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來而 > * [김훈을 읽는 열가지 코드] (1) 숭고와 비장: "손만 대면 - 황금이 되는 자의 괴로움"

* 김훈은 지난 몇 년간 한국 문학계에 그야말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는(물론 판매부수를 포함하여) '대중적 작가'이다. 그의 소설을 한 권도 읽지 않아서 왈가왈부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작품에는 대중적 인기를 지닌 뭔가를 포함하고 있는 것같다. 언젠가 그가 신작을 출간할 즈음에 인터뷰에서 "문학이 인간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문학 본연의 목적을 이야기하는 소설가들은 모두 쓰레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만 놓고 보더라도 그는 문학가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뭔가 특이한 면모(아래의 글에서도 나타나지만 '로쟈'님은 그의 글이 소설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에세이적이다고 평하고 있다)를 지니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아래는 담론비평에 앞으로 게재 될 '김훈을 읽는 열가지 코드'를 옮겨 놓은 것이다. 첫 번째 코드가 '숭고와 비장'이라니 뭔가 '큰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같다.

 

* 담론비평(2007. 5. 10)  / "손만 대면 황금이 되는 자의 괴로움"

 

[기획연재: 김훈을 읽는 열가지 코드] (1) 숭고와 비장

 

강성민 학술평론 ksm@dambee.net

 

 

   
 
 
김훈을 읽을 때마다 받는 느낌이 있다. 다들 그랬겠지만 처음은 강렬했다. 하지만 자꾸 읽다보니 형식이 보였고 사유의 문법이 보였다. 그러자 점점 질리게 되었다. 그런데도 스타일에 기대는 자의 한계로 가볍게 치부할 건 아니다 싶었다. 그건 김훈의 개성이기보다는 우리의 감각적 깊이가 닿지 못한 보편적인 것에 대한, 김훈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걸기로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숭고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미학용어 숭고(崇高, sublime)와는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고, 대충 말하자면 김훈이 거대한 것에 압도당할 때가 많다는 것, 접근의 한계, 견딤의 한계, 관계맺음의 한계 등 한계가 많다는 것, 사물을 공들여 분석해놓고 그 결과물로부터 시적인 초월을 해버린다는 것, 사람들이 허무주의라고 말하는 그런 태도를 보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이렇게 말하니 갑자기 양념간장이 떠오른다. 우리가 깔끔하게 시 한편을 읽거나 대금 연주 같은 걸 듣는다면 조선간장의 깊고 그윽한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헌데 김훈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너무 처연하게 바라봐서 진하디 진하지만 끝 맛에서 조미료를 쳤다는 의혹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 조미료는 모두 천연재료로 즉석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맛도 좋고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그런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김훈의 숭고는 몰아의 경지는 아니다. 그는 이미 예전에 『풍경과 상처』(문학동네, 1994)에서 “나는 자연을 해독하거나 자연을 자아의 일부로 편입시키지 못한다. 나는 거기에 가담하지 못하고, 늘 그 바깥을 서성거린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훈은 솔직한 편이다. 앞에서 한 말은 “아득한 염전벌판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다시 아득한 갯벌이 펼쳐지고, 바다는 그 갯벌이 끝나는 곳까지 물러가 있다”라고 말할 때 사실임이 증명된다.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여 연못처럼 가두지 못하고, 저 멀리 수평선까지 밀어낸다. 그 밀어낸 아득한 거리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말이다. 풍경은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그를 매혹시킨다. 그래서 전군가도(全群街道)의 벚꽃을 보며 그는 “여자 생각”에 쩔쩔 맸던 것이리라. 애초에 여자는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가짜로 가진다고 한들 뭐가 변하겠는가 하는 자의식일 뿐이다.

 

 

 


김훈이 몰입을 못하거나 기피한다면 차라리 비장함을 떠올려야 옳을까. 비장함과 숭고는 둘 다 숨이 턱턱 막히는 감정이란 점에선 똑같지만, 메카니즘이 다르다. 세상과 자아의 불일치나 대립이 자아의 꺾어짐으로 귀결될 때 비장미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김훈은 꺾어지는가. 비장하게 전사해서 연민을 일으키는가. 그렇진 않다. 오히려 날렵하고 현란하게 말(言)에 올라타고 자아와 세계 사이의 그 넓은 공간을 달린다. 그 팽팽한 긴장이 풀어질 때 아마 문필가 김훈도 죽는 것이리라.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니다.


김훈 고유의 숭고를 나는 김훈이 누군가를 위해 써준 추천글에서 확인한 적이 있다. 바로 곽의진이라는 소설가인데, 출판저널 기자시절 이 분이 펴낸 『향 따라 여백 찾아가는 길』의 인터뷰를 하러 진도에 내려간 일이 있다. 말이 인터뷰이지 사실은 진도에 한 이틀 가보고 싶어 일부러 그 책을 골랐다는 게 맞다. 진도가 고향인 작가가 서울로 상경해 소설가로 성공해서 애도 낳고 살다가, 소설과 가정을 통째로 버리고 홀로 귀향해서 살다가 고향의 언어와 눈으로 고향을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한땀 두땀 지어낸 책이다. 그는 인터뷰를 대충 마치고 먼 데 까지 온 손님들을 위해 진도 곳곳을 구경시켜 주고, 자기가 친하게 지내는 카페에 가서 커피도 사주고, 옆동네 잔칫집에 데려가 홍어회와 함께 술도 질펀하게 먹여주었다. 그러더니 차를 몰고 산속 깊숙이 지어놓은 자신의 거처로 우리를 데려간다. 산비탈이 간신히 평지를 이루고 있는 곳에 아슬아슬하게 지어놓은 나무집이었다. 마당 바로 앞이 낭떠러지였다. 그래도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했으며, 달빛에 교교히 물결지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싶었다. 곽 선생의 말이 김훈은 자기와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그가 진도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 하룻밤은 머문다고 얘기를 전해준다. 김훈과 사진작가 허용무는 진도 돌김을 간장에 찍어 먹으며 홍주를 많이 마셨다고 했다.

