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챠는 일몰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쟌시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는 늦은 밤 11시 경이었다. 며칠 머물던 오르챠에서 쟌시로 떠난 것은 해가 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8시경 이었다. 당시 오르챠는 인도에서 꽤나 오지로 통하던 곳이었고 몇 대 되지 않는 택시는 이미 역으로 떠난 후였다. 오르챠에서 일행이 된 대학생 커플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머물게 되었고 마칠 즈음에는 이미 한 대의 택시도 남아 있지 않았다. 꽤나 난감한 시간을 보내고 식당 주인과 숙소 주인까지 발벗고 나서고서야 젊은 청년이 끄는 지붕이 없는 오토릭샤 한 대를 대절할 수 있었다. 18킬로 정도의 산길로 대략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작은 동네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드니 검은 도화지를 하얀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거친 붓으로 몇 번 휙~휙~ 훒어 버린 듯 하늘은 온통 별들의 향연이었고 계곡 사이의 하늘은 붓의 뒷길을 쫓아가는 여정과도 같았다. 흥에 겨워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데, 릭샤 청년이 샛길로 빠져 들어갔다. 친구를 같이 태워가고 싶다길래 흔쾌히 허락하고 다시 콧노래에 빠져들었다. 친구를 태운 릭샤는 다시 길을 에돌아 나와 산길을 달려갔다.


삼십 분 내내 불빛 하나 없는 길을 오직 오토릭샤의 불빛에 의지해 달렸다. 근데 어느 순간 앞자리에 동승한 릭샤 청년과 그의 친구가 자꾸 속닥거리며 어깨 너머로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그 동작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몇 차례에 걸쳐 계속되었고 마음 속에 의심의 덩어리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는 남미와 더불어 최악의 여행 난코스로 여겨졌다. 남자는 강도를 당했고 여자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인도 여행 코스의 특성상 그런 소문들이 삽시간에 퍼졌는데 델리에서 택시 강도를 당한 동양인 여행자와 인도 중부 고어에서 강간 살해된 북유럽 여행자의 소문이 돌고 있던 시기였다. 곧 의심은 눈덩이처럼 커져 확신으로 바뀌었고 다음 소문의 당사자가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온 몸을 감쌌다. 인도인치고 건장한 체격의 두 청년이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사건에 대비해 배낭 속에 몇 단위로 분할해 소지하던 돈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 있었다. 별다른 상해 없이 최소한의 돈만 지불하고 이 사태가 끝나기를 바라며 몸을 뒤척이던 순간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무언가 묵직한 물건이 느껴졌다.  


<매일 일몰을 찾아 마을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건 일명 맥가이버칼로 불리던 스위스 군용 나이프였다. 칼을 발견한 순간 한쪽으로 기울었던 마음의 추가 균형을 맞추려는 듯 급격하게 기지개를 켰다.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모험을 할 것인가. 고민하다 칼날을 펴 꺼내 들었다. 평소 과일이나 깍던 둔탁해 보이던 십 센티 길이의 칼날은 그날 따라 살의라도 품은 듯 하얗게 빛났다. 물론 나의 의도는 상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칼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하여 그 맘을 포기하기를 바란 것이다.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칼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최선인데 왠지 그들도 돌아보지 않았다. 칼의 존재를 모르고 달려들기라도 하면 진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식으로 칼의 존재를 알릴 것인가. 괜히 먼저 들이밀어 그들을 자극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오르챠를 떠나올 때 대학생 커플이 건네준 사과 봉지가 생각났다. 배낭 옆에 들어있던 사과를 꺼내 깍았다. 그리고 잘라낸 사과를 칼과 함께 움켜 쥐고 두 청년의 어깨 사이로 들이밀었다. "eat ." 사과가 얹어진 칼을 본 것일까. 움찔 하는 그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다행히 의도대로 칼의 존재는 알린 듯 했다. 쟌시역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나머지 사과 서너 개를 시간에 맞춰 깍았고 그들에 넘기고 나도 먹었다. 긴장감에 줄창 피워대던 담배 필터에 바짝 마른 입술이 달라붙어 떨어져 나왔고 필터에 찝찌름한 피가 묻어 나왔다. 문득 나의 모습이 아귀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사과가 건네지고 얼마 뒤 드디어 역의 불빛이 보였다. 릭샤가 정지하기 전 뛰어내려 길 건너편으로 달려갔다. 릭샤 청년 둘도 릭샤에서 내려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무니 입술에서 또 다시 피가 배어 나왔다. 안도감에 기이한 웃음이 터졌다. 한참 허리를 구부려 웃음을 뱉어 내었다. 담배를 다 피울 동안 두 청년은 말없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 떠나지 않지? 한참을 서로 응시하다 담배꽁초를 버리고서야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줄까 말까. 괘씸하기는 했지만 놀란 눈으로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잠시 고민하다 심호흡을 하고 길을 건너 두 청년 앞에 섰다. 그리고 백 루피를 꺼내 건넸다. "one fifty, two hundred" 안도감에 따블을 건넨 것이다. 바라나시 역으로 걸어가는 내내 심장은 여전히 두근 반 세근 반 두근거렸다. 


