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철학 이론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한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사유하는 이론은 거의 없다.(동물의 권리 등을 논하는 응용윤리학이 몇 안 되는 예외다) '인간과 동물의 인간적인 관계'를 사유하는 분야는 전혀 없다. 많은 철학자들이 반려동물의 의미를 사유하는 데 별다른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반려동물의 존재가 철학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다. 물론 반려동물은 인간이 아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인간은 반려동물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려 한다. 이것이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 신기한 점인데 "이런 감정이 사실은 인간 관계를 '확장'해서 얻게 되는 착각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관계의 기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조금 전 나는 가족은 혈연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현실에는 혈연 관계가 아닌 가족이 많이 존재한다. 아니, 이런 비혈연적이면서 가족적인 관계야말로 사회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애당초 국민 국가 자체가 '비혈연적 가족'의 전형이다. 인간은 다양한 존재를 가족으로 여길 수 있다. 이처럼 가족 개념에는 강력한 확장성이 있다. 오히려 피로 연결된 가족이 특수한 사례다. 반려동물에 관한 사유는 이렇게 우리를 넓은 지평으로 이끌어준다. 

<느슨하게 철학하기> -p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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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처음 키운 이후 삶의 변화를 간단히 기술하면, 금연, 절주, 낚시 금지, 살아있는 요리 안 먹기 등 몇 가지가 있다. 창가에서 흡연시 곁에 와 한참을 기다리는 녀석의 폐가 너무 작다는 생각이 문득 든 날 실내에서 담배를 끊었다. 현관 문 앞에서 열쇠를 돌리기도 전 문 너머 어둠 속에서 새어나오던 가냘픈 울음소리를 듣던 날 일주일에 세 번 먹던 술을 한번으로 줄였다. 


낚시는 딱히 좋아하거나 즐기지는 않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그 하지 않는 이유가 달라진 것이다. 예전에는 시간 아까워서 라든지, 모기가 싫어서 라든지 하는 이유였다면 지금은 생명이라는 가치에 반하는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어업 행위를 제외한 취미로서의 낚시는 생명을 한낱 유희의 대상으로 여기는 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비슷한 이유로 밥상에서 생명이 요리되는 음식도 끊었다. 채식이니 육식이니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구태여 밥상에서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내면의 잔혹성을 재료의 신선함이라는 이유로 포장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반려동물을 보면 생명과 죽음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의 철학 이론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한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사유하는 이론은 거의 없다.(동물의 권리 등을 논하는 응용윤리학이 몇 안 되는 예외다) ‘인간과 동물의 인간적인 관계‘를 사유하는 분야는 전혀 없다. 많은 철학자들이 반려동물의 의미를 사유하는 데 별다른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반려동물의 존재가 철학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다. 물론 반려동물은 인간이 아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인간은 반려동물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려 한다. 이것이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 신기한 점인데 "이런 감정이 사실은 인간 관계를 ‘확장‘해서 얻게 되는 착각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관계의 기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조금 전 나는 가족은 혈연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현실에는 혈연 관계가 아닌 가족이 많이 존재한다. 아니, 이런 비혈연적이면서 가족적인 관계야말로 사회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애당초 국민 국가 자체가 ‘비혈연적 가족‘의 전형이다. 인간은 다양한 존재를 가족으로 여길 수 있다. 이처럼 가족 개념에는 강력한 확장성이 있다. 오히려 피로 연결된 가족이 특수한 사례다. 반려동물에 관한 사유는 이렇게 우리를 넓은 지평으로 이끌어준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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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6-23 1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피로 연결된 가족이 특수 사례라는 인용문에 저도 점점 동의하게 됩니다. 반려동물이랑 살게 되면 적지 않은 게 변하고 바뀝니다. 잉크냄새 님도 그러시네요. 너무 좋아 보여요. 따뜻해집니다.

잉크냄새 2022-06-24 11:09   좋아요 2 | URL
애완이란 용어에서 반려라는 용어로 변한 것도 가족 개념의 적용이 아닌가 싶네요. 반려동물은 키워보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지 못할 것 같아요. 저부터도 그랬으니까요.

icaru 2022-06-23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재에 복순이언니라는 닉네임을 주었던 반려견이 지금은 추억 속에서 살아 있는데요 ㅎ 참 인간관계의 기원과도 같은 녀석이었습니다 ㅎ 그나저나 이 책 동하네요! 철학을 ‘익힌다 배운다‘가 아니라 철학을 ‘한다‘는 제목, 게다가 느슨하게 라니 너무 끌리는데요? ㅋ

잉크냄새 2022-06-24 11:14   좋아요 1 | URL
서재 초기에 복순이를 사진으로 봤던 것 같기도 하네요. 세월이 이리 흘렀으니 반려견의 한 생애가 훌쩍 지나갈 시간이기도 합니다. 근데, 복돌이님도 반려동물에서 딴 걸까요?? ㅎㅎ

이 책은 철학 맛보기 개념으로 읽었는데 읽기 괜찮은 것 같아요. 일상의 용어로 풀어낸 칼럼 성격의 글과 조금 전문성이 엿보이는 장으로 나누어 있는데,,,전 벌써 다 까먹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