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극장은 카스트 제도를 닮아 있었다. 극장 자체가 따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극장 좌석이 앞좌석부터 브론즈,실버,골드,플래티넘으로 등급이 나뉘어 있었다. 마치 카스트 제도를 극장 좌석에 넣어버린 모양새였다. 등급은 좌석 위치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게 옷차림 등 신분을 짐작할 수 있는 외부적인 요인으로도 구분되어졌다. 브론즈에는 길거리에서 주로 만나는 릭샤꾼이나 뱃구레를 거침없이 드러낸 여인들의 싸구려 사리처럼 지저분하고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들이고 실버, 골드로 올라갈수록 눈부신 사리의 장식처럼 옷차림도 세련되고 화려해졌다. 인원수는 브론즈가 압도적이었고 극장 전체의 분위기도 브론즈 인원들이 이끌었다. 당시 본 영화는 인도 액션 영화 <가지니>였는데 나쁜 놈을 응징하는 권선징악의 장면이나 주인공이 악인에게 얻어터지는 장면에서는 극장 안을 가득 메우는 감탄사와 푸념이 터져 나왔다. 인도 발리우드 마샬랴 영화 특유의 뜬금없는 중간 댄스 장면에서는 흥에 겨운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덩실덩실 몸을 흔들며 동참하기도 했다. 왁자지껄한 브론즈에 비해 실버와 골드는 왕족이 위엄을 갖추듯 무표정에 무반응으로 조용히 관람했고 플래티넘은 브라만의 신비주의를 품은 듯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난 신분에 걸맞지 않게 왕족의 좌석에 앉아 천민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상영 시간이 세 시간이 넘었는데 중간중간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대니 체감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왁자지껄한 모양새가 시체말로 교양 없는 폼이기도 하고 요즘의 극장 관람 문화와는 동떨어져 있으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언저리에 소환되는 장면이다. 문명은 이런 본능을 억제하고 포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은 아닐런지. 영화의 성격에 맞게 놀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액션은 액션답게, 멜로는 멜로답게,코미디는 코미디답게. 유안진은 그의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며>에서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 군밤을 깔 때는 아이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말자고 했다. 가끔 영화는 인도인처럼 신명나게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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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6-07-09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인도 가신 건가요?

잉크냄새 2026-07-09 21:25   좋아요 1 | URL
오래전에 다녀온 인도 여행을 지금에야 하나씩 정리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언젠가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수이 2026-07-09 21:28   좋아요 1 | URL
저는 예순 전에 가는 게 로망인데 언제쯤 이룰 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이미 다녀오셨다고 하니까 부럽습니다. 다음 인도여행기 기다리고 있을게요. :)

잉크냄새 2026-07-10 20:45   좋아요 1 | URL
저도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여행기라기에는 뭔가 부족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이 올리고 있으니 가끔이라도 재밌게 봐주세요. ㅎㅎ

nama 2026-07-11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이살메르인지 조드푸르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 연회장 같은 화려한 극장에서 세 시간짜리 영화를 보면서 세상을 다 가진듯한 뿌듯함을 느꼈었지요. 잠시 인도인이 된 듯한 기분에 빠져들기도 하고요. 인도를 얘기하면서 영화가 빠지면 서운하지요.

잉크냄새 2026-07-10 20:47   좋아요 0 | URL
자이살메르에는 큰 극장이 없었던 기억으로 보아 조드푸르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인도 영화는 마샬라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뭔가 이것 저것이 부자연스럽게 섞여 알듯 말듯한 향기를 풍기는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ㅎㅎ

nama 2026-07-10 21:41   좋아요 1 | URL
앗, 자이푸르의 라즈 만디르 극장이었어요. 이십여 년 전에 갔었지요. 인도는 일곱 번이나 다녀왔는데도 지명이 오락가락 하네요. 자이살메르는 가보지도 않았는데 마치 가본 것처럼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고요.

잉크냄새 2026-07-12 09:52   좋아요 0 | URL
와우, 난이도 최상을 자랑하는 인도를 일곱번이나 다녀오시다니... 세상 그 어떤 여행도 두렵지 않으실 것 같아요. 전 한번 더 다녀오고자 항상 생각중입니다.

