에 대한 글쓰기는 무의식을 드러내는 일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 머리말 中 -
그렇다.
문화에 대한 글쓰기는,
수많은 개인들이 쓰는 소소한 독자서평, 영화평들은
모두 무의식을 드러낸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김동식 같은 '비평가'의 입장에서는
'이론'에 의거한 비평을 쓰는 게 훨씬 쉬운 일이 아니었을까?
비평가의 입장에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 실린 50꼭지의 글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글은
<메타 개그의 새 장을 연 '우격다짐'>
"메타 개그"가 뭔가 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본문을 읽으면서 껄껄 웃었다.
이정수의 개그 보다 김동식의 해설이 더 웃겼다.
이정수의 '우격다짐'은 이런 식이었다.
- 내 개그는 17 대 1이지. (관객 : 왜요~?)
17명 중에 1명만 웃어.
- 내 개그는 양파야. (관객 : 왜요~?) 까도 까도 똑같지. 웃기지? 웃기지?
저자가 이정수의 개그를 '메타개그'(metagag)라고 칭한 이유는,
소설 쓰는 과정을 작품 속에 담아낸 '메타소설'(metafiction)처럼
이정수가 스스로의 개그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사실 '메타픽션'이란 용어 자체가 문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말이다.
문학평론가인 저자에겐 '메타픽션'이 일상용어(?)라 그런지
한줄로 쓱 설명하고 넘아가는데, 이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메타픽션'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도대체 '메타개그'가 뭔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메타픽션'의 예를 들자면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김영하의 <아랑은 왜>.
'메타픽션'에서는 소설가가 스토리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작품 속으로 불쑥 뛰어 들어와
'결말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등장 인물을 죽일까 살릴까?'
고민을 하거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하고,
결말을 여러 개로 내기도 한다.
"자신이 펼치고 있는 개그에 대한 반성적인 자의식을 다시 개그 속에 편입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정수의 개그를 메타개그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거 같다."(p170)
음....똑 같은 개그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대단한걸!!!
"단순한 개그가 아니라 수사학 연구의 텍스트라는 생각까지도 가지게 된다. 언젠가는 이정수 개그를 대상으로 수사학을 강의하고 말리라 굳게 다짐하며, 일요일 저녁마다 텔레비전 앞에서 수사법의 달인인 이정수를 기다린다."(p171)
흥미롭다.
하지만....개그맨 이정수가 기획 단계에서 '메타개그'나
'반성적인 자의식' 반영을 '의도'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그렇게 생각이 많으면 못 웃긴다.)
'수사법의 달인' 이라는 칭찬을 들으면,
어쩌면 이정수는 "네? 저...그게 무슨 말이죠?" 할지도 모른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일상과 맞물려 있는 우리사회의 문화현상에 대한 김동식의 에세이 50꼭지는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같이 술 마시며 얘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