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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막혀 있었다. 모든 이교도에 대하여 출입을 불허했다. 아테네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다 에게해로 나와 크레타 섬을 지나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그 곳에는 '지성의 햇불'이라 불리는 도서관이 있었다. 이교도인 난 밤이 되길 기다려 몰래 잠입하거나 이슬람 복장으로 변장한 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저녁이 찾아 들면 고딕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지중해의 붉은 손길이 넘실거렸다 . 붉은 유혹에 책을 덮고 나와 지중해가 바로 바라 보이는 바위에 앉아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던 석양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응시하곤 했다." - 잉글랜드 삼등훈작사 조르바 -


일행과 시와 사막에서 헤어졌다. 이집트 남부 아스완의 아부심벨로 떠나는 일행과 헤어져 사막에서 며칠을 더 머문 후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일반적인 여행 코스인 아부심벨을 뒤로 하고 알렉산드리아로 간 이유는 그 곳에 기원전 3세기경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의해 건립된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가 작성되고 보관되어 '지성의 햇불'이라 불리는 이 도서관은 오랜 세월 화재와 침략 등으로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 가치와 역사적인 의미를 인정받아 유니세프의 지원 아래 재건되었다. 이런 역사적 의미와 별개로 이 도시가 내 흥미를 끈 것은 30대 초반 한참 열중하던 온라인 게임 <대항해 시대>의 추억 때문이었다. 15세기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온라인 게임에서 잉글랜드 출신 고고학자인 내 케릭터가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애용한 루트 중 하나가 아테네-알렉산드리아 구간이었다. 머릿글에 기록한 내용이 그 당시의 게임 장면이다. 실제 키보드로 화면을 돌려 바라보던 지중해의 풍경은 묘한 동경을 자아냈는데, 그 풍경을 바라보며 언젠가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게임 속에서 응시하던 지중해의 붉은 석양에 직접 휩싸이게 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맨 왼쪽에 '월'이 새겨져 있다. '워~얼' 하고 테이프 늘어지는 모양새다.>


도서관은 트램이 통과하는 복잡하고 지저분한 길을 배경으로 주변 풍경과는 이질적인 깨끗하고 현대적인 하얀색 건물이었다. 활처럼 약간 휘어진 직사각형의 전면부 넓은 벽면에는 지구상 존재하는 많은 언어가 조각 되어 있었다. 익숙한 몇몇 언어를 제외하면 상형문자라 해도 무방할만큼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한글도 포함되어 있는데 여섯 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내가 찾은 건'월','세','름' 세 자 뿐이다. 초,중,종성의 조합이라는 이론에만 충실했는지 초,중,종간 간격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왠지 소리 내어 읽으면 테이프 늘어지는 소리가 날 듯 했다. 자음 크기 하나가 알파벳 크기만 하니 한글 한 글자가 차지하는 공간이 유독 커 보였다. 누군가는 그 곳에 새겨진 글자 수로 각 언어의 우월함을 자랑하고자 하는데 재건 관련 유니세프에 기부한 기부금 액수에 비례하는 바가 크다고 하니 문화마저 우열과 차별에 이용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책과 도서관이야말로 그런 편견과 차별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이지 않을까. 도서관다운 아이디어가 돋보인 건축물이었다.


< 도서관 이용 여성들은 대부분 히잡을 착용했고 챠도르 이상의 복장은 보기 힘들었다.>


이슬람 문화권을 여행하면서 가장 관심있게 바라본 것 중 하나는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였다.도서관은 가장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장소라 여겨져 특히 눈여겨 지켜보았다. 히잡을 두른 학생들이 모여서 책을 검색하고 열람하고 공부하는 모습은 왠지 이질적이면서도 희망적이었다. 이슬람의 전통 의복은 그 개방성 순으로 나열하자면 히잡-챠도르-니깝-부르카의 순이라 할 수 있는데 히잡이 가장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도서관에도 히잡을 착용한 여성이 가장 많았으며 니깝 이상의 복장을 한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문화가 행동을 규제한다고 한다. 근데 문화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관찰자마저 규제한다. 묘하게도 니깝이나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을 볼 때마다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는 나의 행동 하나 하나를 스스로 규제하게 만드는 자기 검열에 빠지곤 했다. 반나절 정도 도서관에 머물렀다. 주로 문학과 인문학 관련 서가를 돌아다녔는데 문학 관련 한글 서적은 한 권도 찾지 못했고 인문학 쪽에만 세 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었다. 


