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우리는 ‘햇빛’과 ‘햇볕’과 ‘햇살’을 구분하여 말하기 시작했을까. 빛과 볕과 살로 변주되는 그 말들은 미세하지만 분명 다른 질감을 지닌 듯하다. ‘햇빛’이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지닌다면 ‘햇볕’은 촉각을 환기하며 감각의 주체에게 보다 가까이 있고 ‘햇살’에 이르면 통각이라고 할, 보다 종합적인 어떤 몸섞임의 상태에 가까워진다. 햇빛이 아직 대상화된 거리 속에 있다면 햇살은 피부와 혀에 감기고 마침내 무언가 부드러운 살점을 나의 내부로 밀어 넣는 듯한 교합의 친밀감 속에 있다. 계절로 치자면 봄과 가을에 그것은 햇볕에 가깝고 여름의 그것은 햇빛에 가깝고 늦가을부터 겨울을 지나 초봄에 이르는 그것은 햇살에 가까운 듯하다. 봄가을에 촉각으로 먼저 느끼는 그것은 햇볕이라는 말이 지닌 적당한 따뜻함을 즐기게 한다. 여름날의 햇빛은 그 앞에 살갗을 봉헌하기가 쉽지 않은, 일단은 피해야 할 거리를 유지하기 십상이고, 쌀쌀하거나 몹시 시려운 겨울날을 지나면서 햇살을 그 살의 거처인 양지로 나를 불러들인다. 겨울에 나는 창가나 마당가로 햇살을 찾아다니고 햇살과의 통음을 즐긴다. 겨울 햇살은 내 속에 숨어있던 적극적인 소통의 열망을 드러내게 한다. -p118-


<시와 사막의 햇빛>


햇빛은 공간 속에서 빛난다. 시각에 공간이 더해져야 그 빛이 비로소 선명해지고 배가 된다. 고립무원의 공간만이 햇빛을 받아들일 수 있다. 바다나 사막 혹은 도시의 빌딩 위 피사체가 햇빛과 하늘과 대상으로 명확히 구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 조각 구름마저도 배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작열하듯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내려와야 한다. 발 제껴 피할 수 있는 공간이 한 치도 허용되지 않는 그 곳만이 햇빛을 안을 수 있다.


<옥수수 마르는 마당의 햇볕>


햇볕은 시간의 궤와 축을 같이 한다. 눈이 녹기 시작한 골목길 흙 담벼락에 드리워져 하루 종일 시간의 궤적을 그리며 벽을 어루만진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햇볕의 모든 색감을 담는다. 흙의 모든 질감을 어루만지며 젖은 공간이 말라가듯 그렇게 서서히 스며들어 품어 든다. 은은하게 품고 은은하게 퍼져 나온다. 햇볕이 어루만진 자리는 온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아늑함을 품는다.   


<고향 창가의 햇살>


햇살은 사물과의 실랑이 속에 살며시 드리워진다. 베란다에 걸린 빨래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기어코 방바닥 한 뼘의 공간에 누워 버린다. 누워서도 흔들린다. 때론 힘에 겨워 커튼에 슬며시 드리워져도 좋다. 그런 날은 바람에 실려와도 좋다. 흔들림 만으로도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눈꺼풀 위 한 뼘의 공간에 자리한 햇살의 어른거림은 때론 말라서 매미 날개처럼 바스락 거린다. 두 손 저어 보내기 전까지 햇살은 그렇게 실랑이 하다 문득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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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3-19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햇살이란 말을 사전에서 다시 찾아보았어요.

