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 기후 붕괴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케이트 마블 지음, 송섬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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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기후학자인 저자는 트로이의 예언자 카산드라의 이야기로 책의 첫 장을 시작한다. 트로이의 공주인 카산드라는 어릴 적 우연한 사고로 예지력을 얻었으나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한 댓가로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는 저주에 걸린다. 트로이는 목마로 인해 멸망할 것이니 성으로 들이지 말고 태워버릴 것을 주장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비운의 예언자이다. 저자는 기후 위기에 직면한 현재의 지구와 기후학자인 자신의 입장을 결국 멸망해버린 트로이와 예언자 카산드라에게 감정 이입하며 그 고단한 심정을 풀어가고자 한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은 이미 익숙해서 무감각해진 단어가 되어 가고 있다. 정치적 입장과 경제적 제약 등의 문제로 공동의 목표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저자는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외피를 빌려 기후 위기의 지구를 이야기한다.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경이로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위기를 외면하고 왜곡하는 이권 단체들에 대한 분노, 기후 위기의 진범인 인간으로서의 죄책감, 기후 위기가 몰고 올 자연 재해와 그로 인해 인간 사이에 저질러질 죄악에 대한 두려움, 인간으로 인해 사라질 자연과 생명에 대한 애도, 오존층의 보호 등 지금껏 인간이 이루어낸 작은 성공으로 말미암은 실날같은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 등 아홉 가지의 감정으로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카산드라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신화 속 카산드라의 저주는 구혼을 거절당한 찌질남 아폴론에 의하여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기후 위기 속 카산드라의 저주는 누구에 의하여 저질러지고 있을까. 현재 기후 위기의 대책으로 거론되는 플랜A는 기온의 상승을 초래하는 온실가스의 배출을 중단하는 것이고 플랜B는 지구 공학적 방법으로 지구가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플랜A는 무조건 가야 할 길이고 플랜B는 인간 오만함의 극치라고 평가한다. 플랜B에 해당하는 공학적 방법으로는 지표면에 도달하는 태양 복사열을 조절하는 방안과 탄소 순환을 조작하는 이산화탄소 제거의 방안 등이 거론되는데 이 방법들은 아직 유의미한 규모로 시행되지도 않을 뿐더러 극도로 위험한 불완전 요소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학적 방법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대기업과 같은 이권 단체가 탄소 제거라는 먼 미래의 전망을 이용해 현 상태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또한 그들이 기후 위기의 불확실성을 강조하여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을 통념화하려는 의도라고 분노한다. 그것이 그들이 걸고 있는 저주이다.  


신화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 카산드라의 저주를 끝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저주의 멍에를 지고 많은 이들이 애초에 없던 길을 걸었다. 그들의 발자국 뒤로 남은 그 길은 이제서야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기후 위기는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기적 같은 구원은 없다. 다만 기후 모델에는 인간이 빠져 있다. 낙관적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 인간만이 유일한 변수라는 말이다. 지구의 미래는 인간의 두 손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인간만이 희망이라는 뻔뻔한 자기기만적 망상에는 빠지지 말자. 다만 결자해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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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6-09-18 0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강의를 다닐 때마다 카산드라가 된 기분을 느낍니다. 매년 반복되는 폭염을 비롯한 기후 재난을 예시로 들면, 그나마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하는데, 곧이어 그래서 우리가 뭘 해야 하나요? 라고 묻는데, 뭐라 답하기가 참 어렵죠. 요즘은 인공지능을 현명하게 쓰시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쓸데없는 질문 때문에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력과 냉각수가 어마어먀 하거든요.

