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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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모 레비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절멸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야만의 시대, 폭력의 시대를 증언하는 작가가 되었다. 기억해내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 여기고 사회가 망각해가는 것을 경계한 그가 1987년 어느 날 자살을 했다. 그리고 10년 후 재일 조선인 2세인 저자는 토리노로 향했다. 쁘리모 레비의 삶과 죽음, 그의 사상, 증언하고자 했던 시대와 좌절의 시간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디아스포라인 레비의 삶은 또 다른 디아스포라인 저자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 레콩키스타 시기 이탈리아로 이주한 그의 조상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착했고 유대인이란 그저 사라져가는 습관이나 문화에 불과했다. 2차 대전 초기에도 다른 유럽 지역과 달리 유대계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다. 그에게 유대인이라는 것은 그저 주근깨가 있고 없고 정도로 생각할 만큼 의식 자체가 희박했다. 그러나 인종법 반포 후 교수와 학우들이 대부분 그에게서 멀어져 감을 느꼈을 때 그는 공동체라는 삶 속에서 자신이 점점 불순물처럼 분리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찌와 인종법은 그렇게 유대인과 인종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인간'이라는 보편성 앞에서 '유대인'이라는 것은 '주근깨'가 있고 없는 정도의 차이라고 믿고 있었다. - <주기율표> p379 - 


아우슈비치는 그에게서 이름을 박탈했다. 이름의 박탈은 인간이 아닌 사물로의 전환이었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그런 지옥에서 그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체험하고 이겨낸 일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증거를 가지고 살아남아 야만의 시대를 증언하기 위한 의지였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그가 인간으로 살아온 문명의 형식을 전부는 아니라도, 잔해만이라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단테의 <신곡>을 외우고, 동료가 된 프랑스인에게서 프랑스어를 배우며 문명의 틀을 유지했다. 그렇게 그는 살아남았다. 


우리는 노예로서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박해를 받으며 분명 죽음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따라서 전력을 다해 그것을 지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후에 남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동의를 거부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물론 비누가 없고 물이 더럽더라도 세수를 하고 겉옷으로 닦아야만 한다. -p152-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후 그는 증언을 위한 삶을 살아갔다.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한 '장 아메리'의 비극적인 자살에도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뮐러'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레비가 어느 언론에 기고한 글을 보고 연락한 그는 화학자인 레비가 그의 전공으로 말미암아 수용소에서 만난 독일인이었다. (문득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영화의 레싱 박사가 떠올랐다. 귀도의 절박함이 그에게는 그저 수수께끼에 불과했으니까.) '뮐러'는 나찌와 자신을 철저히 분리하고, 무지와 무관심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독일인의 집단적 책임이 아닌 나찌라는 개인들의 일탈로 치부하고, 이제 원한이 아닌 공생을 말할 것을 부드럽게 종용하며 관용을 이야기했다. 참혹한 진실은 세월 앞에 무뎌져 갔다. 피해자가 오히려 부당한 의심과 무관심과 싸워야 했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반 독일 시민은 무지한 채 안주하고, 그 위에 껍질을 씌웠다. 나찌즘에 동의한 것에 대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무지를 이용한 것이다. 눈,귀,입을 모두 닫고 눈앞에서 무엇이 일어나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은 공범이 아니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p221-


1987년 그는 자살했다. 유서가 없음으로 그 죽음의 의미는 유추될 수 밖에 없다. '장 아메리'처럼 과거의 추악한 기억에 무너진 것인지, '뮐러'로 대변되는 무지와 무관심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무장한 가해자에 대한 절망인지, 팔레스타인을 침략한 이스라엘 시오니즘 유대인에게서 또 다른 나찌의 잔영을 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증인으로써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자기 본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우슈비츠로 대변되는 잔혹했던 야만의 시대를 생존으로 증언했다면 망언과 비양심으로 잊혀지는 망각의 시대를 죽음으로 고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Let our fate be a warning for you (우리의 운명을 당신들을 위한 경고로 삼아라). -p285- 어느 수용소 인골이 쌓인 영묘의 표지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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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1-29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 서경식 작가는 프리모 레비 빠였던 듯합니다~ 책3권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되더라구요..^^;;

잉크냄새 2026-01-29 20:25   좋아요 0 | URL
아마도 디아스포라라는 공통 분모가 두 분을 엮은 듯 합니다. 덕분에 저도 서경식 교수와 쁘리모 레비의 책을 다수 접하게 된 계기가 되었네요.

