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오래전에 결별했던 연인과 다시 만난 이유는 무엇인가?
12월 31일 한해를 마감하는 날,
홍대 한양문고에 들어서서
만화책 세권을 뽑아든다.
전혀 어렵지 않게,
보아오던 만화들의 신간을 쓱쓱쓱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철들고 나선 만화를 읽어본 적이 없는 애인을 옆에 세워두고
(벌써 내가 회사에서 늦게 나온터에 40분이나 기다리고 해놓고도)
잽싸게 소설코너로 이동한다.
만화전문 서점이라 별로 소설을 다양하게 구비하지는 않지만,
요즘 많이 읽히는 대중소설류를 구비해 둔다.
그런데 눈이 마주쳤다.
바나나 때문이라기 보다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 탓일까?
있는 현금을 톡 털어서 사들고 찻집으로 얼른 자리를 옮긴다.
비닐을 벗기는 손이 조급하다.

그냥 일본 원서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같이 옮겨와 본다.
자태가 곱다.
옆사람을 우두커니 두고,
(내가 추천해준 책이 재미없어 겨우겨우 읽고 있더라..
책 추천 함부러 하지 말지어다)
여러군데 포스트잇이 붙으며 단숨에 읽어낸다.
거참..
이 사람은 나이를 어디로 먹는 걸까?
아직도 태어나 처음 눈을 밟았을 때,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을 때,
처럼 세상만사를 농밀하게 맛보며 살고 있는 걸까?
질투가 인다.
밑줄을 그어보자.
추억은 언제나 특유의 따뜻한 빛에 싸여 있다. 내가 저세상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이 육체도 저금통장도 아닌 그런 따스한 덩어리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세계가 그런 것들을 몇백 가지나 껴안은 채 사라진다면 좋겠다. 이런저런 곳에 살면서 싾인 갖가지 추억의 빛을 나만이 하나로 이을 수 있다. 오직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목걸이다.
(34~35쪽)
그리고 내 관심사는 누구와 같이 사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나의 다른 면, 바로 새로운 자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줄곧 외로워서, 나는 누구와든 함께이고 싶었다. 누군가가 내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42쪽)
그 무렵은 지옥이었다. 가게에서 돌아올 즈음에는 가슴에 뜨겁고 무거운 눈물 덩어리가 고였다. 포트에서 똑똑 떨어지는 커피처럼, 가슴으로 차오르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슬픔이라는 살아 있는 감정의 농밀한 정자를 눈물로 밖에 내보내지 않으면 온몸이 잠식되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66쪽)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죽은 후에도 있을 확고한 감각이었다. 나 자신은 그 누구도 아니며, 언젠가는 사라진다. 지금은 그 전의 시간을 살고 있을 뿐이란 기분.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처럼, 그대로 땅위로 흘러 사라져 버릴 듯한 기분이었다.
(93쪽)
때가 오면 모두, 고인 물을 빼내고, 튜브를 연결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몸의 생명을 잃어 간다. 달리아에게는 그런 시간이 조금 빨리 왔을 뿐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도, 갑작스레 닥쳐와 놀랐어도, 그때가 오면 몸이 수긍한다.
(102쪽)
오색으로 알록달록해야 할 내 인생이, 저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 단조로운 해류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배의 잔해처럼 느껴진다. 엄마가 남기고 간 꿈에 매달려 매일 똑같은 일만 하는 인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눈이 반짝 뜨일 때의 그 느낌은 늘 새롭다. 몇 번 되풀이되고 매일 느껴도 질리지 않는다. 절대 기분이 좋아질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밤이 툭 내려올 때면 그 어둠의 힘에 나날의 시름이 싹 지워지고 만다. 하루가 밤이란 장막을 열어, 새로운 무대가 시작되는 것처럼.
(109쪽)
한 번이라도 만나면, 그때마다 한 가지 추억이랄까, 공간이 생기잖아. 그것은 언제든 살아 있는 공간이고,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 세상에 절대 없었을 것이기도 하고, 인간이 무에서 만들어 낸 것이니까. 댐이나 로켓 같은 것도 똑같지. 사람과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 데서 창조해 낸 세계잖아. 하늘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이 사고를 빌미로 우리에게서 그를 빼앗아갈 수는 있어도, 영원히 그 즐거웠던 시간을 빼앗아 갈 수는 없으니까 우리가 이긴 것이라고 생각해.
(112쪽)
자 삶과 인연에 대해 내 옆사람과의 추억 만들기가 무척 소중하게 느껴질 듯한 책 네권을 이틀사이에 몰아쳐서 읽느라, 애인 냥반은 그저 내 독서가 끝나기를 오두커니 기다려야 했다.
독서가 실생활에 적용되지 못하는 이!!!! 현실.
어쨌거나 내 삶과 감성이 풍부해져야 내 옆 사람도 행복해질 것이라 억지로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그나저나 최근에 독립을 실행중인 아프락사스님과 웬디양님을 위한 특별 밑줄긋기도 있다.
계약을 하고 사전 절차가 다 끝나 언제든 이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년 동안 내 성이 될 방에 가 보았다. 엄마의 유품인 노리나와 낡은 카세트 테이프를 안고서.
햇볕이 너무 잘 들어서 여름에는 더울 것 같았다. 아직 전기 사용 허가가 안 났는데, 나도 모르게 에어컨을 틀고 말았다. 텁텁한 냉기가 방을 휘돌았다. 바닥에 쌓인 먼지가 밝게 빛났다. 나는 음악을 틀었다. 소리는 좋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방과 내 몸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처음 울리는 소리가 텅 빈 공간을 채워 가는 이 순간. 유난히 큰 울림, 그 어떤 음향 좋은 오디오라도 내지 못할 독특한 소리가 가슴을 적신다.
이사를 한 후, 아무리 돈이 궁하고 아무리 외로워도 이 순간이 오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공기가 바뀌고, 음악은 내 눈 속에서 한 장면으로 새로운 생명을 살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세포가 새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72~73쪽)
지금의 내 방도 요즘 세상엔 참 보기드문 홑겹창에 방충망도 없고, 여름이면 너무 큰 창에 덥고 겨울이면 너무 큰 창에 역시나 추위에 떨지만, 아 이 혼자인 순간의 정취! 결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감히 감히 주장하며, 두분의 출가를 열렬히 환영한다.
이 시작과 끝이 아무 상관없는 글이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