난 이 사건을 재치로 위험을 넘긴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고 십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에서 다음 구절을 보고 말았다.


"인도에서는 시외에 나갈 때는 택시나 릭샤를 가릴 것 없이 운전석에 반드시 조수를 한 사람 태우고 둘이서 다닌다. 어쩌면 승객이 도둑으로 돌변할지 몰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도 기행 p89-


그러니까 말이죠, 사건을 릭샤 청년의 입장에서 재구성해보면,

<숙소 아저씨의 호출이 온 것은 어둠이 내린 저녁이었다. 몇 번을 거절했으나 반협박성 요구에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 윗 동네에 사는 크리슈나가 같이 가주겠다기에 돌아오는 길에 여행자라도 태워 돌아올 요량으로 승낙했다. 탑승한 여행자는 한국인으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국인을 처음 보는 크리슈나도 그 모습이 재밌는지 연신 뒤돌아보며 웃었다. 오랫만에 만난 우리도 이런 저런 이야기로 즐거웠다. 시간이 지나니 콧노래가 그쳤다. 그리고 뭔가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뒤를 돌아본 크리슈나가 놀란 얼굴로 칼에 대해 들릴 듯 말 듯 이야기했다. 칼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행객이 뭐가 아쉬워서 강도짓을 한단 말인가. 순간 우리 둘의 어깨 사이로 사과가 들이 밀어졌다. 사과 밑에는 투명하게 반짝이는 칼날이 함께 놓여 있었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수시로 사과와 칼날이 우리 둘의 사이를 파고 들었다. 돌아보니 입술에는 피가 붉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아귀같았다. 드디어 역에 도착하니 건너 편으로 냅다 튀었다. 그리고 한참을 서서 웃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돈을 따블로 주고 헐레벌떡 멀어져 갔다. 저건 미친 놈이 틀림없다. fucking korean!>


<저들의 삶은 이해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페넬로페 2026-10-06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그 순간에는 오싹하고도 무서웠을 것 같아요. 잉크냄새님의 재치가 돋보였네요. 후일담이라 맘 놓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ㅎ

잉크냄새 2026-10-06 23:51   좋아요 1 | URL
저보다도 릭샤꾼과 친구가 오싹하고 무서웠을 겁니다. 둘이나 타고 강도를 당할뻔 했으니까요. 저도 재치라 생각했는데 법정 스님에 따르면 강도로 살짝 돌변한 상황이죠. ㅎㅎ

마힐 2026-10-07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쪽 다 몸은 현재에 여여하게 자기 할일을 했지만 속으로는 무수히 많은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었네요. ^^ 지나고나서야 웃을 수 있지만 당시 상황엔 여러 개의 우주가 펼쳐졌네요. ㅎㅎ 사과를 깍을 때 맥가이버 음악이 머리 속에서 흘러 나왔을 것 같네요.

icaru 2026-10-07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어요-- 반전이 있는 에피소드였네요 ㅋ읽으면서 손에 살짝 땀이 배어나왔네요! 법정스님의 <인도 기행>과 엮으시는 편집력도 ㅋ 그나저나 일몰사진 와아--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아련하고, 역사의 한장면(이 건축물에요 ㅋㅋ) 묻어 있네요. 저는 일몰 사진 보면 쓸쓸하달까 고독하달까 슬프달까 ㅎ
 