감은빛 2026-01-30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군대에 입대하면서 속으로 나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버텼습니다. 만약 내가 인간인데도, 지금 이런 부당한 상황을 하루종일 겪어야 한다면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군대에 있는 동안 내 인권은 끊임없이 제한당하는 처지에 처해도 인간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하니 정말 버틸만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저를 엄청 괴롭혔던 고참이 제대하면서 저에게 가볍게 사과를 했는데, 그게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뭔가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어떤 생각이 갑자기 달라지면 정신이 입은 상처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26-01-30 21:49   좋아요 0 | URL
훈련소에 들어가면서 올빼미 번호를 부여받는 순간부터 훈련병들은 사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나 봅니다. 오죽하면 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요.
고참의 사과가 가벼워 보인 것은 그것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뱉어낸 가벼운 말에 불과한 이유가 아닐까요. ‘군대라는 특수 사항이니 이해해라.‘라는 말로 그 고참은 벌써 자신을 관대한 우위적 입장에 위치시켜 버리니까요. 그걸 이해 못하는 사람을 관대하지 못한 편협한 인간의 위치로 전락시키고요.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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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개로 태어난 보리의 시각으로 전개되는 1견칭 주인공 시점의 서사이다. 보리의 삶은 어린 시절을 같이 한 해피,메리,쫑의 삶 그 자체이다. 김훈의 묘사는 어찌나 살아 숨쉬던지 소설 내내 봄 햇살, 여름 소나기, 가을 바람, 겨울 눈속을 보리와 같이 뛰어다녔다. 서글프지만 아름다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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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fox 2026-01-16 0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당개의 시각으로 작성한 책이라는 점에서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인것 같아요^^. 오늘도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잉크냄새 2026-01-16 20:21   좋아요 0 | URL
작가의 심리 묘사가 탁월합니다. 예전에 마당에 기르던 개의 모습이 아주 많이 생생하게 떠오르더군요.

마힐 2026-01-24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 이름이 ‘보리‘라 하니 ‘깨달음‘ 이네요. ㅎㅎ
개가 깨닫는 수준이 되니 개의 시각으로 서사를 풀어낸 것 아닐까요?
그럼 개에도 불성이 있다는 선문답이 풀렸네요. ㅎㅎ
.................
죄송합니다. 썰렁했습니다. ^^;

잉크냄새 2026-01-25 20:39   좋아요 0 | URL
보리가 쌀‘보리‘가 아니고 ‘보리‘달마였군요.
사실 쌀‘보리‘ 시각의 1견칭 시점이긴 한데 ‘보리‘달마가 되는 순간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변환되는군요. ㅎㅎ
마당개 보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충분히 불성이 있어 보입니다.
 
다시 만난 어린왕자
장 피에르 다비트 지음, 김정란 옮김 / 이레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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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금발머리를 가진 어떤 사내아이 하나가

 당신에게 다가와 미소를 지어 보인다면,

 그리고 말을 건네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아이가 누군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면, 제게 친절을 베풀어 주십시오.

 날 이토록 슬픔에 잠겨 있게 내버려 두지 마시고

 그 아이가 돌아왔다고 편지를 써서 알려 주십시오...>


여우와의 대화에 워낙 주옥 같은 글들이 쓰여있다 보니 어린 왕자가 사막에 쓰러져 별로 돌아가고 난 후, 쌩텍쥐베리가 그를 다시 만나고픈 마음에 책 말미에 절절하게 쓴 이 편지를 잊고 산다. 어린 왕자만 남고 작가는 사라진 것이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소설의 형태일 수도 있지만 어린 왕자의 소식만 기다리는 쌩텍쥐베리 입장에서는 가슴이 타 들어갈 일이다. 가슴 떨리며 몰래 남겨둔 연서를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으니 말이다. 