2026-07-09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7-10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26-07-09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도 여행도 갔다오셨다니 넘 부럽습니다^^

잉크냄새 2026-07-10 20:50   좋아요 0 | URL
한참 세월 지난 여행기입니다. ㅎㅎ 언젠가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지요.

감은빛 2026-07-10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정말 좋아했던 영화가 [가지니]예요. 아마 대여섯번 이상 봤을 거예요. 이 영화를 인도 극장에서 보셨다니! 정말 부럽네요.

잉크냄새 2026-07-10 20:52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예전 감은빛님 인도 영화 소개한 페이퍼에서 <가지니>에 대하여 언급하신 기억이 나네요. <가지니>는 인도에서도 상당한 흥행을 했다고 하더군요. 피터지게 두드려 패다 같이 노래하고 춤추는 마샬라 영화의 세계로 빠져봐야 알 수 있는 매력이 있죠. ㅎㅎ
 

아직 꿈속인 듯 했다. 주말 아침 분명히 늦은 시간인 듯 한데 주위를 감싸는 공기가 뭔가 달랐다. 이 시간이면 반대편 은행 건물의 유리창에서 반사된 빛이 침대 위까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올 시간이었다. 오늘은 짜증나는 눈부심 대신 온통 은은한 파스텔톤의 노란 기운이 꿈결처럼 침대 위로 흐르고 있었다. 커튼을 걷으니 창밖은 물감을 푼 듯 온통 노란색 천지였다. 건너편 은행 건물들은 다 사라지고 도로도 가로수도 사라졌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노란색 기운만이 따스하고도 적막했다. 다른 차원의 다른 행성에 홀로 남겨진 지구인이 된 듯 했다. 그 적막함을 깨기 싫어 커피 한 잔을 들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눈이 익숙해질 즈음 창 바로 앞 가로수들의 윤곽이 살짝 드러났다. 새들이 날아간 자리는 날개짓의 여운이 비행의 흔적을 남기며 서서히 지워져 갔다. 차들은 무대 위 등장 인물들의 퇴장처럼 대낮부터 헤드라이트의 잔상을 남기며 사라져갔다. 의자를 끌어당기며 온 종일 창문 앞에 앉아 노란 무대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어둠이 그 자리를 대신 했다. 그건 중국 한 복판에서 만난 황사였다.


<AI로 그려보았다. 사람 빼고 비슷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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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덩이가 넓은 나라를 여행하는 하나의 묘미는 야간 버스에 구겨져 밤을 보내는 일이다. 땅이 넓다 보니 야간 버스가 나라 구석구석 거미줄처럼 잘 배치되어 있고 여행자 입장에서도 시간 절약, 숙박비 절약에 이국의 밤을 오롯이 느낄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 할 수 있다. 특히 튀르키예의 야간 버스는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남자 차장이 고급 레스토랑의 지배인처럼 격식있는 옷차림으로 밤새 시중을 든다는 점이다. 졸다 깨어나면 밤새 지켜보고 있다 달려왔는지 바로 눈앞에서 멋드러진 콧수염 아래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다소 과장된 큰 미소를 지으며 쟁반에 담긴 과자류와 달짝지근한 홍차를 권한다. 홍차를 다 마시면 손을 펼치게 하고 손바닥에 레몬수를 분무기로 가볍게 뿌려준다. 손을 비비고 얼굴을 문지르며 잠결에 맡던 레몬향은 얼마나 상큼하던지. 잠의 요정이 아직 떠나지 못한 자리에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레몬향은 시간이 지나도 코끝에 떠오를 만큼 인상적이었다.