한국어 사용자들은 문장 하나를 말할 때마다 그렇게 상대와 자신의 지위를 확인한다. 너는 나에게 반말과 존댓말을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나는 너에게 존댓말밖에 쓰지 못할 때 나는 금방 무력해진다. 순종적인 자세가 되고 만다. 그런 때 존댓말은 어떤 내용을 제대로 실어나르지 못한다.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도전적인 아이디어들이 그렇게 한 사람의 머리 안에 갇혀 사라진다. 나의 자존을 지키지 못하는 언어, 틀렸다고 꾸중 듣기 좋은 말을 자주 쓰고 싶을 리 없다. 단기적인 대책은 상사, 선생님, 윗세대와 대화하지 않는 것이다. 장기적인 대책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다. 한국의 세대 구분이 그렇게 촘촘하고 계층 간 단절이 심한 것, 이 사회가 그토록 출세 지향적인 것은 언어 탓이 꽤 크다고 생각한다. ‘존댓말 쓰고 반말 듣는 상황’을 다들 피하고 싶지 않나. 오래도록 그런 처지에 내몰려 억울함이 쌓이고 묵으면 한이라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p282-


처음 중국 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일 중 하나가 중국 직원들의 억양과 말투였다. 직원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쓰는 언어는 동등했다. 그들 사이의 언어와 나에 대한 언어가 다르지 않았다. 오직 나만이 그들과 나 사이의 나이와 직책과 서열을 언어와 관련 짓고 있었다. 동등한 언어의 사용, 그들 사이의 말이 나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때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데 몇 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해외 고객의 공정 감사에 대응할 일이 많았다. 영어와 중국어권 고객과의 협상 자리의 언어는 평이하고 동등했다. 대화에 높낮이가 없었고 조심스런 격식만이 느껴졌다. 반면 (일본어는 잘 모르지만 분위기상) 일본과 한국 고객과의 언어는 나를 얼마나 낮추고 있는지, 그리하여 당신이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지는 보여주려는 무의식적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사용할 때 나의 언어 습관은 무척 달랐고 행동의 양태도 달랐다. 스스로 느낄 뿐 아니라 제삼자도 흥미롭고 의아하게 지켜보던 모습이었다. 한국어가 훌륭한 언어인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존댓말이 갑질의 언어로 변질될 때 존대는 굴종을 요구한다. 훌륭한 한글이 존댓말로 대표되는 동방예의지국의 언어가 아니라 반말이 사라진 평등한 나라의 언어이기를 원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감은빛 2026-09-18 0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커피숍 직원이 고객이 아니라 상품을 높이는 것을 희화화 해서 보여주는 코메디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높임말이 참 어렵죠. 나보다 상관이 대화 상대 앞에서 그보다 직급이 낮지만, 나보다는 더 높은 분을 언급할 때 호칭을 높여야 하나? 아님 낮춰야 하나? 이게 참 애매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아무생각없이 다 높이면, 저 가게 직원 말투가 되는 거죠. 고객님 주문하신 커피가 나오셨어요. 만오천원 되십니다.

잉크냄새 2026-09-19 10:02   좋아요 0 | URL
제가 느낀 바가 있어서 중국에서 복귀한 이후 다시 회사에서 임원직을 수행하면서 직원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했어요. 나중에 퇴사할 때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존댓말을 사용한 것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하더군요. 전 사실 일 잘했다는 말을 기대했는데...ㅎㅎ 그만큼 한국 사회 생활에서 연공 서열에 따른 언어의 사용이 경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페크pek0501 2026-09-18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댓말이 갑질의 언어로 변질될 때 존대는 굴종을 요구한다.˝
생각해 볼 만한 문제예요.
저도 이 책을 가지고 있는데 좋은 글이 많더라고요.^^

잉크냄새 2026-09-19 10:10   좋아요 0 | URL
성급한 결론일지 모르지만 전 한국 사회 갑질의 주요 원인중 하나가 존댓말의 변질이라고 생각해요. 말이 의식을 결정하는 언어결정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 갑과 을을 구분하게 만듭니다. 을이 갑에게 하는 존대에는 굴종이, 갑이 을에게 하는 존대에는 비꼼과 무시가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마힐 2026-09-20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중국어도 한국과 같은 존댓말은 없지만 호칭으로 상대방을 윗사람으로 보느냐, 나랑 동등 혹은 나보다 아래로 보느냐로 나뉘어 집니다. 다만 그 구분이 한국처럼 확실하지 않고 모호하긴 합니다. 대신 어투나 감정을 통해 이해해야 하죠. 한자어의 특성인가 봅니다. 뜻으로만 해석해야 하니. 아무튼 존대든 하대든 상대를 배려하지 않으면 언어적 폭력이 되는 건 한국이나 중국이든 같은 것 같습니다.