잉크냄새 2026-09-19 09:52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환경 활동가이신 감은빛님의 입장도 떠올려보곤 했습니다. 작가의 입장이 곧 감은빛님의 입장이겠구나 싶더군요.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더위처럼 곧 사그라들어버리겠죠. 결국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는 악순환이 지속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데이터센터는 경제성 없는 것도 확인되었고 엄청난 전력과 수자원을 필요로 하고 열과 소음 발생등 계속 파열음이 나는데도 우리나라는 지자체마다 최우선 과제로 채택하는 아이러니한 짓거리를 하고 있네요.

icaru 2026-10-07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팔 산사태 홍수 재난도 사실 ㅠㅠ 네팔 같은 개발도상국은 탄소 배출 책임이 미미함에도 지리적 취약성 때문에 기후 위기의 가장 파괴적인 피해를 가장 먼저 감당하네요..... ㅠㅠ ‘분노‘와 ‘죄책감‘이 올라와요. 파리 기후 협정에서 탈퇴하고 화석 연료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트럼프부터 어떻게 좀. 책임 있는 자의 외면과 무고한 자의 고통입니다.

잉크냄새 2026-10-07 21:07   좋아요 0 | URL
기후 위기는 취약한 계층부터 서서히 부셔 나가는 중입니다. 결국에는 모두가 피해자가 되겠지만 관을 보기 전까지 그 행보를 멈추지는 못할 것 같아요. 일인당 탄소 배출량 1위인 한국도 먼저 돌아보고 앞장서야 하는데 우리부터 그러지 못하네요.
전 인간이 당하는 피해는 인과응보적인 성격이 강한데 뭇생명들이 아무 이유없이 죽어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애도가 크게 작용하네요.
트럼프는 인간 아니기에 패쓰....그냥 부두교 주술로 저주만 내리고 있어요.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
맥스 디킨스 지음, 이경태 옮김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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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스탠드업 코디디언인 저자가 자신의 결혼식에 신랑 들러리를 부탁할 친구가 없다는 충격적인 현실을 맞닥뜨리고 스스로의 우정을 돌아보며 통찰해 낸 남성 우정에 대한 글이다. 개인의 경험 위에 인문학적,사회학적 분석을 더해 현대 사회 남성 우정의 실질적인 문제점을 분석하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주제를 코미디언다운 재치있는 글과 스토리텔링으로 큰 몰입감을 선사한다. 다만, 블랙코미디의 특성상 변기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음담패설류의 화장실 유머는 철 지난 개그 콘서트의 아련한 몸부림으로 비춰져 아쉬울 수도 있다.


작가는 그의 경험에 근거해 남성이 나이 들수록 친구가 사라지는 이유를 찾아내는 여정을 떠난다. 과도한 남성성의 과시로 인한 관계의 균열(거친 말과 행동으로 서로 상처를 주면서도 남자라는 꽤 튼튼한 갑옷을 걸치고 파탄날 때까지 버틴다), 감정 표현을 두더지 잡기 게임으로 인식하는 유해한 남성성(분노라는 감정 외에는 몸 속에 지방처럼 저장하고 활활 태운다.다른 감정은 다 때려잡고 오직 분노만이 표출된다), 관계의 지속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감정 노동의 결핍(능동적으로 만남을 주선하는 감정 노동을 회피하며 감정 노동의 많은 부분을 아내나 여친에게 위임한다) 등 남성성 자체의 문제와 성적 요소의 접근 방식 차이에 의한 여사친 관계 문제(전부는 아니지만 남녀간 성적 요소 차이는 관계 단절을 유발한다), 소설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한 관계 자체의 소실(소통이 아닌 은둔과 고립을 위해 미디어를 이용하기도 한다), 인간-AI 간의 새로운 관계의 부상(부족한 인간 관계의 대체가 아닌 새로운 관계의 형성으로 받아들여진다) 등 사회적 문제까지 다방면에 걸쳐 접근한다. 


