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무기로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고, 얼마나 괴로운지 알림으로써 주변 사람들-이를테면 가족이나 친구-을 걱정시키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속박하고 지배하려 들지. 첫날 말했던, 집에 틀어박혀서 지내는 사람들은 곧잘 불행을 무기로 하는 우월감에 빠지네. 아들러가 “오늘날 연약함은 매우 강한 권력을 지닌다”라고 지적했을 정도야. -p103-


나는 옳다, 즉 상대는 틀렸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에서 논쟁의 초점은 ‘주장의 타당성’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옮겨가네’ 즉 ‘나는 옳다’는 확신이 ‘이 사람은 틀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그러니까 나는 이겨야 한다’며 승패를 다투게 된다네. 이것은 완벽한 권력투쟁일세. -p123-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걸세. 그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집착이나 다름없지. (중략)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이라는 것을.-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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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미움과 저자가 말하는 미움은 그 의미가 다르다. 나의 미움은 어리석고 그의 미움은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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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떼의 앞자리는 영광의 자리일까? 희생의 자리일까? 영광의 자리든지 희생의 자리든지 맨 앞자리에서 나는 새가 한 마리 있어야 무리가 형성된다. 앞으로 불쑥 나선 새의 뒤를 따라서 무리없이 재편성되는 기러기 떼의 대형으로 보아서 그 앞자리는 자기를 희생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러기들이 무리의 맨 앞자리를 영광의 자리로 탐냈다면 다툼으로 대형이 흔들려 대장정은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까마귀 떼처럼 흩어졌을지 모른다. 


늦가을 빈들 위를 나는 까마귀 떼를 보면 혼란스럽다. 거기에는 선두가 없든지, 전부 다 선두든지 하다. 오합지졸인 것이다. 선두가 없는 것은 선두가 살신성인하는 자리로 인식되어 기피하기 때문일 것이고, 전부 다 선두인 것은 선두가 영광의 자리라서 서로 탐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 의식 수준의 무리라면 통제나 질서 유지가 안 된다. 


기러기들은 맨 앞자리의 필요성을 잘 안다. 그래서 존중한다. 기러기 떼의 앞자리는 선거법에 의해서 선출하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서슴없이 앞으로 나서고, 죽지의 힘이 떨어지면 서슴없이 물러난다. 임기 5년의 단임제의 자리가 아니다. 연임도 할 수 있고 2년만 하고 말 수도 있다. 힘의 본능으로 자리를 서로 교대하면서 시베리아의 저희들 서식지로 돌아간다. 기리기 떼의 앞자리-, 기러기들은 그 자리에서 나는 기러기를 고마워할지언정 선망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날지 못하는 자신의 힘 모자람이 부끄럽다기보다 미안할 뿐이다. 그 자리는 유세하는 자리가 아니고 살신성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p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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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들이지만 뻔뻔하게도 청문회까지 나타난 이들의 면면을 보면 대한민국 장관의 자리는 결코 자기를 희생하여 살신성인하는 자리가 아닌 영광의 자리에 대한 탐욕의 장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개인의 영달, 가문의 영광, 그저 개인의 명함 수집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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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지개를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가지 색으로 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빨/주/노/초/파/보의 여섯 가지 색으로 보고, 독일 사람들은 빨/노/파/검/회의 다섯 가지 색으로 봅니다. 언어마다 무지개색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무지개에서 무지개색을 달리 봅니다. 우리는 이처럼 각자의 모국어가 그어놓은 선에 따라서 세계를 봅니다.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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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생각을 제한한다는 '언어결정론'을 설명하기 위해 예시를 든 문장인데, 당연하다고 생각한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의 스펙트럼이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이 이채롭다. 미국의 경우 남색과 보라색을 보라색으로 분류한 점은 쉽게 수긍이 가지만 독일의 경우 빨강과 주황을 빨강의 범주로 묶은 분류 외에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언어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일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연장선상에서 작가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나온 특정 단어를 없앰으로써 생각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유'라는 단어를 없애버리면 사람들이 자유를 갈망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일련의 사태와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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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9-05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언자가 누구인지 어떤 의도인지에 따라 자유를 너무 강조하는 것도 본래 의미를 왜곡시킬 수 있는것 같아요.

잉크냄새 2023-09-05 20:41   좋아요 1 | URL
자유란 단어만큼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단어는 없을것 같네요.

감은빛 2023-09-1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다보면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이해한다는 걸 깨닫곤 해요. 서로 기본 전제가 되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다르니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죠.
이럴 때에 논의가 계속 공회전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답답하기만 한데, 딱히 해답을 찾기가 어렵더라구요.

잉크냄새 2023-09-20 09:31   좋아요 0 | URL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되죠.
 

이 전략(펀치 업 punching up)이 성공하려면 비판하는 자와 비판받는 자가 동일한 규범을 받아들이고 관련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근본 가치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을 때, 권력자의 무분별한 행동이 부인하기 힘들 만큼 명확하고 근거가 확실할 때, 수치심 자극은 결실을 맺는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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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비만, 가난, 중독 등 다방면에 걸친 왜곡된 수치심이 알고리즘을 통해 구조화되고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수치심 머신을 고발한다. 또한 수치심 머신을 역으로 이용하여 유익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길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펀치업 전략은 간략히 말하면 권력자의 수치심을 건들어 유익한 결과를 끌어내는 전략이다. 그 성공 사례로 소개되는 간디의 국민 저항 운동은 영국의 문명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역으로 이용하였고 미투의 경우 남성의 성적 수치심을 폭로하여 결과를 이끌어내었다.


펀치업 전략의 전제 조건으로 기술되는 '비판하는 자와 비판받는 자가 동일한 규범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특히 주목하게 되는데, 펀치업 전략의 필요충분조건은 최소한 수치심을 느끼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영국이든, 미친 수컷 하비 와인스타인이든 최소한 수치심의 범주 안에는 분류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펀치업 전략의 대상을 국내로 돌려보면 절망하게 되는데, 조선 총독 윤가과 영혼의 단짝 김가에게는 절대 적용할 수 없는 전략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개나 줘버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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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언어는 사실에 바탕하지도 않았고 의견에 바탕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흔히 욕망이나 이득에 바탕하고 있었다. 욕망과 이득에 바탕한 말들은 사실을 지운다.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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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가 한참인 요즘, 살신성인(?)의 자세로 수산 시장의 바닷물을 몸소 퍼마신 (도대체 왜? ) 국회의원의 행위도 나름의 고도화된 정치적 언어로 볼 수 있을까? 멍게가 아닌 사람이 행한 행위라는 것이 영 마뜩치 않지만, 무엇보다도 그 멍게가 5선이라는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 정치도 좀 세련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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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9 1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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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9 1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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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9 12: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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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1 0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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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1 14: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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