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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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딩 1, 2 때 이 책을 처음 읽었다. 물론 다른 역자의 책이었지만. 지금까지 본서의 역자가 이야기하는 그런 번역상의 오류들이 있다는 것은 인식도 못했다. [이방인]은 내겐 그저 짧은 잔상 같은 이미지 몇 개로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 장례. 태양. 그날 이후 언젠가의 총격 살인. 오해 받는 재판정. 사형 판결 ... 이 몇가지 이미지가 내겐 [이방인]에 대한 인상의 전부였다. 딱히 그에 따른 감상이랄 것도 없었다. 단지 막연히 부조리한 판결이고 한 인간에 대한 깊이 없는 판단이었다는 해석이 당시의 내 감상의 전부였을 뿐이다. 막연히 뫼르소의 정서가 메말라 있었다고 느끼던 것과는 이번 독서로 다른 감상을 갖게 되었다.

 

청소년기의 감상과는 다르게 자칭 청년인 중년이 된 지금의 독서로는 뫼르소는 메마른 인간이었다 거나 뭔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했었기에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과는 다른 감상이 일었다. 

 

[이방인]을 통해 사형을 판결 받은 것은 뫼르소만이 아니고 나 자신까지 였다. 세상의 많은 '나'가 이 소설을 읽으며 사형을 판결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방인은 결코 뫼르소만이 아니라 이 시대에 많은 '나'들일 것이다.

 

우리는 항상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과장된 생각을 품게 된다.

나는 반대로 모든 것이 단순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우리가 사형받는 이유는 '나'가 결국 타자에게 있어 미지의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는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 이방인이었다. 병자를 치료하며 사랑을 말하고 겉옷을 원하면 속옷까지 벗어주라며 동행하라던 그가, 칼을 주러왔다 불을 던지러 왔다고 말하며 폭력을 행사하기도 마다하지 않던 바로 그였다. 그는 대중에게 단정지을 수 없는, 정형화할 수 없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천국을 말하다가 종말의 시기를 말하면서 너희 세대 안에 그날이 닥칠 거라던 것도 그다. 어느 모로 보나 그 시대 사람들과 지도층들이 불안해 하기에는 충분했다. 가난하고 소외 받는 사람들과 어울리던 그였지만 정작 대중들마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너희는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살리겠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대중은 망설이지 않고 도둑인 바라바를 선택했다. 예수의 모든 말과 행동은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것들이었다. 그는 미지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은 나름 신중한 판단을 했을 것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있어 이방인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방인들이 우리 시대에는 무수히 흩어져 있지 않나 싶다. 대중은 또 손쉽게 사형을 판결할 것이다.

 

어떻게 나는 사형 집행보다 더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요컨대 그것만이 한 인간이 정말로 관심을 가져야 할 유일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지 못했던 걸까!

 

어쩌면 우리는 사형 판결을 받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보다 늦게 그런 판결을 받는 사람들을 뫼르소가 느꼈듯, 특권을 지닌 것으로 느끼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런 이들은 심각한 고문 휴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 ... 그런데 우리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러이러하다.'이네.

우리가 이곳에 끌고 온 사람 가운데 우리에게 끝까지 맞선 자는 아무도 없었네.

모두 깨끗이 치료되었네. ... ...

난 그들이 점점 약해져서 흐느끼며 바닥을 기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네.

그것은 고통이나 공포로 인해 흘린 게 아니라 진정으로 참회하며 흘린 눈물이었네.

심문이 끝났을 때 그들은 단지 인간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지"

 

[1984] 중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을 고문하며 한 이 말처럼 대중의 대다수는 끝내 깊은 고문 속에서 인간의 껍데기가 되어 살아남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에 사형 판결을 일찍이 받을 수밖에는 없다. 사형 판결을 받는 이들 역시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예수도 뫼르소도 진정 그들을 이해한 이들로 부터 사형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사형을 판결하고 교화시키려는 어느 누구도 그들을 오해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무엇보다 판결을 하고 교화를 하려는 어느 누구도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이 소송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전부 사실이면서 사실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뫼르소의 변호인에 변론 중에서

 