우리는 우정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한다. 화초처럼 가꾸고 돌보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잡초처럼 봄만 되면 언제나 다시 피어나는 다년생 작물로 여긴다. 우정도 늙어가고 낡아간다는 것을 잃은 후에야 겨우 알아낼 뿐이다. 공기처럼 나를 감싸고 있는, 다만 인지하지 못하는, 언제라도 부르기만 하면 달려와 줄 것만 같은 영원한 존재도 아니다. 인생의 커다란 결단과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하는 히든 히어로도 아니다.때론 술에 취해 '저 친구는 나를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어!' 라고 호기롭게 말한다. 그 충성심과 관대함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정은 인생이 상처 입었을 때 홀연히 나타나 큰 감동을 주는 이벤트가 아니라 같이 즐길 수 있는 매일매일의 만남과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 


작가는 결국 그의 이십대 가장 절친인 두 여사친을 결혼식 들러리로 결정한다. 그의 우정 여정에서 다시 만난 친구들과는 '밥 한 번 먹자' 라고 말하면 그냥 인사치레가 아닌 밥 한 끼 먹는 걸로, '술 한잔 하자' 라고 말하면 그냥 술 한잔 하는 걸로 인생의 방향을 튼다. 아니, 밥 한번, 술 한잔의 인사겉치레 성향은 동서양이 똑같구만! 어찌 되었든 그 밥과 술이 생명뿐 아니라 우정을 지속하는 삶의 영양분임을 결혼식 들러리 고찰을 통해 알아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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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6-07-16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정이 있는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죠. 얼마 전 친구의 딸 결혼식에 갔다 왔는데 신경을 많이 쓰게 되더군요. 결혼식장을 가기 위해 미리 파마를 하고 교통이 불편한 데도 감수하고 갔다 왔어요. 그 친구를 위해 뭔가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이런 것도 우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성들의 우정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잉크냄새 2026-07-17 18:46   좋아요 1 | URL
우정도 세심한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하죠. 리뷰에서 남성성으로 표현된 부분의 함축적 의미가 아마도 그런 세심함의 부족도 포함할 겁니다. 남성들의 우정도 분명한 장점이 있겠지만 여성 우정이 지니는 섬세한 감정 교류 측면에서는 확실히 부족해 보입니다.

감은빛 2026-07-17 15: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 주위에는 믿을만한 친구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진심으로 함께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몇 가지 어려움을 긴 시간 겪고 있는데,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한편으로 친구 라는 개념에 대한 제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나이를 과도하게 따져서 동갑인 경우만 친구로 보고, 한 살이라도 많으면 선배(혹은 형이나 누나)로, 한 살이라도 어리면 후배(혹은 후배)로 생각하는데, 사실 사회에서 서너살 정도는 친구로 지내도 아무 문제가 없잖아요. 길게는 10년 이상 차이가 나도 친구로 지낼 수 있겠지요.

잉크냄새 2026-07-17 18:53   좋아요 2 | URL
깊은 우정을 나눌 친구가 많다는 건 확실히 행복한 일이죠. 아마 활동가로 지내시며 함께 고생한 연대의 기억이 그 우정을 더 돈독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항상 어디에서나 기수를 따지는 사회적 현상이 반영된 결과죠. 나이마저도 계급화하고 싶었나 봅니다. 중국만 해도 선배, 후배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더군요. 자연스럽게 ‘펑요우‘ 라고 소개합니다. 나이에 대하여 참 관대하고 개방적입니다.

icaru 2026-10-07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 이거참 ㅋㅋㅋㅋ 결국,, 20대에 두 여사친을 들러리로.. 아이러니 하네요. 남성 뿐일까요? 저도 이 리뷰 읽으면서 1년에 두번 만나는 고딩적 내 절친 둘을 떠올렸어요. ˝그러나 우정은 인생이 상처 입었을 때 홀연히 나타나 큰 감동을 주는 이벤트가 아니라 같이 즐길 수 있는 매일매일의 만남과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 ˝한다 이거늘. 격주로 만나서 동네 둘렛길 산책하듯 등산하듯하는 아이친구 엄마가 실은 절친에 가깝네요. ㅎㅎ

잉크냄새 2026-10-08 20:49   좋아요 0 | URL
책제목에서 남자를 여자로 혹은 인간으로 바꿔도 아주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아요. 물론 남성성을 언급했다시피 남녀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겠지만 우정의 가장 본질이라 할 만한 만남의 일상성에 대한 부분은 변함이 없을 듯 합니다. 우정, 쉬워 보이면서 참 어려워요. ㅎㅎ
 
