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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총평 :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에 관심이 있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당신은 미끼를 확 물어분 것이여...
(재미-중, 국뽕-중하)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공산품 스타일의 소설을 찍어내는 공장형 작가, 한국의 댄 브라운 ‘김진명‘의 2017년 작품.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을 소재로 쓴 작품이다.
2022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구판과 별 차이는 없어 보인다.
매년 신작을 발표하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카지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고구려』 등이 있다.
(줄거리) 1983년 9월 1일, KAL 007 피격 사건으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다.
주인공 지민은 어릴 적 미국인에게 입양된 여동생 지현의 귀국을 기다리는데, 마침 지현이 탑승한 기체가 KAL 007기다.
지현과의 만남만을 기다려왔던 지민은 여동생의 복수를 대신하기로 결심한다.
복수를 위해 미국, 남미, 유럽을 거쳐 러시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그려낸다.
(훌륭한 초반부) 항로를 이탈한 KAL 007기를 중심으로 미국과 소련의 대응을 보여주는 긴박한 초반부는 스릴이 넘친다.
이상을 감지한 미국 포스트 굿윌과 일을 키우지 않으려고 하는 상부의 갈등, KAL 007기가 민항기임을 눈치챈 러시아 조종사 오시포비치의 내적 갈등 묘사는 마치 영화 도입부 같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후 ‘지민‘이라는 한 개인의 서사로 이야기가 좁혀진다.
민항기 격추 사건은 지민의 모티베이션이 될 뿐, 이야기의 후반부까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지민은 ‘문‘을 만나게 되는데... 이게 이 소설의 핵심이다.
(문선명과 국뽕) 작중 ‘문선명‘은 ‘문‘으로, ‘한학자‘는 ‘한 여사‘로 표기되며, 실명이 언급되지는 않는다.
‘문‘은 합동결혼식으로도 유명한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창시자가 맞다.
지민은 미국 댄버리 교도소에서 ‘문‘을 만나게 되는데, ‘문‘을 이 소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내는 서브 주인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문‘은 막강한 경제력과 권력을 가진 인격자로 묘사된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꾸준히 주장하는데,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지민의 복수를 향한 여정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훗날 소련에서 서기장 고르바초프를 직접 만나서 그로부터 공산주의 해체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서기장님! 하느님 믿어야 합니다!˝
˝서기장님, 공산주의가 나타난 이후 전쟁을 빼고도 일억 이상의 인구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오시포비치는 죄 없는 민항기를 격추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소련에서는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이 제도 공산주의 때문이지요. 서기장님, 지금 바로 공산주의 종언을 선언할 생각은 없습니까?˝
이야기 후반부에서는 문 일행이 북한을 방문하는데, 이에 대한 묘사도 엄청나다. (사진으로 대체)
(사실) 마치 냉전의 종식, 공산주의 체제 붕괴에 문이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처럼 묘사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문선명이 반공주의자가 맞고, 고르바초프를 직접 만난 것도 맞지만, 소설 속 이야기처럼 저돌적으로 굴지도 않았거니와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체제 붕괴에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아니다.
북한에서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주체사상을 비판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또한 고르바초프가 KAL 007기 격추 사건에 대해 사과를 했다는 글 역시 픽션이다.
당시 약소국이었던 한국의 한恨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대체 역사적 요소로 보는 게 적당하겠다.
(특징) 『카지노』, 『천년의 금서』에 이어 3번째로 김진명 작가의 소설을 읽었는데, 공통적인 특징이 몇 있다.
먼저 전개가 굉장히 빠르다. 개개인의 내면 갈등을 깊게 파고 들지 않을뿐더러, 필요하다면 과감히 몇 년을 건너뛰기도 한다. (해당 이야기에서는 지민이 공부를 하는 몇 년간의 시간을 건너뛴다.)
그만큼 지루한 구석이 없다는 건 장점이기도 하다.
무대 역시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한다.
그리고 빼놓으면 아쉬운 그의 결정적인 아이덴티티. 바로 국뽕이다.
『카지노』에는 이례적으로 국뽕 요소가 없지만, 대다수의 작품에서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를 넘어서,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가설과 소문을 사실인 것 마냥 소재로 써먹기도 한다.
(아쉬움과 총평) 아쉬운 점은 명확하다.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밝혀진 진실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해당 사건을 더 깊게 파고들면서 어떤 가설을 제시했다면 보다 풍성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인공 지민은 ‘문‘을 위한 캐릭터였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종반부에는 ‘문‘에 무게가 실린다.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문‘을 띄워주는 묘사는 마치 통일교 광고 같기도 했다.
정말 흡인력 있는 초반부와 다르게, 이후로 줄곧 개인의 서사에 집중되는 이야기는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죽 읽어가기에 지루함과 막힘이 없고 예상치 못한 반전도 있으니, 스피디하게 무언가를 읽고 싶다면 이 책은 어떨까...?
막상 추천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졸작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