 

 


 

김훈은 추천글에서 “이 글의 저자 곽의진이 고향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고향으로 유배당한 자의 삶과 같다. 곽의진은 고향을 유배지로 만들고 그 유배지에서 다시 고향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후 그 집 마당을 온통 붉게 칠하는 일몰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나는 이 곳의 풍경을 견딜 수 없다. 그런 장엄한 소멸을 견디어낼 힘이 나에겐 없었다”라고 말이다. 매일매일 세상이 허물어지는 것 같은 전면적인 일몰 앞에서 김훈은 무너졌다. 그러고 보니 그는 너무 자주 장렬하게 전사하는 듯하다. 그러니 비장하기는 비장하다.


최근 펴낸 『남한산성』(학고재, 2007)을 보면 김훈의 숭고성이 전쟁이라는 공간, 그것도 성안에 갇힌 약소국의 예정된 죽음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한 구절을 보자.


“신하는 임금의 몸을 막아서서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농장기를 들고 일어서서 아비는 아들을 죽인 적을 베고, 아들은 누이를 간음한 적을 찢어서 마침내 사직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하지만 적들은 이미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그 말의 크기와 높이는 보이지 않았다.”


   
 
 
적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적을 표상하는 무수한 말도 보이지 않는다. 칸트가 보편적 이성을 정초하기 위해 일부러 물자체를 고안했듯이, 김훈 또한 실존의 명료함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남한산성은 어떤 곳인가. 그 산성은 병자호란 때 대피한 조선왕실이 10만 적군에 둘러싸여 있던 돌로 된 수갑이었다. 조선은 이미 체포된 상태였다. 밖으로 나가 투항할 수도, 구원을 기다리고 앉아있을 수도 없는 상황, 그러나 칸에게 무릎 꿇는 일이 오로지 살 길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들의 내면을 그려놓은 소설이다. 투항은 곧 사는 길이었지만, 투항의 논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그 마음고통을 다시 겪어내는 것에 김훈의 작가정신이 깃들어 있다.


“청병에 대항하여 싸우자”, “아니다 항복함이 최선이다”라고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이 치열하게 대립하다가 결국 “사흘 뒤에 성을 나가”는 것으로 모든 것이 결판이 난 뒤 최명길은 말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것이옵니다.” 청나라 측이 저항을 고집한 신하 2명의 목을 베어 올리라고 하자 2명의 젊은 당하관이 자청하고 나섰고, 그 이유를 캐묻다가 왕은 쓰러져 운다. 그 때 최명길은 다시 말한다. “군신이 함께 삼전도로 가더라도 전하의 길이 있고, 저 두 사람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전하, 먼 후일에 그 두 길이 합쳐질 것이옵니다.”


김훈은 최명길이 사직을 보호하기 위해 총대를 멨다는 것을 분명히 묘사하고자 한다. 최명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홀로 적진을 뚫고 최초로 교섭하러 갈 수 있었다. 항복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했지만 아무도 그 주장을 하지 않았기에 최명길이 입을 열었다고 보는 것이다.


김훈은 한국일보 기자시절 군사정권의 용비어천가를 썼다. “니가 글을 잘 쓰니 니가 써라”고 위에서 요구했고, “그래 내가 쓴다”라고 김훈은 썼다. 그가 쓴 정권찬양 기사는 데스크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활자화되었다. 그들의 책임까지 몽땅 김훈이 떠안았다. 하지만 총대를 메었다고 그게 무슨 영웅의 행위는 아닌 것. 언론인으로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고, 김훈은 그것이 치욕스럽다고 수시로 말해왔다. 하지만 그런 행위에 대해 사죄하기보다는 그냥 치욕을 끌어안고 살겠다고 또한 말해왔다.


그렇다면 남한산성의 최명길은 누구인가. 백관이 입을 모아 장렬히 싸우자고 머리를 땅에 박으며 합창을 할 때 오직 최명길 혼자 항복을 주장했다. 그렇다고 최명길이 강경일변도였던 예판 김상헌을 덜떨어진 인간으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최명길은 예판과 끈질긴 논리대결을 벌인 뒤에도 “일 리가 있는 말씀이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다만 인간으로서, 왕을 모신 신하로서 그 상황에서 취할 최선의 행동원칙을 정하고 밀어붙였을 따름이다. 김훈은 자기 또한 그런 심정으로 곡필을 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소설 『남한산성』은 이러한 김훈의 자전적 에피소드 위에 특유의 비단결처럼 유장한 문체로 내려앉으면서 더욱 굳게 입을 다무는 듯하다.


이렇게 써놓고 나니 ‘남성적 숭고’라는 느낌도 살짝 든다. 루카치가 소설은 성숙한 남성의 문학양식이라 말했던 것은 소설가가 비극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김훈은 천상병 시인의 정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추방된 자리에서, 자신을 쫓아내버린 세계와 대칭되는 존재의 삶을 영롱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천상병의 정치의식이다.” 이 대목을 김훈은 혹시 자신의 글쓰기가 생에 대한 과장된 제스처인지, 아니면 필연적인 정치의식의 소산인지를 떠올렸을까, 떠올리지 않았을까.


가령 『칼의 노래』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왕의 칼과 왜구의 칼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한 외로운 장군의 얘기다. 이순신은 교활한 선조의 칼을 받을 수는 없었다. 이순신은 “적의 적으로서 살거나 죽어야지 왕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함을 참을 수 없었”으며 “왕의 칼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나의 충이 세워지길 바란다”고 했다. 김훈은 ‘쾌도난담’ 사태로 자질 여론이 일자 시사저널에 사표를 던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내 30년 기자생활을 오욕으로 마무리하자.”자폐적인 태도로 비치기도 하지만, 그에겐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그는 이순신을 복원하면서 “내면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나와 이순신을 동일시했다.” 이미 10년 전부터 김훈은 “벗이여, 나는 3인칭으로 글을 쓸 수가 없네.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것이네”라고 해왔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발언이다. 그렇다면 왕의 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김훈을 몰아세웠던 그 여론이 아니었을까. 그는 노회하고도 교활한 여론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칼을 꽂았고, 아무도 해내지 못한 그 일에 대한 나름의 만족감을 흘려왔다.


