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눈물 - 문학으로 읽는 아시아 문제 팔레스타인
수아드 아마리 외 지음, 자카리아 모하메드 엮음, 오수연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동네의 서글픈 일이랍니다. 물질적인 삶의 질은 높지 않지만 나름 만족하며 사는 삶이었지요. 어느 날 1)안개가 무지하게 끼고 비가 많이 내리는 마을에 사는 녀석이 2)동네 패싸움에 가담하는 길에 우리집 앞마당을 지나야 한다며 패싸움이 끝난후 마당은 물론 자기 땅이라 우기던 지역의 마당확장까지 협력해 준다는 조건으로 3)종이조각을 하나 들고 왔더군요. 뭐, 동네 패싸움에 관심도 없던지라 솔깃하여 싸인을 했죠. 좀더 검토하고 그들의 속내를 짐작하지 못한 우리의 실수일수도 있지만 그들이 신의를 저버린건 더 큰 문제죠. 글쎄, 안개처럼 음습한 그넘들이 4)천년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던 양아치에게 5)이중계약을 한겁니다.  패싸움이 끝난후 양아치들은 동네 곳곳에 있던 떨거지들을 규합하며 우리 앞마당으로 들어오더군요. 6)몇몇 뜻있는 동네사람들과 힘을 합쳐 7)항의해 보았지만 원래 저속한 세상의 이치는 이면계약이 힘을 발휘하는지라 항의는 불발되었고, 탄력받은 양아치들은 8)자기 마당인양 줄을 긋고 억압을 하더군요. 뭐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항의 당시 마당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마당에 들어올수가 없다나요. 더 억울한건 대문에 양아치들을 배치하여 마당으로의 진입 자체를 막더니 얼마간 마당에 들어오지 않는 마당의 소유권은 자기들에게 있다고 하네요. 이건 아니다 싶어 9)동네 전체 모임 안건에 의제를 제시했지만 대다수 선량한 동네 주민들의 뜻과는 다르게 양아치와 호형호제하는 10)조폭 출신들에게 가로막혀있는 상태입니다. 가끔 어린애들이 그 금을 지울라치면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대고 좀 철좀 들었다 싶은 청년들이 지울라치면 동네방네에 유언비어를 터트려 마치 자신의 것을 빼앗는 11)파렴치한으로 만들더군요. 아직 저희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어쩌면 희망도 사치일지는 모르지만 사랑방 한구석에서 정신분열에, 절망에 빠진 가족들을 다독여 그 금을 지우고 마당 한켠에 각종 꽃을 심는 날을 상상해 봅니다.

주석)
1) 영국
2) 1차 세계 대전
3) 후세인-맥마흔 서신
4) 유대인
5) 밸푸어 선언
6) 아랍국가
7) 1948 전쟁
8) 부재자 재산법
9) UN / 안전보장이사회
10) 미국
11) 테러범

팔레스타인 작가들이 말하는 그들의 희망과 절망과 자아상실과 자아분열에 대한 글입니다. 그들이 결코 그 끝자락을 놓을수 없는 판도라 상자속의 희망은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절망과 상실을 품고 있나 봅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글에서 왜 그리 끝없는 절망과 처절한 상실감을 느껴야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마 절실한 희망은 절박한 절망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인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본 사진 한장이 생각나네요. 이스라엘 탱크를 향해 고사리 손에 든 조약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소년의 사진이죠. 지금은 어엿한 청년이 되어있겠죠. 어떤 꿈을 꿀까요. 아마 악몽이 아닐까 싶군요. 그 작고 따스한 고사리 손과 가슴을 향해 차가운 총탄을 퍼부은 이스라엘을 보면서 자라난 청년이 지금 할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속칭 테러군요. 물론 그 울분을 표현하는 방법의 정당성 측면에서 결코 자유로울수는 없겠지만 내던질 것이 목숨뿐이라는 사실에는 한번쯤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댓글(8)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4-22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리뷰가 올라왔네요 :) 반갑게 잘 읽고 갑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한 뒤,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 연후에... 그때야 비로소 하느님이 움직인다고 말들 하더군요.
극과극은 통한다고, 절망의 끝에 희망이 있지요.
죽음을 밟고 서있는 게 삶인 것처럼요...