<갈라타 타위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내>


이스탄불에서 샤프란볼루로 가는 버스는 늦은 밤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였다. 저녁을 먹고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일찍 불 끄고 잠 든 도심과 달리 웅성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버스 뒷편의 넓은 공간은 듬성듬성 놓인 드럼통에서 붉은 불꽃이 넘실거렸다. 그 주위로 웃통을 벗은 청년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노래를 부르거나 허리를 들썩이며 위아래로 파도타기 하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목마를 탄 몇몇 청년들은 국기를 흔들며 분위기가 애국가인 듯한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있었다. 흡사 소요 사태가 발생한 듯 싶어 몸을 구부리고 잽싸게 차에 올라타 커튼 사이로 몰래 훔쳐보았다. 어리둥절한 소란은 버스 차장이 출발 시간을 알리며 독촉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청년들이 하나 둘 버스로 다가올 때가 되어서야 다소 떨어져 지켜보던 히잡을 둘러 쓴 중년의 여성들이 버스 주위로 서둘러 모여들었다. 청년들과 가볍게 포옹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한참을 바라보며 아쉬움에 손을 놓지 못했다. 버스가 시동을 걸고 움직이자 그녀들은 다시 창 주위로 몰려와 창문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이며 차창 속 청년들을 다시 애타게 바라봤다. 아, 저 눈빛, 낯설지 않다 싶었다. 어머니의 눈빛, 자식을 군대로 떠나 보내던 그 눈빛을 이 곳 타국에서 다시 마주치다니. 참 환송회 한 번 거창하다 싶던 마음이 그 마주침에는 다소 울컥하였다. 울음을 삼키는 여인들의 눈물은 버스가 떠나고 나서야 터질 듯 했다.


<블루 모스크>


입영 전야를 거창하게 보낸 청년들을 태운 버스가 멈춰 선 것은 이스탄불을 막 벗어난 어느 벌판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바라보니 십여 명의 청년들이 낮은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뭔가 싶어 그들을 따라 오르니 중간 즈음에 일렬횡대로 도열하여 노상방뇨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무심결에 그들 옆에 일렬횡대로 줄을 맞춰 노상방뇨를 하였다. 바지춤을 올리다 왠지 묘한 느낌에 옆을 보니 일렬횡대를 삐죽이 빠져 나온 머리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꺼림칙한 마음에 얼른 언덕을 내려오니 몇몇 청년이 따라와 어깨를 잡았다. 돌아보니 울그락불그락한 얼굴이 다소 흥분한 듯 했다. 튀르키예어로 침 튀기며 거친 말을 내뱉었다. 다소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서 있으니 영어가 유창한 청년이 중간에 끼어들어 통역을 해주었다. 말인 즉 "왜 남의 나라에서 노상방뇨를 하느냐"는 항변이었다. 말만 놓고 보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만 상황을 놓고 보면 나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니들 따라 한건데...." 라는 논리정연한 반론에도 몇몇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는 군입대를 앞두고 고향 앞으로 쏴!를 한거라고..." 음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의식이었던 모양이다. 신성한 의례에, 신성한 땅에 오줌을 갈겼으니 화가 날만 하겠다 싶었다. 미안함을 표시했지만 그래도  "니들 따라 한건데...."라는 막강한 논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입대를 앞둔 스트레스에 묘한 애국심이 들러붙은 상황이 민족주의에 불을 지핀 모양이었다. 


묘하게 이어지던 대치 상황은 나의 어설픈 외침으로 마무리 되었다. "I was a soldier, too(나도 한때 군인이었다 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여행 당시 나의 영어 수준이 딱 이만큼이다)" 뭔가 어색한 영어로 군인이라는 동질감에 호소하고자 특히 "too"에 침 튀기며 방점을 찍었다. 다소 당황한 그들을 뒤로 하고 냉큼 버스에 오르니 통역이 다시 통역해주는 듯 했다. 겉옷을 뒤집어쓰고 잠든 척 하고 있으니 soldier 어쩌구 하는 말이 잠시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예비역을 바라보는 훈련병의 입장이랄까. 새벽 한기만큼 낯선 군대라는 두려움을 경험한 이에 대한 경외일까. 역시 입장의 동질감은 어떤 분쟁도 막을 내리게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한때 군인이었던 여행자와 막 군인이 될 청년들을 태운 버스는 다시 밤을 달려 여명이 밝을 때쯤 목적지인 샤프란볼루에 도착했다. 나 혼자 내리는 걸 보니 저들의 목적지는 아직 더 새벽을 달려야 하는 모양이었다. 버스를 내리며 곤히 잠든 그들의 영혼에 무훈을 빌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뺑이 까라~~~.' 한때 군인이었던 여행자가 투르크 전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이었으리라


<아야소피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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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6-06-25 0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혼자하는 여행의 로망이 팍팍 느껴집니다.ㅎㅎ 버스나 기차로 하는 여행은 비행기여행과는 또다른 맛이 있죠.ㅎ

잉크냄새 2026-06-25 20:32   좋아요 1 | URL
네, 아무래도 혼자하는 여행이 자유롭기도 하지만 돌발성 이벤트가 자주 발생합니다. 여행이 우연과 의외성에 의미가 있다면 여행의 참맛은 혼자 맞이하는 일들과의 조우가 아닐까 합니다.
 