잉크냄새 2026-09-20 19:28   좋아요 1 | URL
‘您닌‘과 ‘你니‘의 구분이라든지, 나이를 묻는 예의있는 표현이라든지...하는 것을 ‘조심스런 격식‘ 이라는 문구에 포함해 보았어요. 세상 어디나 언어적 폭력이 존재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 언어가 존댓말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갑과 을의 언어로 변질될 때 그 폭력의 상흔은 훨씬 크고 잔혹합니다. 말이 의식을 제한한다는 언어결정론에 가장 부합하는 하나의 예시가 존대말과 반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갑질은 어느 사회나 존재하지만 ‘갑질‘이란 단어가 옥스포드 사전에 등재된 건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죠.
 

< AI가 그려줬어요 - 속옷 가게와 삼류 극장 간판은 같은 거리에 있지 않았다>


길 건너편의 어떤 풍경에 매료되어 걸음을 멈췄다. 화려한 여성 속옷 가게 앞에서 서성이던 한 여인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별것 아닌 모습에 발걸음을 멈춘 것은 그 곳이 중동의 어느 도시였고 그 여성은 검은색 차도르로 온 몸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중동 어느 거리에서 상반신을 훤히 나체로 드러낸 여성이 그려진 영화 포스터를 봤을 때만큼이나 이질적이었다. 무채색 거리에 레이스가 달린 붉은 속옷을 걸친 마네킹이 쇼윈도우를 통해 노출된다는 것도 의외였지만 기실 궁금했던 것은 검은색 차도르를 착용한 그 여인이 어떤 선택을 할까 였다. 들어갈까 아닐까. 감히 사진기를 꺼내 찍을 엄두는 못 내고 가만히 지켜 보았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남편인 듯한 남자가 나와 쇼핑백을 그녀에게 건넸다. 아! 이 여성은 속옷 고를 자유마저 차압당하고 살고 있구나. 이 또한 차도르라는 폐쇄적인 이미지가 가져온 편견일까.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26-09-04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실적으로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에서 저런 여성 속옷가게가 가두 상권에 공공연히 있을 수는 없지만 실제 중동 여성들의 경우 차도르 밑에 의상이나 속옷은 자유로운 서구 여성 못지 않게 매우 화려하다고 합니다.아무래도 억압된 상황에 대한 일종의 욕구분출이 아닐까 싶네요.

잉크냄새 2026-09-04 20:09   좋아요 0 | URL
이슬람의 본산지인 사우디(수니파), 이란(시아파) 처럼 진짜 엄격하게 이슬람의 율법이 지켜지는 나라는 꿈도 못 꿀 상황이지만 주변국들은 좀 관대한 편이더군요. 이 글도 시리아 중부의 어느 도시에서 마주한 내용입니다.

모나리자 2026-09-06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의 풍경이 상당히 낯설게 느껴지네요. 온통 검은 차도르로 감싼 여인의 모습과 너무 대비되어서요. 그나저나 미 이란 전쟁 얼른 끝나야 할 텐데 한없이 길어지네요.
잉크냄새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잉크냄새 2026-09-06 14:01   좋아요 1 | URL
제 기억에 대낮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아요. AI한테 조명단계를 좀 낮춰달라고 해도 말을 잘 듣지 않아 좀 밝게 나왔어요. AI 생각에도 속옷가게는 조명이 밝을거라는 선입견이 있나 봐요. ㅎㅎ
미국 이란 전쟁을 보면 이제는 전장은 지역적이지만 국지전 개념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세계가 고통받네요. 트럼프 빼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감은빛 2026-09-18 0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거 이슬람 문화권은 매우 과학적이고 철학적이며 평등한 문화였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속옷 하나 살 수 없는 시대로군요. 이런 것이야말로 깨져야 하는 악습이네요.