잉크냄새 2026-03-20 16:43   좋아요 0 | URL
저도 찾아본 기억이 나는데 그리 살갑지 않은 해석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냥 따스한 느낌으로 기억되는 것이 좋아보이네요. ㅎㅎ

마힐 2026-03-20 0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잉크냄새님 글도 좋지만 올리신 사진도 너무 좋네요. 직접 찍으신 작품 맞으시죠? ^^ 사진에 햇빛, 햇살, 햇볕이 이쁘게 드러났네요. 신기합니다. 저는 진짜 똥손이라 우리 아내를 찍으면 키가 작아지고 얼굴도 커지는 신기한 사진만을 찍어대 언제나 욕을 먹습니다. ㅎㅎ 그래서 사진 잘 찍는 분이 부러워요… 어떻게 찍어야 합니까? ㅜㅜ

잉크냄새 2026-03-20 16:48   좋아요 1 | URL
네, 여행중 직접 찍은 사진들인데 페이퍼 준비하며 사진들을 다시 한번 쭉 살펴보았어요. 그 중 햇빛, 햇볕, 햇살에 가장 가까운 사진을 골라보았거든요.ㅎㅎ

키 작아지고 얼굴 커지게 나오는 사진에 대한 개선안은 인터넷 조회만 해봐도 금방 나옵니다. 아래에서 무릎 구부리고 찍기, 사진에서 발 아래 일정 공간 남기기 등 몇가지가 있는데 구도 등 시간이 필요한 것과 달리 금방 개선할 수 있습니다.

단, 원래 작고 크면 뽀샾외에 방법이 없습니다.ㅎㅎ

페넬로페 2026-03-20 0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전을 찾아보지는 않지만 세 단어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뉘앙스가 다 다른 것 같아요.
인용해주신 문장이 참 좋아요.
올려주신 사진도요.
사막 사진속의 흔적은 발자국인가요?
오늘 산책하며
햇볕, 햇빛, 햇살을 잘 살펴보겠습니다.

잉크냄새 2026-03-20 16:50   좋아요 1 | URL
네 이집트 시와 사막을 다른 여행자와 같이 반나절 정도 걸어서 들어갈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문득 돌아본 사구에 남겨진 저와 동행의 발자국입니다.

오늘 햇빛,햇볕,햇살을 충분히 느끼셨는지요?

차트랑 2026-03-20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세 단어에 대한 발췌문도 아주 좋았습니다만
각 단어의 의미를 사진과 함께 읽으니
세 단어의 뜻을 시각으로 각인시킬 수 있을듯 합니다.
아름다운 글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잉크냄새님의 글, 태권도 9단의 아크로바틱를 보는듯
예술성 9단 드립니다!!




잉크냄새 2026-03-20 16:53   좋아요 1 | URL
가끔 작가들의 상상력과 표현력에 동승하여 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보는 시간은 즐겁고 흥미롭습니다.
태권도 9단은 작가인 김선우 시인이고 전 흰띠 잉크냄새입니다. ㅎㅎ

stella.K 2026-03-20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도 좋고, 특히 저 고양이 그림자 사진 정말 좋으네요. 어떻게 저걸 포착하실 생각을 하셨습니까?^^

잉크냄새 2026-03-20 16:55   좋아요 1 | URL
제가 기르는 고양이인데 햇살 좋은 날 창가에서 오수를 즐기곤 합니다. 그날 우연히 커튼이 내려와 있었고 낮잠 깬 고양이가 움찔 하는 모습에 바로 핸드폰을 들이댄 거죠. ㅎㅎ

책읽는나무 2026-03-20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오후에 산책을 하며 햇빛이 강해졌구나. 생각하며 피하다가도 음지에 가면 또 서늘하여 해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잉크냄새 님의 글을 읽다보니 제가 오늘 만난 것은 햇빛이 아니라 햇볕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그래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했었나 봅니다.^^
글과 사진이 또 하나의 작품이란 생각이 듭니다. 잘 읽고 갑니다.^^

잉크냄새 2026-03-21 19:41   좋아요 1 | URL
네, 봄은 햇볕이 가장 어울리네요. 길을 걷다 내가 지금 만난 것이 햇빛인지, 햇볕인지, 햇살인지 가늠해보는 것으로도 즐거운 산책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설픈 글에서 햇님의 여러 모습을 읽고 가셨다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ㅎㅎ

감은빛 2026-03-29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들이 정말 멋지네요.
제가 태양광발전 관련 일을 주로 하다보니 ‘햇빛‘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가끔 ‘햇볕‘이란 단어도 사용해요. 그런데 ‘햇살‘은 거의 쓰지 않았었네요.
그냥 단어의 어감으로는 햇살이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는 강의나 발표할 때 햇살을 써봐야겠어요.