이 책은 책 말미의 편지를 포착한 작가가 어느 섬에서 어린 왕자를 만나고 그가 돌아왔음을 알리는 편지의 형태를 빌려 전개하고 있다. 답장은 어린 왕자의 별 B612에 우연히 도착한 써커스단에서 탈출한 호랑이로부터 시작된다. 호랑이로부터 양을 보호하기 위해 호랑이 사냥꾼을 찾기 위해 양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지구에 도착하기 전 여러 행성을 전전한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지구별 인간 군상들을 만나고, 드디어 작가를 만나게 되는 여정을 그린다. 어린 왕자의 플롯을 그대로 빌려와 사용하고 곳곳에 오마주 형태의 글이 숨어있어 점잖은 패러디 혹은 답장을 모방한 표절 아니야 할 수도 있겠지만, 답장을 받은 쌩텍쥐베리가 '이건 어린 왕자가 아니야' 라고 말할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토록 바라던, 아무 말 없이 미소를 머금은 금발머리 소년의 소식을 전해주는 친절을 베풀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당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답장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또 다른 편지인 셈이다. 어여 우편함을 뒤져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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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11-09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인 줄 알았어요. 부분적으로 좋은 문장만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라 재독해야 할 책들 중 하나예요. 저에게는.
이 책은 어린 왕자 그 후의 이야기인 셈이군요. 궁금합니다!!!

잉크냄새 2025-11-09 20:26   좋아요 1 | URL
어린 왕자 이후의 이야기보다는 우리가 만난 어린 왕자가 더 적합할 것 같아요. 쌩텍쥐베리가 묘사한 어린왕자의 모습을 더 기억해둬야겠어요 문득 지나쳐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리커버)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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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701호 여자 명주는 작업 중 얻은 다리 화상으로 직장을 잃고 병원비로 얼마 안 되는 재산마저 탕진한 후 홀로 지내시는 엄마와 같이 살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치매기를 보이는 엄마와 한바탕 싸우고 외출 후 돌아온 어느 오후, 햇살처럼 바닥에 길게 엎드려 죽음을 맞이한 엄마를 마주하게 된다. 엄마의 약을 복용 후 자살을 시도했으나 깊은 잠 이후 깨어난 허탈한 그녀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 일으킨 것은 엄마 전화기로 날아든 연금 알림 메세지였다. 기초 연금과 유족 연금을 합쳐 백 만원 가량의 돈을 한번도 부모로부터 지원 받지 못한 인생에 대한 보상이라 자족하며 엄마의 죽음을 유예하기로 한다. 그런 그녀에게 몰랐던 엄마의 연애 상대인 진천 할배와 김장까지 함께 하며 친분을 쌓았던 옆집 총각은 불안 요소로 다가오는데....


702호 남자 준성은 아버지의 뇌졸증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검정고시로 대학을 진학한다. 군대를 제대한 하나 뿐인 형은 아버지를 떠넘기고 외국으로 떠나버리고 치매마저 앓고 있는 아버지를 간병하며 20대 중반의 삶을 아슬아슬하게 이어가고 있다. 설상가상 아버지가 화상으로 자리 보전하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자격증 시험마저 떨어진 날, 대리 운전하던 외제차를 손상시켜 직장을 잃고 합의금까지 종용 받는 지옥 같은 나날이 이어진다. 화장실에서 아버지를 목욕시키다 사망 사고를 일으킨 날 702호 여자에게서 아버지의 죽음을 유예하고 아버지의 연금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는, 그것이 아버지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되는데...