잉크냄새 2026-09-19 09:39   좋아요 0 | URL
코란의 해석이 참 무섭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종교적 해석도 결을 달리 해야하는데 종교 원리주의가 워낙 막강한 모양입니다.
말씀처럼 몇몇 악습만 없앤다면 이슬람 문화가 관대하고 참 매력적인 면이 많아 보입니다.

icaru 2026-10-0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역시 반전이 있었네요-- AI가 그려줬어요를 나중에야 보고 ㅎㅎㅎ;; 알아서 헤아려 보는 것으로
 

지금 살고 있는 방 두 칸짜리 이 집에는 허리까지 오는 낮은 책장이 각 방과 거실에 놓여 있다. 천장까지 높게 올라가는 책장은 심리적 거부감 때문에 아무래도 싫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작업방 책장의 책들은 색깔별로 구분해 꽂아두었다. 이렇게 색깔별로 책을 꽂으면 책 장르가 마구 뒤섞여 의외의 조합이 생기는 게 재미있다. 시집 옆에 과학책, 페미니즘 책 옆에 경제학 책. 색별로 정리하면서 내 책 중에는 흰색 표지 책이 가장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른 색에 비해 흰 책이 4~5배 이상 수가 많다. 다 꽂아놓고 보니 발견한 사실인데 그 이유가 뭔지 무척 궁금하다. 누군가 책표지 색에 대해 쓴 논문이 있을 것도 같다. -p73-





책장을 정리해야 할 때가 생긴다. 여유 공간을 두고 정리한 책들의 틈새에 하나 둘 신간이 자리하면서 드디어 더 이상 꽂을 공간이 생기지 않을 때 다시금 배치를 생각하게 된다. 개인마다 책을 분류하고 꽂는 방식은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분류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장르-작가-제목순 등 탐색의 편이성을 염두에 둔 분류법이 일반적일 것이다. 이랑 작가의 책 분류법은 독특하다. 그녀는 책의 겉표지 색깔에 따라 정리한다. 아, 얼마나 기발한 발상인가. 역시 아티스트는 다른가 보다. 나중에 책을 찾을 때의 불편함이야 어쩔 수 없을 테지만 왠지 책장에서 다양한 색깔의 무지개를 볼 수도 있겠구나 싶다. 방 한구석의 책장을 바라본다. 아쉽게도 무지개는 피지 않을 것 같다. 다만 흰색과 검은색, 무채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중간중간 노랗고 파랗고 빨간 꽃들이 듬성듬성 피어나겠다 싶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08-20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정리하는 경우 보통 도서관 분류법으로 책장에 넣거나 박스에 넣는 편인데 문제는 책 크기가 제 각각이라 정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출판사별로 개성과 색깔을 나타나기 위해 책 크기를 a4,a5등표준 규격으로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책 크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독자입장에서는 책 정리하기가 매우 난감하네요.

잉크냄새 2026-08-21 21:0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책 크기도 천차만별이네요. 특히 정사각형의 큰 책들이 분류하기가 애매할 듯 합니다. 색깔별로, 책 크기별로, 책장에 꽂아보면 특색 있고 재미있을 듯 합니다.

페넬로페 2026-08-21 0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구매를 자제하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책이 늘어나 있더라고요.
책이 다른 가족들의 공간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저는 최대한 높이 쌓으려고 해요.
저는 출판사별로 책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잉크냄새 2026-08-21 21:03   좋아요 1 | URL
저도 일단은 높이 쌓아 공간 점유를 줄이는 방법을 사용중입니다.
출판사별로 정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뭔가 출판사만의 특색이 드러난 듯 하네요.

감은빛 2026-09-18 03:14   좋아요 1 | URL
오! 출판사 별로 정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잉크냄새 2026-09-19 09:36   좋아요 1 | URL
저도 리스트에는 출판사를 구분하는데 책장은 아직 적용해보지 않았네요. 다음에 한번 도전해 볼랍니다.

마힐 2026-08-26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공간을 차지하니 이제는 전자책으로 구매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전자책도 책이라고 불러줘야 할지는 아직 고민이에요. 책이라고 생각하는 모양도 사라지고 책장을 넘기는 감각도 사라지고,무게감도 사라지고. 그냥 내용만 눈 앞에 나타나게 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 같아서 책이라 부를 수 없을 것 같아요. 책도 인공지능과 결합되면 피지컬은 유지하되 즉 책 두께나 종이 질감은 그대로 유지하되 책장안의 내용들이 독자가 원하는 책에 따라 글자가 바뀌는 시대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ㅎㅎ

잉크냄새 2026-08-26 20:41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외국에서 책을 사려면 보관이나 이동의 문제로 인해 전자책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겠네요. 그래도 책만이 가질 수 있는 촉감이라든지, 냄새라든지 하는 부분들은 대체할 수 없겠네요. 그리고 또 하나 전 전자책은 조금 읽으면 금방 질리고 머릿 속도 뭔가 아른아른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라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감은빛 2026-09-18 0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이 늘어나면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늘 고민이죠. 색깔별로 정리하는 건 예전에 생각해본 적이 있었고 실제로 잠시 일부 책들만 해봤는데, 다시 책을 찾기가 어려워서 그만두었던 방법이예요. 저는 저만의 분류법이 있어요. 제 기준 호감도를 중심으로 좋아하는 책들과 그렇지 않은 책들입니다.

