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참 아이러니 하다.
지난주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는 농민 백남기씨의 삶을 봐도 그렇다.
백남기씨는 중앙대 68학번,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유신독재반대 운동을 하다 수배생활을 했고, 박정희 잔당인 전두환때는 군부독재 반대를 외치다 구속 고문 당했다. 세월이 흘러 딸은 민주화된 세상에 살라고 민주화라 이름 지어준 이 아비는 그 딸이 서른된 해,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된 세상에서 그 수족인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생사의 기로에 서있다.
딸 민주화씨가 묻는다.
'우리 아버지가 무슨 잘못을 해서 저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있어야 하는가?'
한결같이 어렵고 필요한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던 이 분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거듭 제나라 경찰에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그저 이 땅에 태어났고 강직한 성품을 가진 불운을 탓해야 하는가.
민주화는 피기도 어렵고 쉬이 시드는 꽃이라 돌보지 않으면 어느덧 이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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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미디어오늘 기사
유신독재·계엄군에 쫓겨 돌아갈 곳 없었던 농민 백남기 |
물대포 맞고 의식 불명, 연명치료 중단한 상태… “30년 동안 농사짓고 농촌살리기 운동한 강직한 사람”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171
<최강은씨가 작성한 백남기 농민 약력>
1947년 8월 24일(음력) - 전남 보성군 웅치면 출생
1963년 2월 - 광주서중학교 졸업
1968년 2월 - 광주고등학교 졸업 (17회)
1968년 3월 - 중앙대학교 행정학과 입학 (68학번)
․ 법대 학생회장
․ 군복무
1971년 10월 - 위수령 시 시위혐의로 1차 제적
1973년 10월 15일 -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 주도
1974년~1975년 - 수배 중 명동성당에 피신
1975년 - 전국대학생연맹 가입 및 2차 제적
갈멜 수녀원 잡부 1년
일흥농원 포도원 1년
갈멜 수도원 수도사 3년
1980년 3월 - 복교
1980년 - 어용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재건 총학생회 1기 부회장 역임
1980년 5월 8일 - 박정희 유신잔당(전두환, 노태우, 신현확) 장례식 주도
1980년 5월 15일 - 서울의 봄 때 의혈중앙 4000인 한강도하 주도 (흑석동 캠퍼스에서 서울역까지 도보 행진)
1980년 5월 17일 - 군부 계엄 확대 조치로 기숙사에서 계엄군에 체포
1980년 7월 30일 - 중앙대학교 퇴학 처분(3차 제적)
1980년 8월 20일 - 수도군단보통군법회의에서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 선고
1981년 3월 3일 - 3‧1절 특사로 가석방
1981년 - 고향 보성으로 귀향(수도작, 낙농업, 밭농사 등)
1981년 11월 - 박경숙(율리아나)님과 결혼
1983년 - 정치활동 규제자에서 해금 및 복권
1986년 - 가톨릭농민회 가입
1987년 - 가톨릭농민회 보성, 고흥협의회 회장
1989년~1991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장
1992년~1993년 -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
1992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준) 주도
1994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
2014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 동지회 회장
2015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자문위원
2015년 - 부인 박경숙(율리아나)님과 슬하에 1남 2녀
2015년 - 11월 민중총궐기 대회 행사 중 폭력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후 의식불명,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사투 중
- 파리 테러현장의 연주. Pray for Paris pray for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