사람들은 사실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눈에 담기는 것은 오해 이상인 것이 없다. 2+2가 5가 되는 현실에 익숙해져 버린 이들에게는 2+2는 5뿐만이 아니라 1도 2도 3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더이상 사실을 판별할 의지를 잃어간다. 그러니 자연히 자유는 구속도 억압도 되고마는 것이다. 서로가 이렇다는 것을 분별하고나면 누구나가 서로에게 이방인이 되고 서로에게 사형을 판결하고야 말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은 영원히 지속될수도 있다. [1984]에서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했던 말처럼 말이다. 개인에게서도 사회에게서도 영원히...

 

"여기에서 자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든지 간에 앞으로 영원히 계속될 걸세"

 

나는 재판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싶지도 않고 어느 사제에게 교화의 대상이 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오해 아닌 이해를 받고자 애원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당당히 이방인이 될 것이다. 그런채 떠날 것이다. 세상에 머물더라도 세상을 떠나있고 싶다. 그러게 이방인임을 떳떳히 밝힐 것이다. 

 

뫼르소에게서 '나'를 찾은이들은 결국엔 자신이 이방인이었음을 언제나 자각하던 이들일 거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깨닫게 된 이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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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19
조지 오웰 지음, 정영수 옮김 / 더클래식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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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평화 

자유는 구속

무지는 힘

 

디스토피아... 이 소설은 반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앞서간 시대의 창조적 소설이다. 소설이 출간된 시대가 1949년이기에 조지 오웰이 바라본 미래 1984년은 우리에게는 이미 과거이다. 하지만 그가 전망한 시대가 과연 소설가의 공상에서 그치지만은 않다는 걸 느낄 수도 있는 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몇 차례의 전쟁들을 거치며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생몰연대(1903.6.25.~ 1950.1.21)를 보면 그가 어떤 전쟁들을 거쳤을지 짐작 가능하다. 그가 목도한 시대를 이 시대에는 소설이나 영화로 즐기는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지 몰라도 조지 오웰 자신에게는 겪어내지 않고는 지나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굴레였을 것이다.

 

그러한 시대를 겪으면서 조지 오웰은 개인의 자유와 사상의 힘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체주의는 인간에게 부여된 천성을 제한하고 국가나 공동체의 부속물로 인간을 폄훼하는 제도로 인식했던 듯하다.

 

이 글 맨 위의 슬로건은 그가 그리고 있는 1984 속 오세아니아라는 국가의 대중적 구호로서 모든 것이 전도되어 있고 대중을 심리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소설 속 정부와 지배층의 속살을 도입부부터 엿보게 하는 매개이다. 이런 얼토당토 않은 구호로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통제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소설 종반에 이르러서는 이것은 가능하고 남는 체제이구나 하는 갑갑함이 일고 만다. 

 

1984의 시대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 3개의 대륙 국가로 나뉘어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이다. 주인공 윈스턴은 오세아니아에 속한 정부 공무원으로 출판되거나 보도되는 모든 문장들을 검열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그 시대에는 신어라고 해서 신조어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기존의 어휘들을 대대적으로 폐기하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윈스턴은 신조어들도 다수 만들어내 그 시대의 창의성과 자기주도성을 완전히 억압받는 기조에서 나름의 자유를 영유하고 있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소설 중후반에서 그의 동료가 구속된 상황에서도 자신의 딸이 잠든 자신이 반국가적 잠꼬대를 한 것을 고발해서 구속되었다며 자신의 딸을 자랑스러워 할 정도로 개개인들의 깊은 세뇌가 일상이기도 한 시대이다. 조지 오웰은 이렇게 전쟁과 구속과 세뇌와 함께 언제 폭격받을지 모르는 황폐한 시절을 그리고 있다.

 

그 상황에 윈스턴은 지식인다운 것인지 국가에 반하는 의식을 지닌 채 살아가다가 형제단이라는 혁명단체에 끌리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결혼과 출산까지 강제하는 국가에서 원치도 않던 결혼을 하여 형식적인 결혼 생활을 했던 그는 아내와 사별 후인지 이혼 후인지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혼자가 되어있다. 그는 줄리아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보고 강간을 하고 죽일 마음을 먹었는데 어찌 줄리아는 그에게 반해 그와 내연의 사이가 된다. 국가는 결혼과 출산 뿐만이 아니라 섹스와 사랑까지도 통제하고 있기에 그들의 관계는 다만 몰래 하는 간통으로 간주되고 비밀리에 이어진다. 