어릴 적 나는 인생을 선불제로 생각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죽어라 공부만 하며 현재를 ‘지불’하면 그만큼의 괜찮은 미래가 주어지는 줄 알았다. 밤을 새워 소설을 쓰고 몸을 축내면 그 대가로 편안한 미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덕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내려올 때는 편하듯이, 고생과 노력은 초반에, 그 과실은 생의 후반에 따먹는 것이려니 했다.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내 인생은 후불제인 것 같다. 어린 날이 오히려 ‘공짜’였고 지금은 계산을 치르는 중이고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만 같다. -p156-







여행을 목적으로 처음 회사를 퇴직했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계속 '왜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관두는지'에 대하여 지겹도록 질문을 받았다. 실질적인 이유는 사십을 넘기면 다시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이대로 삶이 굳어버릴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그대로 말해 버리면 뭔가 바보스러울 것 같아 스스로 '왜'에 대한 그럴싸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었다. 그때 변명처럼 떠오른 생각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살짝 비튼 '가치 보존의 법칙'과 김중식의 '이탈한 자가 문득' 이라는 시였다. 질량처럼 가치 또한 형태를 달리할 뿐 세상 어딘가 온전하게 존재하리라는 믿음,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알려준 시인의 위로는 내 선택을 잘 포장해 주었었다. 인생은 후불제란 작가의 글을 읽다 내 인생은 직불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얻기 위해 버려야 함을 인정하는 등가 교환의 법칙이 직불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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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4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5-14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6-05-14 22:56   좋아요 1 | URL
오, 감사합니다^^

감은빛 2026-05-15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여행을 목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걸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요. 잉크냄새님의 여행 이야기가 아직 엄청 많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하나씩 하나씩 꺼내주세요. ㅎㅎㅎㅎ

저는 선불제도 후불제도 별로 공감이 가지 않네요. 그냥 그때 그때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싶어요.

잉크냄새 2026-05-17 09:50   좋아요 1 | URL
여행 시간에 비하면 그리 많은 도시를 돌아다니지는 못했어요. 보통 한 도시에 일주일 이상 머물다 떠나다 보니 많은 것을 보되 또 많은 기회를 잃어버린 것도 있을 것 같아요.

감은빛님이 말씀하신 그때 그때의 삶을 사는 것이 제가 말한 직불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쑤저우苏州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던 곳으로 오나라의 머릿글을 따 오군,오주,오현으로 불리다 고소산姑苏山의 소자를 따서 수나라 시절부터 쑤저우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쑤저우에서 택시를 타고 그 지역에 대하여 물어보면 거의 백 프로 나오는 첫 마디는 '上有天堂 下有苏杭 상요우텐탕 샤요우수항(위에는 천당, 아래에는 쑤저우와 항저우)'이다. 쑤저우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항저우杭州에서 노년과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오나라의 수도였던 쑤저우와 저장성의 행정 중심인 항저우, 역사적으로 두 도시는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로서 지리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 융성했고 정치적으로 강성했다. 오랜 세월 문화적 향유를 누려온 것과 같이 당대의 시인들 백거이白居易와 이백李白이 <억강남>과 <오서곡>으로 찬양하고 중국 최고의 지성이라 불린 소동파苏东坡가 사랑한 쑤저우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는 놀랍게도 비교적 무명인 당나라 시인 장계张继의 <풍교야박枫桥夜泊>이란 시이다. 


