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잘 찍고 싶다 - 생각하며 찍는 사진
남규한 지음 / 혜지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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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기에 대한 많은 책들이 카메라 사용법에 방점을 찍는데 반하여 이 책은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하여 생각할 것들에 대하여 말한다. 일례로 일반적인 책들이 아웃포커싱 기법에 대하여 주로 설명한다면 이 책은 왜 아웃포커싱을 하려고 하는지 주제와 소재와 이미지에 대하여 스토리를 먼저 구성해 볼 것을 말한다. 물론 카메라 기술이 사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에 저자 또한 주제와 소재에 대한 개론을 소개한 도입부 이후의 대부분은 기타 서적과 마찬가지로 기술적인 부분에 할애하고 있다. 다만 그 장면 하나에도 '어떻게'가 아닌 '왜'를 먼저 생각한 후 기법을 적용하도록 이야기하고 있다. 이 방법은 사진 찍기의 측면뿐 아니라 타인의 사진을 감상할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사진의 기술을 '3차원의 공간과 시간의 축'으로 설명한다. 가로와 세로를 x,y축으로 보면 교차점에서 앞으로 나오는 부분은 z축이다. x,y,z축의 삼차원 공간을 흐르는 시간을 t축으로 삼는다. 그는 이 시공간의 개념에 사진의 기본 기술을 비유한다. 피사체를 얼마만큼 잘라내 사진에 담아낼지를 결정하는 프레이밍은 x,y축을 결정하는 것이다. 작가로부터 얼마나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를 사진에 담을지 결정하는 조리개의 조절은 z축을 정의하는 것이다. 프레이밍과 조리개에 의한 생성된 이미지를 얼마나 지켜볼 지를 결정하는 셔터 속도가 t축을 이룬다. 뷰파인더에 들어온 풍경에 대한 탁월한 비유이다.


주제와 소재에 대한 이미지 선정, 이미지에 투영된 스토리, 3차원으로 구성되어 뷰파인더에 들어온 풍경이 만나면 꽤 괜찮은 사진이 나오지 않을까.


프레이밍을 할 때 피사체가 잘리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 나와야 할 필요도 없고, 나무의 잎부터 뿌리까지 모두 나와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간결하게 잘라내는 프레이밍은 내용면에서는 주제를 부각하여 드러내는 효과가 있으며, 시각적으로는 선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p14-  


사진을 찍을 때 상상력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진은 애초에 현실에 존재하는 장면을 담을 수 있을 뿐입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장면을 바꿀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해석하여 촬영하는가에 따라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를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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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3-01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진을 잘 찍고 싶어 책 두 권을 사서 본 적이 있는데 어렵지만 몇 개의 팁은 얻었죠.
잘 모를 땐 (제 식으로 표현하면) 사물의 배치가 대각선이 느껴지도록 찍을 것. 이건 지금도 명심하는 것 중 하나예요.ㅋ

잉크냄새 2025-03-01 21:01   좋아요 1 | URL
저도 가끔 생각나면 한번씩 읽곤 하는데 금방 잊어버립니다. 읽으며 밖으로 나가 많이 찍어봐야 하는데 영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아요.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효과를 본 몇몇 기법에 대해서는 손이나 눈이 기억해내곤 합니다. 이 책에서는 프레이밍에 대한 정의가 그런건가 봐요.
 