<아마 지금은 한강의 소설들이 많이 자리했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바닷길은 석양이 지중해를 서서히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도시 한 끝을 물들이기 시작한 노을이 굽이 도는 해안길을 돌아 숙소 앞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몰래 내 뒤를 밟아 이 곳까지 침범해 있었다. 오래된 성벽처럼 자리한 방파제 한 끝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면 하늘과 바다 전체가 붉어질 것이었다. 순간 검은 실루엣이 나를 지나치는가 싶더니 석양 속으로 성큼 성큼 걸어갔다. 석양 속으로 낚싯대를 던지는 노인의 뒷모습이 노을 속에 박제 되는가 싶더니 그대로 풍경이 되어 버린 듯했다. 대항해 시대의 어느 촌부와도 같았다. 구태여 이슬람 복장으로 변장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백년 만에 도래한 것에 감격하다 웃음이 나왔다. 대항해시대 내가 타고 온 갤리선이 보이는 듯 했다. 노를 저어 다시 아테네로 가야 하나!!! 

<가끔 풍경이 되는 피사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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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2-06 0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년 전 이맘 때 이집트 다녀왔어요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다른 어느 도시와도 달랐어요. 알렉산더 대왕의 영향으로 서구 문물의 영향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곳이었지요.
저도 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막 헤집고 다녔답니다. 이래도 되나 하면서요.

잉크냄새 2026-02-06 20:03   좋아요 0 | URL
2년 전이면 제가 방문한 시기에 비해 많은 부분이 변했겠네요. 제가 갔을 때는 주변으로 낡은 트램이 다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중해 항구로서 유럽과의 교류가 빈번했는지 확실히 이집트 다른 이슬람 도시들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이긴 했어요.
도서관은 마구 헤집고 다녀도 됩니다. 소리만 안 내면...ㅎㅎ

마힐 2026-02-06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게임 속 루트를 현실에서 적용하셨다니... 잉크냄새님은 전생에 진짜 고고학자였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하필 눈에 띈 한글이 왜 월, 세, 름 이였을 까요? ‘월세 룸‘ 으로 들릴 것 같은데요..

잉크냄새 2026-02-06 20:07   좋아요 1 | URL
아, 고고학자 하니까...고등학교 2학년때 인디아니 존스 최후의 성전을 보고 이과에서 문과로 변경하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월세 룸‘, 한국의 망조 든 현실을 잘 아는 공인중개사 출신이 벽면 디자인에 참여한 듯 합니다.ㅎㅎ

감은빛 2026-02-06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기다렸던 여행기가 올라왔군요. 새로 재건한 도서관이 아주 멋지네요. 저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

어렸을 때는 유럽, 그 중에서도 독일을 가보고 싶었어요. 에너지를 중심으로 환경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비행기로 장거리 비행을 하는 일입니다. 평소 일상에서 탄소배출량이 매우 적은 제가 만약 유럽을 한번 다녀오면 10년치 이상의 탄소를 배출하는 결과가 되죠.

그럼에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두 곳 있는데, 하나는 여기 알렉서드리아 이고, 또 하나는 옛 콘스탄티노플입니다.

잉크냄새 2026-02-06 20:11   좋아요 0 | URL
와! 제가 글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매번 이렇게 여행기 기다려 주시는 분이 계시니 힘이 납니다. 불끈!!!

전 코로나때 도심에 사슴이나 멧돼지가 출몰하는 걸 보고 기후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탄소배출 관련하여 삶이 많이 변화되었어요. 글 마지막에도 보시면 비행기가 아닌 갤리선 노 저을 궁리를 하고 있잖아요. ㅎㅎ

카스피 2026-02-06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 지었다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로 대 도서관이네요.이집트가 경제사정이 좋지 않음에도 많은 돈을 들여 도서관을 새로 건립할 정도로 과거 이집트의 영광에 많은 자부심이 있음을 느낄수 있네요.

