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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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라는 가곡 사월의 노래의 한 구절로 기억되는 베르테르를처음 안 것은 고등학교때이다. 데미안과 더불어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기도 한 그는 결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주인공이 아니었다. 서글픈 결말마저 그토록 아름답게 만든 폭풍과 같은 열정을 가슴에 품은 순수한 청년이었다. 그의 자살마저도 순수함의 극치로 여겨졌다. 그는 결코 사랑으로 구원받지 못한 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베르테르를 다시 만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다시 만난다.그의 편지를 하나하나 다시 읽어본다. 아마 그때의 나는 작은 행복 뒤에 찾아온 절망의 선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서야 로테를 사랑하기 전과 후의 시공간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허락하지 않은 신을 원망하는 그의 고뇌를 느낀다. 로테와 함께하는 작은 행복감과 그 뒤에 찾아오는 폐부를 내리누르는 절망감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를 이해할수 있다. 동조하지는 않지만 결국 고뇌의 방아쇠를 당기고만 그의 마지막 절규를 듣는다.

아홉명의 여인과 염문을 뿌린 괴테는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사랑하다 상처받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의 친구 예루살렘이 유부녀와의 사랑에 상처받아 권총 자살을 한 일을 계기로 이 소설을 집필했다. 어쩌면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베르테르를 통하여 그는 자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르테르를 죽임으로써 괴테는 절망에서 벗어나 살아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절망과 시련의 중압감을 베르테르에게 무거운 삶의 무게로 지우고 고뇌에 찬 총부리를 그의 머리에 겨누고 마는 것이다. 베르테르는 죽고 우리는 남는다.그리고 남겨진 우리는 다시 살아가고 사랑하는 것이다.

삶이든 사랑이든 패배와 실패에 한 조각의 여백조차 남겨두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만큼 가능성이 남겨져 있다는 말이다. 일단은 살아보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운으로 맞이하게 되는 작은 행복이어도 좋고 가슴을 난도질하는 시련이어도 좋다. 결국 다시 사랑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절망의 선율과 시련의 중압감을 벗어버릴수 있는냐 없는냐의 문제이다. 다시 살아가고 사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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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9-07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춘기 때 이 책을 읽긴 읽었는데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지금쯤 다시 읽으면 읽혀질려나?^^

파란여우 2004-09-0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테르가 노란조끼를 즐겨 입었던가요?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

잉크냄새 2004-09-07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노란조끼. 그 당시 베르테르로 인하여 독일 사회에 노란조끼 열풍이 불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고전은 지금에 다시 읽으니 느낌이 새롭네요.

水巖 2004-09-0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랜 시절 1955년인가 54년인가 그때 읽은 책입니다. 완역본은 생각도 못했을 시절,
시인 김용호님이 번역을 했으니까 일본책 중역 했을거에요.
모방 자살이 유행했을때 꾀테는 시 한편을 썼지요. 그 시 마지막 연이
' 사나이일진데 나의 길을 밟지마라 ㅡ ' 그랬던가요.

진주 2004-09-0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 연미복에 노란색 조끼를 입었다죠....
유행을 선도할 만한 패션감각^^

잉크냄새 2004-09-0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이 읽으셨다는 50년대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책을 보고 싶군요. 무슨 냄새가 날까 궁금하네요. 푸른 연미복에 노란색 조끼. 정확합니다. 어떻게 그런걸 다 기억하시나요?

진주 2004-09-1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 팬이었거든요. 4월의 노래도 그래서 좋아했고요 ^^*
잉크냄새님을 직접 못 봐서, 내겐 어쩐지 베르테르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제임스딘을 조금 섞은 듯한.......그딴 생각이 듭니당^^;;

수련 2004-09-14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를르의 보리밭에서 탕!!하고 방아쇠를 당겨 자신을 죽게한 고흐....베르테르와 어떤차이가 있을수 있겠는가? 그의 자살은 여러설이 분분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절망감이 아니었을까? 그의 분열적인 방아쇠 당김은 진정으로 지고지순한 사랑을 주고 받고 싶어했던 열망의 끝이였는지 모른다. 진정한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실연의 아픔을 이길수 있는 면역성도 함께 생기기에....상실의 아픔을 이길수도 있을법한데.....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랑끝엔 죽지 않을 희망도 있지 않은가~~

잉크냄새 2004-09-14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테르가 수련님의 글을 조금만 빨리 읽었다면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없었을것 같군요. [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랑끝엔 죽지 않을 희망도 있지 않은가 ] 깊은 울림이 있는 말입니다.

* 2004-09-22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련님... 진정한 사람을 해보았다면, 실연의 아픔도 이길 수 있는 면역성이 반드시 함께 생긴다고 할 수 있나요...??? 저는,,, 아닌 것 같은 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