법정, 나를 물들이다 - 법정 스님과 행복한 동행을 한 사람들
변택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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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 회사를 그만두고 인도 여행길에 올랐을 때, 내 배낭 속에 한 권의 책이 있었다. 범우사 문고판 법정 스님의 <무소유>였다. 내 영혼 어딘가에 덕지덕지 달라 붙어있을 욕망의 덩어리를 떨쳐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들고 다녔다. 지금 표지를 살펴보니 읽은 날짜가 연필로 적혀 있다. 한달 반의 여행 기간 동안 네 번을 읽은 모양이다. 그 당시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현재 내 삶의 방향을 볼 때 스님의 무소유, 시절 인연, 본래무일물과 같은 사상이 은연중에 흔적을 남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법정, 나를 물들이다>는 그들의 삶에서 법정 스님과 함께 가서 함께 행복했던 열아홉 분의 인연을 담은 책이다. 그의 인연은 삶이 종교의 경계에서 자유로와 주교, 목사, 스님, 원불교 교무 등 종교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사람 사귐의 경계에서 자유로와 화가, 조각가, 방송인, 도예가, 서예가 등 삶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근엄한 스님의 삶 뿐만 아니라 냉정한 겉모습과 달리 작은 인연에도 우주만큼 큰 의미를 두시는 또 다른 면모도 얼핏 보인다. 또한 조근조근 스님과의 인연을 풀어내는 그들의 삶도 스님과의 인연이 스미고 번지어 맑고 향기로운 삶으로 이어지고 있다.


거창한 다비식이나 화장 의식 없이 스님의 평소 말씀 그대로 '비구 법정(比丘 法頂)' 위패 하나 드시고 불에 드신지 어느덧 열두해가 지났다. "살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는 말씀을 몸소 보여주시고 떠나셨다. 수필가로서, 문장가로서 그가 남기 숱한 글들은 그의 완전한 죽음 뒤에도 우리의 삶을 때론 보듬고 때론 질타하며 그의 생을 더 맑고 향기롭게 기억하게 한다. 

  

스승은 소유하러 들면 텅 빈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사라진다고 했다. 우리 필요는 대상이 아니라 쓰임새다. 의자를 가지려는 까닭은 ‘앉기 위함’ 이요, 사랑을 구하는 까닭은 ‘설렘과 끌림’때문이다. 우리 필요는 소유가 아니라, 쓸모이다.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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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3-18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요즘 넘 멋지신 거 아녜요?? 암튼, 우리 필요는 대상이 아니라 쓰임새라니!!! 고개 주억거리고 생각에 잠겨 봅니다. 나의 쓰임새는 뭔가? ^^;;
그리고 이 온라인에서의 인연도 생각하게 되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잉크냄새 2022-03-19 11:53   좋아요 0 | URL
대상의 본질에 충실하면 그 쓰임새가 보이지 않을까요?

프레이야 2022-03-1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 님 인도 페이퍼 기억납니다.
글도 사진도 그냥 좋았던 기억이요.
법정스님의 책은 거의 갖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기억과 인연 이야기로 엮인 이 책은 처음 봐요. 찜해갑니다. 오래전 나온 책이군요.
무소유의 참뜻을 다시 생각해 보며…

잉크냄새 2022-03-19 11:54   좋아요 1 | URL
인도 여행 떠난 지 벌써 십년이 훌쩍 넘었네요.
요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 보니 책들이 좀 오래된 감이 있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22-03-21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로와 자유로와... 오늘 이 말이 마음에 박히네요 :)

잉크냄새 2022-03-22 13:21   좋아요 0 | URL
라임이 살아있다는 말씀이렸다!!!
 
아Q정전.광인일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5
루쉰 지음, 정석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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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견해일지는 모르지만 루쉰과 체게바라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곤 한다. 둘 모두 의학을 전공한 공통점이 있지만 진정 치유해야할것은 육체가 아닌 영혼임을, 개인이 아닌 사회의 부조리임을 깨달은 순간 루쉰은 중국 사회의 암흑적 현실과 싸우는 문학가로, 체는 남미의 부조리와 싸우는 혁명가로의 길을 찾아 떠난 모습이 그렇다. 혁명의 진정성은 같았다.

