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난 후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보름에 한 번 정도.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딸, 일은 들어오냐?”
“딸, 돈 벌고 있냐?”
거기에 왜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느냐는 채근이나, 돈을 벌어서 자신한테 달라는 무의식적 소망이 담겨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무능력하고 한심해보였거나, 일이 너무 힘들어 보였으면 엄마는 빨리 시집가라고 했을 것이다.) 엄마는 궁금한 것이다. 정말로.
나는 어떻게 이것을 듣냐면…
“딸, 세상에서 쓰여지고 있냐?”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일주일 전쯤에 나는 드디어 10km 달리기에 성공했다. 물론 아주 아주 느린 페이스의 성공이었지만, 쉬지 않고 뛰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달리기 어플이 가상 마라톤을 꾸준히 주문하던 그날은 때마침 엄청난 한파가 몰아닥친 날이었고, 이런 날에 성공한다면 진짜 내 실력 아닐까? 하면서 추위를 재료삼아 달리고 엄청난 나뽕에 취했다(그리고 축배를 거하고 격하게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알았다. 내가 성공할 거라는 걸. 그래서 나는 보름 정도 미뤘다. 내가 성공할 날을. 이 말이 무슨 말이냐고? 일단 이걸 ‘성공 공포’라고 해보자. 여성주의 시각으로까지 해석할 필요없이 그냥 성공을 마음 먹는 것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의 어떤 심리.
사실 회사를 나왔을 때도 나는 이미 알았다. 이곳을 나와서 내 일을 할 때, 지금 여기 있는 것보다 훨씬 잘 될거라는 걸. (아직은 '훨씬' 까지는 아니다) 그런데 막상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일주일만엔가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는 코 밑까지 물이 차오르는 기분을 매일 밤 느끼고 있었다. 그건 불안의 감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안 자체는 중요하지 않은 것도 같다. 상담실을 제발로 찾아 갔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어쨌든 가장 큰 성과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거다. 일기에 그렇게 썼다. 나는 필요할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필요할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 나에겐 아무도 없지만, 나는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도움을 구할 수 있다. 지금도 나는 이것을 반복해서 쓰고 있는 데, 내가 이 사실을 이제라도 알았다는 것은 눈물나는 정말 눈물나는 경험이고, 이 눈물은 안도의 안심의 편안함의 눈물이다.
지지난주의 상담 이슈는 이런거였다. 처음의 두어달 정도의 공백을 빼면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고, 연말 성수기 맞이 일을 쳐내기 바쁜 과로 상태로 돌입했지만 그 때의 나는 내가 정말 자유의 댓가로 거리에 나앉을까봐 걱정했노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당연한 불안이니까 그렇게까지 불안해할 필요가 있었나 싶은 데, 정말 심각했던 것 같다고. 지금도 여전히 불안해서 술을 드시나요? 아니요. 요즘엔 술 잘 안마셔요. 술마셔도 불안해서는 아니예요. 일을 하기 시작하자 불안이 눈녹듯이 사라졌어요. 왜 그렇게까지 불안했는지가 신기할 정도예요.
생각해보면 항상 나는 일하고 있었고, 나를 먹여살리고(도 때로는 남친을 건사한적도…;;;)있었는 데, 그걸 못하고 있는 그 몇달이 안되는 순간이 왜 그렇게까지 무서웠던 걸까. 왜, 왜, 왜.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어제보다가 잠들었다. 재밌었다.)에서 물속에서 혼자인 인간이 버둥버둥 대는 장면이 나오는 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의지할 곳이 없이 버둥버둥대는 상태. 조금만 있으면 입으로 코로 물(불안)이 들어오고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써보자. 진짜로 혼자가 된 상태. 가족도, 연인도, 직장도 없는 상태.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고 오로지 나 자신만이 근거가 되는 상태에서 일(사업)을 시작하는… 잠깐만 나 아직은 준비가… 그러니까 드디어 세상에 단독자로 내던져져 허우적 거리는 느낌이었다고 치자. 생각해보면… 조금만 이성을 찾고 생각해보면 나는 수영을 할줄 아는 사람인데… 왜 그걸 못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러니까 그 때까지 세상이라는 바다 위에서 나는 항상 어떤 부표같은 것에 의지해 몸을 띄우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미 온몸으로 버둥대며 헤엄치고 있으면서도 내가 불안해서 내가 끌어안고 있는, 최소한의 나를 버티게 해주는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은 부표였고… 친밀한 관계들이었고… 가족이라는 제도였고….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아 그것들을 제거하니 일시적 공황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러가지 일들(그것도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을 하고있다. 회사에서 하던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들이고, 오히려 관료적인 부분을 걷어내고 나니 더 잘한다는 느낌도 든다.