해외여행을 거의 가보지 않았지만, 살면서 자랑할만한 것 중 하나가
몽골 고비사막을 아주 짧게 다녀왔다는 것인데요.
생각해보니 사진도 하나도 없고,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도 점점 희미해져서
이젠 내가 정말 고비사막에 다녀왔다는 증거가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잉크냄새 2026-03-30 20:28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빛에 관한 단어들이 직업적 맥락으로 접근하니 또 새롭게 보입니다. 말씀처럼 에너지쪽으로는 역시 햇빛만큼 강렬한 이미지가 없겠군요. 햇살을 정서적인 접근, 재생에너지의 비유적 표현으로 하면 좀 따스한 느낌일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

전 시간이 지니고 나니 여행에서 남는 것은 기억과 사진이더군요. 이상하게도 여행에 대한 기억은 세월이 지나도 빛바래지 않고 사진은 그 구체적 이미지를 더 각인하게 되는 요소가 되더군요.
 

나는 서평이 이 소중한 공동체(읽고 쓰는 공동체)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주 짧은 서평이라도, 그리고 악평이라도 그렇다. 

 ”우선 서평은 작가들에게 ‘당신 책을 읽은 독자가 있다’는 신호가 됩니다. 한국의 많은 젊은 소설가들이 응답 없는 벽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글을 쓰고 있거든요. ‘출판사 편집자들 말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긴 있나?’라는 막막함에 시달리다 좌절하는 소설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서평은 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자극하고, 움직일 힘을 줍니다.”

 서평은 다른 독자에게도 용기를 준다. 읽고 쓰는 공동체의 시민들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모일 일이 잘 없다. ‘문학하는 하루’ 같은 행사나 독서 모임은 예외적이다. 우리들은 평소에 뿔뿔이 흩어져,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지낸다. 읽고 쓰는 일은 대개 몹시 개인적인 일인 데다, 단기적으로는 상당히 쓸모가 없다.(회사나 학교에 내야 하는 보고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이때 서평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직 누군가는 치열하게 읽고 있다는 큰 격려가 되지 않을까. 지하철에서 성경이나 수험서가 아닌 책 들고 있는 사람 보면 반가운데, 나만 그런가. -p372-


77편, 현재까지 내가 작성한 리뷰의 수이다. 첫 번째 리뷰가 2003년이니 20여년의 기간에 비하며 참 적은 수치이다. 그것도 대부분 2000년대 중반에 몰려있으니 근 20년 가량 쓴 리뷰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리뷰가 줄어든 이유는 명확히 알고 있다. 비교적 편하게 감상문 수준의 리뷰를 올리던 시절을 지나 전문성을 갖춘 깊이 있는 리뷰가 등장하면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에 대한 자기 검열이 시작된 것이다. 잘 쓰고 싶다는 열망과 명확한 한계를 느끼는 절망 사이 작가도 아닌 것이 거창하게 절필(?)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올해 들어 다시금 써 보고 있지만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다. 리뷰는 주관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주관적이라는 입장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지만 작가의 서평에 대한 단상이 마음에 와 닿는다. 당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응원이 될테고, 우리가 같은 책을 읽고 있고 공감하고 있다는 연대가 될테니 말이다. 100자평이라도 꾸준히 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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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5-12-19 1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의 글을 읽고
최근 읽었지만 제게는 난이도가 높았던 책의 리뷰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고수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을 수 있는 경우인지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거창하게 절필˝하려다 생각을 살짝 바꾸어봅니다^^

