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문의 신간 소개에서 <편집자 분투기> 기사를 읽었을 때,
꼭 한번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 모습.
나의 정체성을 한 줄로 쓰라고 하면 어떻게 써야 할까?

" 책을 사랑하는,글쓰기의 미련을 못 떨치는 회사원."

뭐 대략 이 정도 되지 않을까?

난 사람들이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그대로 밟아왔다.
아니....지금은 삐걱거리고 있다.
조건 좋은 남자랑 27~28세에 결혼하는걸 빠뜨려 버렸으니까...
어느새 30대가 되었고,
부모님의 걱정은 나날이 커지지만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도 없는 상태다.

대학 4학년때, 인턴사원으로 대기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줄곧 해외영업 부서에서 일했다.
줄곧 해외영업 부서에서 "외화벌이"를 해왔지만, 한 회사에서 일한 건 아니다.

입사 후 2년,
처참하도록 빡센 조직생활에 한계를 느끼며
유학을 핑계로 회사를 나왔다.

몇달 놀다가 다른 대기업의 해외영업 부서에 들어가서 다시 빡센 조직 생활을 했다. 3년간.

3년 후, 이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자 하며 겁 없이 또 회사를 그만뒀다.
몇달을 신나게 놀다가,
글도 써본다고 설치다가,
또다시 다른 대기업의 해외영업팀에서 "외화벌이 일꾼"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불경기에 참 운이 좋은 경우고,
어떻게 보면 아직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서 떠도는
불쌍한 경우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일에 자신의 모든 시간과 사랑을 바치며
두리번 거리지 않고 그 하나의 길을 열정적으로 걸어온 사람들을 존경한다.

<편집자 분투기>의 정은숙도 내 존경의 대상이다.
책을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20년간 편집자를 해 온,
한 베테랑 편집자의 자기 고백이다.

<편집자 분투기>의 타겟 독자는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편집자,출판 기획자인 것 같다.
정은숙은 자신의 20년을 뒤돌아 보며,
자신의 시행착오를 고백하고
좋은 편집자가 되기 위한 충고와 고언을 후배들에게 하고 있다.

실제로 자신이 기획/편집한 책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에 더욱 재미있다.

성공한 경우로 <예술가로 산다는 것>,<벼랑에서 살다>를 말하고,
실패한 경우로 <우리 집은 어디인가>를 예로 들었다.

난 <편집자 분투기>를 읽고,
출판사 마음산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벼랑에서 살다> 두권의 책을 샀다.
(<편집자 분투기>를 읽다 보면, 이 두권의 책을 빨리 읽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또한 아주 훌륭한 마케팅 기법이다.)

정은숙은 출판사 "마음산책"의 대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자 분투기>는 "바다출판사"에서 나왔다.

왜일까?
자기 원고를 자기 출판사에서 편집하고 펴내고 홍보하기가 쑥스러워서?
아님 바다 출판사의 유능한 편집자가
"출판계의 후배들은 좋은 편집자가 되기 위한 지침서, 메뉴얼이 꼭 필요합니다. 이 일은 선배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출판계의 발전을 위한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막 쫓아 다녔을까?
궁금하다.

<편집자 분투기>를 읽으며 이런 상상을 했다.
정은숙 같은 베테랑 편집자가 나를 막 쫓아 다니며
책을 써 달라고 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벼랑에서 살다>를 펴내기 위해 시인 조은을 쫓아 다녔듯이 말이다.

이런 행복한 상상을 하며 덧붙이는 고백.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하는 <출판기획> 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때 정은숙도 강사 중 한명이었던 것 같은데,
결석을 해서 그 강의는 듣지 못했다.(출장을 워낙 자주 다녀서 결석한 날이 더 많았다.)

왜 <출판기획> 강좌를 들었냐구?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나의 열망 때문이었다.
작가가 될 자신은 없었고,
출판사를 하면 맨날 책을 만지고 책을 보며 살 수 있을 꺼라는 소박한 생각 때문이었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현직 출판사의 직원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번듯한 대기업을 다니는 내가 왜 출판을 하고 싶어하는지 무척 궁금해 했다.
알고 보니 그들의 연봉은 내 반도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출판 환경이 워낙 열악하며,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못주는 출판사,
기획이고 뭐고 고민할 틈도 없이 일단 어음을 막기위해
새로운 책을 덜커덕 내는 출판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동료들은 내게 영업사원이 왜 골프는 안 배우고, 맨날 엉뚱한 것만 배우고 다니냐고 한마디씩 하지만, 출판 강좌에서 난 참으로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이런 우리나라의 출판계에서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그 책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열정 하나로 20년간 편집자로 살아왔다는 것.

그 자체로 <편집자 분투기>의 저자 정은숙에게 경의를 표한다.

수선이의 도서관

www.kleinsusun.com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4-10-24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만간 읽을 책입니다.
조은 시인의 벼랑에서 살다는 정말 마음에 쏙 든 책이었어요.
사진이랑 글이랑 아주 잘 어울려 심금을 울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