윽, 다락방님 꺼 보자마자 나도 쓰고 싶었다. 이런 건 떠오를 때 후다닥 써버려야 한다. 나의 2021 정리.
올해 초 전략적으로(?) 회사를 그만뒀고, 퇴직금으로 맥북을 사서 그걸로 글을 썼다. 실업급여로 반년을 놀면서 주식과 코인에 과몰입하며(결과는 크게 투자하지 않았기에 적게 잃음…) 다른 한편으로는 어려워서 엄두도 못 내던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
천천히 삼십분 정도는 너끈히 달릴 수 있게 되었지만 살은 단 1kg도 빠지지 않았다. 담배를 끊었고, 알콜 의존증이 걱정되어 상담을 5년만에 다시 시작했다. 알콜에는 문제가 없었고, 졸라 불안한 주제에 너무 괜찮은 척하려고 하는 내가 문제였다. 내가 나한테까지 괜찮은 척 할 필요는 없는 건데… 알고 있는데 방심했다. 걍 돈내고 당분간 상담 샘한테 의존하기로 하니까 술에는 의존 덜함. 돈, 돈이 최고다.
다 읽은 책은 118권(12월 말까지 125권 목표로 달려보겠음), 읽다만 책은 아마도 60~70권? 대체로 문란하고 난잡한 독서생활을 하였다. 잦은 이별과 폴인 럽, 읽으면서 양다리 세다리 문어다리 걸치기, 원나잇(?) 독서, 읽다 말고 욕하기, 읽는 중에 한 눈 팔기, 일단 찜해두고 나중에 맛보기… ㅋㅋ 어후, 제가 천하의 바람둥이네요😔 잡식형 독서의 범위는 늘어나고 불어나 양자물리 책까지 샀으나 결국 열어보지도 못한 채 봉인ㅋㅋㅋ. 김상욱 교수님.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내년, 아니 먼 미래에 만나요. 근데, 제가 아무리 팬이지만 표지 애바쌔바오바육바임. 출판사들아. 이러지말자.
기억에 남는 일은 팬데믹에 혼자사는 백수인데 가족과도 연락을 하지 않아ㅋㅋㅋㅋ 본의 아니게 20일 정도 묵언 수행을 하게되어 사회성이 떨어진 사건. 동생이 20일만에 전화해서 언니가 말을 이상하게 한다고 놀렸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문제는 내가 그 20일간 주디스 버틀러와 대화를 진지하게 나눴다는 것이다… 나만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나만 일방적으로 이해하기라는 노동을 하며 괴팍한 고독감에 시달리다 보니, 난해한 버틀러의 문체에 정들어 버림(이거 스톡홀롬 증후군인가🤔).
무튼 2021년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 다 끊고 책만 읽어봤는 데, 나쁘지 않았음. 조금은 체질 같기도? 곁의 허섭한 인간을 비워낸 만큼 인류 초천재들을 맞이할 시간이 생겨난다는 마음으로… 내년에는 안그래도 없는 인연들을 더 심하게 아디오스 할 생각😤 지금까진 연락오면 받았는 데, 이젠 연락와도 안받아야지… (여러분 잘못된 독서가 사람을 이렇게 망칩니다.) 알아질 때까지 긁어파는 독서 계속 하고 싶지만 돈 벌고 나면 쓸 뇌가 남아있지 않아서 일 다시 시작하고 부터는 모르는 대로 슉슉 넘어가는 독서로 연명(?) 중이다.
퇴사를 하기도 전부터 회사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리까리 했는데 역시 출근하기 싫어서 내가 회사가 되기로 함. 어떤 조직에 몸을 담든지 간에 결국, 언젠가는, 내 힘으로 자립하는 것이 가장 안전해지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시험(혹은 실험)해 보기로 마음 먹음. 1000일만 해보자, 딱. 그러면서 이거 쓰는 오늘 117일째.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별의 별거(이를테면 배달 알바라던지, 디지털 눈알 붙이기 같은 거?) 다 해보려고 계획짜놨는 데, 첫달 빼고는 별거 안해도 그럭저럭 버티는 중. 참 그러는 동안 읽은 책들 중에 이 책 좋았다.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올해 초, 태어나 처음으로 일주일 넘게 모부님과 나(홉스🐈⬛) 이렇게 셋이 지내봤다. 어색했는 데,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러고 난 뒤 까닭은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한테 각각 다른 방식으로(포기했던) 사과를 받았는 데, 그걸 글로 써보고 싶었지만 어쩐지 아직은 다루고 싶지 않아서 짤막하게 메모만 해두었다. 올해를 돌이켜 보는 글을 쓰면서 젤루 생각 나는 걸 보니 꽤나 인상적인 경험이었던 것 같고, 뭔가 나는 정말로 진짜로 진심으로 잘 살고 싶어졌다. 누구라도 안그러겠냐만는 이번엔 정말 진심 찐으로 확고해짐. 잘 살거다. 나를 더더더더더더 소중히 대할거다.