아Q, 힘없고 가난한 최하층민이며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전형적으로 비겁하고 비굴한 부류이다.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시대의 흐름에 표류하며 혁명당이 되고 혁명이 실패하자 살해당하는 허무한 인물이다. 아Q는 중국민중의 무지와 의식 결여에 절망하던 루쉰이 그들을 향해 뱉어낸 인물이다.  자아의식과 목적의식이 결여된, 그저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는 민중에 의한 혁명의 허구와 허무에 절망하며 피 토하듯 그려낸 인물이다. 루쉰의 희망이 절박한 반면 민중의 희망은 그저 아득하고 막연할 뿐이니 그 간극에서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희망이 마치 땅위의 길과도 같다는 그의 글에서 살짝 절망이 엿보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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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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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 감사드리고 싶군요. 한가족의 생명을 짊어지고 닭장 같은 방제공장으로 내몰려 청춘의 모든 감정을 철저히 외면당한채 살아온 젊은 여직공들의 삶을 그리도 안쓰럽게 바라본 당신의 마음에 감사드리고 싶군요. 밤새 새벽길을 걸으며 아낀 버스비로 빵 하나를 건네던 당신의 손길이나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을런지요. 당신이 분신한 후 십년이 지난 후의 일이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형공장으로 구두공장으로 먼 길을 떠난 내 누이들의 삶도 그러했을가 싶은 마음에 가슴 한켠이 울컥하더군요. 철없던 시절의 일이라 누이들의 마음 하나 보듬지 못한 어리석은 나를 대신해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슴을 어루만진 당신의 손길에 감사드리고 싶군요.

마음이 아팠던 것은 비단 당신의 분신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노동 환경의 부조리로 인하여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성찰에 눈뜨기 시작하던 시기의 당신의 마음은 얼마나 순수했던가요. 인간이 희망인 세상을 꿈꾸던 당신의 가슴은 또 얼마나 희망으로 벅차 올랐던가요. 그런 당신의 순수성의 한계를 알기에 서글펐고 결국 삶의 부조리란 인간 자체의 부조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의 억압과 폭력구조라는 사실에 좌절하던 모습이 아직도 가슴 아프게 남아있네요. 어쩌면 당신의 분신은 절망의 마지막 표출이고 항거였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절망의 끝자락에 남은 희망을 바라보는 시각을 우리들에게 던져주었죠. 그러나 진정으로 서글픈 것은 당신이 떠난 지 삼십 년이 훌쩍 넘은 이 사회가 그런 절망으로부터 희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더 폭력적이고 억압적이고 이기적인 사회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어느 농민의, 노동자의 분신이 단순히 개인의 이기적이고 비겁한 선택으로 비춰지는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당신이 던져준 희망을 이야기하기에 부끄러운 우리가 되어버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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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3-05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부끄러워요. 저분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는데.. 현실은 변한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요.

파란여우 2008-03-05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목만 보고 제 얘긴줄 알았어요.
(진지한 리뷰에 펑 폭발하는 댓글)

암흑의 시절, 등불을 밝히신 분들에게 우리는 모두 빚을 지고 살지요.
최소한 지금이라도 의도적 방관자가 되지 않아야 할텐데 말입니다.

잉크냄새 2008-03-06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차장님 / 책을 읽는 동안 우리의 세태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여우님 / 예전에 제 선배가 숫자로 인간을 분석하는 저의 전공에 치를 떨 날이 올것이라는 말에 지금은 공감하고 삽니다. 그저 살아가는 한 방편이라고 말하기에는 스스로의 일이 참 거시기한때도 많네요.의도적 방관자,수동적 방관자...모두 같은 의미일것 같습니다.

icaru 2008-03-06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슴다~~!

2008-03-06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08-03-07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얼마만의 잉작가님표 리뷰래요?^^
한자한자 눌러쓰신듯한, 진한 잉크향이 묻어나는 묵직한 리뷰 고개숙여 잘 읽고갑니다.

털짱 2008-03-09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은 추천 한방 날리고...
모처럼 잉크냄새님의 리뷰를 읽으니 좋군요.^-^

제가 제 친구 하얀마녀님을 "몇 살 더 어린 잉크냄새님"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는데...
잉크냄새님도 제 친구 하얀마녀님을 닮았을 것 같아요.
다른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이 아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잉크냄새 2008-03-1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언제던가 님의 리뷰에서 조영래 선생에 관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가물 가물.