잉크냄새 2026-02-06 20:13   좋아요 0 | URL
이집트는 죽은 자가 산 자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대 이집트 문명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죠.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 이집트뿐 아니라 전 세계의 보물이니 재건의 필요성은 충분해 보이네요.

firefox 2026-02-17 0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도 행복한 한해 되세요^^

잉크냄새 2026-02-17 21:28   좋아요 0 | URL
불여우님도 행복한 한해 되세요.
올해도 즐거운 독서 생활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레이스 2026-02-28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집트에 거대한 박물관이 건립되었다 해서 그곳에 가고 싶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가져간 유물 되돌려 달라고 한다던데,,, 과연 돌려줄까 싶네요 ^^;;

잉크냄새 2026-02-28 21:29   좋아요 1 | URL
제가 여행중인 시기에는 박물관이 시내에 위치했었는데 외관상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박물관 입구 양측으로 커다란 석상이 서 있던 모습과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던 투탕카멘이 기억 나네요.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미이라들도요.ㅎㅎ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돌려줘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유럽제국주의 입장에서는 그냥 시혜 베풀듯 몇 개 던져줄 것 같네요.
 

티벳으로 들어가는 길이 또 다시 막혔다. 첫번째는 티벳 독립 운동이 일어난 3월에는 티벳 출입 자체가 봉쇄되기 때문이었고 두번째는 당시 달라이 라마에게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했던 한국이 북유럽 몇몇 국가와 더불어 출입국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티벳행은 불가능해졌고 꿩 대신 닭이라고 잡은 코스가 동티벳이었다. 동티벳은 현재 행정구역상 쓰촨성에 속하나 티벳 독립 전 티벳의 영토를 잘라 쓰촨에 넘겨준 곳이라 동티벳으로 불린다고 한다. 운이 좋다면 티벳의 바로 앞 빠탕巴塘까지 갔다가 샹그릴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갈 예정이었다. 사실 동티벳으로의 일정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식적으로 출입이 통제된 곳은 아니지만 외국인에 한하여 버스표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다만 사람이 아닌 버스표의 문제이니 들어가는 것이 마냥 불법은 아닌 상황이었다. 리탕理塘까지만 들어가면 추방 당할 때 쓰촨이 아닌 윈난으로 내려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캉딩 초입 차마고도 청동상들이 즐비하다.>


청두成都에서 9시간을 달려 도착한 동티벳의 첫 도시 캉딩康定은 차마고도로 알려져 있다. 마을 초입에 '차마고도의 첫 도시' 라는 문구가 걸려 있지만 보통 팬더의 고향 야안雅安을 차마고도의 시발점으로 본다. 국가 지정 차 집결지 '차마사'가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캉딩은 큰 물줄기가 시내 중심을 가로지르는 해발 고도 2600m의 작은 마을이다. 티벳의 초입답게 돌산에는 불경과 불상이 새겨진 바위가 눈에 띄었고 타르쵸와 룽다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도착한 첫 날 저녁 비를 맞으며 찾아간 숙소에는 방이 없었다. 난처해 하는 나를 가만히 쳐다 보던 숙소 여주인이 우산을 들고 삼십 분 가량 같이 다녀준 것이 따스하고 오래도록 기억으로 남는다. 여기에서 이틀을 묵었는데 밤새 벼락치는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해야 했다. 다음 날 버스 정류장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는데 역시나 외국인은 리탕행 표를 끊을 수 없었다. 꼬인 일정을 걱정하며 건물을 나오니 한 건장한 사내가 따라붙으며 외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현재 외국인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며 자기가 운전하는 헤이쳐黑车를 이용하라고 했다. 헤이쳐는 불법적으로 운행되는 봉고차였다. 새벽 3시로 출발 시간을 정한 후 헤어졌는데 잠시 눈을 붙이는 내내 한밤중에 불법차를 이용한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나와 같은 배낭 여행객이 있으리라 위안 삼으며 잠을 청했다. 