여기까지는 올해를 반추하며, 기록해둘 만한 무언가 많은 것이 변화한 나의 올해였고.
이제부터 책이야기.
📚2021년 올해의 책 : 캐럴라인 냅의 <드링킹>
읽고 난 뒤 별 자체는 네개 였으나… 돌이켜보건대, 나를 가장 변화시킨 책은 캐럴라인 냅의 <드링킹>이다. 이걸 읽고서야 내가 알콜 중독(… 이전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술부심이라고 자랑스럽게만 생각함)이라는 나만 빼고 다 아는 씁쓸한 진실에 직면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읽지 않았다면 알콜 중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어찌저찌 노력하여 인간과는 이별을 다짐할 수 있었으나, 술과의 이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므로. (내 모든 친구들은 술 친구들이었다. 말 다 했지 뭐.) 꼭 술 뿐만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중독에 취약한 인간인지 책 덕분에 전반적으로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달아남, 삶으로부터 달아남. 도피,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한 도피. 이렇게 쓰니 뭔가 뿌리 뽑아야 할 질환(?)처럼 느껴지지만, 이 진실은 나의 술 친구가 너는 ‘35년산 프로 중독러’라고 다정히 불러줄 만큼 저의 그냥 정체성이지 싶다. 난 또 그걸 슴슴하게 그냥 받아들이기로 함. 기왕 중독없이 살 수 없다면, 책 중독으로 도피하자. 이러면서 나 자신이랑 합의 봄. 이런 저런 것들에 의지하며 인생을 방탕(?)하게 열심히 살아갈 건데 실물 인간보다(특히 특정 정치인이나 연예인보다야ㅋㅋㅋ) 텍스트가 낫지 않을까…?
📚2021년 올해의 에세이 : 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
올해 만난 좋은 에세이는 솔직히 너무 많다. 쥼맬루…. 알라디너 여러분 아시겠지만 제 주종목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에세이여라… 저 이미지 속 쟁쟁한 이들(정희진/캐럴라인 냅/한정원/양효실) 중에 <외로운 도시>인 건 내가 올해 이 도시 속에서 외로웠기도 했지만(안 외로워 보려고 잠시 한눈 팔았다가 호되게 당함. 이불킥 세번하고 그냥 나, 외롭기로 해…🙄), 책을 통해 고독 속에서 무언가를 또닥또닥 만들어낸 예술가들의 근사한 외로움을 소개 받고 거기에 깊이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좋았던 것은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고 추적해 작가 자신만의 이해와 공감으로 엮어낸 올리비아 랭의 ‘다시-쓰기’ 였던 것 같다.
언젠가 책에 대한 판단 기준은 ‘의미(정보)/재미/아름다움’이라고 썼었는 데, 세가지 다 거의 완벽에 가깝게 충족되었고, 부끄럽지만(왜?) 언젠가 책을 쓰게 된다면 이런 걸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이 책에서 어떤 소스(?)들을 많이 훔쳤기 때문에 나만 알고 싶지만… 뭐, 좋은 책 읽고 나면 곰곰이 곱씹고, 여러 번 다시 읽으면서, 어느 순간 베껴쓰고 따라쓰고 훔쳐쓰고 있는 거 당연한 거잖아요? 나만 그래?