 

 

 

하지만 나는 김훈이 역사를 호출해서 자신을 변호한 정치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 고통스러운 결단을 역사에 기대서 표현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니 『칼의 노래』는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우의소설(寓意小說)이다. 이것은 『현의 노래』의 우륵에게로 거의 유사하게 이어졌는데 연대기적으로 정리하자면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사극들은 김훈 내면의 알레고리인 셈이다.


이런 그의 세계관이 늙은 여성으로 확장된 것이 「언니의 폐경」이고 사랑이라는 인간의 감정으로 형상화된 것이 「火葬」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을 통해 김훈은 다시 자기 이야기로 돌아온 셈이 됐지만, 그 이전에 이미 그는 타인들의 삶을 글로서 많이 어루만진 바 있다. 그래서 김훈을 미워할 수가 없다. 저 멀리 『내가 읽은 책과 세상』에 나오는 마성역장 박창하 씨, 토박이농부 정진호 씨, 금속장인 김인태 씨, 간이음식점 주인 심동순 씨 등과 같은 보통사람들, 『원형의 섬 진도』(이레, 2001)에 나오는 사라져가는 농꾼, 춤꾼, 소리꾼, 무인(巫人)들의 삶은 김훈에 의해 하나의 작품으로 빚어진다.


 

 

 

이처럼 그는 자기에게만큼 타인에게도 애정을 베푸는데 거기서 발생하는 장점이자 단점 중의 하나는 손만 대면 작품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데에 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독특하고 깊이 있는 북 리뷰로 필명을 떨치고 있는 ‘로쟈’라는 분은 김훈의 문체가 기본적으로 에세이스트의 것이고 소설가의 문체는 아니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그 이유는 아름다워도 적당히 아름다워야지 너무 아름다우면 소설이 안 된다는 데 있었다. 평범한 것도 김훈이 묘사하면 평범함의 극단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공감이 가는 지적이라 해두고 싶다.

이 글은 월간 '인물과사상' 6월호에 실릴 예정인 '탈아카데미 저자열전-김훈편' 총 6개 챕터 중 첫번째 챕터를 떼어 내어 확장한 것입니다. 담비에서는 앞으로 김훈을 10가지 코드로 읽어내는 글을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 편집자주

* '숭고'(sublime)이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단번에 떠오른 책은 몇 권이 된다. 그런데 '비장'이라는 개념을 적절히 풀고 있는 책들은 그렇지가 못해서 조금 아쉽다. 덧붙여 '로쟈' 님은 알라딘의 스타를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스타로서 공인받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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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7-05-1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종종 김훈님도 초대하신다더니 정말이네요.^^ 혹시 화장이라는 단편 읽어보셨나요? 상처를 너무도 깊이 처연하게 바라본다는 말을 보니 문득 화장과 언니의 폐경이 생각나서요. 작년에 너무 앓아서 올해는 되도록 멀리하고 싶은 소설였는데. 오늘밤은 하는수없이 그네들과 잠들어야 겠어요 .
좋은 밤되시길...

잉크냄새 2007-05-14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 소설들이 <강산무진>이라는 소설에 들어있다고 했나요. 다음에 꼭 읽어볼께요.^^ 김훈님은 또 초대하도록 하지요.

2007-05-14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7-05-14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음하하...이거 쑥스럽구만요. 무식함이 탄로나서...그래도 위에 댓글중 그 부분 살짝 고쳐놓을께요.^^
 
 전출처 : 로시난테 > 김훈은 '난 아무 편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 나무*2003)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했던 김훈이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한 비평가는 '그의 문체가 소설에 적합하겠느냐'라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기자로서의 글쓰기와 소설가로서의 글쓰기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글쎄. 솔직히 난 김훈의 '기사'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처음 접한 김훈의 글은 <강산무진>이었다. 김훈의 몇몇 소설을 뒤적이고 또 이 책을 본 후에, 난 위의 비평가와는 전혀 반대의 의문을 가졌다. '이런 식의 사고와 문체로 과연 김훈이 기자적 글쓰기를 할 수 있었겠느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뒤늦게 읽은 김훈의 글에는 뭐랄까, 기자로서 요구되는 '벼린 이성'보다는 '축축한 감정'이 묻어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는 편집자와의 상의 끝에 원래 제목이었던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를 수정한 제목이라고 한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곱씹을수록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제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걸 두고 제목에 '낚였다'라는 표현을 쓰는가 보다, 했다.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출판사>에서 스치듯 김훈의 과거사를 전해 듣고, 난 그가 궁금해졌다. 부끄러운 과거 덮기에 급급한 한국 지식인 지형에서 자신의 치부를 손수 밝히고자 했던 사람이 하는 얘기가 듣고 싶어졌다. 게다가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도발적 표제를 건, 김훈이 말하는 세설(世說)이라니. 알라딘으로부터 택배가 도착하기 전부터 난 조바심이 났다.  