좋은 하루되십시요~!!

yamoo 2025-12-19 11:32   좋아요 1 | URL
난이도 높은 책이라도 내 느낌을 그대로 쓰는 게 중요하죠. 지금 내 느낌이니까요. 저는 난이도 높은 책을 읽고 용감하게(?) 느낌을 마구 씁니다.ㅎㅎ 이 책이 상찬받을만하다고?! 내가 보기엔 형편없는데...라고 말이죠...무식하면 용감하니까요..ㅎㅎ
그래도 이런 글이 쌓이다보면 난이도 높았던 책도 비판할 수 있게 되더군요. 뭐, 그렇다는 겁니다..^^;;

잉크냄새 2025-12-19 20:23   좋아요 0 | URL
전문 서평가가 아닌 다음에야 책을 읽고 그냥 편하게 자기가 느낀 점을 써 내려가면 될 것인데 뭔가 잘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항상 앞에 나서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신경 안쓰면 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죠. 자꾸 눈에 거슬리게 되죠. ㅎㅎ
어쨌든 리뷰에 좀 더 집중해 볼까 생각중입니다.

stella.K 2025-12-19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걸 또 출판사나 서점이 부추기고 있는 분위기라 씁쓸하죠. 저도 갈수록 리뷰를 안 쓰게 되네요. 작가에게도 그런 애로사항이 있군요. 근데 제가 보면 작가가들이 독자와의 만남 같은 것이 아니면 독자와 소통하는 걸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하거나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놓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 책 읽어 본다고 하곤 여태 못 읽고 있네요. 잘 지내시죠?

잉크냄새 2025-12-19 20:26   좋아요 1 | URL
작가들에게 또 그런 면이 있군요. 이 책은 문학계의 메이저급 문학상 당선 외에 올라갈 사다리가 없는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다보니 응원의, 연대의 내용을 좀 더 부각한 면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스텔라님도 잘 지내시죠?

yamoo 2025-12-19 1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 달에 한 두 권 정도는 리뷰를 꾸준히 쓰려고 노력합니다. 작년까지는 리뷰 보다는 페이퍼를 주로 썼는데...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지 않으니 얼마 지나면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더라구요. 리뷰를 남기면 다시 신기하게도 복기가 됩니다. 그런 용도로 리뷰를 쓰죠. 올해 목표가 리뷰 20개 였는데 얼추 목표를 채웠습니다..^^

잉크냄새 2025-12-19 20:28   좋아요 1 | URL
개인 입장에서는 리뷰를 쓰면서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복기하는 것이 리뷰의 진정한 순기능이라 생각해요.
저도 올해는 한 달 한 권으로 목표를 잡았는데 절반 정도 달성했네요. 내년에도 리뷰에 좀 더 시간 투자를 해 볼까 합니다.

카스피 2025-12-19 14: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는 아무래도 각 잡고 진중하게 써야하기에 부담이 크죠.그래서 가벼운 맘으로 휘리릭 쓰는 페이퍼가 편한것 같아요.

잉크냄새 2025-12-19 20:30   좋아요 1 | URL
리뷰가 사실 각 잡을 일도 아닌데 말이죠. 각은 군대 관물대에서나 잡으면 되는데 말씀처럼 리뷰 앞에만 서면 각을 잡게 됩니다. ㅎㅎ 리뷰 쓸 때도 페이퍼처럼... 기억할 만한 문구입니다.

카스피 2025-12-27 00:44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잉크냄새 2025-12-28 11: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달인 기준이 뭔지 뭔가 모호하긴 하지만요. ㅎㅎ

페크pek0501 2025-12-28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새해에는 리뷰를 꼭 쓰는 걸로... 한 달에 한 권이라도 꾸준히 쓰는 계획을 실천해 보겠습니다. ^^

잉크냄새 2025-12-28 11:16   좋아요 0 | URL
저도 새해에는 뭔가 목표를 잡아볼까 합니다. 100자평이라도 남겨보려고요.