여튼, 제게는 올해의 에세이가 바로 이 책입니다~ 그리고 난 커서 먼저 다락방이 된 후, 그 다음에 제4의 올리비아랭이 된다! (차마 제2,3의 올리비아 랭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랄랄라~ 내 나이 반 칠십. 북튜버도 되야하고 다락방도 되야하고 올리비아 랭도 되야해서 참으로 될 것이 많구나. 10대 때 가졌어야할 꿈을 이제서야 꾸다니. 얼마나 다행이게요?
📚2021년 올해의 소설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몇 번 언급한 것 같아 그냥 넘어 갈까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내 안의 어딘가를 흔드는 독서 경험을 하게 하는 소설인 데, 이건 참으로 사적이면서도 정말 소설 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인 것 같고…그 경험들을 어떤 카테고리에 묶어야할 지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내게 무해한 사람>과 <루시 바턴>이었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소설들을 더 만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눈물이 날 것 같다.
🙄 올해의 인물(혹은 올해의 대머리인가요) : 미셸 푸코
분명한 것은 나는 푸코의 <성의 역사1>을 정말 열심히 읽었고, 그걸 읽으면서 그에게 끊임없이 심문(고문) 당하는 느낌이었다. 뭐래, 이 대머리 물음표 살인마 자식이!!! 다 읽고 나니까 내 사고가 얼마나 이분법에 익숙한지 알겠더라.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성의 역사>를 읽는 동안 정희진의 원본(?)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정희진 샘의 문체가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지만, 처음에 <페미니즘 도전>을 읽을 때 너무 난감했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냥 사고 구조 자체가 나랑 달라서 머릿 속을 뜯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정희진의 생각의 파격을 주는 문장들, 다시 생각하게 하는 생각에서 나온 언어들에 숨통이 틔워지는 느낌도 들었다. 처음엔 요상한 궤변처럼 느껴지는 데, 곱씹어 읽다보면 익숙한 프레임들을 조금씩 비트는? 정희진의 저주에 걸린 이들은 내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지 알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버틀러, 엘렌 식수, 위티그와 이리가레. 그이들의 어려운 글들도 지적 허영처럼, 고약한 말장난 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에 나타나거나 환대받은 적이 없어 생경한 말과 생각방법 들이라서 어려운 말처럼 느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라보게 되니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의 저변이 확 넓어졌다. 여성 억압 5천년 만큼의 엉망인 말들이 오백년은 더 써져야 한다는 소신이 생겼다. 규범의 체현인 익숙하고 명료한 언어로는 규범을 비틀거나 조롱하는 생각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글을 쓸 수 밖에 없고, 세상이 소외시킨 사람들은 세상에 소외된 언어로 말할 수 밖에 없으므로 그 글은 이상할 수 밖에 없으며, 선명하고 당연한 말로 채워진 익숙하고 진부한 이야기들이 나를 당연하고 진부한 사람으로 만든다. 아, 나는 당연히 당연하고 진부한 인간이다. 그러나 당연해지기 위해 노력했던 일련의 사회화 과정들이 얼마나 나를 해쳤는 지도 이제는 안다.
예를 들자면 '감정 노동'에 감정 노동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 얼마나 좋았던 지를 기억한다. 그런 식으로 새로 나타나야 할 언어들이란 얼마나 많은가. 나는 학자나 연구자가 아니라서 그런 말들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그런 말들(때로는 미러링의 용어들)을 당연한 듯 사용하면서 푸코 말마따나 ‘담론’의 영역에서의 어떤 실천을 지속하는 것이 sns시대의 페미니스트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주눅들지 말고 엉망으로 떠들고, 기운이 나면 싸우기도 하고 설득도 하고. 니 말이 뭔말인지 니가 알고 떠드냐? 하면 알랑가 모르것슈~ 하면서 빻은 책에는 후졌다고 한마디씩 냄기면서 알라딘 서재 잘해야지.
무튼 그리하여 이런저런 종류의 통찰을 나에게 준 푸코. 연초의 나는 푸코를 읽어보갔으~! 해놓고 책을 이빠이 샀는 데… 느닷없이 중간에 터진 소아성애 스캔들로 정나미가 떨어지면서 안읽다가, 스캔들이 스캔들(?)임으로 밝혀져 다시 제게 돌아오긴 하였지만… 돌아온 푸코는 제가 읽지 않았고요? ㅋㅋㅋ *그의 훌륭한 스승 조르주 뒤메질(ㅋㅋㅋ)*과 함께 제 페이퍼에서일종의 밈이 되어버렸으니… 드웨인 존슨까지 그를 패러디 하고 있더라 이 말씀.