간병과 돌봄으로 무너져 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백세주에 소주를 섞어 오십세주를 만들어 마시며 백 세라는 삶이 먼 미래의 꿈 같은 일임을 비웃던 것이 엊그제의 일인데, 이제 백 세는 별 고민 없이 내뱉은 상투적인 나이가 되어간다. 백 세의 삶에 간병과 돌봄의 문제는 그림자처럼 따라 붙고 얽히고 설키고 뒤엉킨다. 뉴스에 나왔더라면 천하의 패륜으로 치부 될 이야기가 무언의 동조와 응원까지 얻어내는 것은 작가가 끌어가는 스토리 자체의 힘도 있겠지만 패륜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 아무도 자유스럽지 못한 사회가 되어버린 이유도 클 것이다. 글에 인용된 "한 여자가 남편을 죽이면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다수가 같은 행동을 하면 사회현상 이라고 부른다." 라는 문구처럼,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깊숙이 곪아가고 있는 감추어 지지 않는 치부이다. 그러기에 명주와 준성의 삶은 패륜일 망정 그래도 삶을 살아가라는 암묵적인 독자의 서글픈 지지를 얻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김서형 배우 주연의 <비닐하우스>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는 문정은 아들과 살 집을 구하기 위해 어느 노부부의 간병인 일을 한다. 노부부의 남편은 눈이 보이지 않고 아내는 치매를 앓고 있다. 어느 날 치매를 앓던 노인과의 실랑이 중 사고로 노인이 죽게 되고 신고하려던 찰나 엄마와 살고 싶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게 된다. 노인이 죽은 자리에 치매를 앓는 자신의 엄마를 들이게 되고 시체는 비닐하우스에 유기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노인은 아내가 아니라는 의심을 하지만 결국에는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신도 치매가 왔다고 착각하여 문정의 엄마와 동반 자살을 한다. 엄마의 죽음을 알아챈 문정은 그녀가 숨긴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아들이 친구들과 숨어든 비닐하우스에 불을 지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비극의 소용돌이로 말려 들어가는 문정에 비해 명주와 준성은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지만 또 다른 삶의 탈출구를 찾아 떠난다. 명주를 괴롭히던 원수같은 딸과 준성에게 모든 걸 떠넘긴 형이 그렇듯 정통적인 가족은 점점 해체되어 간다. 간병과 돌봄의 문제에서 이제 가족마저 튕겨져 나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새롭게 공범이 된 701과 702, 그리고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떠나는 그들의 트럭에 몰래 올라탄 버림받은 치매 노인이 새롭게 가족을 구성하게 된다. 비루하지만 삶은 또 그렇게 이어진다.

       

- 어떡해요. 이 할머니?

준성은 명주 아줌마를 돌아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 우리 엄마 삼지 뭐.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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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14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그맨 안성영이 자녀 교육때문에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낸고 캐나다로 간다는 기사가 나자 많은 이들이 어머니를 버리고 도망간다고 분기탱천 했는데 이런 사람들은 아마도 집에서 노인 병수발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 일 겁니다.
치매나 건강상의 이유로 거동 못하는 노인들을 집에서 간병한다는 것은 웬만한 지극정성이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집에서 24시간 노인 간병을 한다는 것은 힘든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시간이 전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죠.그래서 집에서 노인을 돌보는 개인 간병사의 월급이 3~4백만원을 하는 이유입니다(이분들도 주 6일만 근무함)
요양원 그중에서도 요양병원에 노인들은 모시는 경우는 대게는 집안 형편이 가능하기 떄문이지 가난하면 비용부담으로 요양원(보통 한달 백만원내외)에 모시는 것을 꿈도 못꾸는 사람이 많지요.
노인들의 간병과 돌봄은 개개인에게 맞길 일이 아니라 이제는 복지차원에서 국가가 떠 맡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잉크냄새 2025-08-14 20:44   좋아요 0 | URL
지금 그 개그맨의 일화가 소개된다면 아마 그렇게 분기탱천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네요. 십여년 전만 해도 요양병원으로 보낸다는 것은 합법적인 유기나 현대판 고려장 정도로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죠. 그런 의미에서 간병과 돌봄의 문제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국가 복지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또한 간병과 돌봄의 문제에 대한 논의만큼이나 안락사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감은빛 2025-08-17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네요. 사회현상이 되어버렸군요. 돌아가신 엄마의 연금으로 살았던 사람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들었던 기억이 나요. 조금 상황은 다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도 생각나고요.