마힐 2025-12-29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저 서재의 달인에 오르신 것 축하드립니다!!!
리뷰쓰기 쉽지 않아요. 리류를 쓴다고 생각하면 안 써지더락구요.
그래서 전 내년에는 잉크냄새님같은 달인의 서재에 부지런히 방문해서 댓글이라도 달아 볼려구요... ㅎㅎ
내년에도 잉크냄새님의 좋은 글을 기대해 봅니다.

잉크냄새 2025-12-29 19: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제가 올린 리뷰나 페이퍼의 수로 볼 때 선정될만한 이유가 있나 하는 의문은 계속 듭니다. 저도 마힐님 서재 자주 방문해 열심히 읽고 댓글로 소통도 자주 하겠습니다.

감은빛 2026-01-26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젠가부터 서평 혹은 리뷰를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잘 쓰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재밌게 읽은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좀 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스스로의 기준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예전에는 책에 대한 수다 같은 가벼운 느낌으로 글을 잘 썼는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는 어려운 느낌이네요.
저도 올해는 책 이야기를 좀 더 많이 써야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잉크냄새 2026-01-26 21:47   좋아요 0 | URL
아마 전문 서평가가 아닌 다음에야 서평 혹은 리뷰에 대하여 가지는 부담감은 다 비슷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올해는 100자평부터 시작해서 리뷰도 좀 꾸준히 올려보려 생각중입니다.
그래도 알라딘은 서점이니, 눈치도 좀 봐야겠고요.ㅎㅎㅎ
 

유리잔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한순간의 소리를 1분, 한 시간, 하루 또는 1년으로 늘려놓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본다. 소리의 총량은 그대로지만 시간이 늘어남으로써 그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로 인식하지 못한다. 유리잔 스스로도 자신의 몸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하필이면 깨지는 유리잔에 비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삶은 이처럼 느리게 진행되는 사건의 과정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청년은 노인이 되고 기억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우리는 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연장된 사건의 미세한 파편들로 이루어진 안개 속에 있다. 예감은 어긋나고, 하나의 사건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종결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무슨 일이었는지 안다. 그제야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세월의 덧없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우리가 삶이라는 사건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연장된 시간 때문이다. 수만 분의 1초로 분할된 느린 화면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유리잔처럼 순식간에 부서져버릴 것이다. -p51~52- 유리잔


파트리크 쥐스킨트에 따르면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한다. 계열 필수인 물리학이 F 학점인 스스로도 영 믿음이 가진 않지만 윗 문단에서 독서 건망증에 대한 합리적 변명과 상대성 이론을 함께 읽어냈다. 그러니까 삶에서 유리잔이 쉽게 깨지지 않는 것은 유리잔이 부딪히고 균열이 가고 산산조각이 나도록 늘어나는 그 시간 동안을 우리가 기어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깨어져 나가는 시간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에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 당장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유리잔이 깨지는 시점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시간을 늘여놓은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느끼고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냥 삶이 수동태냐 능동태냐의 차이 정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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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10-13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어나서 죽음으로 가는 우리는 늘 오늘이라는 시간의 늘어남 속에서 있는 거였네요.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주위의 모든 것이 시간에 늘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시간은 빠른 것이 아니였네요. ㅎㅎ

잉크냄새 2025-10-13 21:16   좋아요 1 | URL
시간의 늘어남을 오늘에 대입해보니 과거-현재-미래가 분절되지 않고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느낌이 더 확실하게 다가옵니다. 매듭짓지 못하면 불안에 빠지는 인간의 심리가 하나의 연장선을 과거-현재-미래 라는 단락으로 구분해 버린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transient-guest 2025-10-18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제가 그래서 자신이 늙었다는 걸 모르고 아이처럼 살고 있나봅니다.ㅎㅎㅎ