죽음, 이토록 눈부시고 황홀한 - 삶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레이먼드 무디 지음, 배효진 옮김 / 서스테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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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와 사후 체험 후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 경험이 그들에게 다시 주어진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계기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종교의 발생 원인이 일정 부분 죽음에 대한, 엄밀히 말하면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면, 죽음 이후에도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소멸이 아닌 다른 존재로의 이행일 수 있음을 직접 경험한 것 만으로도 삶은 충만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직접 임사 체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일 학년 겨울 방학, 고향과 먼 이역만리 전남 광양 제철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일당 2만원에 생명수당 3천원. 생명수당은 고압전선 설치와 고공 위험 작업에 대한 것이었다. 50미터 이상 수직으로 올라간 엘리베이터 크기의 배전관 안에서 전선을 당겨 올리던 어느 날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만 잠시 스쳐갔다. 순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몸은 추락했는데 나는 두둥실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팔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누운 자세로 깃털이 산들바람에 가벼이 날아오르듯 몸은 둥실둥실 떠올랐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눈부시게 하얀 빛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아래를 보니 전선에 팔과 다리가 걸린 내 몸이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냥 살짝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 계속 하늘로 올라갔는데 지금껏 그런 평화롭고 아늑한 기분은 처음인 듯 했다. 먼 곳에서도 나처럼 올라오는 하얀 빛 덩어리들이 보였다. 그때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낯익은 소리였다. 어, 저건 내 이름인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아래로 순식간에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고 번쩍 눈이 떠지며 갑자기 주의가 어두워지고 겨울의 한기가 느껴졌다. 전선에 걸쳐진 다리가 풀리며 몸이 미끄러지는 찰나 전선을 움켜 잡았다. 이름을 부르며 올라와 등을 받친 친구의 눈은 눈물 범벅이었다. 이 오래된 기억은 공포나 두려움으로 남아있지 않다. 그때 가벼이 올라가던 깃털 같은 순간의 묘한 평화로움과 아늑함이 아직도 기억난다.


임사와 사후 체험이 그다지 일반적이지 못한 것은 그것이 희박한 경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시선이 환각이나 망상 ,심지어 정신병과도 같은 병리적 현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만난 체험자들은 그들과 유사한 경험자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기도 한다. 책에서 언급되는 체험의 양태는 인종,지역,시대,성별을 막론하고 거의 유사성을 보인다. 온전한 평온함, 처음 듣는 이상하고 불편한 소리, 어두운 미로를 통과하는 느낌, 몸과 영혼의 분리, 몸을 감싸는 의문의 하얀 빛... 내가 경험한 임사의 경우 소리와 어두운 미로를 통과하는 경험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그 동안의 영화나 책 등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학습화된 어떤 경험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삶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공간이 실재하기에 유사한 경험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증명할 수 없는 일이기에, 죽음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개별적이기에 옳고 그름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죽음 역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경험에 기인한다. '우리가 살아있을 땐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수 없고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역설은 경험할 수 없기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들이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임사,사후 체험자들은 죽음을 경험했기에 그 죽음이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고통과 두려움으로 대변되는 지옥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서, 영원한 소멸이 아닌 다른 존재로의 전이거나 더 높은 의식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는 것에서 위안을 받는다. 오히려 삶보다 평화로왔던 그 경험에서 남은 생의 의미를 다시 찾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죽음은 개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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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5-21 2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거에 특별한 경험을 하셨네요.
크게 다치신 건 아니었는지요?
임사와 사후 체험이 사실 약간 믿기지 않아요. 무섭기도 하고요.

잉크냄새 2026-05-21 23:38   좋아요 2 | URL
아마 저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 책의 이야기들이 좀 허황되게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와 그들 사이 경험의 유사성으로 인해 그때 제가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임사 체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상상만으로는 무서운 이야긴데 제 경험상 아늑하고 포근했던 기억이 더 남아요. ^^

차트랑 2026-05-22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저의 절친 한 사람도 같은 종류의 경험을 했는데, 하필 저는 이를 옆에서 목격을 했습니다.
친구의 경험담도 잉크냄새님의 글과 거의 유사합니다.