月落乌啼霜满天 월락오제상만천(웨뤄우티쑤앙만텐) 달 지고 까마귀 울어 서리 가득한 하늘

江枫渔火对愁眠 강풍어화대수면(쟝펑위훠뛰쵸우멘) 강가 단풍과 고깃배 불빛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잠드네

姑苏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구수청와이한산쓰) 고소성 밖 한산사

夜半钟声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예빤쫑성따오커촨) 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려오네


가장 유명한 시구는 3구와 4구인데 지명을 직접 언급한 3구와 뱃전에 다다른 한밤의 종소리로 고향 떠난 나그네의 깊은 객창감을 건드는 4구가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 시가 유명해진 건 단순히 시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수 백년에 걸쳐 당대의 내노라 하는 지식인들 사이에 시를 둘러싸고 이어진 논쟁 때문이었다. 풍교야박이 쑤저우를 중심으로 유명세를 떨치자 시에 대한 비판이 서서히 생겨났다. 가장 유명한 비판은 종소리에 대한 비판이다. 첫째, 산사의 종은 한 밤에 울리지 않으므로 시인이 한밤에 들었다는 종소리는 허구다. 둘째, 한산사는 풍교와 지척이라 한밤중에 종을 울리면 시끄러워 시와 같은 은은함을 느낄 수 없다. 셋째, 한산사에는 종이 없더라. 당대부터 이어진 비판은 송대를 거쳐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이즈 마케팅에 편승한 시는 어느덧 쑤저우를 대표하는 시가 되어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이 시를 음송하지 못하는 소주인이 없다고 한다. 시적 사실과 시적 허용의 문제는 예전부터 늘 시 언저리에서 시와 함께 생명을 이어가고 있구나 싶다. 


<요즘 중국에도 고전 양식의 옷을 입는 젊은 세대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서시의 후예다.>


풍교야박의 논쟁을 직접 확인하러 풍교로 향했다. 시구 3구처럼 고소성에서 잠시 벗어난 한산사는 비교적 한적한 곳에 위치했으나 관광객은 중국 여느 곳과 같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한산사 정문을 빗겨 한 바퀴 도니 수향 마을답게 절 주위로도 수로가 형성되어 있다. 다리 높이로 보아 한때 절 주변으로 꽤나 큰 마을이 형성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풍교는 한산사 뒤쪽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난다. 풍교 주위로 단풍나무도 몇 그루 서 있고 다리 한 쪽으로 한산사의 모습도 보이니 시가 완전 허구는 아님을 알 수 있다. 한산사의 종은 직접 보지 못했고 종소리 또한 듣지 못했다. 밤에 오지 못한다는 점, 관광객이 너무 많아 장계 선생이 느낀 객창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풍교를 건너려니 바로 옆에 3D 체험관이 있다. 풍교야박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설명에 배에 올라탄다. 