속삭님 / 하하, 별말씀을 좋은 음악 잘 듣겠습니다. 내 마음이 빚진 것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춤인생님 / 요즘은 리뷰 쓰기가 쉽지 않아요. 예전처럼 슥삭슥삭 쓰고 싶은데, 요즘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자꾸 부여하려고 하나봐요.

살청님 / ^^

털짱님 / 오랫만에 복귀하신 하얀마녀님이 친구이시군요. 두분을 생각하니 예전 밤새 릴레이 달리던 댓글이 떠오르네요. 누군가 절 닮았다는 사람, 문득 궁금해집니다.

하얀마녀 2008-03-14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힛... 저에겐 칭찬이지만 잉크냄새님껜 별로 아닌 듯...
같은 책을 읽었는데 결과물은 많이 다르네요.
이 리뷰를 읽으니 책을 한 번 더 읽은 느낌입니다.

잉크냄새 2008-03-18 09:00   좋아요 0 | URL
ㅎㅎ 전태일 평전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님께서 쓰신 짧은 리뷰 읽어보았답니다.

털짱 2008-03-21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얀마녀님(을 감히 제 친구라 했지만, 사실 저보다 연장자세요)과 잉크냄새님의 가장 큰 공통점은 두 분다 알라딘마을사람들이 사랑하는 서재주인이라는 점이겠지요? ^-^

아주 가끔씩 게으르게 들어오지만, 두 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이 참 반갑습니다.
마음에 온돌을 깐 느낌이랄까...ㅋㅋㅋ (에구, 촌스러...)

잉크냄새 2008-03-24 13:08   좋아요 0 | URL
비주류 서재에 그런 찬사를 해주시다니요.
<마음에 온돌을 깐 느낌> 이런 따스한 표현이 또 어디있다고 촌스럽다니요.ㅎㅎ
 
이문재 산문집
이문재 지음, 강운구 사진 / 호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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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적극적인 생태주의자도 환경론자도 아니다. 다만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모든 영혼이 깃든 사물들의 조화로움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라 여기고 있다. 그런 삶의 실천적 인물이었던 니어링 부부의 "덜 갖되 충실한 삶" 혹은 "조화로운 삶"을 나름 삶의 모토로 삼고자 한다. 물론 실천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지만.

작가는 스스로를 생태주의자라 말한다. 산업화 이후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상과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들이 은연중에 잃어버리는 삶의 한 단면을 이야기한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 낙오자로 낙인 찍히는 세태 속에서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그 미학의 중심에 자연이 있다. 더 이상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으로 남겨져야 할 자연이 있다.

인간이 걷는 속도는 시속 4키로이다. 봄꽃들이 북상하는 속도도, 가을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도 인간이 걷는 속도와 비슷하다. 대지를 버티고 선 두 다리로 땅을 딛고 걸어본 이는 느낄수 있다. 그 길 위에서 인간이라는 한 영혼이 소유할 수 있는 삶의 무게와 범위와 속도를 느낄 수 있다. 무한 질주의 도로 위에서 영혼은 풍경속으로 편입되지 못한다. 오직 길 위에서만, 자연이 허락한 그 속도에서만, 주어진 삶의 무게만큼 짊어질 때에만 인간의 삶도 풍경이 될 수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수많은 잃어버린 것들중 가장 가슴에 와닿는 것은 "발효의 시간"이다. 발효는 음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가슴에서 머리에 이르는 가장 먼 거리, 편지의 봉합과 개봉 사이에 깃든 손 떨리는 기다림의 시간, 당신과 나 사이의 바람이 춤추는 거리... 그 사이사이에 깃든 숨 막히는 감정의 떨림과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발효의 시간"이다.

올 가을에는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로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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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시 2007-07-1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이 책 관심은 많았는데, 아직까지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리뷰 보니까, 갈팡질팡하게되네요^^

비로그인 2007-07-20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효의 시간, 멋지네요...
발효와 부패의 미묘한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갑니다.
과연 그 양자를 어떻게 구별해낼 것인가를...