[비닐하우스]라는 영화가 이런 내용이었군요.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사실 저도 가장 무서운 일이 바로 아픈 가족의 간병과 돌봄입니다. 제 주위에 부모님 돌봄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 지인들이 몇 분 계시거든요. 이거 거의 감옥이나 다름 없는 것 같아요. 몇 년째 얼굴 한 번 보기가 어렵더라구요.

잉크냄새 2025-08-17 11:22   좋아요 0 | URL
요즘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 간병과 돌봄의 문제이고 그들이 겪는 우울증 등 정신의학적 측면도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있더군요.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고통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국가 복지 차원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비닐하우스>는 우울하면서도 안타깝고 서글프고, 좀 복합적입니다. 꼭 보시길...

페크pek0501 2025-08-18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여자가 남편을 죽이면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다수가 같은 행동을 하면 사회현상 이라고 부른다.˝ 라는 문구. 이 문구를 보니 <플랜 75>라는 영화가 떠오르네요. 75세 이상의 노인들을 죽게 만드는 사회를 그린 영화인데 저도 유튜브로 설명만 들었는데도 섬뜩하더군요. 우리의 미래, 일 것 같기도 하고요. 누구나 노인이 되고 누구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되는 날이 온다는 것, 기억해 놓을 일입니다.^^

잉크냄새 2025-08-18 21:46   좋아요 1 | URL
일본 영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전 그런 영화의 출현이 영화적인 상상일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결국 마주하게 될 세대갈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직면한 문제를 외면하고 무시하면 어떤 식으로든 분출되고 터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힐 2025-08-21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치매, 노인, 돌봄, 요양원 같은 단어가 이제는 친숙해지는 나이가 되었네요.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 했었는데... 저도 비루하지만 삶은 그렇게 이어진다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잉크냄새 2025-08-21 21:57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대면하기 싫었던 어떤 단어들과 정면으로 마주쳐야 할 시기가 되어간다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비루하다는 표현은 단어 그대로 참 비루한데, 어떤 문장에서는 주어만큼이나 빼버릴 수가 없어요. ㅎㅎ

2025-08-29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8-30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 2020년 제1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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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펜하임 반디멘 재단 도서관은 클라우스 반디멘이 세운 156개의 도서관중 하나이다. 지역 문화의 보존과 교육 기회의 균등한 제공을 위해 전국에 세워진 도서관은 그 지역 밀착형 이미지를 감안하여 도서관 명칭을 지었다. 그림책 도서관, 영화 도서관, 아랍 문학작품 도서관에서 유추할 수 있듯 지역색과 맥을 같이 했다. 호펜하임 도서관은 153번째로 지어진 한계로 인하여 고심 끝에 결국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 Library For Nowhere Books이란 명칭을 얻게 되었다. 갈 곳이 없는 책들, 분류표에 들어가기 어려운 책들이 주로 선정되었는데 그 명칭에 타당한 수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기형적인 운영에도 도서관은 재정적인 문제에 직면했고 장서량을 늘리기 위한 타개책으로 제안된 것이 도서 기증이었다. 빈센트 쿠프만이라는 한 남자에 의해 시작된 도서 기증은 말 그대로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가 직접 타이프라이터로 친 뒤 직접 표지를 만들고 제본해서 묶은 원고, 흔히 사가본이라 부르는 책들이었다. 그렇게 모이기 시작한 지 30여년 도서관 폐관을 앞두고 정리된 빈센트 쿠프만의 컬렉션에 대한 카탈로그와 그 마지막을 같이 한 도서관 이용자들의 이야기이다.