새벽 세 시에 터미널로 나가니 어둠 속에 검은 봉고차가 한 대 서 있었다. 내가 제일 늦은 듯 이미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가운데 자리만 하나 비어 있었다. 일가족인 듯 비슷한 외모의 기골이 장대한 장족들이었다. 여행객은 나 혼자였다. 여자들은 맨 뒤에 타고 남자들이 앞에 두 칸을 차지했는데 어깨가 떡 벌어진 그들 사이에서 꼼짝없이 갇힌 형국이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잘 씻지 않는 그들에게서 참기 힘든 악취가 풍겼는데 싸늘한 한밤중에 문을 닫고 달리는 흔들리는 봉고차에서 기절하듯 잠이 들 때까지 꽤나 힘들었다. 차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눈을 뜨니 푸른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뭉게 구름은 초원의 양들이 바람에 날려간 듯 흘러갔다. 초르텐 주위로 실제 양들이 풀을 뜯고 있었고 녹색 초원을 배경으로 타르초와 룽다가 경전 소리를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창 밖의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는데 평야에서 초원으로, 계곡에서 산등성이로, 산등성이가 갑자기 탁 트인 초원으로 바뀌었다. 바다를 제외한 모든 풍경이 그 길 위에 있는 듯 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그냥 일상적인 풍경이었는지 차는 무심코 쉬지 않고 길을 달렸다. 길을 막은 나무와 바위도 치우며 달렸고 양지 버섯을 팔려 길을 막고 선 현지인과 진지한 가격 협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둠이 깔리자 날씨가 급변하고 좁고 구부러진 도로의 풍경은 경이가 아닌 경악으로 바뀌었다. 오른쪽 도로면이 강인지 절벽인지 모르는 미지가 공포를 더 부채질했다. 리탕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새벽 1시였다. 리탕은 중국에서 사람이 사는 가장 높은 마을인 해발고도 4200m의 마을이었다. 캉딩에서 리탕까지 보통 8시간이 걸리는데 특별히 차가 막히는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22시간이 걸린 것이 의아해 물어보니 중간에 길을 우회하여 온 것이다.  


<리탕 언덕배기 초르텐과 양떼>


차마고도는 야안雅安~라싸拉萨 구간의 천장공로川藏公路와 쿤밍昆明~라싸拉萨 구간인 전장공로滇藏公路로 나뉜다. 천장공로는 다시 망캉芒康을 지나는 천장남로와 창뚜昌都를 지나는 천장북로로 나뉜다. 그러니까 천장공로인 캉딩에서 출발한 버스는 천장남로를 달려 리탕에 도착하는데 헤이쳐는 천장북로와 남로의 분기점인 신뚜챠오新都桥에서 천장북로로 접어든 것이었다. 이름 모를 길을 거쳐 단빠丹巴와 따오푸道孚를 지나 남쪽으로 길을 꺽어 리탕으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리탕에서 버스표를 구하지 못해 샹그릴라香格里拉로 방향을 틀었다. 뜻하지 않게 천장남로와 천장북로, 그리고 전장공로를 모두 달리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각자가 느끼는 여행의 묘미는 모두 제각각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의 의외성을 가장 흥미로워한다. 그래서 여행시 큰 밑그림만 그리고 중간 일정은 그때 그때 상황에 맡기는 편이다. 가장 아름다운 길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기대이며 가장 소중한 길은 이미 지나온 길에 대한 기억이다. 우연히 탄 헤이쳐, 우연히 일행이 된 장족, 우연히 접어든 천장북로의 여정, 차마고도 세 개의 길을 모두 지나는 행운까지, 뜻하지 않은 의외성이 품고 있는 순간의 긴장감과 다소의 스트레스, 뜻밖의 환희는 여행이 가져다주는 백미이다. 


천장북로를 달린 그 날 차가 정차하지 않아 사진은 거의 찍지 못했는데 며칠 후의 여행기록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 날의 풍경은 두 번 다시 허락되지 않았다" 


<쓰촨 청두에서 윈난 쿤밍까지 7대의 버스를 갈아타며 59시간을 달렸다. 따오청에서 야딩 풍경구로 들어간 것까지 포함하면 9대의 버스, 67시간이다. 이제는 소화하기 힘든 여정이다.>




<리쟝의 어느 까페에서 통기타 연주로 알려지기 시작해 내가 이 길을 여행할 즈음에는 차마고도 거의 모든 마을에서 들려오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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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1-08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은 여행가 이신가요?
오래 전 tv에서 차마고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납니다.
그곳에서 끊임없이 노동을 하던 여인들이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해요.

잉크냄새 2026-01-08 22:20   좋아요 1 | URL
거창하게 여행가는 아니고요 그냥 여행을 좋아합니다. 처음 직장 옮길 때 큰 맘 먹고 반 년 정도 돌아다녔어요. 그 후로도 가끔 시간 내서 돌아다니고요. ㅎㅎ
다큐멘터리에 나온 곳은 아마 옌징 소금 염전에서 일하는 여인들일 겁니다. 위에 지도 보시면 망캉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그 당시 티벳 퍼밋을 못 받아 들어가지 못했어요. 지금은 아마도 댐 건설로 사라져 버렸을 겁니다.

