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소진)12월 이것만은 꼭 읽겠닷!!
연휴 기간 동안 매일 한 것은 집앞 서점을 드나든 것인데, 매일 조금씩 조금씩 배치가 바뀐다는 것이 흥미로왔다. 어느운나쁜해의일기는 키다리 판형인데 꺼내려고 하니 구겨지더라.. 두권이 서고에 있었는데 모두 구겨진 건 그런 까닭인가보다. 해리포터 전집이 쭉 놓여있는 걸 보니 반짝반짝 어찌나 곱던지 확 지르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고, 각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하드카버본을 보니 아직 못읽은 주요작품이 이렇게 많은데다 계속 증가하고 있으니 죽기전에 다 읽기는 틀린 일 같다. 오늘 저녁에 보니 홈즈와 관련된 서적이 가판대 한판을 차지하고 있었고, 성녀의 구제가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더라.
서점이 위치하고 있는 빌딩 꼭대기는 영화관이라 모처럼 혼자 영화 관람을 했다. 거의 대부분 매진이었는데, 운 좋게 적당한 자리가 딱 하나 남아있어서 셜록홈즈를 관람했다.
흠.. 봉건사회대 산업사회, 종교대 과학과 이성의 싸움 이라는 멋지구레한 생각은 아주 잠깐만 들었고, 주로는 이 다혈질 탐정쌍과 런던의 풍경을 감상했다. 홈즈가 원래 이랬고, 왓슨이 원래 이랬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근육질 홈즈, 생각은 너무 짧게 하고 너무 와일드한듯 한 이 홈즈와 왓슨 커플도 나름 아름답기에 용서하기로 한다. 그러나.. 왠지 이야기는 좀 맥아리가 없더라.. 기대가 넘 큰 탓이었을까?
연휴 내내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를 읽었다. 우리집에 반쯤 읽은채 버려져 있는 드리나 강의 다리의 몇 대목을 다시 살펴 보았고, 왜 드리나강의 다리 옆에 서 있던 이보 안드리치의 동상을 무슬림들이 자기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해서 목을 잘라버렸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는데, 아마 반만 읽었기 때문인듯 하다.
중학교 선생을 하는 친구들이 말하기를 아이들이 광주민주항쟁을 '조상님들이 민주화를 위해 하신 투쟁'이라고 말한다는데 이 한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 작가가 쓴 글에서 나도 그런 이상한 시간 인식의 혼란을 느낀다. 사실 이런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우리나라가 어디론가 작가가 되고 싶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고, 음악가가 되고 싶은 젊은 군인들을 파견한다는 걸 뉴스를 통해 들으면서도 말이다.
프로파간다가 그림 그리기를 부업으로 하는 여자 화가인가요? 드리나 강에서 메기와 씨름하며 내가 소리친다. 그 메기는 수염이 났고 안경을 쓰고 있다. 할아버지가 말한다. 프로파간다는 동화를 들려주는 여자의 이름이란다.(249~250쪽)
사람은 이야기에서 거짓말을, 기억에서 허위를 깎아낼 수 있는 정직한 대패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나는 그 대팻밥을 수집하는 사람이다.(359쪽)
그래, 그가 하는 이야기는 대팻밥 정도여야 한다. 진실을 그대로 말했다가는 우린 한입도 삼키지 못할테니까. 가끔씩 동화 쓰는 취미가 있는, 그의 사랑 드리나 강에서 숭어 낚시의 달인으로 지내며 130살까지 살아야 했던 나보다 한살 많은 말띠 작가가, 독일어로 드리나 강가에서의 아름다운 유년과 이제는 없어진 조국과 이웃들의 죽음과 망가진 마을에 대한 진실의 대팻밥을 쓴 랩을 여기 내가 읽는 것은 나에게는 행운이며,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불행이다.
제길 홈즈시대 이후의 우리의 삶도 너무나 잔혹해서 감성과 역사인식과 유머와 동화 중간쯤이 되는 프로파간다가 필요한듯 하다. 여하간 요즘 만난 것들은 대체로 너무 촌스럽다.


(믿겨지지 않지만 저 그림들은 이 책을 보고 그린 것이다 --
이 책에 있는 그림은 저 그림들보다는 꽤나 사랑스러우니 안심해도 좋다 ㅠ.ㅠ)
연애는 서른두살이 되는 나를 스물두살이 되는 걸로 착각하고 마련한게 틀림없는 방울달린 모자와 장갑, 함께 그린 그림(위 사진에서 확인해보시라)들처럼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나름 즐겁게 진행되고 있다.
나는 오이지군의 장점으로 예쁜 쇄골뼈와 톰과 제리의 제리를 닮은 입술, 그리고 도톰한 허벅지까지 꼽아주었는데, 오이지는 '눈은 참 이뻐' 까지만 말하고는 더 찾지 못했다. 새해부터 두가지나 손해보는 연애라니 쩝쩝.
31살엔 레이_시즌4님께 커피를 받는 알라디너가 되었고, 비록 댓글로지만 인문MD님이 올해의 독자상을 주시기로 하셨고, 비록 다 읽지는 못했지만 백육권의 책을 만났으니 꽤나 괜찮은 한해였던 셈이다.
서른두살엔 그림도 좀 잘그렸으면 싶고 ㅠ.ㅠ
자전거랑 운전도 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고 --;;
요리솜씨랑 춤솜씨, 연주솜씨가 쬐끔은 나아졌으면 좋겠고,
뱃살이 빠졌으면 좋겠고,
여행다니고 책 사기에 충분할 공돈이 쏟아났으면 좋겠고
저 모든게 다 안되더라도,
수다를 떨 마음편한 친구들이 더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
요즘 술마시자는 전화가 1/10로 줄어들어서 여간 울적한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