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創자에 대하여 

 

옥편을 뒤지면 

비롯할 창이다. 

옥편풀이와는 달리 

創자에는 상처란 뜻도 있다. 

創傷이라는 의학 용어로도 쓰인다. 

창조와 상처가 

한 글자 안에 동거하고 있다. 

창조하는 정신은 언제나 상처입는다. 

한자는 그것을 알고 있다. 

 

날개를 다친 새는 

더 멀리 날기 위하여 

다시 어둠의 벼랑을 탄다. 

휘몰아치던 비바람이 그친 다음날 

섬의 벼랑 아래 떨어져 있는 

수많은 바다새의 흰 주검들를 보라. 

 

고호의 해바라기가 내뿜는 불꽃의 

눈부신 암흑을 보라. 

기원전 십수세기 

은나라 유적에서 발굴되는 

뼈에 새겨진 최초의 기호가 

태어날 때의 아픔을 

글자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창조하는 정신은 언제나 

피를 흘린다. 

 

-허만하詩人 

 

*********** 

잉끼님, 나 목 아픈거 무릎쓰고 시를 베끼오. 아끼고 고이 간직하던 이 시를 베끼오. 

20110115ㅌㅂㅊㅁ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11-01-23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카테고리에 시가 실리는 것이 얼마만이지요?
저도 목 아프도록 낭독해보도록 하지요.

2011-01-23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녀와 헤어지고 - 고흥준

 

어느 골목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 은새잎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그때가 유월이었는지, 칠월이었는지, 하루종일 비가 왔는지, 비가 오다 잠시 그쳤던 저녁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네. 내가 기억하는 건, 당신의 창가에서 흘러나오던 작은 라디오 소리. 초승달이 낡은 지붕 위로 살금살금 걷던 소리.


때로는 어느 골목이었는지 모두 기억할 수 있네. 당신이 잠시 걸음을 멈춰 처음으로 나를 돌아본 길이었는데 그날은 고양이들이 낮은 담장에 나란히 앉아 낯선 이를 구경하던 밤, 아직 밤이기엔 너무 일러 낮잠을 실컷 잔 늙은 호박잎들이 옹종옹종 수군거리던 저녁이었네. 그때 사랑은 참 다정도 하여 반짝거리는 심장을 내게 주었지.


그 밤을 지나는 동안 젊었던 몸뚱이는 참으로 쉬이 늙어 흐느끼던 울음으로도 추억은 남질 않았네. 고양이들의 밤도, 호박잎들의 밤도, 은새잎 가벼이 지던 밤도, 당신이 안녕하며 뛰어갔던 골목에는 무엇 하나 남질 않았네. 그 길에 이리 늙은 몸만 홀로 남아 옛 소리를 듣던 귀는 자꾸 닫혀가고, 당신의 이름 석 자를 담벼락에 쓰다가 주저앉았던 그 골목에, 스물 몇이었던 세월만 고스란히 남았네.


 


*

 

제 서재보다는 잉크냄새님의 서재에 더 어울리는 시라서...

선물로 드립니다 :)

사진은 제가 몇년 전에 홍대 한 골목에서 찍은 거예요. 담벼락 그림이 하도 예뻐서 ^^

 

- 체셔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스탕 2007-07-12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에서 입체감도 느껴지는게 참 정겹네요 ^^

stella.K 2007-07-1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지금도 가면 볼수 있으려나? 잉크님이 부러워요!!