(사진은누가봐도 푸코처럼 입은 드웨인 존슨...ㅋㅋㅋㅋ 넷플릭스 영화 <레드 노티스> 출처: 구글링)
이제- 나는- 아, 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푸코야. 싸우자. 푸코야. 싸울래? 아무래도 넌 죽었는 데, 내 머리가 대머리가 될지도 모르는 데…. 무튼 그래도 올해 계속 놀려서 미안해. 하지만 너의 은사님이신 뒤메질옹과 함께 알라딘 서재에서 올해 너 꽤 핫했다? ㅋㅋㅋ 그리고 얼마전에 안 사실인 데, 내 MBTI가 좋아하면 조롱하고 놀린다고 하더라고…. 타고 난 개구쟁이 성격이랄까? 데헷- (찡긋/방긋)
🙄 올해의 키워드(관심분야)
비트코인? 땡! 달리기? 땡! *뇌과학* 되시겠습니다.
나 지금 또 엄청 보고 싶은 뇌과학 책 이렇게 세 권 읽으려고 찜만해 놨음. 뇌과학은 왜 재밌을까 생각해 보는 중이다. 신흥 종교 같기도 하고, 교묘하게 인간을 다루면서 인간을 비트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는 자기계발 목적으로 읽고 있다. 읽다보면 결국 ‘뇌를 잘 다루는 방법’ 정도로 소구되고, 나는 잘 살아보고 싶으니까 거기서 시키는 대로 한번씩 해보는 거지. 햇빛을 쬐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지적인 대화를 할 친구를 찾거나.
📚 올해의 아쉬움이 남는 책 : 움베르트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백수 기념으로 서양철학 다 뽀개버리겠다 하고 빌렸다가, 진짜 한 닷새 열심히 읽었는 데, 진도 드릅게 안나가서 교부철학에서 반납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ebook 결제했는 데, 급나 비쌋음. 나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돈 만쓰냐?ㅋㅋㅋㅋ 이제 그만 반성하자. 돈.. 모아야대...
📚 마지막으로 올해의 페미니즘은 역시 : 을유 새번역의 보부아르 <제2의 성>
되시겠다. 하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거 읽으면서 알라딘 서재 친구 너무 많이 생겨버린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뿌듯하고 한편으로는 좀 무겁기도 하고(?) 그랬네요. 그래도 같이 읽는 독서 경험이 얼마나 좋았던지요! 헤헤.
참고로 을유는 그토록 제가 열심히 페이퍼를 써서 올렸건만, 제게 무엇도 주지 않았습니다. 난 선명하게 <아주 편안한 죽음>을 원했건 만…? ㅋㅋㅋㅋ 그리고 이 경험으로 인해 나름 생각이 확실해졌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책 얻어서 독후감 쓰기는 하지 않는 것으로. 걍 돈 많이 벌어서 내돈 내산 해야지 솔직하게 악평도 할 수 있는 것 같고, 여기저기 올려야하고 몇회 어디까지 올려야하며… 뭐 그런 것도 안해도 되고….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라도 책 좀 사줘야지 책 만드는 사람들 안 굶어죽지. 읽고 쓰기 만큼은 마음의 빚 없이 할란다. 하기 싫으면 언제든지 때려치우고. 여튼 제가 책 사 읽게 돈 좀 많이 벌게 해주세요. 산타 할아버지!
📚 2021 독서 생활 총평 :
2021년 저는 백수맞이 난생 처음 100권 이상의 책읽기에 돌파하며(!)
미래의 현자, 독서가, 독설가(내가 페이퍼에다가 쓴 적이 있었던 가? 제 궁극의 꿈은 <드래곤 라자>의 칼 헬턴트 입니다.)에 조금 다가간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에도 생계와 집구석 마련을 위한 노동에 건실하면서도 미래의 현자, 독서가, 독설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알라디너가 되겠습니다.- 이상 북튜버 신인상에 빛나는, 4개 서재의 달인 뺏지가 있는, 곧 5년차 알라딘 고인물, 꿈이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은 공쟝쟝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