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자칭 문학 청년을 위한 추천 시집
저도 이안 님 말씀처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앙드레 지드의 대표작 <좁은문>을 추천해 드리고 싶지만, 그 분이 굉장히 소심한 면이 있는데다가 상처받기 쉬운 마음의 소유자라고 하니, 자신의 실수를 알고 나면 오랫동안 그 상처가 아물 것 같지 않기에 시집을 권해 보려 합니다. (일단 그 분도 시집을 원했기에...) 그런데 요즘 시집과 담을 쌓고 있었던 지라 좀 막막하네요. 그래서 제 서재의 시집 꽂아 놓은 곳을 쭉 훑어보니 눈에 띄는 시집이 한 권 있더이다.(혹시 읽었을까나?)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입니다. 이미 파블로 네루다는 영화 “일 포스티노”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는 시인이지요. 그는 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인, 외교관으로 활약했고, 1971년 노벨 문학상을 탔다고 하네요. 이 책은 그의 젊었을 때의 시집입니다. 문학청년에겐 제격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책에 수록된 너무나 유명한 시 <詩>를 잠깐 소개하면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
이 시집을 읽고 그 분이 다니는 회사 그만 두고 시인의 길로 들어설까 우려되긴 하오나
그래도 일단은 이 시집으로 뜨거운 문학의 열정을 잠시나마 다스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깻잎 머리 소녀를 위한 추천 시집
깻잎머리 소녀에게 어울릴 시집은 뭘까 하고 다시 쭈~욱 시집을 훑어보니 눈에 띄는 시집이 있습니다. 그녀의 심란한 마음을 이 시집으로 잠재우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신현림의 <해질녘에 아픈 사람>입니다.
신현림을 전 언니라고 부릅니다. 물론 그 분은 저를 모르겠지만 전 어렸을 때 그 분을 직접 뵈었거든요. 시인의 고향은 의왕시입니다. 의왕은 군포 안양 과천과 더불어 아주 가까이 있어서 한 동네라고 부르죠. 예전에 그 언니의 아버님이 국회의원에 출마한 적이 있었어요. 아버님의 선거활동에 그 언니도 마지못해(?) 나와서 선거활동을 한 것을 보았습니다. 참 어렸을 때이지만... 그 언니의 표정은 정말 마지못해, 억지로 끌려 나온 것처럼 보였어요. 그 분이 이젠 아주 유명한 시인이 되었네요.(그래서 그럴까? 그 분의 시집은 거의 다 갖고 있네요)
이 시집은 요즘도 제가 가끔씩 들쳐 보네요. 그 중에 한 편...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
슬퍼하지 마세요
세상은 슬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니까
자살한 장국영을 기억하고 싶어
영화 「아비정전」을 돌려보니
다들 마네킹처럼 쓸쓸해 보이네요
다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해요
외롭지 않기 위해 외로워하고
아프지 않기 위해 아픈 사람들
따뜻한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전쟁으로 사스로 죽어가더니
우수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자살자들
살기엔 너무 지치고, 휴식이 그리웠을 거예요
되는 일 없으면 고래들도 자살하는데
이해해 볼게요 가끔 저도 죽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죽지는 못해요 엄마는 아파서도 죽어서도 안 되죠
이 세상에 무얼 찾으러 왔는지도 아직 모르잖아요
마음을 주려 하면 사랑이 떠나듯
삶을 다시 시작하려 하면 절벽이 달려옵니다
시를 쓰는데 두 살배기 딸이
함께 있자며 제 다릴 붙잡고 사이렌처럼 울어댑니다
당신도 매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헤매는군요
저도, 홀로 어둠 속에 있습니다
진은영의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 은 깻잎 머리 소녀에게 추천해요.
청춘에 대한 잔향이라고 해야할까요.
막 일어나는 청춘이라고 해야할까요.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나이가 스물 여덟이고,
이십대의 나날에서 아름다운 나이도 스물 여덟.
서른이 되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나이가 주는 무게감 보다
서른에 대한 무거움과 편견을 안겨주는 현실때문에
스물 여덟은 아무것도 '안해 놓은 것만 같은' 비애를 종종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진은영의 시로 그녀를 위로할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허수경의 "혼자 가는 먼집" 은 문학청년에게 추천해요.
자칭 문학청년이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은 유행가 가사처럼 연약해요.
연약해뵈지만, 슬픈 유행가 가사같지만
가끔씩 떠올라 마음을 저미고 가는 허수경의 두번째 시집 권합니다.
너무 여성취향인가... 아니, 낭만적 서정을 가진 인간의 취향이 낫겠어요.
자칭 문학청년이라고, 군단장 표창까지 받은 정도라면,
거창한 시집도 좋아하지 않을까,
어려워만 보이던 시집에서 뭔가 좋은 구절을 발견하면
온갖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게 될지도 모를, 그런 시집도 한 권...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세사르 바예호.
산문시처럼 한 편의 대서사시 같은 장편의 느낌이 나는 바예호의 시집.
문학청년이 이 시집을 읽고
읽지 않은 범인들속에서 조금 한탄해하다
마음에 드는, 제일 짧은 단 한줄 (그러나 깊이가 넘치는) 을
소주 한잔 기울일 때 마다 읊게 될지도... 그때, 잉과장님은
기꺼이 마음과 귀의 문을 열어 놓으리라...
두분 주인장 보기로 주소와 시집 올려주세요. 축하합니다. 축하해주시고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