그에게 붙은, 그를 가장 단선적으로 보여주는 수식어는 바로 ‘문장가’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간결한 문체와 그 사이에 드문드문 배치하는 만연체는 글의 전체 맥락 속에 적절히 혼용돼 읽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책머리에>라는 책의 첫 장부터 그의 칼날 같은 문장이 나를 압도한다. “세상은 읽혀지거나 설명되는 곳이 아니고, 다만 살아낼 수밖에 없을 터이다. 나는 미리 설정한 사유의 틀 속으로 세상을 편입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내 글의 계통 없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여러 사람들이 흘린 액즙과 고름이 서로 섞이고 스미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것은 어찌 그리 어려운 일이었던지. 몸이 가장 부대끼는 날에, 가장 곤고한 글을 나는 썼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세설 중 가장 압권으로 문화일보가 소개한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의 일부를 보자. “내가 아들인 너의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너는 결국 너의 그 별것도 아닌 평발 증세를 너의 어머니께 강조하면서 재심받을 방법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나와 너의 어머니는 다만 무력하게 한숨을 쉴 뿐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너를 낳아서 청년이 되도록 길렀으며, 남자로 태어나 함께 병역의 의무를 진 내가 너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이 나라의 어느 아버지가 징집을 앞둔 아들에게 이 사태를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병역은 남자로 태어난 국민의 가장 신성하고 가장 도덕적인 의무라고 말한들 이미 더럽혀지고 허물어진 신성 앞에서 그 말이 무슨 씨가 먹힐 것인가. (중략) 너의 어머니에게 다시는 너의 평발을 내밀지 말아라. 아프고 괴롭겠지만, 나라의 더 큰 운명을 긍정하는 사내가 되거라. 네가 긍정해야 할 나라의 운명은 너와 동년배인 동족 청년과 대치하는 전선으로 가야 하는 일이다. 가서, 대통령보다도 국회의원보다도, 그리고 애국을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보다도 더 진실한 병장이 되어라.”(pp.18-20) 

그러나 김훈의 미사여구에 갖혀 그의 문체에만 주목하는 것은 오랜 기간 기자로 재직하며 쌓았던 그의 내공을 폄훼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실 글 쓰는 재주야 하늘이 내려주신 선험적 재능이라 볼 수도 있어 그의 필력에만 평가가 집중하는 건 ‘주례사비평’스러운 경향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에 실린 글은 세상살이에 대한 김훈의 사색을 훔쳐볼 수 있어 그의 내면을 보다 깊이 들여다 볼 기회를 제공한다. 

 

김훈식 글쓰기를 말할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게 바로 '아날로그적 글쓰기'다.

그는 여지껏 컴퓨터 자판에 익숙치 않아, 400자 원고지에 연필로 꾸역꾸역 문장을 만들어 나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의 집필 공간엔 잔뜩 구겨진 원고지와 지우개 가루가 어지러히 널려 있다고 한다.

사실 글쓰기를 업으로 자임한 자가 만드는 문장 하나하나는 몇번을 고쳐쓰고 지워쓰는, 산고의 고통을 거치는 게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글이란 본디 '볼펜'보다는 '연필'로, 좀 더 투쟁적으로는 '몽당연필'로 써야 맞다.


 

‘너는 어느 쪽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김훈의 대답은 자못 분명하다. ‘난 아무편도 아니다’가 그가 유일하게 밟고 있는 사유의 방향성이다. 앞서 소개한대로 그는 그의 ‘계통없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거니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도 그의 ‘아무편도 아님’은 쉽게 읽힌다. “나는 개별적 삶의 구체성을 배반하거나 천대하거나 또는 그것을 추상화해 버리는 모든 이론과 정책은 모두 사기극이라고 믿는다. 도덕은 인간의 개별성과 개별적 존재의 구체성 위에서 논의될 수 있을 뿐이다.”(p.78) "정의로운 언설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아니다. 지금 정의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약육강식의 질서를 완성해 가는 이 합리주의의 정글 속에서 정의로운 언어는 쓰레기처럼 넘쳐난다.“(p.76) "나는 보편과 객관을 걷어치우고 집단의 정의를 조롱해 가면서 나 자신의 편애와 편견을 향하여 만신창이로 나아갈 것이다.”(p.76)  

그가 잣대로 삼는 유일한 사유의 기초는 바로 ‘삶의 구체성’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먹고 사는 일’을 고려하는 것부터 그의 사유가 전개된다. 예컨대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에서 아들에게 하는 다음과 같은 충고들,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어려운 말 하지 않겠다. 쉬운 말을 비틀어서 어렵게 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걸로 밥을 다 먹는 자들도 있는데, 그 또한 밥에 관한 일인지라 하는 수 없다. 다만 연민스러울 뿐이다.”(p.13)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밥을 먹고 돈을 버는’ 인간의 기초 행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일자리를 잃고 내 처자식의 밥 세 끼를 포기해야 하는 것, 이것이 도대체 ‘개혁’이란 말인가."(p.31) 그리고 그의 이러한 기본적 삶에 대한 집착은 곤궁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의 대한민국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듯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열차 지붕 위에 실려서 부산까지 내려갔던 세 살 먹은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이 글을 쓴다. 피난지에서 자라난 유년은 하루 종일 배가 고팠고 1년 내내 배가 고팠다.”(p.21) 혹은 오랜기간 기자 생활을 하며 부딪힌 사건들, 사람들의 양면성과 이면성을 몸으로 체득하며 얻은 심성일 수도 있겠다. “미리 설정된 사유의 틀이나 논리의 질서 속에 이 복잡하고 중층적인 세계를 강제로 편입시켜서 일사불란한 논리를 전개하는 언론행위는 별 가치가 없어 보인다.”(p.92) 

난 김훈의 계통없음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대단히 용기 있는 커밍아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처럼 이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중층적’이어서, 한 가지 틀로 명쾌히 설명하는 언설은 이제 흰소리로 느껴진다. 다만 이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잣대의 무의미함’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삶의 모든 부분을 인정하는 ‘절대적 상대주의’의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언급해 둔다. 또한 지나친 허무주의로 인해 극단적 부정의 냉소주의를 보여주기도 한다. “젊은 날의 말을 되돌아보는 두려움이 98년의 저물녘에 되살아난다. 말들은 허상 만들기로 싸우고 허상 위에서만 타협이 가능하다. 결국 당대의 현실은 당대에서 말하여지지 않는다. 들끓고 날뛰고 날아오르는 말들이 당대의 결핍이며 빈곤이다. 신기루는 점점 두꺼워진다.”(p.66) "어느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고위관리가 ‘그것(IMF)은 나의 책임이고,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책임을 자인하고 나섰다 한들 그 말이 그 말이다. ‘책임이 없다’는 말이나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나 그 말이 그 말인 것이고 하나마나한 소리이고 들으나마나한 소리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무의미하고 무내용하다. 왜냐하면 그가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책임을 질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p.35)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가득 차 있다’ 나 ‘천국으로 가는 길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의 ‘계통없음’을 삶의 구체성에 천착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야지, 삶의 갖가지 핑계거리를 용인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초로(初老)라 부르지만, 이제 이순(耳順)에 가까워져 오는 그가 보여주는 ‘글’에 대한 집념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글이란 ‘왜 쓰는가’에 대답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일은 이 생기발랄한 몸의 살아 있음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이 몸이 언어를 통해서 이미지에 가닿을 때 그의 글을 가장 빛나는 문장을 이룬다. 문체는 몸의 일이다. 몸이 이미지에 맞는 가장 정확한 문체를 포착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이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이 몸에 포즈가 배어 있어서는 다 끝난 것이다.”(p.203) 매일 이 핑계, 저 핑계에 절주, 금연 선언을 번복만 하기에 바쁜 나로썬 얼굴 홧홧 거리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난 몸을 부릴 대로 부려야 사유가 번뜩이는, 젓 비린내 여지껏 가시지 않은 20대가 아니던가. 이런 내가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지금부터 다시 금연이다.   