저는 현대 의학의 도움을 많이 받아 연명을 해왔기에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특히 흥마로운 글이었습니다.

좋은 하루되십시요 잉크냄새님.








잉크냄새 2026-05-22 21:27   좋아요 1 | URL
저도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란 부분이 많은 이들의 체험의 유사성이었습니다.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떤 확신을 주기도 하지요.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그런 이미지가 왜곡된 기억의 잔상으로 남은 것이라는 일반적인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을 겁니다. 직접 경험했기에 전 사후 다른 세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차트랑 2026-05-23 07:14   좋아요 1 | URL
이승과 저승은 서로 짝으로서
이승에 시공이 있는데 저승에는 없겠는가 싶은게 저의 무지한 생각입니다.
그쪽이라고 더 특별할 것도 없다는게 또한 저의 무지한 생각입니다.

염라대왕께서 저를 꼬나보고 계실지라도
전혀 겁이 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아마 잉크냄새님께서도 그쪽이 두렵지는 않으실듯요~




잉크냄새 2026-05-24 20:14   좋아요 1 | URL
아직 죽음을 두려워할 시기는 아니긴 합니다. 그때가 되어서도 영혼의 존재를 믿어 두렵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라지든 소멸하든 전이하든 거듭나든 이번 생이 끝난다는 것은 변함없지 말입니다.

감은빛 2026-05-23 0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신기한 경험이네요. 그리고 책에 유사한 경험담이 많다는 것도 신기하구요.

저는 오래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차에 부딪혀 튕겨나가 바닥에 떨어지며 아주 짧은 순간 아무것도 안 보이다가 다시 시야가 돌아오는 경험을 했었는데, 이게 좀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아예 의식을 잃기도 하지만, 의식을 잃기 전 단계에서는 감각들을 하나씩 잃는구나 하고 깨달았고, 그중 가장 확식한 감각상실이 바로 시각상실이라고 느꼈어요. 그후에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인지 아주 가끔 어지러움과 함께 시각을 상실하며 바닥에 주저앉게 되는 일들이 몇 차례 있었어요.

잉크냄새 2026-05-24 20:20   좋아요 1 | URL
저도 책을 읽으며 제가 한 경험과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보편적 사실은 아닐지라도 경우의 수가 많아지면 확률도 올라가는 것이니 어떤 확신의 감정도 살며시 고개를 들긴 하더군요.

감각 상실...임사체험처럼 직접 겪어보지 못하면 믿지 못하는 현상들이 많죠. 교통사고 후유증 무서운 것인데, 건강 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마힐 2026-05-25 0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임사 체험, 귀중한 경험이시네요.
저는 꿈에서 가끔 죽는 경우도 있는데, 죽을 때 참 난감 하더라구요.
그런데 다행히 꿈이야... 어찌 그리 안도감이 나는지.... ㅎㅎ
저는 아직 죽음이 두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죽음이 오면 담담히 맞이할 것 같기도 해요.
뭐 그것도 죽어봐야 아니까...
암튼 잉크냄새님은 오래 오래 사십시요!

잉크냄새 2026-05-25 21:11   좋아요 1 | URL
체험과 별개로 죽음이 두려운 건 본능일 겁니다. 아무리 철학적, 종교적 사유로 무장하여도 이 세상에서 사멸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억누를 수는 없을테니까요.
참, ‘오래 오래‘는 제 삶의 모토가 아닙니다. ‘제정신으로 육신을 놀릴때까지 적당히‘ 가 모토입니다. ㅎㅎ