선생님 저는 이렇게 잘할 수 있는 데, 이미 잘해 왔으니 지금 잘하고 있는 것도 너무 당연한 데… 왜 그때는 그렇게까지 불안했을까요? 와 비슷한 질문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무튼 그날에 미션으로 받은 다음달까지 다뤄보아야할 이슈는 “왜 자신의 성과를 정당하게 평가해주지 못했냐”는 거였는 데…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정당하게’는 인정하고 평가해줘야하는 것 아니느냐고. - 뭐 갑자기 이야기가 건너 뛰는 느낌인데(이 공백이 바로 내가 감추고자 하는 공백일지도),
그러게 그거 누가 남한테 그러면 나 정말 화냈을텐데, 난 나한테 왜 그랬을까?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너무 열심히 사는 것 아니냐는 말인데, 나는 그게 조금 서운했다. 뭐라고 항변했냐면… 살면서 24시간 다 내꺼였던 시간 있어본적 있냐고. 나는 올해들어서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꺼를 살고 있다고. 그래서 열심히 살지 않을 수 없다고. 처음 살아보는 내 인생이라서.
안하던 것도 해보고, 하기 싫은 거 안하고, 하고 싶은 거 실컷 해보고 있는 데… 그거 너무 열심히 사는 거라고 그러면…. 그걸 너무 열심히하는 거라고 하면(뭐 원래도 맹목적으로 열심히 살았지만), 어쨌든 지금 나에게는 너 자신을 열심히 사는 것을 중지해보라는 말처럼도 들린다고. 나 열심히 살꺼야!! 바락바락!! (그러다가 번아웃이 증상이 오고있다.. 자중하겠습니다😩)
아무튼 불안.
불안은 나의 코어다.
현대인의 코어이기도 할테지.
양자오의 <꿈의 해석을 읽다>에는 그런 문장이 나온다.
“(109)인간의 어두운 내면이야 말로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요인이다. 밝은 측면은 누구나 대체로 비슷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 어두운 면을 지닌다. 이 점에서는 모두 같고, 저 점에서는 모두 다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가? 이런 면인가, 저런 면인가?”
과거의 나는 *당신의 상처가 당신을 고유한 존재로 만든다* 정도로 이 문장들을 받아들였다.
납작하고 판에 박힌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어떤 고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채로 찍히고 패인 나의 상처들이다.
한국 사회에는 자신의 흉터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정말인지 적다. 어렵게 꺼내보인 그것이 빌미가 되어 공격당하고 힐난 당한다. 나는 상처를 드러내는 글을 공개하고 싶지는 않다. 내 상처에 대해서 만큼은 오해받거나 공격받고 싶지 않으니까. 다만 ‘고유한 내 상처’에 대한 해석의 권리는 나에게 있고, 그 해석을 넓히고 깊게 만들고 싶어 많은 것들을 읽고 또 잊지 않기 위해 (때로는 더 진지하게 파고들어 생각해보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내게 독서와 글쓰기는 그런 의미다.
올해 이곳 서재에서 나는 생애에 만나본적 없는 책 읽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쓴 리뷰들을 읽었다. 내 멋대로 동족이라고 칭했다. 각자 가진 독서 스타일 만큼 고유한 상처와 그에 대응하는 삶의 방식들이 있을 거다. 쉽게 추측하지는 않지만, 쉬운 방법이 아닌 어려운 방법인 *'책'을 통해 자신과 관련된 무언가를 부지런히 찾고 있다*는 것 만큼은, 그 태도는 분명해 보였다.
아닌가?
아니라도. 좋다고. 유튜브 시대에 책 읽는 그대들.
그래서 문득 던져보고 싶은 조금 재밌는 질문...
이를테면 ‘불안’에 대한 것인데.
다락방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를 꽂아두고 있다.
나는 <불안을 우리를 삶으로 이끈다>를 조금 읽었고, 깊게 읽고 싶어 읽기를 미뤄두었다.
이것은…… mbti에서 F 와 T의 차이인가?
그녀는 불안과 잘지내고 싶어하며(왜 걔랑 친해지시려고 하는 거죠?), 나는 불안을 동력으로 삼아서라도 살아보고(너무 합리적이야… 너무 효율적이야… 참 지독한 인간….) 싶은 것이었을 라나?
오늘은 12월 31일이면서 금요일. 글을 올리고, 밥을 먹으면서 서재에서 실컷 놀다가, 번아웃으로 엉망이 된 집을 치우고,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 책 읽다 자야지. 어제-오늘 밀린 일은 주말에 주말에 하자. 그래도 된다. (이렇게 계획 세우고 써둬야 덜 불안하다)
서재칭구 여러분 모두 복된 새해 맞으시길 공쟝쟝이 빌어드립니다.
덧, 자신의 성취를 스스로 인정해주고 자기 자신을 독려하는 방법은 다락방님의 글에서 많이 배웠다. 그리고 지금도 부단히 배우는 중이다. 이것에 대해 나는 직접 말한 적이 있다. 다락방님이 다락방님이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 지… 저는 그게 보인다고. 나는 그녀가 그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니를 의심했던 적(?)도 있어서, 그냥 말해주고 싶다. 당신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고, 존재만으로 중요한 존재 까지는 아닌 것 같고(그건 아닌거 같아.. 역시 동의 못함), 아무튼 나 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필요한 존재야!!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