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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이원규 지음 / 좋은생각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시인은 참 많은 길을 걸었습니다. 강원도 황지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낙동강 1,300리를 걷고, 지리산 아랫자락 850리를 도보순례하고, 백두대간 종주 1,500리 길을 걷고, 새만금 삼보일배 800리를 걸었습니다. 욕망의 무한질주가 아닌 사람의 걷는 속도로 천천히 걷는 길 위에서 걷는 목적마저도 잊어버리고 무아지경에 빠지는 순간, 시인은 무릎을 치며 깨닫습니다. 기다림이란 대문 앞에서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누군가에게로 가는 것을. 그 깨달음이 시인을 지리산 자락으로 데려간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신의 몸을 눕힐만큼의 공간,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생활, 지리산을 닮은 이웃사람들, 저절로 삶의 진리를 깨우쳐주는 자연. 시인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하더군요.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의 봄, 어름나무의 그늘속에서 보내는 여름, 낙엽을 쓸면서 바라보는 낙엽 하나하나의 손금에 얽힌 사연속의 가을, 지붕을 소복히 덮으며 고립무원의 절대고독을 선사하는 겨울, 그곳에 뿌리내린 그에게는 자연이 곧 삶이요 진리입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가 있는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소시민의 삶이 그렇게 쉽게 그 자리를 옮길수는 없을겁니다. 가슴속에 무아지경의 도원경 하나 꿈꾸지 않는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다만 뿌리를 들고 이 자리를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붙잡지요. 어쩌면 그 두려움이 삶을 이루어가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휴가철마다 꿈꾸어왔던 도원경으로 짧은 일탈을 감행하지만 결국은 작은 미련이나 애증조차도 버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 삶의 모습을 가꾸어가지요. 그것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요. 현재 자신의 자리에서 가치를 가꾸어가는 삶, 서로의 뿌리가 엉켜 잡아주고 서로의 그늘을 만들어가는 숲과 같은 삶, 전 그 삶 속에서 살기를 오히려 희망합니다.
그래도 올해 가을은 한번 걸어볼까 하고 꿈꾸어 봅니다.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를 따라 걸어간다면 하루 백리길, 해남의 땅끝 마을까지 단풍의 향연속에서 길을 걸을수 있을겁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그 길에서 만나는 들꽃의 키만큼만 사랑하고 생각하며 길을 걸어볼까 합니다. 모자라면 미련이 남고 넘치면 애증이 남는 것이라면 딱 그 키만큼만 사랑하고 생각할까 합니다. 어차피 돌아오는 길에는 여행길을 동행한 나의 그림자속에 미련과 애증의 그림자 또한 품고 돌아오겠지만 나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