2026-09-20 0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9-20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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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모 레비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절멸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야만의 시대, 폭력의 시대를 증언하는 작가가 되었다. 기억해내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 여기고 사회가 망각해가는 것을 경계한 그가 1987년 어느 날 자살을 했다. 그리고 10년 후 재일 조선인 2세인 저자는 토리노로 향했다. 쁘리모 레비의 삶과 죽음, 그의 사상, 증언하고자 했던 시대와 좌절의 시간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디아스포라인 레비의 삶은 또 다른 디아스포라인 저자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 레콩키스타 시기 이탈리아로 이주한 그의 조상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착했고 유대인이란 그저 사라져가는 습관이나 문화에 불과했다. 2차 대전 초기에도 다른 유럽 지역과 달리 유대계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다. 그에게 유대인이라는 것은 그저 주근깨가 있고 없고 정도로 생각할 만큼 의식 자체가 희박했다. 그러나 인종법 반포 후 교수와 학우들이 대부분 그에게서 멀어져 감을 느꼈을 때 그는 공동체라는 삶 속에서 자신이 점점 불순물처럼 분리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찌와 인종법은 그렇게 유대인과 인종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인간'이라는 보편성 앞에서 '유대인'이라는 것은 '주근깨'가 있고 없는 정도의 차이라고 믿고 있었다. - <주기율표> p379 - 


아우슈비치는 그에게서 이름을 박탈했다. 이름의 박탈은 인간이 아닌 사물로의 전환이었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그런 지옥에서 그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체험하고 이겨낸 일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증거를 가지고 살아남아 야만의 시대를 증언하기 위한 의지였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그가 인간으로 살아온 문명의 형식을 전부는 아니라도, 잔해만이라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단테의 <신곡>을 외우고, 동료가 된 프랑스인에게서 프랑스어를 배우며 문명의 틀을 유지했다. 그렇게 그는 살아남았다. 


우리는 노예로서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박해를 받으며 분명 죽음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따라서 전력을 다해 그것을 지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후에 남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동의를 거부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물론 비누가 없고 물이 더럽더라도 세수를 하고 겉옷으로 닦아야만 한다. -p152-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후 그는 증언을 위한 삶을 살아갔다.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한 '장 아메리'의 비극적인 자살에도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뮐러'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레비가 어느 언론에 기고한 글을 보고 연락한 그는 화학자인 레비가 그의 전공으로 말미암아 수용소에서 만난 독일인이었다. (문득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영화의 레싱 박사가 떠올랐다. 귀도의 절박함이 그에게는 그저 수수께끼에 불과했으니까.) '뮐러'는 나찌와 자신을 철저히 분리하고, 무지와 무관심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독일인의 집단적 책임이 아닌 나찌라는 개인들의 일탈로 치부하고, 이제 원한이 아닌 공생을 말할 것을 부드럽게 종용하며 관용을 이야기했다. 참혹한 진실은 세월 앞에 무뎌져 갔다. 피해자가 오히려 부당한 의심과 무관심과 싸워야 했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반 독일 시민은 무지한 채 안주하고, 그 위에 껍질을 씌웠다. 나찌즘에 동의한 것에 대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무지를 이용한 것이다. 눈,귀,입을 모두 닫고 눈앞에서 무엇이 일어나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은 공범이 아니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p221-


1987년 그는 자살했다. 유서가 없음으로 그 죽음의 의미는 유추될 수 밖에 없다. '장 아메리'처럼 과거의 추악한 기억에 무너진 것인지, '뮐러'로 대변되는 무지와 무관심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무장한 가해자에 대한 절망인지, 팔레스타인을 침략한 이스라엘 시오니즘 유대인에게서 또 다른 나찌의 잔영을 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증인으로써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자기 본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우슈비츠로 대변되는 잔혹했던 야만의 시대를 생존으로 증언했다면 망언과 비양심으로 잊혀지는 망각의 시대를 죽음으로 고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Let our fate be a warning for you (우리의 운명을 당신들을 위한 경고로 삼아라). -p285- 어느 수용소 인골이 쌓인 영묘의 표지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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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1-29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 서경식 작가는 프리모 레비 빠였던 듯합니다~ 책3권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되더라구요..^^;;

잉크냄새 2026-01-29 20:25   좋아요 1 | URL
아마도 디아스포라라는 공통 분모가 두 분을 엮은 듯 합니다. 덕분에 저도 서경식 교수와 쁘리모 레비의 책을 다수 접하게 된 계기가 되었네요.