 

반국가 단체 형제단에 매료되어 있던 윈스턴은 정부요인 오브라이언을 권력에서 밀려나 형제단에 가입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그에게 접근하지만 그와의 대화를 받아주던 오브라이언은 알고 보니 언제나 정부의 핵심인물이었을 뿐이다. 

 

몰래 일탈이되던 줄리아와의 만남 중 윈스턴과 줄리아는 결국 구속되어 끌려간다. 여기까지가 시대 상황과 윈스턴의 내면을 탁월하게도 묘사한 장면들이다. 이후 구속되어 심문 받는 윈스턴과 취조한달까 사상교육이라는 세뇌를 한달까 하는 오브라이언과의 장면들이 이 소설의 백미이자 진미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이 할 수 없는 게 하나 있어요.

그들은 당신이 무엇이든 말하게 할 수 있어요. 뭐든지요.

하지만 믿게 할 수는 없어요. 당신의 마음속에까지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요"

 

윈스턴과 줄리아의 밀회 장면에서 혹시라도 당에 발각되면 어떡하나 두려워 하는 윈스턴에게 줄리아가 하는 말이다.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소설의 대미에서 윈스턴의 말로末路는 너무도 설득력있으면서도 치밀하고 완숙한 소설가 조지 오웰의 이 소설에 깊은 침묵이 일게 할 정도다. 결국 오브라이언의 말대로 그는 '치료'된 것이다. '온전한 정신을 지닌 사람'으로 말이다. 끝내 '인간의 껍데기'가 되고 만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출간 1932년)와 조지 오웰의 '1984'는 자주 비교되며 지금의 시대는 1984와 유사하다 또는 멋진 신세계와 더 가깝다는 평들을 흔히 들을 수 있다. 내가 보기에 그 둘 사이를 오가는 것이 현시대가 아닌가 한다.

 

빅브라더와 텔레스크린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세계 도처가 감시역량이 완연하고 우리의 손이나 호주머니에서는 언제든 우리의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는 아이폰이나 스마트폰이 우리를 옭죄고 있다. 간단한 해킹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은 발가벗겨질 수 있는 시대다. 더더군다나 아직은 미미한 저항이 있다고는 하지만 AI나 빅데이터를 통한 맞춤광고가 일반화된다면 우리의 기호마저도 노출될 수도 유도될 수도 있는 시대이다.

 

태어나면서 부터 세뇌되어 아무런 저항없이 정형화되어 살아가는 '멋진 신세계'적인 세계상도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이고, 감시되고 제어되며 강제 세뇌 당하는 '1984'적인 세계상도 우리의 일상 중 하나이다.

 

현시대의 교육제도는 각 가정의 개성있는 양육 환경을 단일한 교육으로 무력화 한 후 보편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 군상들을 대량 양산해내고 있으니 '멋진 신세계'적이랄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정치성향이나 사회생활에서의 정보들을 각기의 색깔을 지닌 해석으로 정제된 언론 매체를 통해 전달 받기에 '1984'적이랄 수 있다. '1984'적인데 자신이 흔쾌히 맞추어 따라가기에 '멋진 신세계'적이랄까. 

 

"니 편 내 편으로 분열적인 사회상이 그렇게 전체주의적인 것은 아니잖아!" 라고 보는 이에게는 해줄 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계는 단지 백신 의무화 하나만으로도 이 세계가 얼마나 전체주의적인지를 말해 주고 있다.

 

인간을 부속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접종 이후 반드시 몇 %는 부작용을 앓고 몇 %는 반드시 죽는 백신을 강제 접종하겠다는 판단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도 국민의 80% 이상이 접종하고도 거듭 확진자들이 나오고 사망자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효용이 의심스러운 그것을 강제접종하겠다는 것은 일부가 죽거나 불구가 되더라도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인 사고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다. 