카탈로그는 잘 씌여진 알라딘 리뷰라고 봐도 무방할 터인데 특히 기억에 남는 책은 <프로스페로의 꿈>이다. 16장(32면)의 낱장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그림의 전후는 어떤 연관성도 없어 보이고 페이지조차 적혀 있지 않다. 제본이 되어 있지 않아 부주의하면 와르르 도서관 바닥에 쏟아질 것이고 그것을 다시 끼워 넣을 독자는 16장의 그림을 이어 붙여 만들 수 있는 20조 개의 이야기 앞에 망연자실해 질 것이다. 75억 인구가 2500가지 순서로 읽어도 일치하지 않을 이야기이고 누군가 100년 동안 100가지 다른 방법으로 읽고, 그 생을 500만번 반복해도 헤아리지 못할 이야기이다.이리 다양하다 보니 우리가 하나의 책 앞에 선다는 것은 그 책의 운명과 마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책들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는 말을 떠올렸다. Habent sua fata libelli. -p63-


또 한 권의 책은 <당신이 읽을 수 없는 100권의 책>이다. 사라진 책이나 원고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은 단순한 목록과 책 표지와 서지 정보로만 구성된 책이다. 저자의 상상의 목록만 적혀 있을 뿐 아직 구체적으로 씌여지지 않은 책이니 아마존이나 구글에서 검색 불가능한 책들이다.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에 어디에도 없는 책들의 목록이 수서됨은 당연한 일일지도. 책 제목과 서지 정보를 읽고 관심을 가질 누군가에 의해 책의 운명은 정해진다. 결국은 쓰여질 운명이다. 


당신이 어떤 책을 찾고 있는데 그 책이 세상에 없다면 그 책을 써야 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는 것. -p254-


이 도서관과 사가본의 운명은 알라딘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직접 타이핑하고 탈고하여 완성한 글들, 아무도 출판해주지 않는 우리 삶의 사가본, 서재 이웃외에 누구의 피드백도 없이 가만히 먼지가 쌓여가는 글들, 결국 어디에도 없는 글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는 곳. 알라딘.  언젠가 이 곳의 운명이 다하는 날 누군가에게 남겨질 익명의 글들에게 바치는 알라딘과 이웃 서재들의 헌사가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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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5-06-25 0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제 페이지의 글들을 archive할 생각입니다. 갈수록 엉망이고 주절주절 개인적인 이야기를 쓴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기록을 보관했으면 하거든요. 나중에 다시 써볼만한 평도 있을지 모르니까요.ㅎ 이 책 꽤나 흥미가 갑니다.

잉크냄새 2025-06-25 21:01   좋아요 1 | URL
아마 그 마지막 날에는 알라딘도 어떤 식으로든 archive를 제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책 관련 자료와 여행 사진 정리를 notion에 하고 있는데 내가 죽으면 이 자료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합니다. ㅎㅎ

감은빛 2025-07-28 13:49   좋아요 0 | URL
아, 잉크냄새님 노션을 쓰고 계시군요.
저도 최근에 노션 사용법을 배웠어요.
우선 읽은 책들을 한번 정리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겨우 생각만 했을 뿐, 실제로 정리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감은빛 2025-07-28 13:50   좋아요 0 | URL
게스트님. 저도 이 알라딘 서재에 가끔 두드려 놓은 개인적인 글들을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갈무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먼저 하시게 되면 좋은 방법을 알려주세요.

잉크냄새 2025-07-28 21:20   좋아요 0 | URL
네, 유튜브로 노션 배워서 책 관련 자료와 여행 사진을 정리중입니다.
엑셀과 파워포인트의 장점만을 극대화한 느낌이 들어요.

갈무리하는 방법은 저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ㅎㅎ

transient-guest 2025-07-29 04:12   좋아요 0 | URL
아직까지는 막연하게 하나씩 보면서 다시 써볼까 싶은데 언젠가는 그냥 긁어서 다운로드 하는 옵션이 생기지 않을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