문체는 몸의 일이다.

몸이 이미지에 맞는 가장 정확한 문체를 포착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이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이 몸에 포즈가 배어 있어서는 다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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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바깥에서- 문태준의 가재미를 읽고

 

바깥에서- 문태준의 가재미를 읽고


정확히 10년 전이다. 한국역사의 한 장에 기록을 남겼을 1997년은 IMF의 해였다. 그 해 이후로 나라에는 많은 일이 있었고 내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그것이 한묶음으로 꿰어지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많은 징후가 있었다고 한다면…… 내 생의 일부는 그 징후에 붙들려  있었다. 1997년. 나는 제대를 했다. 집으로 와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신문배달. 부산의 조간 국제신문이었다. 날마다 신문의 1면을 건성으로 훑으며 자전거 바퀴를 돌렸다. 11월의 어느 날 IMF라는 단어가 신문 1면에 등장했을 때 날마다 이 괴질과 같은 슬픔의 전염병을 집집마다 던져 넣으며 나는 그 의미를 몰랐다. 그저 자전거 페달을 전속력으로 밟으면 밟을수록 가야 할 어딘가에서 내가 그만큼 멀리 와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뿐.


너무 빠른 것은 슬프다/갈 곳이 멀리/마음이 멀리에 있기 때문이다/(…)/빗속으로/소용돌이쳐 뚫고 날아가는/멧새 한 마리/저 全速力의 힘/그리움의 힘으로/멧새는 어디에 가 닿을까/(…)/다시 생각해도/나는/너무 먼/ 바깥까지 왔다 -「바깥」중에서


며칠 뒤 아버지가 나가는 공장이 도산을 했고, 거의 동시에 어머니가 나가는 공장이 도산을 했다. 나는 다리를 다쳤고, 자퇴를 했고, 집을 나왔다. 부산 사하구의 반지하 자취방과 그 주변 다세대 주택에는 자퇴한 친구들이 간혹 있었다. 뜬금없이 뇌호흡 강사가 되어 생활한복을 입고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김영삼 정부와 삼성의 타협의 결과라고 얘기되던 부산 삼성자동차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방세를 내고 조금씩 저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어서면 내 눈높이에 한 뼘 높이의 창문이 있었다- 창문을 열었다. 처음이었다. 창살 밖으로 재래시장의 아침이 보였다. 아니 저마다의 일상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발목이 보였다. 아니 발목들 건너편 벽에 세워진 생선궤짝들이 보였다. 아니 그 비린내가 훅하니 느껴졌다. 그날 나는 내가 그들의 바깥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들을 바깥에서 바라보았다. 그 전 내가 아직 어머니의 품안에 있었을 때 나는 기꺼운 풍경이었다.


어미 개가 다섯 마리의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처음으로 정을 뗄 때가 되었다/ 저 풍경 바깥으로 나오면/ 저 풍경 속으로는/ 누구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젖 물리는 개」중에서


나 역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젖 물리는 개’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돌아갈 수 없는 자의 슬픔을 담고 있다. 그 슬픔은 ‘바깥’에 놓인 모든 인간이 공명하는 슬픔이다. 바깥에서 시인은 한결같이 슬픔을 얘기하고 돌아갈 안을 그리워한다.

시집의 첫 시는 이렇게 노래한다.


물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네/미끌미끌한 물의 속살 속으로/물을 열고 들어가 물을 닫고/ 하나의 돌같이 내 몸이 젖네/(…)낮고 부드럽고 움직이는 고요  -「思慕-물의 안쪽」중에서.

시인에게 ‘안쪽’으로 들어가는 일이야말로 시로서 이루어야 할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이 나왔을 때 나는 「호두나무와의 사랑」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 시는 ‘나는 지난 여름 내내 흐느끼는 호두나무의 哭을 들었다 그러나 귀가 얇아 호두나무의 중심으로 한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나의 이 고백도 바람처럼 용서받지 못할 것을 알겠다’고 자책한다.

이 근원적인 슬픔을 품은 채 시인은 세상을, ‘어긋나는 감각의 면 위를 물뱀처럼 오래 걷는다’(「나는 오래 걷는다」중에서). ‘알고도 모르는 척 속은 척 받아넘기’(무늬는 오래 지닐 것이 못 되어요」중에서)기도 하면서.

그래서 시인은 ‘외따롭고/생각은 머츰하다’ 늘 누군가 ‘와서 울고 간다’(「누가 울고 간다」중에서).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자루」중에서)으며 시인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가재미」중에서).

