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는 주변부, 방외인, 아웃사이더와 같은 뜻이다. 사회의 소수자란 뜻인데, 소수자란 숫자가 적다는 뜻으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소수자란 표준의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뜻이다. 숫자로만 보자면 비주류는 주류보다 훨씬 더 큰 집단이다. 들뢰즈/가타리 <천개의 고원>에서 “다수는 상대적으로 큰 양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표준의 결정을 의미한다. 백인, 성인, 남성 등 다수성이 지배의 상태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의 상태가 다수성을 뜻한다.” 라고 말한다.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것은 그 머리 숫자가 아니라 존재의 내적 형질, 이데올로기, 출신성분, 척도의 차이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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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지적대로 소수자의 의미를 숫자가 적다는 뜻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없애버리면 자유를 꿈꾸지 않게 된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리면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다. 소수자의 의미에서 소외를 지우고 숫자에 집착하면 공리주의에 근거한 소수의 희생만이 부각되고 표준의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의 권리는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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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2-13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품절이군요. 소수자가 성 정체성 측면에서 보면 숫자로 소수이다 보니 그런 혼란이 생기는 것 같아요,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것은 그 머리 숫자가 아니라 존재의 내적 형질, 이데올로기, 출신성분, 척도의 차이다.˝ 저도 잘 기억해 놓겠습니다.^^

잉크냄새 2025-02-13 20:26   좋아요 0 | URL
품절이군요.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입니다. 문득 소수자란 말이 언제부터 쓰이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분명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수가 아닌 소수, 주류가 아닌 비주류, 표준이 아닌 비표준....
 

바늘은 말하기 전에 몸으로 실천한다. 소리를 듣고 그 소리가 이끄는 대로 길을 정한다. 그리고 온 몸으로 그 길을 간다. 예리한 바늘 끝과 다소 뭉툭한 바늘의 귀, 극도로 심플한 바늘의 몸은 이 두 극점으로 자신의 외연과 내면을 소통시킨다. 바늘은 자기의 몸에 실을 꿰고 온몸으로 옷감-현실을 관통한다. 그리고 숨는다. 바늘은 현실에 깊숙이 관여하면서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보여지는 것들 속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안달하지 않는다. 바늘이 자기의 몸을 빌려준 실만이 바늘이 지나간 자리를 증거할 뿐이다. 바늘에게는 아상我相이 없다. 찢어지고 떨어지고 조각나고 해진 것들을 이어 붙이고 매달아주고 기워주면서 자신의 존재를 타자 속에 스미게 한다. 바늘의 자아는 그 자신의 이름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이 이어 붙이고 부활하게 한 옷감으로 증명된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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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한번 일어나며 그 자신을 완성하고자 한다. 다행히 바늘에게는 그 마음의 완성을 위해 부림을 당할 아상이 없다. 바늘이 부처고 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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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2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23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5-02-13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선우 님의 글을 저도 읽은 적이 있어요. 이런 류의 글을 참 잘 쓰죠. 이 책의 개정판을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마음산책, 이란 책도 비슷한 형태의 책인데 저자가 생각이 난 나네요. 사물에 대한 아포리즘이 탁월했는데 집에서 찾아 봐야겠어요. 좋은 책, 정보를 얻어 갑니다. 고맙습니다.^^

잉크냄새 2025-02-13 20:21   좋아요 0 | URL
네, 김선우 작가는 사물에 대한 탁월한 관찰력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무심코 보아 넘기는 사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따스한 시선이 이런 의미있는 글이 나오는 배경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서정주의 과오를 덮어주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삶을 들여다보면 그는 누추하고 비겁한 삶을 살았다. 그의 죄는 엄중히 따져 묻되 뛰어난 문재는 따로 평가해야 한다. 잘못된 개인의 역사나 개개인의 과오는 지우고 숨기는 게 능사가 아니다.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서정주의 삶을 평가하는 동시에 작품을 정당하게 평가할 의무도 있다. 한국어의 소슬한 경지에 가닿은 그의 시들을 폐기하는 것으로 우리가 잃을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중략.....) 용서없이 그의 옹졸한 삶을 책망하며 끔찍하고 매혹적인 그의 시들을 마주하자는 것이다.-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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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노망이나 진중권의 열등감에 뒤틀린 변심을 접하고 '분서'하는 심정으로 그들의 책을 가져다 버린 적이 있다. 침묵속에 책을 읽었던 독자에 대한 배신이란 생각에 더 이상 읽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작가와 작품을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한국말로 이루어진 그의 시를 안타까워하는 작가의 심정이 이해는 가나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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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처지는 나의 의식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하는 다른 사람의 의식도 규정하였다. -p62-


그래도 프랑스에는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한국과 다르오.한국은 가족간의 우애라든가 이웃간의 정, 윗세대에 대한 존경 등의 전통가치는 허물어지고 있는데 사회연대라는 가치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어요. 그 비어 있는 가치관에 돈이 자리를 차지했고 또 헤게모니를 쥐게 된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p130-


인간이 모두 똑같이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평등 개념이 창안되어야 했던 것이며, 인간이 모두 같은 이데올로기를 갖지 않기 때문에 인권 개념이 창안되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p210-


똘레랑스는 역사의 교훈입니다. 똘레랑스는 극단주의를 외면하며, 비타협보다 양보를, 처벌이나 축출보다 설득과 포용을, 홀로서기보다 연대를 지지하며, 힘의 투쟁보다 대화의 장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권력의 강제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합니다.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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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의 부음을 접하고 책꽂이를 찾아 보니 세권의 책이 이십년의 세월을 가만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꺼내어 들춰보니 그 시절의 나는 저 구절에 밑줄을 치며 그의 글에 심취해 있었구나 싶다. 실천적 진보 지식인들이 이제 하나 둘 세상을 떠나간다. 당신들이 남긴 글과 삶을 통하여 꿈은 이어질테니...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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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올리는 자는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p71-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중략...)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 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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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 없음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해야하는 살아있음의 구체성인 밥! 김훈이 말하듯 밥은 무엇보다도 긍정되어야 하고 무시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만 생존의 가장 기초인 밥마저 스스로의 입질을 유도하는 낚싯 바늘을 품고 있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노동을 강요하고, 더 일하라고 부추기는 사회에 대해 우리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라는 냉철한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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