춤추는인생. 2007-04-23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실한 희망을 절박한 절망에서 나온다는말은 아주 공감되는 표현이네요.
예전 낙안읍성의 글이였던가요? 땅콩사세요를 외치던 그 소녀에게 소녀여! 꿈을 꾸어요. 꿈을 잊지 말아요 라고 말씀하셨듯 . 저역시 어딘가에 있는 그 청년에게 아름다운 꿈을 놓치말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잉크냄새님의 글속에 묻어나는 따뜻한 시선이 저는 참 좋아요.^^

은비뫼 2007-04-23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의 서평 읽으니 좋네요. ^^
내던질 것은 목숨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프레이야 2007-04-23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을 지우고 마당 한 켠에 꽃을 심는 기대, 그런 걸 희망이라고 부르겠지요.
님의 온기가 느껴지는 담담한 글이 참 좋습니다.^^

icaru 2007-04-2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쓰신 다른 리뷰들과 어투가 달라서~ 좀 진지하게 읽었습니다. 잘 읽었구요.
그들이 물질적인 삶의 질은 높지 않지만 나름 만족하며 사는 그 삶을 어서 되찾기를 저 또한 희망합니다!

잉크냄새 2007-04-2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진정 절망의 끝에 희망이 있던가요. 가끔은 어설픈 희망이 더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것은 아닌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가슴만큼은 그 희망함을 향하여 나아가야겠지요.
춤인생님 / 와, 그 옛날의 페이퍼를 찾아 읽어주시고 여기에 인용을 하시다니.아마 2004년 페이퍼 같은데요.^^ 감격입니다. 그래요, 절박한 상황에서 희망을 찾는 행위가 때론 가진자의 위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삶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눈엔 분명 희망이 보일겁니다.
은비뫼님 / 예전 예이츠의 하늘의 융단이라는 시에도 나오죠. "내 가난하여 가진것 오직 꿈뿐이라 그대 발밑에 내 꿈 깔았으니...." 그들이 가진것이 오직 목숨뿐이라...
배혜경님 / 우리가 희망이라 부르는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희망은 귀천이 없음을. 어느것 하나 무시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카루님 / 가끔 존대로 쓰기도 한다구요. 그들이 다른 누구의 모습도 아닌 그들 스스로의 삶의 모습을 지켜나가길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삶의 모습을 바라듯이.

파란여우 2007-04-23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별일이야요. 잉끼냄새님이 이런 책을 다 읽으시다니!
난 또 서정적 시인의 발광체를 최대한 부풀린 요즘이신가 여기고 있었는데...

가난, 전쟁, 추방자, 이주 노동자... 다 열거 할 수 없는 고통이 지구에 있습니다.
제 팔이 아픈것도 고통스러워요.
언능 로또가 대박나야 할텐데....쯥!@.@

잉크냄새 2007-04-24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아시면서요. 전 잡다하게 읽는 습성이라는 것을. 다만 지식이 짧아 이런 류의 책 리뷰는 손이 잘 가지 않죠. 고통을 체화하지 않고 희망을 말한다는 것이 좀 위험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말하고 싶었답니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 - 옛사람의 사귐
이승수 지음 / 돌베개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터인가 친구 사이의 우정의 의미는 다소 과격한 분위기를 띄기 시작했다. 시골 다방의 통성냥을 잘근잘근 씹으며 롱코트 자락 휘날리며 쌍권총을 멋지게 쏘아대다 친구의 품안에서 죽어가는 홍콩 느와르와 조폭이 아니면 친구를 논하지 말아야할것 같은 사회 분위기를 연출한 조폭 영화 신드롬이 그것이다. 맹목적 헌신과 희생,  비극적 결말, 비참한 최후. 심하게 말하면 세기말적 관계가 친구의 전형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인간관계의 밀도가 점점 약해져가는 분위기에서 한번쯤 상상해 봄직한 일이지만 그 진정성에는 다소 의구심이 든다.