잉크냄새 2007-07-2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탈이님 / 반가워요. 이 책을 구매하기까지 발효의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가을쯤에 읽으셔도 좋으실듯...^^

체셔냥 / 발효란 더도 덜도 아닌 어느 정도의 적당함이라면 부패는 발효의 신뢰구간을 넘어서는 기각역에 존재한다고 해야할까요?ㅎㅎ

춤추는인생. 2007-07-2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서 일으켜지는 고요한 바람 같은 떨림. 그 잔잔한 진동에
기대어 걷고 싶어져요. 가슴속에 하나하나 새겨지는 저마다 다른 촉감들을 몸으로 느껴가면서요.... 오늘은 어떤무늬가 우리곁에 다가와. 발효의 시간들을 통과해나갈지.
가만 가만 기다려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7-2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세상이 제 속도를 따랐으면 좋겠어요. 제가 같이 하기엔 너무 빨라요, 요놈의 세상!

잉크냄새 2007-07-2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사람마다 지닌 파문이 잔잔히 흘러 물결치듯 만나는 지점, 그곳이 떨림의 시간인가 보네요. 저도 가만가만 기다려봅니다.^^

마음님 / 세상은 세월과 같아서 그리 녹녹히 따라주지 않나 봅니다. 그저 자신의 가슴에 길 하나 품고 살아가는수 밖에요.^^

2007-07-22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3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7-23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미워요. 나 춤인생님 아닌데 흥흥흥-_-

잉크냄새 2007-07-23 12:48   좋아요 0 | URL
엇, 이런 실수를...관찰력이 대단하세요...ㅎㅎ

은비뫼 2007-07-24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
가을에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로 걷는 이를 보면 잉크냄새님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가시장미 2007-08-02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효의 시간이라.. 멋진 말이네요. ^-^
제가 잠수 탄 시간도 발효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랜만에 들렸는데도, 잉크 냄새가 향으로 음악으로 전해져..귀까지 즐겁습니다.
저도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에 대해 알고싶어요. 그동안 너무 빠르게 달려왔거든요.
빠르게 달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누군가가 말해주지도, 그렇게 믿지도 않았는데,
그냥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왜 그래야만 하는지...
궁금해져서. 잠시 쉬었다 가려합니다. 잉크님.. 잘 지내시나요?

잉크냄새 2007-08-06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비뫼님 / 오래전부터 생각하곤 했는데, 아직 걸어보지 못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이라는 말만 자꾸 되뇌이네요.

가시장미님 / 앗, 오랫만이네요. 오랜 시간 님 스스로를 더 숙성시키시고 오신 느낌이네요.그러한 삶의 미학들은 누군가 알려줄수도 없는것이고 배울수도 없는것 같네요. 스스로 살며 느끼며 몸으로 체화될때가 있겠죠.^^

2007-08-07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6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7-08-0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1님 / 네, 님 서재로 슝~~
속삭2님 / 가을은 많은 면을 가지고 있는 계절인듯 합니다. 그래서 어떤 속도로 걸어도 멋진 계절인가 봅니다.

프레이야 2007-08-20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어느새 가을단풍이 그리워지는 리뷰에요^^
당신과 나 사이의 바람이 춤추는 거리..

잉크냄새 2007-08-20 18:07   좋아요 0 | URL
이제 그 속도를 몸이 느끼도록 슬슬 걸어야하나 봅니다. 날이 좀 서늘해지면요.ㅎㅎ

여울 2010-07-24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효,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이에요. 그리고 쓰는 말들이 겹쳐 친근합니다. ㅎㅎ 팔랑팔랑 왔다가 취해서 돌아갈 것 같군요. ㅎㅎ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가끔 마실 나올께요. ㅎㅎ

잉크냄새 2010-07-26 17:07   좋아요 0 | URL
네, 김치나 된장이 아닌 삶의 발효는 가슴에 어떤 향을 남길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저도 가끔 마실 다닐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