잉크냄새 2026-09-19 13:00   좋아요 0 | URL
호감도 기준이라니...책장을 정리하는 것이 도서관 기준이 전부일 거라 생각했는데 개인에 따라 참 다양하군요.

2026-10-07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중국 쓰촨성에서 윈난성으로 넘어가는 가장 일반적인 길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꽃이름을 도시명으로 가진 판쯔화攀枝花라는 곳을 거쳐 윈난 리장丽江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험난한 중국 내륙 지형이지만 청두成都-판쯔화 攀枝花사이 기차가 놓여 있어 가장 무난하게 여행할 수 있는 길이다. 또 하나의 길은 가장 유명한 길이자 인내와 고난의 길이기도 한 차마고도를 지나는 길이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도시 리탕理塘을 거쳐 샹그릴라香格里拉로 넘어가는 버스로만 서른 시간 넘게 걸리는 쉽지 않은 여행길이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길 하나가 더 있다. 쓰촨과 윈난 중간에 형성된 둘레가 50 킬로에 달하는 커다란 호수 루구후泸沽湖를 지나는 길이다. 루구후 외에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고 교통이 불편하여 그다지 이용되지 않는 길이었다. 판쯔화를 거치는 너무 상투적인 길에 대한 거부감과 언젠가 라싸로 넘어가는 길로 남겨 두고픈 기대감에 두 길을 제외하고 루구후를 거치는 길을 지나게 되었다.


청두에서 기차로 8시간, 그리고 다시 시골 버스로 8시간을 달려 도착한 마을 초입에는 자연목으로 만들어진 아치형의 커다란 대문 중간쯤에 '루구후'가 어설프게 양각 처리되어 있었다. 초입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던 '여인천하, 남성천당' 이란 표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마을에서 호수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온 곳에 위치한 어느 전통가옥에 숙소를 잡았다.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여행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늦은 밤 어느 집 마당에 동네 여인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불 주위를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마당 한켠에 걸터 앉아 한참을 구경하는데 왠지 남자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 있었고 여인들만의 춤판에 홀로 있기 어색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젊은 사내가 운영하는 술집에 머무르니 주인장이 루구후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루구후는 모쒀족이 자치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중국 56개 소수민족중 유일하게 모계 사회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아마 그 표어의 의미는 모계 사회를 나타내는 하나의 의미로 쓰여진 듯 했다. 


모쒀족摩梭族은 모계 중심의 사회이다. 어머니를 가장으로 하여 가족이 형성된다. 부부는 연을 맺기는 하나 같은 집에서 살지 않는다. 남자는 여인의 집으로 와서 밤을 지새고 아침이 오기 전 떠나간다. 특별한 혼례의 절차가 없다. 마음이 맞으면 남자가 담을 넘어 여자의 방문을 두드리고 여자가 문을 열어 받아들이면 암묵적인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고 한다. 이런 결혼의 형태를 주혼走婚이라고 한다. 결혼의 구속력이 없으니 이혼의 강제력도 없다. 여인은 마음이 떠나면 남자의 가방을 창가에 걸어 놓으며 남자는 이를 인연이 다한 것으로 여기고 돌아선다. 그러다 보니 한 집안에 같은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가 다른 자식들이 같이 생활하게 된다. 부부금실이 좋으면 모두 같은 아버지를 두게 되지만 금실이 별로면 모두 다른 아버지를 둔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생활하게 되고 장성한 딸들이 다시 독립하여 또 다른 모계를 이루게 된다. 외삼촌들은 어머니를 이어 장녀가 부양하게 된다. 모쒀족 여인 '양 얼처 나무'의 책 '아버지가 없는 나라'를 보면 부정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그리움과 눈물겨운 애정을 표현한 것과 달리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냥 핏줄에 대한 긍정 외에는 그다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라는 호칭이 없는 듯 그냥 이름만을 건조하게 적을 뿐이었다. 모든 경제 생활이 어머니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며 남자들은 산에서 가축을 기르거나 집 건축 수리 등 일부 일에만 관여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주로 차마고도를 따라 마방의 삶을 이어갔다.