얼마전 알라딘 어느 분의 페이퍼에서 나이 든 사람들의 친구 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하여 읽은 적이 있다. 딱 잘라 말하자면 그 이유는 오해라기 보다는 이해에서 온다는 것이다. 철없는 시절의 만남은 이해 관계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만남이기에 그 순수성이 침해받을 일 자체가 없다.  나이 들어서의 만남이 잘 형성되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오해라기보다는 이해에서 온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해의 방향에 따라서 두가지 결론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기는 하지만) 오해는 풀어나갈 길이라도 보이지만 나와 상충되는 부분을 이해한 상태에서는 더 이상 만남이 자리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서글프지만 머리를 주억거리게 된다면 아마 우리는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만남은 다소 맥빠진 만남일수도 있다. 극적인 사건도, 가슴시린 사랑도, 생과 죽음을 초월한 감동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담담함과 고즈넉함이랄까. 아무말 없이 바라보며 거문고 줄을 타는 이과 누군가 연주하는 거문고 자락에 담긴 의미를 가만가만 읊조리는 병풍속의 그림일수도 먼지 폴폴 나는 시골길 옆을 한자락씩 맡아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부분에서 만날듯한 어느 노부부의 그림일수도 있다. 거문고의 현은 서로 따로이 존재하지만 서로 공감할때만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듯 친구 사이의 우정도 그러한 것이라고 옛 선인들의 만남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한 대목중 가장 잊혀지지 않는 구절중의 하나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브래드 피트의 아버지로 나온 목사가 살아 생전 결코 이해할수 없었던 아들을 추모하며 던진 한마디이다. "우리는 서로 완전히 이해할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수는 있습니다."  이 책도 조용히 그 구절을 거문고 자락에 태워 흘러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4-10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음. 알라딘 어느 분의 페이퍼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알려주세요 :)
흐르는 강물처럼의 저 대사는 저도 무지 좋아라 한다는...

은비뫼 2007-04-10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베게에서 나온 책이군요. 궁금하네요. ^^
흐르는 강물처럼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고요. 잘 읽었습니다.

잉크냄새 2007-04-11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저도 궁금해요. 그 페이퍼도 그 분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인데, 황인숙 시인이 출연하여 그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은비뫼님 / 돌베개. 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권만으로도 그 출판사에 믿음이 가더군요. 좋은 책에게 햇살을 부여하는 출판사는 오아시스란 생각이 듭니다.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꼽을 실종시켜 버릴것만 같은 선전 문구와는 다르게 그닥 폭소를 자아내는 소설은 아니지만 개성이 뚜렷한 등장인물과 이라부의 치료과정의 전개상황에서는 괜시리 웃음이 나오기는 한다. 유아기적 행동을 벗지 못하는 이라부, 환자에 무관심한 마유미짱, 책상 모서리만 보고도 벌벌 떠는 선단공포증 야쿠자, 더 이상 공중그네를 탈수 없는 곡예사, 권위있는 장인의 가발을 벗겨버리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는 전도유망한 의사, 1루로 송구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3루수, 새로운 소설속의 등장인물이 이전 소설에 등장한 인물이라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작가. 이들이 펼치는 상처의 치유과정이 주된 내용이다.

가슴속에 상처 하나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라부와 환자들이 펼쳐가는 치유의 과정은 힘겹고 고단한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와 조금씩 대면해가는 유쾌한 과정이다. 어린아이 같은 이라부의 행동 자체가 상처를 내면으로 품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품은 부위를 째고 고름을 짜고 햇볕에 잘 말리는 과정이다.

우리는 가슴속에 무의식의 어린 아이를 품고 있다. 어느 순간의 상처로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스스로를 결박한 어린 아이, 앞만 보고 달리는 세상 속에 저 멀리 뒤쳐져 어기적 어기적 더욱 멀어지는 어린 아이. 이라부는 바로 등장인물들의 가슴속에 방치된 어린 아이이다. 유치 찬란하고 뻔뻔하고 당돌한 이라부를 대하면서 환자들은 은연중 자신속에 홀로 남겨진 어린 아이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상처입고 방치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보듬어 저 아래에 홀로 남겨진 상처입은 영혼을 현재 나의 모습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앞의 글에서 치유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치유보다는 극복이라는 단어가 어울릴것 같다.왠지 극복이라는 단어가 더 주체적이랄까. "상처는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극복되는 것이다."라는 문구를 어느 책에서인지, 알라딘의 어느 서재에서인지 본 기억이 나는데, 이 소설의 카피 문구로 딱 어울릴것 같다. 결국 상처는 온전히 자신의 몫일테니까.