 

전체주의는 나치즘이나 파시즘, 공산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시대 상황이 말해주고 있다. 너희는 전체주의 세상에서 달콤하게 세뇌되어 쌉쌀하게 통제받으며 살아가다가 불맛을 보며 죽어갈 것이라고 말이다. 

 

이번 20대 대선의 결과는 윤석열 당선인의 당선으로 완만하게 결정났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당의 부정선거 증거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래서 5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소송을 걸고 유투브를 올리고 sns에 기록을 남기고 리트윗을 했다. 결과는 400명하고도 몇 십명의 사람들이 기소된 것이다. 기소 이후의 뉴스는 보지 못했으나 기소가 취하된다고 하더라도 증거들 마저 있는 사안들에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 드는 현상황은 1984가 그리고 있는 시대 상황 보다 나은 것인가 싶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 때 이미 당시 여당의 부정선거가 논란이 되었었다. 정권이 교체 되고는 총선을 부정선거로 물들였고 대선에서도 시도 하다가 탄로나자 국민을 난동자와 범죄자로 둔갑시키고 있다. 여야가 모두 돌아가며 부정선거 전적이 있기에 부정선거 사범은 사형인 한국법의 준엄함 앞에서 결코 여야 정치인 중 그 누구도 부정선거를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이 현상황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대중은 모두가 그러려니 하고 있다. 설마 설마 하고 있다. 부정선거로 우리의 권리가 침해 당하고 있고 이번에도 침해 당할 뻔 했다. 그런데도 설마 설마 한다. 전세계가 백신 의무화를 강제하기 시작하고 있고 한국도 그러자는 후보가 단일화를 하더니 인수위에 앉아 있는데 이 역시 그러려니 설마 설마다. 모든 것이 온전히 세뇌 받아온 현실이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그래 아직은 백신 의무화나 미접종자에 대한 규제가 드러나지 않으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헌데 백신 의무화 이후에도 대중이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면 이 나라 대중들에게는 답이 없는게 아닌가 한다. 아직은 깨어날 수 있을 여유가 있을 때다. 이 시기에 깨어나지 못한다면 다음이 있으리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달콤하고 쌉쌀한 게 싫다. 그리고 끝까지 불맛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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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전쟁 - 세금과 복지의 정치경제학
전주성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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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이 욕심이 났던 이유는 재정이라는 것은 세금이라는 분야의 정치문제이자 납세자로서 시민의 의무와 권리가 동시에 담겨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독서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정치적인 원칙과 과정에 대해 조금은 세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또 시민의 의무와 권리를 준수하고 지키기 위해 좀더 폭넓게 사고하는 근거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최근까지 핫하게 이슈가 되었던 세금과 관련한 정치적이면서 시민에게 피부로 와닿을 수 있는 문제들을 보자면 기본소득, 종합부동산세, 부자증세, 보편적 복지, 재난지원금 등이 있을 것입니다. 총체적이면서도 차근하게 본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문제들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국가 재정이란 부분을 다루는 저작이면서도 선진국의 방식만을 따라하기 보다는 우리 실정에 맞는 조세정책과 세금지출을 권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약력은 책 소개글과 저자 소개를 보시면 아시겠기에 생략합니다만 각국의 조세 정책을 정비해본 분이기도 하기에 더욱 전문가다운 식견에 믿음이 갈수밖에 없는 저작이기도 합니다.

 

본서는 4장 구조로 1장에서는 복지와 포퓰리즘을, 2장에서는 세금이라는 것에 정치가 끼치는 영향을, 3장은 양극화 시대의 현실정과 부자과세에 대해 조망하며 4장은 1, 2,3, 장의 내용을 총망라하며 조세개혁과 복지에 대해 담론하고 있습니다. 