잉크냄새 2025-10-19 10:45   좋아요 1 | URL
앗, 이것은 철부지에 대한 엄청 철학적인 변명거리가 될 것 같네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25-10-19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과 관련된 위의 글을 읽으니 - 5년, 10년이란 시간은 아주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주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게 신기하다는 평소 생각이 떠오릅니다. 시간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있는 듯합니다.^^

잉크냄새 2025-10-20 19:21   좋아요 1 | URL
심리적 시간은 개인적 편차가 크다 보니 다 다를 수 있겠네요. 일직선의 인간 생을 년으로 분류하는 것은 반복되지 않고 이어지는 끝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이루어진 행위라는 설도 있더군요.
 

윤기가 돌다. 윤기가 흐르다. 윤이 나다. 윤은 가만히 정체하는 빛이 아니라 흐르고-돌고-드러나는 ‘활동성의 빛’이다. 또한 반드시 물체의 표면에 나타나기에 ‘의존적인 빛’이기도 하다. 즉 빛 자체가 윤의 핵심은 아니라는 것. 윤은 ‘존재를 떠받치는 밝음’이란 것. 일반적으로 빛이 (전구나 노을, 혹은 영사기처럼) 특정한 중심으로부터 폭력적으로 뿜어져나오는 데 비해, 윤은 사물의 표면에 고루 퍼진 채 공평하게 드러나는 ‘안온한 빛’이다. 그래서 윤이 나는 것들은 평안해 보인다. 엉덩이 덕에 반들거리는 툇마루처림. -p175-






국민학교 6학년 교실은 오래된 목조 건물 3층이었다. 양쪽으로 목조 계단이 있었고 2층은 교무실로 3층은 6학년 교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교장실은 2층 복도 바로 옆에 자리해 있었다. 교실 바닥과 복도는 오랜 세월 세대를 이어 닦고 닦아 반짝반짝 윤이 났고 김연아의 트리플 엑셀이 가능할 만큼 미끄러웠다. 목재 바닥의 윤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동 노동(?)이 절실히 필요했는데 준비물로는 실과 시간에 직접 바느질해 만든 내복 재질의 걸레, 방앗간에서 얻어온 바카스 병에 담긴 들기름 찌꺼기, 그리고 새하얀 양초가 필요했다. 줄을 맞춰 앉아 바닥에 초를 칠하고 걸레에 기름을 묻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닦아 나간다. 1조가 가면 2조가 뒤를 잇고 걸레가 놓친 부분은 무릎팍이 다시 한번 닦아내어 조금의 틈도 용납하지 않고 지나간다. 어느새 교실과 복도는 들기름의 향긋한 내음과 걸레의 꼬릿한 냄새가 환상적으로 섞인 신비스러운(?) 향으로 가득 찬다. 창문을 넘어온 햇살이 숙제 검사라도 하듯 바닥 검사를 실시하면 은은한 바닥에서 끄물거리던 눈부심과 햇살 속에 가볍게 피어오른던 먼지의 은하수 길이 시작되곤 했다. 하교길에는 계단에 앉아 엉덩이 미끄럼을 타며 내려갔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 엉덩이를 견뎌냈는지 계단 목재의 모서리는 둥글게 둥글게 변형되고 엉덩이 골을 따라 움푹 파여 있었다. 교장실에서 소리를 치며 나온 교장 선생님이 대머리였던 건 윤기로 떠오른 이 기억의 화룡점정이다. 그래서 윤이 나는 것들은 평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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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28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기억을 소환하는 따뜻한 글. 읽으며 입에 절로 웃음이 맺히네요.