p.s) 배우 김수로의 코믹연기가 재미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웃음코드가 존재하지만 인디아나 존스, 소설가 박민규, 배우 설경구, 송강호식 코믹연기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별로 웃음을 선사하지는 못할것 같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1-1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복이란 말이 치유보다는 훨씬 적극적이네요. 좀 전투적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전 치유라는 말이 더 좋은 걸요. 내 안의 어린아이, 누구든 한 부분은
가지고 있을 거에요. 그부분을 안아주는 사람이라면 인연이겠죠.^^

겨울 2007-01-1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엔, 이 소설을 시작으로 쏟아지는 일본소설의 홍수에 빠진 듯 해요.
올해는 좀 자중하기로... 그래도 이 작가의 <남쪽으로 튀어>는 꽤 기억에 남아요.

icaru 2007-01-17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라부의 코믹함을 김수로에 빗대시고, 오오 그럴법하네요~
오늘도 저는 내 속의 어린아이의 땡깡을 가까스로 달랬습니다.
회사가 가기 싫다고~ 징징거려서 혼났어요.

잉크냄새 2007-01-17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 극복이라는 말이 좀 거칠고 투박한 면이 있지만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자신속에서 먼저 상처에 대한 극복이 선행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우몽님 / 아, 전 일본식 유머가 거의 통하지 않나봐요. 그럴싸한 일본 소설 있으면 하나 추천해주세요. <남쪽으로 튀어>는 평은 좋은데 2권짜리라 선뜻 손이 안가네요.^^
이카루님 / 결국은 달래셨군요. 전 가끔 못달래고 지는 경우도 있거든요. 님은 이제 어린아이가 둘이니...ㅋㅋ

내가없는 이 안 2007-01-17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끄트머리 글이 너무 재밌는데요. 요즘 같아선 김수로씨한테 제일 마음이 가요. 설경구씨는 왠지 부담스럽고, 송강호씨는 자꾸 틀을 만들어내는 것 같고, 박민규씨는 고글이 괜히 마음에 안 들고... 그렇담 공중그네의 코드에 맞는 건가요? ^^

잉크냄새 2007-01-1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 전 김수로식 코믹이 별로라서 별 3개를 줬지요. 음, 코드가 맞을라나...아직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가 남아있으니 무효....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수없는 풍경에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다. 그 무한한 풍경 가운데의 어느 한 순간의 풍경이 느닷없이 어느 순간의 나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신비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언젠가 어느 명승지에서 오히려 풍경을 만나지 못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단지 일반적인 아름다운 경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경치들은 나의 시각을 자극했지만 그것들은 그냥 흘러가버렸다. 내가 이름 없는 한 풍경을 만나게 되는 것은, 내가 풍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어느 순간의 나를 주박하고 마는 것이다."

허만하 시인의 이 글귀가 떠올랐다. 십대 후반에 알래스카의 사진 한 장에 사로잡혀 사십대에 불곰의 습격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알래스카의 바람이, 전설이 되어버린 호시노 미치오의 삶을 바라본다. 아, 그의 사진이 그토록 편안하게 느껴진 것은 피사체와 작가가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풍경이고 자연이었던 이유인가보다. 그가 알래스카를 카메라에 담은 것이 아니라 알래스카의 자연이 그를 풍경속에 담아둔 것이리라. 그러기에 빙설을 걸어가는 북극곰의 등짝에서 묻어나는 한없는 고독이 작가의 그것으로 느껴지기에 충분했으리라.

그래, 인간의 삶도 풍경이다. 다만 인간이 그것을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무한한 자연속 한부분으로서의 삶이 아닌 지배하고 소유하여야할 대상으로서 자연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풍경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그토록 갈망하면서도 바람에게서 그 길을 찾고자 하지 못하는 삶은 풍경밖의 삶이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삶의 시각은 협소할수 밖에 없다. 그 협소한 시각이 결국 자연을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열등감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풍경속의 삶이라지만 살갗이 스치는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들이 빠지면 뭔가 허전하다. 실제 그는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자연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구문명과 접한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그러하듯 알래스카 또한 소유냐 존재냐로 대변되는 가치관의 혼란속을 나아가고 있다. 작가처럼 알래스카의 풍경속으로 걸어들어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치관의 충돌속에 폭발하듯 풍경 밖으로 튕겨져 나온 원주민이 있다. 젊은이들의 높은 자살율, 유전으로 하나씩 파괴되는 삶의 터전...어쩌면 제목에서 말하는 바람은 알래스카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일수도 있다. 베링해를 건너간 원시의 어느 시대부터 불어닥친 바람이 알래스카에서 생을 마친 작가를 거쳐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는 누군가에게 전해질지. 그 바람이 전하는 풍경과 진실앞에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지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6-12-20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시노 미치오의 이 책 보고 싶어집니다. 표지의 시퍼런 색깔이 인상적이네요.
여행하는 나무,보다 나아보여요.