 

주요 키워드로는 복지, 증세, 부자과세, 부동산세, 정부 신뢰도, 증세의 폭과 방안, 세제개혁, 편익과 유인책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본서에 대한 리뷰를 쓰기가 너무 어렵고 빡빡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유는 반문해에 있기도 했으나 저작 전체를 꿰뚫고 있는 주제 전체가 너무도 중요하기에 이를 어떻게 간략하면서도 그 주제의식을 잃지 않으며 약술하기에는 제 능력을 넘어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 증세를 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정부신뢰도가 높지 않기에 저항이 만만찮을 것이다. 그러니 무리한 과세보다는 총량제한을 1차하고 이후 과세를 차분히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하는 주장입니다. 이 결론에 이르기 위해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전세계의 과세 현황을 돌아보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 독자로서 깊은 사유가 동반되기도 하고 알고 있던 문제들을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조세정책에 대한 필요와 과정을 돌아보는 대목에서 우리나라의 복지 발전의 과정을 알 수 있기도 하며 증세의 문제를 논하며 우리 정부의 신뢰도와 부패인식지수가 언급되기도 합니다. 또한 부자증세의 필요성과 어려움을 보며 타국가에서의 부자과세의 시도와 폐지를 돌아보고 또 다시금 부자증세에 주목하고 있는 시대상황을 담론하기도 합니다.

 

증세에 저항을 줄이려면 효율과 형평을 함께 보아야 하는데 편익을 따지지 않고서는 증세도 부자증세도 어려울 것이라고 주지시키고 있기도 합니다. 목적세가 쉬운 조세 방식일 수 있기도 하지만 무턱대고 하는 목적세 부과도 저항을 받을 것이니 숙고하여 시도하여야 한다고 그러나 이미 시행 중인 목적세는 폐기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상식에 입각한 설명입니다. 

 

본서를 읽으며 주권자인 납세자의 의무와 권리가 무언지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정치의 한 부분인 재정정책이 어찌 운용되고 있고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본서는 일반 독자분들을 위해 평이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으나 정치가 분들을 위해 더더욱 필요한 저작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주권자인 시민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좀더 상세히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책일테고요. 

 

많은 정치가 분들이 꼭 읽어보시기를 바라고 많은 시민분들이 관심을 갖으셨으면 하는 저작입니다. 모든 시민의 기본적 교양으로 갖추어야 할 지식에 관한 책이 아닌가 하는 것이 감상이기도 합니다. 저는 읽는데 시일이 다소 걸렸지만 정치와 실리 두 부분 모두에 민감한 독자 분들이라면 금새 읽어내릴 내용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느날 문득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권리에 대한 의문이 일때 독서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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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그림자정부 음모론, 일루미나티 음모론, 딥스 음모론을 믿습니다. 

이 음모론을 믿은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 음모론의 세계관으로 해석하면 

근세 이후의 세계상이 너무나 완벽하게 해석되다보니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코로나 사태 역시 음모론에 입각해 사고하지 않으려해도 그리 되지가 않습니다.

일루미나티... 요즘은 딥스라고 하던데 익숙한데로 일루미나티로 통일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루미나티가 세계인구를 5억명으로 줄이려 한다는 내용도 이 음모론을 신봉하는 분들의

믿음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푸틴의 정신문제설로 몰아가는 뉴스들을 보며

하프 시스템을 의심했습니다. 우크라 침공 이후의 세계경제 상황이 일루미나티가 

타블로라사라는 세계를 혼돈으로 빠뜨려 대중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그들의 계획을 

진행하려 한다는 음모론의 주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세계경제 상황이 하락할 수록 대중은 혼란에 빠지고 상황이 악화될수록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신의 자산을 잃거나 투매 하게 될 여지가 있고 경제가 하락한

상황에  반등을 노린 일루미나티는 더욱 이익을 보게 되는 상황도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앞서 말씀 드린 일루미나티의 인구조절설입니다.

팬데믹 이후 백신접종의 반 강제화와 그로 인한 부작용 사례와 사망 사례를 보셨을 겁니다.

여기서 문제는 그럼에도 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 의무화를 추진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긴급상황이라며 백신 제조사에 면죄부를 주어

부작용자나 사망자가 나와도 백신제조사에 민간이나 기업이나 지자체나 중앙정부 차원의

소송을 걸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은

[플랜데믹]이라는 저서와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와 백신제조사와 빌게이츠 그리고 초극부층들의 팬데믹 투자와 그 수익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플랜데믹을 참고하시고..