이쯤 되면 나는 시인을 바깥에 선 슬픔의 동반자라고 말한 셈이다. 시인의 슬픔은 너무나 근원적이어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어서 치유할 수도 없지만 슬픔에 빠져 쉬 넋을 놓게 하지도 않는다. 세상을 고해로 보고 중생의 아픔을 큰 슬픔으로 보듬어 준 석가가 깨달은 자가 되었듯이, 슬픔을 아는 슬픔을 들여다보는 눈에는 지혜가 깃드는 법이다. 지혜는 ‘그맘때가 올 것이’(「그맘때에는」중에서)라는 걸 알게 하고, 인간에게 ‘3초씩 5초씩 짧게’ 지나가는 시간이 나비에게는 ‘보다 느슨한 시간’(「극빈」중에서)이라는 걸 알게 한다.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성찰의 대상은 시간과 공간이다. 시간에 관한 시인의 성찰이 「그맘때에는」과 「극빈」에서 돋보인다면 공간에 관해서는 ‘수평’이라는 화두가 돋보인다. 그것은 해설 ‘극빈의 미학, 수평의 힘’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으니 잠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이 시의 화자들은 그 수평으로부터 어떤 사소한 우주적인 동력을 발견한다. “평면의 힘”“무서운 수평”“평면적으로 솟는다”와 같은 역설적인 표현들 속에서, 수평은 수직의 에너지와 움직임을 전유한다.  -127p에서


과연 시인은 슬픔을 지혜의 옆 자리로 옮겨놓을 줄 아는 존재임을 알겠다.

이제 시집 감상을 마치도록 하자. 다시 1997년 이후 즈음을 떠올려 본다. 1년 만에 나는 금의환향은 아니더라도 얼마간의 학비를 장만하고, 부산을 떠나 경남에 보금자리를 옮겨놓은 가족들과 재결합할 수 있었다. 그것이 풍경 속으로 돌아간 것은 아닐 터이지만, 노모를 만난 기쁨을 잠시 떠올려 볼 수는 있겠다. ‘나를 이 세상으로 처음 데려온 그는 입가 사방에 골짜기가 몰려들었다/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골짜기는 참 아름답다’(「老母」중에서)

그 후 나는 서울로 올라와 혼자서 직장을 얻어 살다가 작년에 아리따운 여인과 결혼을 했다. 이제 나도 ‘젖 물리는’ 부모가 되는 것일까?

문태준의 가재미를 읽으며 반지하 주택의 창문 앞을 지나는 발목들과 맞은편에 놓여 있던 생선궤짝의 비릿한 감각을 훅 느껴본다. 바깥과의 그 마주침!


나와 오리와 세 마리 쥐가/눈이 마주쳤다 오오 이런!(「오오 이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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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페일레스 > 김중식과 백석의 '방'

식당食堂에 딸린 방房 한 칸

김중식

김중식 - 황금빛 모서리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마다
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 된다 돈 한푼 없어 대낮에 귀가할 때면
큰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옐로우 하우스 33호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집 앞인데
거기보다도 우리집이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더 허기져 보이고 거기에 진열된 여자들보다 우리집의
여자들이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 대신 내가 영계백숙 음식 배달을 나갔을 때
나 보고는 나보다도 수줍음 타는 아가씨는 명순씨氏
홍등紅燈 유리방房 속에 한복 입고 앉은 모습은 마네킹 같고
불란서 인형 같아서 내 색시 해도 괜찮겠다 싶더니만
반바지 입고 소풍 갈 때 보니까 이건 순 어린애에다
쌍꺼풀 수술 자국이 터진 만두 같은 명순씨氏가 지저귀며
유곽 골목을 나서는 발걸음을 보면 밖에 나가서 연애할 때
우린 식당食堂에 딸린 방房 한 칸에 사는 가난뱅이라고
경쾌하게 말 못 하는 내가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강원연탄 노조원들이다
내가 말을 걸어본 지 몇 년째 되는 우리 아버지에게
아버님이라 부르고 용돈 탈 때만 말을 거는 어머니에게
어머님이라 부르는 놈들은 나보다도 우리 가정에 대해
가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하루는 놈들이, 일부러
날 보고는 뒤돌아서서 내게 들리는 목소리로, 일부러
대학씩이나 나온 녀석이 놀구 먹구 있다고, 기생충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상처를 준 적이 있는, 잔인한 놈들
지네들 공장에서 날아오는 연탄 가루 때문에 우리집 빨래가
햇빛 한번 못 쬐고 방구석 선풍기 바람에 말려진다는 걸
모르고, 놀구 먹기 때문에 내 살이 바짝바짝 마른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내심 투덜거렸지만 할 말은
어떤 식으로든 다 하고 싸울 일은 투쟁해서 쟁취하는
그들에 비하면 그저 세상에 주눅들어 굽은 어깨
세상에 대한 욕을 독백으로 처리하는 내가 더 끝
절정은 아니고 없는 적敵을 만들어 창槍을 들고 달겨들어야만
긴장이 유지되는 내가 더 고단한 삶의 끝에 있다는 생각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은 쓰레기 하치장이어서 여자를
만나고 귀가하는 날이면 그 길이 여동생들의 연애를
얼마나 짜증나게 했는지, 집을 바래다주겠다는 연인의
호의를 어떻게 거절했는지, 그래서 그 친구와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눈물을 꾹 참으며
아버지와 오빠의 등뒤에서 스타킹을 걷어올려야 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여동생들을
생각하게 된다 보름 전쯤 식구들 가슴 위로 쥐가 돌아다녔고
모두 깨어 밤새도록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어발기며
쥐를 잡을 때 밖에 나가서 울고 들어온 막내의 울분에 대해
울음으로써 세상을 견뎌내고야 마는 여자들의 인내에 대해
단칸방에 살면서 근친상간 한번 없는 안동김가安東金哥의 저력에 대해
아침녘 밥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제각기 직장으로
공원公園으로 술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탈출의 나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 혹 지인知人이라도 방문해 있으면
난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멀리까지 귀양 떠난다

큰 도로로 나가면 철로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기차가
있다 가끔씩 그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
걸어다니는데 철로의 양끝은 흙 속에서 묻혀 있다 길의
무덤을 나는 사랑한다 항구에서 창고까지만 이어진
짧은 길의 운명을 나는 사랑하며 화물 트럭과 맞부딪치면
여자처럼 드러눕는 기관차를 나는 사랑하는 것이며
뛰는 사람보다 더디게 걷는 기차를 나는 사랑한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철로의 무덤 너머엔 사랑하는 서해西海가 있고
더 멀리 가면 중국中國이 있고 더더 멀리 가면 인도印度와
유럽과 태평양과 속초가 있어 더더더 멀리 가면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 김중식, 『황금빛 모서리』, 문학과지성사, 1993, 16-21.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白石