차트랑 2026-01-08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이 쪽이 빠를것 같아 이곳에 답 드립니다.
공유하기를 클릭하시면
화살표 표시가 있을겁니다 < > 이런 식으로요.
이때 우측 화살표시를 누르면
전체 소스를 보여줍니다.
그 소스 전체를 복사하셔서 붙이기 하시면
성공하시리라 믿습니다.

설명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행여 실패하시면 다시 알려주십시요 잉크냄새님~!

잉크냄새 2026-01-09 00:14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공유에서 < > 누르니 전체 소스가 나오네요.
알라딘의 설명이 잘못된 것인지 유튜브의 소스코드 복사 자체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알라딘에 수정 요청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차트랑 2026-01-08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튼 양 옆으로 < > 보이는데 이걸 보셔야합니다 ㅠ

잉크냄새 2026-01-09 00:15   좋아요 0 | URL
수정 완료했습니다.
노래 한번 들어보세요. ㅎㅎ

차트랑 2026-01-09 18:4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댓글 센터링을 어떻게 해야 정확히 들어가는지 몰라
엉뚱한 곳에 센터링을 하게되더군요.

이젠 좋 알듯합니다^^

차트랑 2026-01-09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싸~!
노래 잘듣겠습니다 잉크냄새님~ ^^

잉크냄새 2026-01-09 18:26   좋아요 0 | URL
최초의 글에 연이어 댓글을 다시려면 맨 처음 작성한 댓글에서 댓글달기 누르시고 댓글 다시면 됩니다.
노래 관련은 아래 댓글에 남길게요. ㅎㅎ

차트랑 2026-01-09 18:42   좋아요 0 | URL
앗 그쪽이 아니었네요 이쪽이었는데
센터링을 잘못 했군요 ㅠ
이제 정확한듯요~

차트랑 2026-01-09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어나면서 늘 노래를 듣는데요.
오늘 아침은 이 쪽 서재의 노래를 듣습니다.
업로드 해주신 노래가 아주 마음에 드네요.
잘 듣겠습니다.

내용이 궁금해서 번역기를 돌렸는데,
번역기가 시킨일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번역기가 해낸 결과가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제목을 알려주는데...
滴答부터 저의 예상이 완전 틀려버리네요 ㅠ
滴 = 물방울 적, 인지라 속으로 판타스틱한 해석을 해본 연후의 깜놀시전입니다.


《똑딱》 노래:칸칸 작사:고지 작곡:고지 (운남瀘구호)

똑딱똑딱똑딱 시계는 계속 돌아간다
똑딱똑딱똑딱 소우(小雨)는 물보라를 두드리고 있다
똑딱똑딱똑딱 아직도 그를 괴롭히지 않을까?
똑딱똑딱똑딱 눈물 몇 방울이 이미 떨어졌다
똑딱똑딱똑딱 외로운 밤 누구와 이야기할까
똑딱똑딱똑딱 슬픈 눈물은 누가 닦아줄까
똑딱똑딱똑딱 마음을 정리하고 출발하자
똑딱똑딱똑딱 또 누군가가 너를 잡아당길 거야

아, 이 노래, 중독성 있네요 ㅠ

잉크냄새 2026-01-09 18:35   좋아요 0 | URL
역시 노래를 좋아하시는 차트랑님께서 알아봐 주시는군요. ㅎㅎ
˝지음˝ 이로세

해석은 다 비슷한데 삼구와 마지막구의 牵挂(첸과)의 해석이 좀 틀렸네요.
牵挂(첸과)는 걱정하다 로 해석하면 됩니다.
삼구 : 아직도 그 사람 걱정을 하고 있나요
마지막구: 누가 또 당신을 걱정해줄까요

특히 낯선 도시에서 통기타 선율로 듣는 도입부가 참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차트랑 2026-01-09 18:48   좋아요 1 | URL
노래가 좋아서 가사가 궁금했는데,
어쩐지 특히 마지막은 이상하다 했습니다.
갑자기 잡아당긴대서 행여나 했더니....
AI형께서 마지막에 특히 오류를 내셨군요.

