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보낸 수선의 31번째 생일>

디카로 사진을 찍는건 좋은데....
디카 잭을 이어서 컴에 옮기는 그 단순하고도 기계적인 행위.
그게 귀찮아서 이제야 사진을 올린다.
나 또한 이 시대의 귀차니스트?

귀차니스트까지는 아닌지 몰라도,
난 귀찮은 일을 아주 아주 싫어한다.

구내식당에 가면 난 어떤 메뉴를 선택하느냐?
나의 선택은 항상 너무도 확실하다.
메뉴에 상관 없이 줄이 가장 짧은데 선다.
줄 서는거...정말 싫어한다.

울 팀 김대리는 매일 아침 게시판에서 오늘의 메뉴가 뭔지 확인하고 사람들한테 말한다.
" 오늘은 1보다 2가 낫겠는데요? 1공제회관은 오늘 카레야...어제 술도 많이 마셨는데..."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다면,
나 처럼 게으른 사람이랑 일요일 아침에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거다. 늦잠을 자고 책을 읽고 뒹굴뒹굴....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청소기 밀고, 조기 축구라도 나간다고 츄리닝 소리 바스락 거리고 그런다면 정말 기절할 것 같다.

결혼을 결정할 때,
다른건 몰라도 이 조건만큼은 꼭 밝혀야 겠다.

" 누구라도 나를 일요일 아침에 깨울 수는 없다!"

뭐? 아직 정신 못 차렸다구? ㅋㅋ

30번째 생일은 덴마크의 한 시골 마을에서,
31번째 생일은 상하이에서 보냈다.

이 얘기를 들은 승태 오빠가 물었다.

" 넌 생일 때 마다 외국에 가는거야? "

우하하하하.....
내가 뭐 연예인이야?
생일을 즐기려고 외국에 가게?
(사실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다.ㅋㅋ)

작년에는 7박 8일의 출장 기간 동안 생일이 끼어 있었다.
그래서 덴마크 시골 마을의 한적한 호텔에서 아침을 먹었다.
Rodney 아저씨랑 출장을 같이 같었는데,
친절한 수다장이 Rodney 아저씨가 탁상시계를 선물했다.
이쁜 카드랑 같이....
카드에는 Rodney 아저씨 partner의 축하 메시지도 써 있었다.
(각주 : 유럽에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커플들이 많다.
이들은 서로를 파트너라고 부른다.아이를 낳고도 결혼 안하는 커플들도 많다.내 직업의 강점이 있다면 세계를 돌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성"을 느끼는데 있다. 그 외에는? 스트레스 덩어리다.)

올해 생일은 추석 연휴에 끼어 있었다.
사실.....
상하이에 가고 싶어서 갔다기 보다는,
추석 연휴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었다.

결혼 안한 30대 싱글들은 정말 치명적인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뭐 영국같은 나라에서도 그렇게 당하는데(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보라!)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 한국에서 30대 싱글의 명절은 얼마나 처참하겠는가? ㅋㅋ

사랑하는 후배 남생이와 떠난 상하이에서의 4박 5일.
참 행복했다.
글쿠..... 또 하나!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내가 얼마나 무식한지 느끼고 또 느꼈다.절절하게...

뭐 오래 살진 않았지만,
후배들에게 말할 기회가 있을 때 난 항상 주장한다.

진정한 투자란 자기 자신한테 하는 투자라고!

그러니 별 득도 안되는 재테크 책 보면서 이자 몇만원 더 받아 보려고 안간힘 쓰지 말고,
책 한권이라도 더 읽고,
여행을 하고,
가끔 사치도 즐기라고....
자기 자신한테 투자하라고!
내 자신한테 이 세상을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사랑할 기회를 주라고!

멋있는 말이라고?
아마 내가 모아둔 돈이 없어서 나의 처지를 합리화 시키려고 이런 연설을 하는 것 같다.ㅋㅋ

그런데 "여행"은 정말 필요하다.
그것도 젊었을 때....
여행을 통해서 항상 나는 느낀다.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
알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너무 많다.
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너무 많다.

상하이 Museum에 갔을 때였다.
스위스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단체 관광을 왔다.
인생에 주어진 숙제(아이들을 낳고, 결혼시키고, 열심히 일하고, 명예롭게 은퇴를 하고 등등) 를 훌륭히 마치고, 멀고 먼 중국으로 여행을 온 노인들이었다.

노인들의 여행은 여유가 있다.
회사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맡기고 온 애들도 없고,
경비를 아끼려고 노숙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 보면서 너무도 아쉬운건
에너지가 딸린다는 거다.

좀만 걸으면 힘들어서 좀 쉬어 주어야 하고,
가이드의 말을 너무도 잘 듣는 (좋게 말해서 "존중"하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은 그 많은 작품 하나하나 앞에 다 멈춰 서서
박물관에서 나눠준 헤드폰을 끼고(물론 유료다) 작품 설명을 듣는다. 설명을 들으려면 손에 쥔 리모콘 조작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할어버지,할머니들도 많다.
그래서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삼삼오오로 모여 리모콘 조작 방법에 대해 의논을 한다.

" 들려?"
" 아니,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 그 초록색 단추를 눌러야지. 이제 나와?"
" 어....이제 나오네..... Jerom한테도 말해 줘야지."

쓰다 보니 코미디 같다.
작품 앞에서 리모콘 조작법을 의논하다니....
일단 헤드폰에서 설명이 나오면 또 다른 작품 앞으로 간다.

" 아까 초록색 단추 맞았지? 왜 또 안돼지? "
" 그 진열장에 번호 붙어있어? 번호 붙어 있는 진열장 앞에서만 방송이 나와."
" 어...그래? 어쩐지... 아까 열번도 넘게 눌렀는데 안 나오더라.그 도자기 앞에서 말이야."
" 그래, 번호 있는데서만 누르라니까...."
" 고마워. 그런데 Jerom은 어디있지? "
" 전시실 밖 쇼파에서 쉬고 있어. 어제 부터 무릎이 아프다고 하더라구..."
" 그래?나도 좀 쉬어야 겠네."

어떻게 알아 들었냐구?
뻥 아니냐구?
나 독문과 나왔다. 써먹을 일이 없어서 그렇지, 이런 수준은 알아 듣는다.ㅋㅋ

여행은 충전이다.
여행은 자기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하는 너무도 좋은 기회다.
여행에서 에너지를 듬뿍 듬뿍 받아와서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한권의 책을 읽으면 또 다른 책을 읽게 되는 것 처럼,
(이름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여행도 한번 해야 계속 하게 된다.

그러니 두려워 하지 말고 집을 나서자.
꼭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가까운 계곡도 좋고,
단풍도 아름다운 계절인데 산사에 가보는 것도 좋다.
혼자라고 겁낼 필요도 없다.

여행....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단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또 떠나고 싶다.

참! 31번째 생일에 대한 정리.

하나. 남생이에게 이쁜 목걸이를 선물 받았다. 고마워, 남생아!
둘. Wang을 만나서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인간이 그렇게 말을 잘할 수 있다는데 대단히 놀랐다.
셋. 최사장님이 근사한 저녁을 사주셔서 실컷 먹었다.

넷.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위가든에 있는 절에서 기도를 했다.

내 인생에 감사한다.
무엇보다도 나를 낳아주시고, 한결 같이 사랑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다시 태어나도 같이 태어나고 싶은 내 동생들에게 감사한다.
항상 엉뚱한 나를 웃으며 지켜봐 주는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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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18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합니다.
모르는 이의 인사이지만 기쁘게 받아주세요.
내 인생에 감사한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감사한다.
멋진 분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