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저녁,
끝내지 못한 일을 과감히 포기하고, 바람을 휘날리며 퇴근했다.

왜?
Chagall 전시회에 가려고.
원래 10/15까지 전시예정이었는데,
워낙 방문객들이 많아서 22일(오늘)까지 연장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항상 그렇듯이
( 벼락치기의 대가.時테크랑 전혀 관계 없는 대표적 인간 유형!
자랑도 아닌데...ㅋㅋ)
전시 종료를 이틀 남기고 부랴 부랴 미술관을 찾았다.

7시에 갔는데도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서울시립미술관 앞에서는 시민들을 위한 꽁짜 콘서트까지 하고 있었다. 박기영이 한껏 가창력을 뽐내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시원한 저녁 바람, 음악, 샤갈전을 보기 위해 찾아 온 많은 사람들..
분위기 참 좋았다.

그 때, 시커먼 대형 승용차 한대가 섰다.
경비가 90도로 인사를 하고,
양복 차림의 공무원 아저씨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차 주위를 둘러쌌다.

도대체 누가 왔는데, 이 난린가?

차 문이 열리더니, 이명박이 내렸다.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90도로 절을 하고 악수하고 난리였다.

우리는 힐끔 그들의 "쑈"를 바라보면서, 미술관에 입장했다.
전시종료 이틀 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미술관에서 줄을 서서 작품을 본건 정말이지 처음인 것 같다.
살바도르 달리展에도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었다.

초등학생들한테는 학교에서 숙제를 내 줬는지
어린이들이 수첩에 깍둑이 글씨로 작품 제목들을 적고 다녔다.
뭐하러 그런 숙제를 내 줘가지고.....한심하다.

그 놀라운 색감에, 그 몽롱한 상상력에 반해서
화가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어린이들이 대폭 탄생할 중요한 시점에서
교사들이 내준 100년 전과 똑 같은 숙제로
어린이들은 작품 제목을 적는다고 바빠서 그림도 제대로 못 보고 있었다.

달력, 엽서, 책, cafe에 걸려 있는 프린트화 등에서 샤갈의 그림을 수도 없이 봤지만,
원화를 보니 그 색감에 너무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어떻게 이런 색감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Chagall은 천재다.

Chagall의 그림을 보면 인물들의 얼굴 색깔이 다 다르다.
초록색 얼굴, 파란색 얼굴, 빨간색 얼굴......
그 어떤 얼굴도 이상하다거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국민학교 때가 생각난다.(난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국민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그냥 국민학교라고 부른다.)

미술시간에 항상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렸고,
친구들의 생일선물로도 가장 흔하고 만만한게 크레용이었다.
미술 시간 뿐 아니라 그림 일기까지 그려야 했기에
크레용은 거의 연필과 맞먹는 국민학생들의 생필품이었다.

기본 크레용은 12가지 컬러,
그 다음은 24가지 컬러,
디따 큰건 48가지 컬러도 있었던 것 같다.
( 48개 짜리 대형 크레용을 가지고 온 애들은 하루 종일 자랑한다고 침을 튀겼다.)

크레용은 어린이들의 손에 묻지 않도록
종이로 쌓여 있었고 그 종이에는 색깔 이름이 써 있었다.

기억나겠지만,
크레용에는 "살색"이 있었다.
"살색"
그 때는 한번도 "살색"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아빠를 그릴 떄,
선생님을 그릴 때,
친구들을 그릴 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살색으로 얼굴을 색칠했다.

그런데....
어떻게 "살색"이라는 색깔 이름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이 세상 사람들의 "살색"이 모두 다 다른데 말이다.
꼭 "살색"이라고 부르려면 좀 길더라도 "한국사람 살색"이라고 불러야 했던 거 아닐까?

물론 같은 한국 사람이라도
사람 마다 살색은 모두 다르다.

그러니까 화장품 종류도 많은거 아닌가?
내츄럴 베이지, 다크 베이지 , 페일 베이지 등등....

"살색"이라는 호칭은 너무도 파쇼적인 발상이다.
우리는 아무런 비판적 대응 없이 "살색"은 크레용의 그런 엷게 누르끼리한 색이라고 믿었다.
살색은 사람 마다 다 다른데도 말이다.

아프리카에서는 "black"을 "살색"이라고 부를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거주지역에서는 "white"를 "살색"이라고 부를까?
미국 같이 온갖 인종이 다 뒤섞여 사는 나라에서는 도대체 무슨 색깔을 "살색"이라고 불러야 할까?

샤갈이 그린 총 천연색의, 너무도 눈부신 원색으로 빛나는 얼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상상력의 상실"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살색"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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