비로그인 2007-07-12 11:03   좋아요 0 | URL
2,3년전에 찍은 건데요, 아마 일부러 다른 그림으로 덧칠하지 않은 한은
있을법도 한데...^^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

잉크냄새 2007-07-1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냥 / 이거 황공무지로소이다. 이런 글을 만날때마다 예전의 펌 기능이 간절해요. 제 페이퍼의 "우물에서 퍼올린 낭만"이 펌글 전용이었는데...하여간 멋진 시 고맙소.

rainer 2007-07-12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정말 근사한 그림이군요 ^^

프레이야 2007-07-1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담벼락 그림이 행복한 기운을 팍팍 내뿜네요.
오,순,떡!! 저 아이 붉은 혓바닥 좀 보세요..^^

잉크냄새 2007-07-1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니어님 / 반가워요. 정말 근사한 그림이죠?
혜경님 / 하하, 오,순,떡이 뭔가 했네요. 오뎅,순대,떡뽁이. 저리 해맑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지는것 같네요.

누에 2007-07-2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별 만들어갑니다.

잉크냄새 2007-08-07 12:54   좋아요 0 | URL
노란별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이병률

 

 
빈집으로 들어갈 구실은 없고 바람은 차가워 여관에 갔다
마음이 자욱하여 셔츠를 빨아 널었더니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눈물 같은 밤
그 늦은 시각 여관방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옆방에 머물고 있는 사내라고 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왜 그러느냐 물었다
말이 하고 싶어서요 뭘 기다리느라 혼자 열흘 남짓
여관방에서 지내고 있는데 쓸쓸하고 적적하다고

 

뭐가 뭔지 몰라서도 아니고 두려워서도 아닌데 사내의 방에 가지 않았다
간다 하고 가지 않았다

 

뭔가를 기다리기는 마찬가지,
그가 뭘 기다리는지 들어버려서 내가 무얼 기다리는지 말해버리면
바깥에서 뒹굴고 있을 나뭇잎들조차 구실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셔츠 끝단을 타고 떨어지는 물소리를 다 듣고 겨우 누웠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
온다 하고 오지 않는 것들이 보낸 환청이라 생각하였지만
끌어다 덮는 이불 속이 춥고 복잡하였다


 

 

 

부탁하신 셔츠빠는 시예요 ㅎㅎ
이시 알고 있으실거 같아서 일부러
댓글안에 제목을 `제목아닌것`처럼 넣어놓았는데.
^^


가끔그럴때 있지 않나요?
아무도 없는 곳으로 훌쩍.

처음부터 혼자라는것에 기대어 타기로 작정한 기차인데.
발차소리가 들려오면


 정말로 이상하게.
홀가분한보다 더한 외로움이 밀려오쟎아요.







그때 내옆에서 잠을 자거나 신문을 보거나.

하는 낯선사람.
단지 우리에게 인연이라고는 도착시간까지
동석하는것 일뿐인데
역을 나서는 순간
다시는 못볼지 모르는  남남일뿐인데

 

그래도.
어색함을 비집고 한번쯔음 묻고 싶은말



 

야심한밤 귀뚜라미아가씨에게
건네고 싶으셨을거라고 내심짐작하는
그말.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07-0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야기할 수 있어요 :)

잉크냄새 2007-07-05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춤인생님 고마워요. 이병률 시인의 <바람의 사생활>에 실린 시로군요. 저도 이시 괜시리 마음에 남아 다시 읽어봐야지 하고 목차에 표시해놓은 시네요. 읽을 당시에 몇번을 읽어봤던 시죠. 뭐라 말할수 없는 여운이 머물던 시...

춤추는인생. 2007-07-05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네~ 언제든 이야기할수 있어요
지금도 하고 있쟎아요 이렇게^^

잉과장님 `뭐라 말할수 없는 여운이 머물던 시` 네 그 시 맞아요.^^
그때 제 옆좌석에서 시한번 읽고 숨한번 크게 들이쉬며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남자. 혹시 잉과장님?ㅎㅎ

은비뫼 2007-07-09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잉크냄새님이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시 마음에 닿네요.

잉크냄새 2007-07-0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아마 책은 떨구고 침 흘리며 창문에 머리 꽁꽁 부딪히는 사람이 저일겁니다.ㅎㅎ

은비뫼님 / 그죠? 그의 시집 "바람의 사생활"을 읽으면서 무심히 넘어간 시를 춤인생님의 글을 통해 하나둘 다시 느끼고 있지요.

icaru 2007-07-2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음악이 흐르고 있는 것이었던 것이었떤 것이군요~!!