좋은 저녁되십시요 잉크냄새님~~
노래 잘 듣겠습니다~

잉크냄새 2026-01-10 00:03   좋아요 0 | URL
의미보다는 감성이죠.
좋은 노래 되었길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6-01-09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가의 글 같습니다. 여행 작가, 하면 더 멋있지 않습니까?
˝그 날의 풍경은 두 번 다시 허락되지 않았다˝ - 이 순간도 두 번 다시 오지 않지요. 이런 것 생각하면 시간을 아껴 써야 할 것 같아요.
청동상 사진이 참 신기합니다.
멋진 여행가가 되시겠다면 응원하겠습니다. 여행과 글, 잘 어울립니다.^^

잉크냄새 2026-01-09 18:39   좋아요 0 | URL
그날 천장북로의 사진을 찍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 풍경은 앞으로도 펼쳐질꺼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했거든요. 아마 티벳으로 들어갔다면 더 멋진 풍경도 만났겠지만 티벳행이 무산되면서 진짜 그런 풍경은 다시 허락되지 않았어요. 어떤 풍경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와 인연이 되어야만 만나나 봅니다.

여행가가 못되더라도 기억에 남은 여행의 추억을 글로는 계속 써볼까 합니다.

마힐 2026-01-09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생 때 헤이처로 라싸를 들어가려다 검문에 걸려 여행국에서 2박 3일 취조(?)받았던 생각이 나네요. ㅎㅎ 우여곡절 결국 라싸를 가게 되었지만, 곤륜산맥을 넘어갈 때 고산증이 너무 심하게 오는 바람에 여행이고 뭐고 집에 돌아갈 생각 밖에 안 났어요. ㅜㅜ 잉크냄새님은 고산반응이 없으신 것 같은데 나중에 다시 한번 꼭 ‘라싸 가기‘ 도전하시길 바래요. ^^

잉크냄새 2026-01-10 00:06   좋아요 1 | URL
저보다 오랜 중국 생활을 하셨으니 더 멋진 경험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기억 하나하나가 또 추억을 만들어 가리라 봅니다. 2박 3일이 절대 헛된 시간이 아니었을 겁니다.
참고로 전 폐활량이 좋은 편이 아닌데 고산 증상은 없는 몽뚱이입니다. ㅎㅎ

감은빛 2026-01-26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래전에 일했던 춣판사에서 윈난성 여행 에세이를 낸 적이 있어요.
그 작가님은 노동운동 판에 계셨던 전교조 교사였는데, 시를 잘 쓰셨던 분이었어요.
그때는 아직 제가 편집 일을 시작하기 전이어서 그저 마케터로서 원고를 읽기만 했었네요.
이후 다른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배워 익히면서 좀 더 일찍 이 일을 했다면,
훨씬 더 많은 글들을 다른 시각으로 읽었을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암튼 그 책을 내는 과정에서 읽었을 때에는,
윈난성이 어딘지도 몰랐고, 그냥 머나먼 중국 땅 서쪽 어딘가라고만 어렴풋이 생각했었어요.

잉크냄새님의 이 글을 읽으니 참 사람의 경험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9대의 버스로 67시간이라니!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을지 짐작하기 어렵네요.
오래 전에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바양고비까지 12시간? 14시간?
암튼 초원을 가로지르며 비포장 도로를 버스로 이동했었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우리나라 차량과는 달리 서스펜션이 거의 없는 거의 수명이 다 한 낡은 버스는 그냥 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아픈 상황이었는데, 초원을 그냥 달리는 건 정말 힘들었습니다.
잉크냄새님의 67시간 중 대부분이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허리 괜찮으십니까? ㅎㅎㅎㅎㅎ

잉크냄새 2026-01-26 21:44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제는 무리수입니다. 아마도 허리가 버텨내지 못할 겁니다.
그때만 해도 그냥 엉덩이가 눌려 감각이 없어진 것 외에는 버틸 만 했거든요. 차 타면 바로 잠들고 차창 밖으로 풍경 보는 것도 너무 좋아하는 개인적인 성향도 저런 장거리 여행을 버티게 한 큰 이유일 겁니다.
지금은 아마도 저 마을 중간 어디쯤에는 비행장이 건설되지 않았을까요? 제가 다닐 즈음에도 따오청에 작은 비행장이 들어선다는 풍문이 돌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험난한 일정이 가져오는 여행의 묘미는 잊지 못할 겁니다.
 

시리아와 국교 수교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안 것은 시리아를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터키 국경 도시 안타키아 출입국 사무소 벽에 붙어 있던 비자 발급 비용표에 SOUTH와 NORTH KOREA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이 좀 신기하고 의아하기도 했지만 비자 비용 지불만으로 인터뷰도 없이 간단히 국경을 통과한 상황이었다. 숙소에서 만난 여행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수교 문제를 처음 듣게 되었는데 수교조차 맺어지지 않아 국가의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는 곳에서 여권 분실이 가져올 파장이 지레 두려웠고, 이 곳을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분들의 삶이 무척 궁금해지곤 했다.