<장계 선생이 시를 읊은 자리는 저 반대편 선상이었으리라 추측해본다.>


"뱃전에 앉으니 당나라 어느 수향 마을이 펼쳐진다. 바야흐로 봄이다. 동자와 꾸냥이 가져온 차를 한 잔 받아 마시니 배가 서서히 수로를 따라 움직인다. 막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봄이 수로 양 옆으로 가득하다. 겨울 빨래를 가져 나온 아낙들이 수다스럽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리는 꾸냥이 슬며시 미소짓는다. 배를 타고 꽃을 파는 소녀에게서 수선화와 장미를 받아보고 음식을 파는 배 옆에서 만두를 받아 먹어본다. 봄을 지난 수로는 여름으로 접어드는데 웃통을 벗어 제낀 아이들이 수로로 뛰어들고 번잡한 시장에서는 흥정이 한창이다. 한 켠에는 수로 위로 줄타기를 하는 광대가 위태롭다. "짜요 짜요" 응원 소리가 드높더니 갑자기 나타난 용선 3척이 앞다투어 질주한다. 그 물결에 두둥실 흔들리던 배는 갑자기 다리 위로 솟구친다. 아래로 한여름 축제가 한창인 고소성이 펼쳐진다. 밤의 불꽃 축제가 고소성 하늘을 뒤덮고 골목골목은 선남선녀의 흥청거림으로 번잡하다. 고소성을 한 바퀴 돈 나룻배가 다시 수로로 돌아오니 어느덧 늦가을, 문득 찾아온 쓸쓸함에 주위를 둘러보니 초승달이 지고 까악 까악 까마귀 우는 가을 밤 위로 흰 서리가 하늘 하늘 떨어지는데 붉은 단풍 위에 내려앉은 자태가 처연하다. 어디서 본 풍경이다 싶더니 바로 <풍교야박>의 구절이 아닌가. 뱃전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장계 선생이 홀로 술잔을 기울인다. 시중들던 동자가 나를 가르키며 "장계 선생, 이 분도 장안에서 피난온 사람입니다" 하니, 장계 선생은 더욱 깊은 우수에 젖어 긴 장탄식과 함께 술잔을 들고 일어선다. 뎅~뎅~ 한산사 종소리에 잠시 시름 겹더니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붙여 들어 왼손에 든 술잔 속의 술을 찍어 올려 가을 밤 하늘에 일필휘지로 갈겨쓰며 시를 음송한다. 족자를 들고 나온 동자가 장계 선생에게 시 제목을 청하니 <풍교야박>이라 적는다. 동자의 손을 떠나 족자가 가을 밤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다시 한번 가을 밤에 장계의 시를 적으며 음송을 권한다. 뱃전 여기저기서 <풍교야박>이 흘러나온다. 최대한 당대의 목소리로 크게 음송한다. '웨뤄우티쑤앙만텐~~~~' " 고글을 벗고 내리니 뒤에 탄 서생들이 전부 유치원생이다. 음, 초로의 중년이 유치원생과 다투어 시를 음송하다니. 살짝 부끄러웠다. 쑤저우에서 <풍교야박>이 천 년 세월을 살아난 이유이리라.


<AI로 풍교의 늦가을 정취를 표현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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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5-08 0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없던 종이 산사에 생겨나고, 치지 않은 종이 밤에 울리는 것은 시에서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분위기상 필요하다면 오후 5시에도 소쩍새가 울어줄 필요가 있듯이 말입니다^^ 님아, 또 가시려거든 그땐 혼자일랑 가지를 마오~

잉크냄새 2026-05-08 20:50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시적 허용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을. 당대의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이 간단한 문제로 천 년 세월 아옹다옹 다툼을 했다니,,, 틀에 집착한다는 것이 이리도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ㅎㅎ

마힐 2026-05-08 21: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원래 한산사의 한산은 승려의 이름입니다. 한산과 그의 친구 습득은 절에서 바보 취급 받았답니다. 다른 스님들에게 구박 받으면서도 둘은 뭐가 그리 좋은지 항상 웃으며 서로 장난치며 다녔다고 해요. 그런데 이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어 보면 도통한 경지가 드러났다네요, 지금도 한산문답이라고 전해진답니다. 이들의 우정은 상징이 되어 화합이선이라 부른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보살의 화신들 이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산사는 아이러니 하게도 화합이선이란 상징 때문에 절에 결혼식장이 있다고 하네요. 믿거나 말거나... ^^

잉크냄새 2026-05-08 21:32   좋아요 2 | URL
한산사가 논란의 중심에 설 이유가 또 있었군요. ㅎㅎ 종이 없다는 풍문도 그러하거늘 결혼식장까지 있다니.... 미리 알았다면 이번 발걸음에 예식장도 한번 찾아보는 건데 아쉽네요. ㅎㅎ
아, 한가지 더 한산사를 일본인이 유독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시가 <풍교야박>이라고 하더군요.

감은빛 2026-05-15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리 감각이 없어서 쑤저우와 항저우가 어딘지 몰라 지도로 찾아봤어요. 상하이 근처군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군요.

시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고, 체험하신 이야기도 마치 영상을 보는 듯 느껴지네요.

잉크냄새 2026-05-17 09:48   좋아요 1 | URL
네 상하이에서 내륙 쪽으로 한 시간 가량 떨어져 있어요. 상하이와 근접한 이유로 한국에서 쑤저우로 직항하는 비행기 편이 없어서 다소 불편합니다. 그래도 이천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중국에서 가장 문명스러운 도시라는 것을 살아보면서 충분히 느꼈습니다. 그에 비하면 상하이는 이제 한 세기 정도 밖에 안된 신도시라고 볼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