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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 2020년 제1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4월
평점 :
호펜하임 반디멘 재단 도서관은 클라우스 반디멘이 세운 156개의 도서관중 하나이다. 지역 문화의 보존과 교육 기회의 균등한 제공을 위해 전국에 세워진 도서관은 그 지역 밀착형 이미지를 감안하여 도서관 명칭을 지었다. 그림책 도서관, 영화 도서관, 아랍 문학작품 도서관에서 유추할 수 있듯 지역색과 맥을 같이 했다. 호펜하임 도서관은 153번째로 지어진 한계로 인하여 고심 끝에 결국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 Library For Nowhere Books이란 명칭을 얻게 되었다. 갈 곳이 없는 책들, 분류표에 들어가기 어려운 책들이 주로 선정되었는데 그 명칭에 타당한 수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기형적인 운영에도 도서관은 재정적인 문제에 직면했고 장서량을 늘리기 위한 타개책으로 제안된 것이 도서 기증이었다. 빈센트 쿠프만이라는 한 남자에 의해 시작된 도서 기증은 말 그대로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가 직접 타이프라이터로 친 뒤 직접 표지를 만들고 제본해서 묶은 원고, 흔히 사가본이라 부르는 책들이었다. 그렇게 모이기 시작한 지 30여년 도서관 폐관을 앞두고 정리된 빈센트 쿠프만의 컬렉션에 대한 카탈로그와 그 마지막을 같이 한 도서관 이용자들의 이야기이다.
카탈로그는 잘 씌여진 알라딘 리뷰라고 봐도 무방할 터인데 특히 기억에 남는 책은 <프로스페로의 꿈>이다. 16장(32면)의 낱장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그림의 전후는 어떤 연관성도 없어 보이고 페이지조차 적혀 있지 않다. 제본이 되어 있지 않아 부주의하면 와르르 도서관 바닥에 쏟아질 것이고 그것을 다시 끼워 넣을 독자는 16장의 그림을 이어 붙여 만들 수 있는 20조 개의 이야기 앞에 망연자실해 질 것이다. 75억 인구가 2500가지 순서로 읽어도 일치하지 않을 이야기이고 누군가 100년 동안 100가지 다른 방법으로 읽고, 그 생을 500만번 반복해도 헤아리지 못할 이야기이다.이리 다양하다 보니 우리가 하나의 책 앞에 선다는 것은 그 책의 운명과 마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책들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는 말을 떠올렸다. Habent sua fata libelli. -p63-
또 한 권의 책은 <당신이 읽을 수 없는 100권의 책>이다. 사라진 책이나 원고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은 단순한 목록과 책 표지와 서지 정보로만 구성된 책이다. 저자의 상상의 목록만 적혀 있을 뿐 아직 구체적으로 씌여지지 않은 책이니 아마존이나 구글에서 검색 불가능한 책들이다.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에 어디에도 없는 책들의 목록이 수서됨은 당연한 일일지도. 책 제목과 서지 정보를 읽고 관심을 가질 누군가에 의해 책의 운명은 정해진다. 결국은 쓰여질 운명이다.
당신이 어떤 책을 찾고 있는데 그 책이 세상에 없다면 그 책을 써야 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는 것. -p254-
이 도서관과 사가본의 운명은 알라딘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직접 타이핑하고 탈고하여 완성한 글들, 아무도 출판해주지 않는 우리 삶의 사가본, 서재 이웃외에 누구의 피드백도 없이 가만히 먼지가 쌓여가는 글들, 결국 어디에도 없는 글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는 곳. 알라딘. 언젠가 이 곳의 운명이 다하는 날 누군가에게 남겨질 익명의 글들에게 바치는 알라딘과 이웃 서재들의 헌사가 아닐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