 

이런 상황에 빌게이츠는 자신이 투자하는 바이러스 연구소에만 있는 전세계에서 이미

1977년 박멸되어 사라진 이후 세계 어디에도 없던 천연두라는 감염병의 전파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초극부층은 코로나19 다음의 감염병 채권에도 투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제가 가장 우려 하는 것은 무엇보다 백신 접종 의무화입니다. 

백신 접종 후 사망자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고 부작용 환자의 경우는

그 보다도 훨씬 더 많습니다.

 

백신은 임상실험도 완전히 마치지 않은 상태인데 백신제조사들은 그런 와중에도

1200 여 부작용 사례 마저 숨기고서 백신을 승인 받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쯤이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지도자라면 백신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하고

접종자 스스로가 충분히 숙고한 이후에 접종을 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을까요?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18세 이상에게 백신의무화를 추진해서 백신 접종을 거부하면 

한화로 500만원(한화로 환산시)의 과태료를,

그리스는 60세 이상에게 같은 방식으로 최대 매월 13만원(한화로 환산시)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50세 이상 백신미접종자는 무급정직 처분을 내린다고 하네요.

 

독일에서도 백신의무화 움직임이 있자 독일 국민들이 대대적으로 반대시위를 하고 있는데

이 모든 상황들이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으로 자연스럽게 덮히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안철수 의원이 50대 이상의 백신강제접종을 주장했지만 단일화 문제로 덮였죠.

그가 추천하는 인사가 다음 질병관리청장이 된다면 50세 이상인 분들은

백신을 강제로 맞아야 하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 백신으로 인한 사망자는 꾸준히 나오고 있고 

백신접종자들도 코로나19바이러스에 걸리고 죽습니다. 국민의 80% 이상이 접종을 했는데도

확진자는 넘쳐나고 사망자가 매일 수백명입니다. 백신은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백신 접종이 오히려 코로나19를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요?

 

mRNA기술의 개발자인 로버트 말론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접종효과가 감퇴하는 단계에서 이 백신이 바이러스 복제를 가속화할수 있다' 라고 말입니다.

mRNA기술이라는 것 자체가 단순히 보면 코로나19바이러스를 체내에서 생성해서 우리의

면역체계가 반응해 항체를 형성하게 하는 것인데 항체의 형성이 약화되는 순간에

체내에서 코로나19바이러스를 더더욱 심각하게 생성해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면역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고인이 되신 뤽 몽타니에 박사도,

한국 최고의 면역학자 이왕재 박사 역시 백신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접종을 거부하고

대중에게 백신 접종을 거부하라고 강권하는 중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사망자가 지속되고 부작용환자가 지속되는 백신접종을

강제하는 게 말이 되는 걸까요? 

게다가 접종 이후에도 확진이 되며 사망하고 있는데 mRNA기술을 개발한 박사님은

그것이 백신으로 호도되고 있는 유전자요법의 부작용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분들일 수록 더더욱 권위있고 믿을만한 전문가들입니다. 

 

왜 미국의 의료진들 다수는 해고될지언정 백신 접종을 거부했을까요?

 

이것이 백신이 아니라 유전자요법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도 그리고 접종 이후에도

확진되고 사망한다는 것과 

단지 접종만으로도 부작용으로 사망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도 당신의 자녀에게 접종을 권했겠습니까?

 

음모론에서는 일루미나티가 의도적으로 인구감소를 실현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조지아가이드 스톤에

지구인구는 5억 명으로 유지하라는 항목이 있으니까 더더욱 그런 주장이 나오는 듯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점점 그와 같이 돌아가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각국이 접종 후 몇 %에서 영점 몇 %가 반드시 사망하는, 그리고 맞아도 확진되고 죽는

그 백신도 아닌 유전자요법을 강제하는 것이 더욱 의아하기에 이런 의혹이 드는 겁니다.