2006-12-21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2-2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야겠어요. :)

잉크냄새 2006-12-2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 그렇죠. 책 표지부터 맘을 사로잡는 무엇인가가 있는데...호시노 미치오라는 사람, 사진뿐 아니라 튀지 않는 담담한 글이 사진만큼이나 담백합니다. <여행하는 나무>도 그의 책인가요. 한번 봐야겠어요.
속삭님 / 이거,이거 이게 얼마만인가요. 이미지가 예전의 신비스런 모습으로 바뀌었네요. 거의 신비에 가까운 일이네요.^^
사람님 / 네, 한번쯤 누군가에게 읽기를 권장해도 전혀 손색없는 책이란 생각이 드네요. 올 겨울이 가기 전에 그에게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보세요.^^

icaru 2006-12-21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지 않아선지,,, 알래스카의 바람 같은 이야기에 '바람'은 알래스카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 또한 담겨 있다는 것은 몰랐네요... 흠...
리뷰가 참 좋네요. 이래저래...꼭 한번 읽고 싶은 책이라는..

파란여우 2006-12-2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 책 잉크님이 선물해줘요. 쓸쓸한 성탄인데...(동정심에 호소하며 삥뜯기!)

잉크냄새 2006-12-26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바람은 느끼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것 같네요. 산들바람일지, 칼바람일지...읽어보세요. 괜찮은 책입니다.
여우님 / 뭐, 여기저기서 많이 받으시더만요....각계각층 연예인들이 축전을 보내면서 이 책을 안보냈단 말인가요??ㅎㅎ
 
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라사와 나오끼의 <몬스터>에 보면 60년 동안 숲에게 용서를 구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짧게 등장한다. 청년시절의 그는 맑은 사람이었다. 그가 거니는 숲속은 온갖 새들의 천국이었고 누구보다 맑은 심성의 그에게 새들이 몰려들어 앉곤 했다. 2차 대전의 발발로 게슈타포가 된 그는 당국의 명령으로 어느 청년을 쫓게 되었고 그가 거닐던 바로 그 숲에서 도망자를 사살했다. 그 이후, 새들은 더 이상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 이후 청년은 60년 동안 매일 숲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장영희 교수의 이 책도 그런 용서와 희망의 책이 아닐까 싶다. 타인에 대한 용서와 희망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그것이다. 자아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영혼마저 빼앗겨버린 우리들의 용서와 아직 그 끝자락을 놓지않고 있는 희망에 대한 글이다. 숲에게 용서를 구하는 노인처럼 우리도 저 멀리 절름거리며 뒤쳐지는 삶과 영혼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개체가 문학작품이다. 현실의 문제에서 문학작품의 세계로, 다시 현실의 깨달음과 희망으로 돌아오는 글의 구성은 문학의 가교 역활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맑고 정갈한 글의 장영희 교수가 걸어간 문학의 숲속길을 따라 한번 걸어가볼 일이다. 어느 한곳 웅크리고 있던 나의 영혼이 나의 그림자와 더불어 따라갈 것이다. 새들이 나의 어깨에 다시 앉는 그곳까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6-08-19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두고 아직 못 읽었네요. 선선해지면 읽어야겠어요. 올여름 왜 이리 일에 밀려사는 것 같은지...^^

파란여우 2006-08-19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 속에서 님을 기다리다 잊고 있던 처자 반가워 덥썩 끌어 안습니다.
어맛, 책을 끌어 안았다구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08-21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도장만 찍어놓은 책.:)

잉크냄새 2006-08-2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 선선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폭염이네요. 선선해지는 독서의 계절, 양서 많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여우님 / 이 책, 기억나시죠? 요즘은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지라, 이리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읽었지 뭡니까.
사람님 / 눈도장을 찍으셨다니 이제는 책장을 넘기실 차례군요.^^

2006-08-23 0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6-08-23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네, 다시 사진속의 구렛나루를 보고 왔어요. 역시 제가 눈썰미가 떨어져서요. 풍경은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