잉크냄새 2025-07-29 21:46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도 비슷한 추억을 가지고 계신 듯 싶네요.
가끔은 이리 낡고 희미한 기억들이 더 따스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카스피 2025-07-28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국민학교 시절 학생들은 청소시간에 왁스나 양초로 바닥이 윤이나게 닦았다고 하더군요.만일 요즘 그랬다간 민원이다 뭐다 생 난리가 났을 겁니다ㅡ,.ㅡ

잉크냄새 2025-07-29 21:47   좋아요 0 | URL
네 그 아동 노동의 산 증인이 접니다. ㅎㅎ

감은빛 2025-07-29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덧이름 감은빛은 반질반질 윤이나는 검은 색을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뜨다 감다의 그 감은 빛으로 빛을 감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이 덧이름으로 페이스북을 사용한지 아주 오래되었는데, 어느날 실명으로 감은빛이란 이름을 가진 여성이 연락을 해와서 놀랐던 적이 있어요. 그분은 아마 저도 실명일거라고 생각하고 연락을 했을텐데, 저는 실명이 아니라고 밝혀서 실망을 안겨드려 안타까웠습니다.

잉크냄새 2025-07-29 21:51   좋아요 0 | URL
가끔 감은빛이 무슨 뜻일까 궁금해 하면서도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네요. 그런 아름다운 뜻을 품고 있었군요. 그래서 님의 글이 윤이 나는 것들처럼 평안해 보이는가 봅니다.

transient-guest 2025-07-29 23:38   좋아요 1 | URL
순우리말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용‘을 뜻하는 우리말이 ‘미르-남자‘ ‘미리-여자‘라고 알고 있는데 혀에 착착 감기는 것 같습니다.

잉크냄새 2025-07-31 22:30   좋아요 1 | URL
미르가 용의 순우리말이군요. 그럼 미르의 전설이 수컷용의 전설인거죠?

transient-guest 2025-08-01 06:27   좋아요 0 | URL
그 미르는 어떤 의미로 사용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용‘의 전설에 아마 남자격을 넣은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전 그것도 해본 적이 없네요. ㅎㅎㅎ

마힐 2025-07-30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시절, 유리창 청소도 있었잖아요. 창 틀에 앉아 메리야스로 만든 걸레로 빡빡 닦았었는데... 걸레 없는 친구는 자기 양말 한 쪽 벗어서 닦고 그랬어요. ㅎㅎ 이제는 아동 노동 했던 시간도 그리워 지네요.

잉크냄새 2025-07-31 22:32   좋아요 0 | URL
아, 메리야스...ㅎㅎ 역시 유리창은 내복보다 메리야스가 잘 닦였죠.
 

비주류는 주변부, 방외인, 아웃사이더와 같은 뜻이다. 사회의 소수자란 뜻인데, 소수자란 숫자가 적다는 뜻으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소수자란 표준의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뜻이다. 숫자로만 보자면 비주류는 주류보다 훨씬 더 큰 집단이다. 들뢰즈/가타리 <천개의 고원>에서 “다수는 상대적으로 큰 양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표준의 결정을 의미한다. 백인, 성인, 남성 등 다수성이 지배의 상태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의 상태가 다수성을 뜻한다.” 라고 말한다.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것은 그 머리 숫자가 아니라 존재의 내적 형질, 이데올로기, 출신성분, 척도의 차이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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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지적대로 소수자의 의미를 숫자가 적다는 뜻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없애버리면 자유를 꿈꾸지 않게 된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리면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다. 소수자의 의미에서 소외를 지우고 숫자에 집착하면 공리주의에 근거한 소수의 희생만이 부각되고 표준의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의 권리는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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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2-13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품절이군요. 소수자가 성 정체성 측면에서 보면 숫자로 소수이다 보니 그런 혼란이 생기는 것 같아요,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것은 그 머리 숫자가 아니라 존재의 내적 형질, 이데올로기, 출신성분, 척도의 차이다.˝ 저도 잘 기억해 놓겠습니다.^^

잉크냄새 2025-02-13 20:26   좋아요 0 | URL
품절이군요.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입니다. 문득 소수자란 말이 언제부터 쓰이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분명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수가 아닌 소수, 주류가 아닌 비주류, 표준이 아닌 비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