다마스커스에서 묵던 게스트하우스는 한국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중부 도시 하마에서 내려온 버스가 정차하던 정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전통 가옥을 그대로 숙소로 사용하던 이층 건물이었다. 삐거덕 소리가 나는 두터운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낡은 소파와 연탄 난로가 놓여 있는 작은 공간 하나를 지나야 마당이 나왔다. 하얀색 그리스풍 분수가 있는 마당을 포함한 집의 구조는 중국의 자그마한 사합원과 유사했다. 일층은 가족이 생활하면서 부엌 한 쪽 면을 여행객을 위한 한국 식당으로 운영하고 있었고 외부에 계단을 통해 올라간 이층의 골목 쪽은 일반 객실로 안쪽은 도미토리로 사용했다. 

<오른쪽 건물이 숙소다. 나무 대문을 밀면 삐걱~ 하며 다마스커스의 오래된 골목이 찌뿌둥한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난다>


여사장님은 아담한 체구에 만면에 밝은 웃음을 띈 조용한 분이셨다. 부엌 한 곁에 숙소 손님을 대상으로 음식을 파셨는데 김치찌개를 무척 잘 하셨다. 이스탄불 이후 거의 삼 주 만에 접한 김치찌개는 눈물 나도록 맛있었는데 도착한 첫 날 짐도 풀기 전에 배가 터져라 먹었다. 벽에 걸린 십자가나 종교 관련 그림을 통해 그 분의 종교 성향을 알 수 있었는데 독실해 보이는 외견과 달리 우리와의 일상 대화에서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지는 않는 분이셨다. 남사장님은 아내분과 함께 숙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가 마주치는 때는 주로 여행길에서 돌아오는 해질녘이었다. 마당으로 들어오는 입구 작은 방의 조개탄 난로 옆 낡은 소파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사장님과 술 한 잔 할 일이 있었는데 난로 옆에 세숫대가 놓여 있고 양복 차림의 한 중년 남성과 앉아 있었다. '이 곳 사람들은 똥집을 안 먹어요' 라며 세숫대 가득 똥집을 들고 오신 중년 남성은 한국인 사업가로 중동에 실크 히잡을 수출하여 꽤 성공한 분이셨다. 가끔 다마스커스에 들릴 때 사장님과 술 한잔 하는 모양이었다. 네 명이 밤이 이슥하도록 똥집을 구우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었는데, 그는 본인의 의지보다는 아내와 딸의 삶을 위해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마스커스 골목에는 유독 폭스바겐형 경차가 많다. 이디오피아-예멘을 거쳐 유럽으로 올라가던 커피가 머물던 오래된 커피숍들이 자리하고 있다>


고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여학생은 대화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다만 모국어를 사용하는 또래 친구가 없었던 탓인지 저녁 늦은 시간 숙소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계단을 오르는 경쾌한 발소리를 울리며 문을 두드리곤 했다. 도미토리에는 세 명이 기거하고 있었는데 그 중 영국 유학을 마치고 육로로 귀국길에 오른 여대생과 언니 동생하며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곤 하였다. 여기까지는 영락없는 여고생인데 좀 독특한 면이 있었다. 수교도 맺지 않은 이 낯선 나라에 종교적인 이유로 온 것이다. 동방으로부터 온 메시아가 다마스커스에서 출현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메시아가 자신이라는 신념. 어머니 또한 자신의 딸이 메시아라는 믿음 속에 생활하고 있었다. 


중동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이슬람 의식 아잔으로 시간 기준을 삼게 되곤 한다. 한밤중의 아잔 소리에 창문 밖 어둠을 응시하며 하루를 정리한다든지, 새벽 미명의 아잔 소리에 잠을 깨어 창을 열어 새벽 공기를 맞이하게 된다. 종교 의식 자체가 삶의 한 형태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기분이랄까. 그래서일까. 그들의 꿈이 이질적이지만은 않았다. 종교적 신념은 물론 보통 신념조차 가져본 적이 없는 입장에서는 다소 의아하면서도 경외감마저 들었다. 국가의 보호가 전무한 이 곳에서 삶을 꾸려갈 의지와 용기는 종교적 믿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가족이 선택한 기약 없는 기다림의 끝은 무엇이었을까. 기다림이 그들 가족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함부로 재단할 일은 아닐 것이다. 삶은 옳고 그름의 이분법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다만 삶이 평온하기를 바랄 뿐이다.