모쒀족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풍습이 있다. 작지만 그들만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개에 대하여 가족 같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신화에 따르면 태곳적 하늘이 열리고 신들이 세상의 모든 동물을 일렬로 세워 생명을 부여할 때 개 뒤에 인간이 있었다. 개가 60년의 수명을 얻게 되고 인간이 15년의 수명을 얻게 되었는데 개가 슬퍼하는 인간에게 자리를 양보하여 지금의 수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매년 춘절에는 정성들여 음식을 장만하여 개에게 인간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음식을 대접하는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욕을 하는 행위는 철저하게 금기시되고 있다. 그래서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으면 방문을 박차고 나가 돼지나 닭에게 대신 욕을 한다고 한다. 어리둥절한 가축에게 "인간 같은 놈"이 최악의 욕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개에게는 욕하지 않는다. 


루구후는 아침 햇살이 특히 인상깊었다. 아침부터 뭔가 저녁처럼 쓸쓸하고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첩첩이 둘러싼 산을 넘어 여명보다 훨씬 늦게 호수에 도착한 햇살이 갈대 여기저기서 조금씩 비집고 들고서야 고즈넉함은 사라져갔다. 뱃사공들도 모두가 여인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로 키보다 훨씬 큰 삿대를 둘러 매고 석양을 거니는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다 눈이 마주친다. 이를 드러내고 환히 웃는 그녀들의 모습에 측은지심은 한낱 나그네의 객창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대숲 사이 사이를 삿대를 저으며 나아가는 그들의 나룻배를 빌려 한나절 호수를 유람하였다. 돌아오는 길 호수가 아래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올라가 보았다. 저기 아래로 두 대의 나룻배 사이 커다란 목재를 걸친 배가 지나다닌다. 그들 또한 여인들일까. 그들의 거친 생존력이 아직껏 모계 사회을 이어가는 원천이 되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차트랑 2026-08-07 0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루구후의 여인들은 조선의 여인들처럼 남존여비를 겪으며 살지 않았을듯 하여
참으로 다행이다 싶습니다.

모쒀족의 풍습은 처용가를 떠올리게 하네요.
처용가를 통해 신라도 어쩌면
폴리가미(polygamy)의 사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하거든요.

어쨋든 루구후의 남녀 문화가 조선 사회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드는군요.
여인들에게 족쇄를 채우지 않는 다는 것 만으로도 말입니다.

음... 사진 잘 찍으시네요~

건강에 유의하십시요 잉크냄새님.
좋은 하루 되시구요~


잉크냄새 2026-08-07 21:26   좋아요 1 | URL
모쒀족은 폴리가미라기에는 관계 정리에 철저해 보입니다. 여성은 가방을 걸어둠으로써 상대와의 관계를 확실히 끊어버립니다. 남자 또한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에 미련을 가지지 않는 듯 합니다. 오랜 전통이 본성마저 바꿔버린 것 같기도 하네요.

사진은..... 하나 잘 얻어 걸렸다는 표현이 제일 적합해 보여요.

감은빛 2026-08-17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첫번째 사진 정말 멋진 풍경이네요.
세번째 사진도 멋지구요.

모쒀족의 삶의 모습은 놀랍네요. 그런데 한 번의 여행으로 그런 내막을 다 알아낸 잉크냄새님도 놀랍구요. 모계 사회를 떠올리면 잘 상상이 안 가기는 하는데,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나가 종족이 모계 사회로 나왔던 점이 기억 나네요. 거기도 아버지는 의미가 없고, 같은 어머니 밑에서 자란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가족을 이루는 것으로 나왔었어요. 남성들은 성인식을 치르면 집을 떠나야 했던 것 같아요.

언젠가 소설에서 모계 사회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만약 쓰게 된다면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26-08-17 21:35   좋아요 0 | URL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사진을 대하는 감성도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첫번째 사진은 글에서 언급된 <아버지가 없는 나라>의 책표지와 너무 흡사해 깜짝 놀랐습니다.

모쒀족에 대한 정보는 첫 여행시 얻은 피상적인 정보에 나중에 <아버지가 없는 나라>라는 책을 통해 보강된 부분입니다.여행 당시 중국어가 그다지 높은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ㅎㅎ

icaru 2026-10-0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 대황하나 실크로드 차마고도 같은 다큐에서 나오는 OST깔고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