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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나를 물들이다 - 법정 스님과 행복한 동행을 한 사람들
변택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2년 1월
평점 :
30대 후반, 회사를 그만두고 인도 여행길에 올랐을 때, 내 배낭 속에 한 권의 책이 있었다. 범우사 문고판 법정 스님의 <무소유>였다. 내 영혼 어딘가에 덕지덕지 달라 붙어있을 욕망의 덩어리를 떨쳐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들고 다녔다. 지금 표지를 살펴보니 읽은 날짜가 연필로 적혀 있다. 한달 반의 여행 기간 동안 네 번을 읽은 모양이다. 그 당시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현재 내 삶의 방향을 볼 때 스님의 무소유, 시절 인연, 본래무일물과 같은 사상이 은연중에 흔적을 남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법정, 나를 물들이다>는 그들의 삶에서 법정 스님과 함께 가서 함께 행복했던 열아홉 분의 인연을 담은 책이다. 그의 인연은 삶이 종교의 경계에서 자유로와 주교, 목사, 스님, 원불교 교무 등 종교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사람 사귐의 경계에서 자유로와 화가, 조각가, 방송인, 도예가, 서예가 등 삶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근엄한 스님의 삶 뿐만 아니라 냉정한 겉모습과 달리 작은 인연에도 우주만큼 큰 의미를 두시는 또 다른 면모도 얼핏 보인다. 또한 조근조근 스님과의 인연을 풀어내는 그들의 삶도 스님과의 인연이 스미고 번지어 맑고 향기로운 삶으로 이어지고 있다.
거창한 다비식이나 화장 의식 없이 스님의 평소 말씀 그대로 '비구 법정(比丘 法頂)' 위패 하나 드시고 불에 드신지 어느덧 열두해가 지났다. "살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는 말씀을 몸소 보여주시고 떠나셨다. 수필가로서, 문장가로서 그가 남기 숱한 글들은 그의 완전한 죽음 뒤에도 우리의 삶을 때론 보듬고 때론 질타하며 그의 생을 더 맑고 향기롭게 기억하게 한다.
스승은 소유하러 들면 텅 빈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사라진다고 했다. 우리 필요는 대상이 아니라 쓰임새다. 의자를 가지려는 까닭은 ‘앉기 위함’ 이요, 사랑을 구하는 까닭은 ‘설렘과 끌림’때문이다. 우리 필요는 소유가 아니라, 쓸모이다. -p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