감은빛 2026-01-30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군대에 입대하면서 속으로 나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버텼습니다. 만약 내가 인간인데도, 지금 이런 부당한 상황을 하루종일 겪어야 한다면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군대에 있는 동안 내 인권은 끊임없이 제한당하는 처지에 처해도 인간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하니 정말 버틸만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저를 엄청 괴롭혔던 고참이 제대하면서 저에게 가볍게 사과를 했는데, 그게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뭔가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어떤 생각이 갑자기 달라지면 정신이 입은 상처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26-01-30 21:49   좋아요 0 | URL
훈련소에 들어가면서 올빼미 번호를 부여받는 순간부터 훈련병들은 사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나 봅니다. 오죽하면 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요.
고참의 사과가 가벼워 보인 것은 그것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뱉어낸 가벼운 말에 불과한 이유가 아닐까요. ‘군대라는 특수 사항이니 이해해라.‘라는 말로 그 고참은 벌써 자신을 관대한 우위적 입장에 위치시켜 버리니까요. 그걸 이해 못하는 사람을 관대하지 못한 편협한 인간의 위치로 전락시키고요.
 
다시 만난 어린왕자
장 피에르 다비트 지음, 김정란 옮김 / 이레 / 199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만약 금발머리를 가진 어떤 사내아이 하나가

 당신에게 다가와 미소를 지어 보인다면,

 그리고 말을 건네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아이가 누군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면, 제게 친절을 베풀어 주십시오.

 날 이토록 슬픔에 잠겨 있게 내버려 두지 마시고

 그 아이가 돌아왔다고 편지를 써서 알려 주십시오...>


여우와의 대화에 워낙 주옥 같은 글들이 쓰여있다 보니 어린 왕자가 사막에 쓰러져 별로 돌아가고 난 후, 쌩텍쥐베리가 그를 다시 만나고픈 마음에 책 말미에 절절하게 쓴 이 편지를 잊고 산다. 어린 왕자만 남고 작가는 사라진 것이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소설의 형태일 수도 있지만 어린 왕자의 소식만 기다리는 쌩텍쥐베리 입장에서는 가슴이 타 들어갈 일이다. 가슴 떨리며 몰래 남겨둔 연서를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으니 말이다. 


이 책은 책 말미의 편지를 포착한 작가가 어느 섬에서 어린 왕자를 만나고 그가 돌아왔음을 알리는 편지의 형태를 빌려 전개하고 있다. 답장은 어린 왕자의 별 B612에 우연히 도착한 써커스단에서 탈출한 호랑이로부터 시작된다. 호랑이로부터 양을 보호하기 위해 호랑이 사냥꾼을 찾기 위해 양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지구에 도착하기 전 여러 행성을 전전한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지구별 인간 군상들을 만나고, 드디어 작가를 만나게 되는 여정을 그린다. 어린 왕자의 플롯을 그대로 빌려와 사용하고 곳곳에 오마주 형태의 글이 숨어있어 점잖은 패러디 혹은 답장을 모방한 표절 아니야 할 수도 있겠지만, 답장을 받은 쌩텍쥐베리가 '이건 어린 왕자가 아니야' 라고 말할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토록 바라던, 아무 말 없이 미소를 머금은 금발머리 소년의 소식을 전해주는 친절을 베풀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당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답장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또 다른 편지인 셈이다. 어여 우편함을 뒤져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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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11-09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인 줄 알았어요. 부분적으로 좋은 문장만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라 재독해야 할 책들 중 하나예요. 저에게는.
이 책은 어린 왕자 그 후의 이야기인 셈이군요. 궁금합니다!!!

잉크냄새 2025-11-09 20:26   좋아요 1 | URL
어린 왕자 이후의 이야기보다는 우리가 만난 어린 왕자가 더 적합할 것 같아요. 쌩텍쥐베리가 묘사한 어린왕자의 모습을 더 기억해둬야겠어요 문득 지나쳐 버릴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