 

아마도 세계 모든 지도자들이 일루미나티라거나 일루미나티에 동조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오는 것은 아닐 겁니다. 다만 국민을 위한 방역이라는 생각으로

국민을 보호하려는 생각만으로 이성을 상실해서 이뤄지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백신 접종 후 사망, 백신 접종해도 확진 후 사망이라는 확실한 현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본다면 미쳤거나 일루미나티의 하수인이 아니라면 

자기 국민에게 백신접종을 강제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꾸준히 몇 %가 죽는 백신을 장기적으로 꾸준히 맞아라 강제로 의무적으로 맞아라라고

강제하는 건 꾸준히 몇 %는 죽이겠다는 판단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니다 오히려 그 몇 %를 제외한 인원을 살리려고 강제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겠지만

현상황을 보세요. 접종해도 확진되고 죽습니다. 게다가 그 백신이라고 불리는 유전자 요법이

원인일 수 있다고 mRNA 요법의 개발자가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떤 판단이 이성적인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과연 다수를 살리고자 소수는 반드시 죽는 방법이 최선입니까?

그리고 그 선택에서도 접종완료 돌파감염 확진자가 더 다수이고 그들도 죽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살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주장하는 방법은 

절대 최선도 차선도 아닙니다. 전면 재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차기 정부의 윤석열 대통령은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시는 분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말 길게 길게 썼다가 거의 다수의 문장을 삭제하고 핵심만 올립니다. 

오늘도 무사하시고 내일도 건강하시고 끝까지 살아남으시길 바랍니다. 

힘을 냅시다. 모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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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22-03-18 0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윤석열 당선인께서 백신패스 폐지한다고 공약하셨어요.

이하라 2022-03-18 08:11   좋아요 2 | URL
그래서 다행이라고 여겨집니다. 투표를 잘했구나 싶습니다.

성석 2022-03-18 14: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충분히 일리 있고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할 사안이라고 봅니다. 플랜데믹 읽어볼게요

이하라 2022-03-18 16: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행운과 행복님. 플랜데믹은 앞으로도 거듭될 팬데믹들에 대처방안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도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강추 드립니다.
 

사실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이후 초반에는 걱정이 말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금새 적응하고마는 것이 인간인 건지 세계대전은 안터질지도 몰라 이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그의 부인과 아이들을 외국으로 피난을 보내고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또 걱정이 됩니다.

 

확전이 될 것을 우려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아내와 자녀를 굳이 대피시키고서 

전쟁을 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전쟁이 패배한다면 자신이 실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피신부터 시켰다고 하기엔

러시아에서의 푸틴의 입지가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크라 전쟁이 지속된다고 해서 푸틴에 대한 쿠테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보이지 않는데

과연 실각을 걱정하고 피신 시켰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대전까지 고려하고 우크라 침공 전쟁을 지속한다고 보는 것도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는 무모해 보이지만 이미 침공한 전쟁을 아무 성과 없이 

중단할 지도자로는 보이지 않네요.

확전(세계대전)까지 고려한다고 보이는 발언들을 반복하는 푸틴이기도 하고요. 

이성과 고집에 무모함을 샷 추가한 지도자가 아니라 공감 능력이 있는 이들이 

지도자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쨋건 푸틴의 아내와 자녀 피신 소식을 듣고 부터 다시 세계대전에 대한 걱정이 

눈 앞을 가립니다. 걱정한다고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자제하는 중입니다.

 

세계가 이런 시기에 한국의 대안은 딱히 없어보이지만 경제분야에서라도 이후 

윤석열 당선인이 보다 나은 인물들에게 인사권을 행사해 잘 대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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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22-03-1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 소식 때문에 한국인들 또한 전쟁의 불안감을 느끼고 선거에 또한 그게 영향(?)이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던 가장 큰 영향은 그로인한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겠지요. 인간은 근친성을 기반으로 한 존재니까요. 과거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악행에 분노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현대전에선 어떨지 모르겠네요.

이하라 2022-03-11 12:20   좋아요 2 | URL
전쟁의 잔혹함은 시대가 변한다해도 덜어지지 않을 문제 같습니다. 두려움은 그게 지역적인 문제로 그칠 것인지 거시적인 규모로 커질 것인지에 따른 것입니다. 세계대전은 정말 감당하고 싶지 않은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