백석 지음, 이숭원 주해 - 원본 백석 시집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 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높은 것이 있어서、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한탄이며、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 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무릎을 꿀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학풍』창간호(1948. 10.)에 발표. 편집 후기에는 백석의 시집을 발간할 예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1. 바람 세인 - 바람이 세게 부는.
2. 샅 - 삿자리.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왕골로 짠 돗자리보다 거칠다.
3. 쥔을 붙이었다 - 주인집에 붙어사는 생활을 했다.
4. 누긋한 - 메마르지 않고 눅눅한.
5. 딜옹배기 - 질흙으로 만든 옹자배기.
6. 북덕불 - 북데기(짚이나 풀, 나무 부스러기 등이 함부로 뒤섞여 엉클어진 뭉텅이)로 피운 불.
7. 쌔김질 - 새김질. 반추.
8. 나줏손 - 저녁 무렵.
9. 바우 섶 - 바위 옆.
10. 갈매나무 - 갈매나뭇과의 낙엽 활엽 관목. 높이는 2~5미터이며, 가지에 가시가 있다. 이 시에서는 시적 화자의 외로움과 상실감을 이겨내게 하는 상징적 사물로 등장한다.

- 백석 지음, 이숭원 주해, 『원본 백석 시집』, 깊은샘, 2006, 210-212.



  오늘도 '시 vs 시詩對詩'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가 아니라……. -_-; 요즘 『원본 백석 시집』을 비타민 먹듯이 매일 매일 읽다 보니 백석 시인의 시를 상대적으로 많이 소개하게 되네요. 다들 아실 법한 두 편의 시입니다. 그 중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교과서에 실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어영역 문제집에 자주 나오는 시입니다. 이번에 과외에서 했던 문제집(좋은책에서 나온 '신사고 언어특강 오감도 시문학편'입니다. 수험생들에겐 매우 추천할 만한 시문학 문제집이에요. 그렇다고 제가 좋은책 알바는 아니고 -_-;)에도 나왔드랬죠. 학생들이 이런 시를 문제집에서만 접한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김중식 시인의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은 내용상 나오기가 좀 힘들 것 같군요. -ㅅ- 인터넷에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찾아보면 마음대로 연을 나누거나 띄어쓰기, 맞춤법을 고친 게 많은데, 저는 그런 행태가 몹시 못마땅합니다. 그 당시 표기법이 안정돼 있지 않기도 했지만, 백석 시인은 시의 운율과 호흡을 살리기 위해 당시의 표기법을 무시한 흔적이 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겠죠. 이번에는 두 편의 시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먼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제목 말인데요. 과연 이 제목이 무슨 뜻일까요? 그건 바로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입니다. '남南신의주'의 '버드나뭇골(유동)'에 사는 목수 '박시봉'이란 사람의 '집(방)' 말이죠. 이렇게 발신인의 주소를 제목으로 썼는데,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은 결국 화자 자신입니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화자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것처럼 말이죠.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화자는, 여러 가지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눈을 껌뻑거리며 되새김질합니다. 그러다보니 거기에 "눌리어" 죽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저는 이 대목이 미친듯이 좋습니다. 정말).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저녁 때가 되어 창밖으로 싸락눈이 내립니다.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화자는, 싸락눈의 "쌀랑쌀랑"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합니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화자는 인천 숭의동의 속칭 '옐로우 하우스'라는 사창가 근처에 있는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 삽니다. "대학씩이나 나"왔지만 직업이 없어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어머니에게는 "용돈 탈 때만 말을" 겁니다. "세상에 주눅들어 굽은 어깨"를 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놀고 먹는다고 욕을 듣지만 정작 그가 해야 할 "세상에 대한 욕"은 "독백으로 처리"합니다. 거기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지금 발 디딘 곳이 "끝"이라 생각하는 화자는 그 끝,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서해"를 지나 "중국"을 거쳐 "인도와 유럽과 태평양과 속초"를 지나지만 결국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세상에 끝에 있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두 시 모두 이야기의 전개 양상이 비슷합니다. 점점 더, 점점 더 끝에 몰리게 되지만 끝내는 다시 그 '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지요.

  평론가 강상희는 『황금빛 모서리』 해설의 부제를 "따뜻한 비관주의자를 이해하기 위하여"라고 붙였는데, 저는 이 표현이 적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 위의 삶에서 '탈출'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겠지만, 그렇다고 우주로 가는 건 아니죠. 다 만나고 "오겠네". 네,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화자는 비관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사적인 얘기지만 저 역시 경기 파주시의 속칭 '용주골'이라는 사창가 근처에 있는 '연립주택 일층'에 삽니다. 물론 우리 가족이 소유한 집은 아니지요.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이 "쓰레기 하치장"인 것도 아니고, "보름 전쯤 식구들 가슴 위로 쥐가 돌아다"닌 것도 아니지만 비관하는 화자의 입장에 공감하게 되는 건 왜일까요. 저도 어릴 때 "귀가할 때 혹" '빚쟁이'"라도 방문해 있으면"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멀리까지 귀양 떠"나고 싶었습니다(웃음).

  허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화자는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화자와 달리 그 모든 '비관'을 되새김질합니다. 그래서 그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게 되지요. 어찌 보면 이 시의 화자를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더 크고, 높은 것" 앞에서 체념하는, 운명에 순응하는 인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달리 보고 싶습니다. 외로움만 남은 화자는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 옆에 따로 외로이 서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니까요. 저는 화자가 갈매나무를 생각하면서 "굳고 정"하게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이런 바람은 제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기도 하겠죠.