잉크냄새 2007-08-07 12:55   좋아요 0 | URL
이제서야 눈치챘던 것이었던 것이었떤 것이군요.
 

헐거워짐에 대하여
- 박 상 천-

 

맞는다는 것은

단순히 폭과 길이가

같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오늘 아침,

내 발 사이즈에 맞는

250미리 새 구두를 신었는데

하루종일

발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어요, 맞지 않아요.

 

 

맞는다는 것은 사이즈가 같음을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어제까지 신었던 신발은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맞는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 헐거워지는 것인지 모릅니다.

서로 조금 헐거워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편안해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게지요.


이제, 나도 헐거워지고 싶어요.

헌 신발처럼 낡음의 평화를 갖고 싶어요.

발을 구부리면 함께 구부러지는

헐거운 신발이 되고 싶어요.

 

 

 

*

 

진작부터 시 선물 한 번 드리고 싶었는데 오늘 생각이 나서요.

아마, 잘 아시는 시겠거니 하지만 그래도 한 번 소리내어 읽어주시기를.

헐거운 신발 같은 지인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 체셔고양이 드림.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07-07-03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 참 좋으네요. 체셔님이 잉크냄새님께 드리는 선물이지만
저도 간접적으로 받은 것이나 다름 없어요. 이렇게 낭송해 보고
가니까요..^^

비로그인 2007-07-0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혜경님 감사합니다.
헐거운 신발, 하니 격변하는 지금의 알라딘 생각이 나서...

잉크냄새 2007-07-03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저에게 온 선물을 먼저 뜯어보셨네요.ㅎㅎ 낭송하신 낭창낭창한 목소리의 여운이 남아있는듯

체셔냥 / 헐거운 신발같은 지인,,,감사드립니다. 저도 헐거워 편안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죠. 헐렁해 우스운 사람이 되지 않도록....ㅎㅎ

비로그인 2007-07-04 09:33   좋아요 0 | URL
신다 남은 운동화가 있으면 택배로 부치겠습니다 ㅋ~

잉크냄새 2007-07-04 13:06   좋아요 0 | URL
역시 왕발인가 봅니다.
 

  숲

                                                                                                                             - 김진경

오늘 숲길을 걸었다. 간벌을 위해 닦아놓은 길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여기저기 흙이 무너진 곳 새로이 흐르는 작은 개울물 간혹 베어진 통나무를 만나곤 한다. 숲 깊이 들어가노라면 어느새 나무들의 향기에 싸이고. 이 향기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다시 베어진 통나무 더미를 만나 숨이 멎듯 발걸음을 멈춘다. 진한 향기는 베어진 나무의 생채기에서 퍼져 숲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의 상처에서도 저렇게 향기가 피어날 수 있을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누아 2007-03-2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페이퍼에도 올렸던 시인데, 다시 올립니다. 맘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잉크냄새 2007-03-2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처에 대하여


-복효근-


오래 전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젊은 날 내내 속썩어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요즈음 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
하다못해 상처라면
아이들의 여드름마저도
초여름 고마리꽃을 닮았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오래 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
이누아님 고마워요. 예전에 님의 서재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아마 제가 답시로 복효근님의 이 시를 올렸었던것 같네요.


icaru 2007-03-2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두 시인의 시가 정말...음...

김진경의 시 중에 좋아하는 시! 저도 붙여놓아보아요~




'대구에 가서'


긴 겨울 벌판에 눈이 내리고

기우는 집들의 바람벽 봉창마다

불빛이 졸고 있을 때

너는 그것이 따뜻함이라고 말했다.

나는 말없이

너와 나의 어깨 사이로 내리는 눈을 보았고

마음 깊이

아니, 그것은 고통이라고 거부했다.


2007-03-29 0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