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
" 우리집도 컴퓨터도 사고, 인터넷도 좀 깔고, 신문도 좀 보고 했으면 좋겠네..."
" 그런거 안 봐도 사랑이 뭔지 알쟎아.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
<아는 여자>를 보고 이 대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왜냐?
주인공들이 한 얘기도 아니고.
잠깐 등장하는 도둑과 도둑 부인이 나누는 얘기다.
주인공 동치승(정재영)에게서 사랑 타령을 들은
도둑은 잠을 자다가 부인에게 묻는다.
" 여보,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부인은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맨날 사랑,사랑, 사랑 타령을 하지만,
사랑이 뭐냐고 물었을 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는 여자>.
참 엉뚱하고 재미있다.
이 영화는 작품의 전체 concept을
"엉뚱함"으로 맞춘 듯 하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흐르는 "엉뚱함".
유쾌하다.
영화의 첫장면에서 동치승(정재영)은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새벽 숲길을 걷는다. 아름다운 화면에 흐르는 동치승의 독백.
"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새벽 숲을 걸어 보지 않는 사람은 사랑의 위대함을 모를 것이다."
그 독백이 끝나자 마자,
동치승의 여자 친구는 말한다.
" 우리 그만 만나자."
방금 전 사랑의 위대함을 감동에 차 얘기했던 동치승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허공을 가로지르는 2단 발차기를 한다.
" 그 얘기 하려고 사람 여기까지 나오라고 했냐? "
" 그래, 헤어지자. 이 옷 달라고 입고 나오라고 했냐? (쟈켓을 벗어 던지며) 이런 옷 입는 사람이 요즘 어디있냐?"
" 그래, 갈테면 가라."
그 장면은....
동치승이 난리치는 그 코미디 같은 장면은 동치승의 상상이었다.
곧 동치승은 말한다.
"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잘 지내...."
이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이별할 때,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동치승 같겠지?
웃으면서 행복하라고 말해 주지만,
머릿 속에는 2단 발차기를 하며 욕을 해 주고 싶은 마음,
배신감과 분노로 가득하겠지?
정재영과 이나영의 어늘한 말투,
장진의 엉뚱하고 어눌한 시나리오,
그냥 사랑 한 번 해보면 될 것을
사랑은 커녕 아는 여자 하나 제대로 없으면서
맨날 사랑이 뭔지 묻고 묻고 또 묻고 고민하는 주인공 동치승.
진.짜.... 웃긴다.
이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장면.
돌팔이 의사의 오진에 거기서 더 넘겨 짚은 동치승의 오버로
동치승은 자신이 시한부라고 믿게된다. 남은 시간은 3개월.
동치승은 한이연(이나영)에게 묻는다.
동치승 : 만약 세달만 살 수 있다면 뭘 할꺼예요?
한이연 : 세달요? ...... 꼭 세달을 더 살아야 해요?
그냥 지금 죽으면 안되구요?
동치승: (독백) 그렇다.
제일 힘든 건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다.
자살을 결심한 동치승은
비장한 각오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동치승은 비장한 표정으로 달리며 독백한다.
" 오늘 나는 삶을 마감한다."
다음 장면.
한이연(이나영)이 김치냉장고를 보며 좋아하고 있다.
동치승(정재영)의 이어지는 독백.
" 5등 상품은 김치냉장고였다."
우하하하.
난 이런 엉뚱하고 웃음이 터지는 영화가 좋다.
남자 감독이 만든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사랑 타령을 하는 설정도 좋다.
그런데....
사랑이 뭐지?
집착, 미련,타성,외로울 때 느끼는 허기....
이런 감정들과 구별되는 사랑이란 뭐지?
다행이다.
이런거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그렇게 재탕 삼탕하는데도 여전히 사랑이 주제인 영화,소설을 좋아하니까,
영화 감독들도, 배우들도, 소설가들도
굶지 않고 산다.
앞으로 나도...
많이 쓸 수 있다. 쭈~욱.
그런데...
진짜 사랑이 뭐지?
연애를 많이 해봤다고 해서,
사랑을 제대로 해 봤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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