  심정적으로는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화자에 공감하게 되지만 저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화자처럼 살고 싶습니다. '따뜻한 낙관주의자'가 되고 싶다는 말이죠(웃음). 그럼 오늘의 '시 vs 시詩對詩'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왠지 일요일 느지막히 일어나 TV를 켜면 나오는 영화 프로그램의 '영화 대 영화'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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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9-28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삶의 끝에서도 결국은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페일레스님의 "따뜻한 낙관주의자"라는 말이 참 기억에 남네요.

페일레스 2006-09-2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멘트도 남겨주시고, 감사합니다. 잉크냄새님도 같이 갈매나무를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

2006-10-02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6-10-1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너무 늦어서 오히려 제가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전출처 : 페일레스 > 나희덕과 백석의 '아버지'

못 위의 잠

나희덕羅喜德

나희덕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나는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 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작과비평사, 1994



고향故鄕

백석白石

백석 지음, 이숭원 주해 - 원본 백석 시집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어누어서
어늬아츰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같은 상을하고 관공關公의수염을 들이워서
먼녯적 어늬나라 신선같은데
새끼손톱 길게도은 손을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집드니
문득물어 고향故鄕이 어데냐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곧이라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ㄹ 아느냐한즉
의원은 빙긋이 우슴을 띄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쓰+ㄹ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이라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즛이 웃고
말없이 팔을잡어 맥을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삼천리문학』2호(1938. 4.)에 발표.
- 1. 상을하고 - 모습을 하고. 2. 關公 - 관우. 3. 길게도은 - 길게 돋은. 4. 쓰+ㄹㄴ다 - '쓴다'의 뜻에 해당하는 백석의 독특한 시어.

- 백석 지음, 이숭원 주해, 『원본 백석 시집』, 깊은샘, 2006, 142-143.



  이숭원 교수의 『원본 백석 시집』을 드디어 며칠 전에 샀습니다. 영인본처럼 돼 있는 것도 좋고 주해도 잘 되어 있어서 좋은데 차례가 엉망이더군요. 「수라修羅」라는 시를 찾는데 차례에 적힌 쪽을 찾아보니 안 나옵니다. 이상해서 차례를 다시 보니 그 앞의 시 「여승女僧」이 86쪽이고 「수라」는 68쪽이지 뭡니까. 아놔……. 이렇게 쪽수가 틀린 부분이 아홉 군데. 105편의 시가 실린 시집에서 아홉 군데라니요. 시집 『사슴』에 실린 '힌밤'이란 시는 아예 목차에서 누락돼 있더군요. 힘들게 원본을 찾고 책으로 펴낸 저자의 노고는 인정하지만 이왕 하는 김에 마무리까지 깔끔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 국어 과외를 하러 갔다가 문제집에서 나희덕 시인의 「못 위의 잠」을 읽었습니다. 이제 1990년대에 출판된 시도 수능 문제집에 등장하는 시대가 온 것이죠. 놀랍지 않습니까? 흐흐. "제비의 원관념이 아버지란 거 알겠지? 그래~서! 주제는 '아버지의 고단한 삶에 대해 느끼는 연민의 정'이라는 거~" 따위 말하고 있는 제 자신이 슬퍼졌습니다만. 아무튼, 이 시를 읽고 나니 백석 시집에 실려 있는 「고향」이라는 시가 생각나서 같이 한 번 올려봅니다. 1990년대 후반에 수능 공부하신 분들은 책보다 문제집에서 백석 시인의 시를 더 많이 접해봐서 좀 뜨악할 수도 있겠지만. 흐흐.

  「못 위의 잠」의 화자는 못 위에서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보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고향」의 화자는 '여래 같은 상을 하고 관공의 수염을 드리'운 의원, 즉 아버지의 친구를 통해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죠. 한 사람은 딸이고 한 사람은 아들이지만, 어느 집의 자식이든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애증이 섞여 있겠죠. 친구랑 며칠만 같이 지내도 좋은 맘 미운 맘이 오락가락하는데 하물여 한솥밥을 먹는 아버지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저 역시 그런 감정을 갖고 있죠. '애'보다는 '증'에 가깝지만. 하하.
  그런데 요즘은 그런 감정도 가끔씩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바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제가 '북관에 혼자 앓아누워' 있는 상황이라면 백석 시인 편을 들었겠지만, 아직은 제 마음이 나희덕 시인에 가까운가 봅니다. 말하자면, 그 때는 몰랐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다고 할까요…….

  나희덕 시인에 대해서 찾아보면서 생각한 걸 몇 마디 적어볼까요.
  그의 성장기는 '고아원'이란 말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먼 친척이 운영하던 고아원에서 태어난 그는 열 살 때 서울로 올라와서도 고아원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부모가 있는 아이인데도, 부모가 없는 아이들과 함께 자랐죠. 이런 공동체 성향과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종교적 분위기, 거기에 운동권 체험. 이런 것들이 나희덕 시인의 문학세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아닐까 싶네요. 한 단어로 줄이자면 그 모든 '슬픔'들.
  그가 어느 글(한국일보에서 연재한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에서 밝힌 것처럼 그의 '시의 팔 할은 슬픔이나 연민의 공명(共鳴)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시는 '내 안의 슬픔이 다른 슬픔과 만나 서로 스미고 어루만질 때 흘러나오는 언어. 또는 존재와 존재가 서로 삐걱거리고 뒤척이며 내는 소리들'을 받아적은 것이고, '눈물을 다스리는 힘이 없이는 슬픔을 제대로 노래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못 위의 잠」에서 '눈물'을 똑 떨구는 게 아니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보는 것도 그래서겠죠.
  저는 나희덕 시인이 그의 소원대로 '저 실핏줄들이 모여 언젠가는 슬픔의 강물 하나 만들어낼 수 있기를. 넓게 흐를수록 더 깊이 숨어서 우는 건천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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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9-19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관의 어드메에 앓아누어 맥을 짚는 의원의 여래같고 관공같은 모습에서 아버지를, 고향을 떠올리니... 어쩜 이리도 아버지를, 고향을 절제된 슬픔으로 표현했는지...

페일레스 2006-09-28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시를 문제집에서 처음 읽었는데, 가슴이 찡하더라구요. 과외하는 학생도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싶지만... -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