IS가 시리아 유적지 팔미라를 파괴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난 가장 먼저 그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국민에 대한 보호마저 사라진 그 곳에서 그들은 이방인으로써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다마스커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골목골목 비집고 들어오던 햇살은 포근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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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5-12-09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사도 바울이 회심했다는 다메섹에 다녀오셨군요.
여행 중 묵으셨던 게스트하우스 주인 가족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자신을 메시아로 생각하는 딸과 그것을 믿는 어머니라니 재미(?)있는 모녀입니다.
이 분들은 메시아란 뜻을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요.
개인적인 종교 신념이야 자유의지니까 그렇다쳐도
자칭 메시아로 나섰던 사람들의 뒤끝이 영 개운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거시기합니다.
아무튼 잉크냄새님 덕분에 인간적인 다마스커스 풍경과
거기에 사는 분들의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잉크냄새 2025-12-09 21:17   좋아요 1 | URL
네, 다마스커스는 그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골목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오래된 골목으로, 기독교인에게는 사도 바울의 회심으로, 커피 애호가에게는 유럽으로 커피가 전해지던 통로로, 이슬람에게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우마이야 모스크로...

전 종교가 없다 보니 메시아 이야기도 사실 자체의 진위보다는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라보았어요. 자신을 메시아로 생각한 딸, 자신의 딸을 메시아로 생각한 어머니. 누구의 신념이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페넬로페 2025-12-09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그곳, 다마스커스에 다녀 오셨군요. 여행을 많이 다닌 저의 지인이 시리아나 이란에 좋은 여행지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최근에 본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을 보고 답답함이 많이 느껴졌어요. 어서 중동이 좀 더 평화롭고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잉크냄새 2025-12-10 13:25   좋아요 1 | URL
시리아에는 티크리스 유프라테스 문명부터 내려온 오래된 유적들이 참 많아요. 창세기, 십자군등 역사의 굵직굵직한 굴곡의 흔적이 많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다마스커스의 골목이 최고였습니다. 중동의 평화는 곧 세계 평화의 시발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힐 2025-12-09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네요. 메시아가 자신의 딸인 것을 안 엄마와 아빠는 어쩌면 계시에 의해 그곳에 머물고 있는 거네요. 그분들이 가진 믿음의 세계, 잉크냄새님 말씀처럼 저도 경이롭네요.

잉크냄새 2025-12-10 13:20   좋아요 1 | URL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삶은 우리 삶을 뒤돌아 보게 합니다. 여행자의 삶도 매력적이지만 그곳이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삶 또한 흥미롭습니다. 가끔 삶이 지지부진할때 문득 그때의 어느 시점을 떠올려보면 삶은 여전히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차트랑 2025-12-10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치 찌개라니, 관심 가는군요!! 그러나, 헐~ 올해 4월에나 국교를 수교했다는 군요!!! 충격이네(요) !! (혼잣말인데 적절하지 않아 첨어합니다^^)

잉크냄새 2025-12-10 13:25   좋아요 0 | URL
전혀 생소한 장소에서 만나는 고국 음식은 눈물겹습니다. ㅎㅎ
시리아 국토 건설을 위해 올해 한국과 수교를 맺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다행이지만 고대 문명의 흔적, 시리아 사람들의 순수함, 옛 도시의 고즈넉함 등은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감은빛 2025-12-10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예요.
종교적 믿음으로 수교도 맺지 않은 나라에서 숙박업을 하며 살아가는 가족이라니!

일단 중동에 대해 지리 감각이 전혀 없어서
시리아는 어딘지, 다마스커스는 어딘지 몰라 지도 검색부터 해봤어요.
제가 정말 중동 지리를 몰랐더군요.
이스라엘 위치만 대략 알고 있었는데, 그 주변을 이렇게도 몰랐을 줄이야.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 기다릴게요.

잉크냄새 2025-12-10 20:52   좋아요 0 | URL
여행을 다니다 보면 우리가 정의한 삶의 범주를 벗어나 자기 주관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군요. 저도 한때 길 위의 삶을 꿈꾼 적도 있는데 지금은 돌아와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ㅎㅎ

예전에는 하나의 도시를 기준으로 여행기를 올렸는데 지금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글을 남겨보고 있습니다. 추억하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꾸준히 올려봐야죠.
 

꾸이양贵阳에서 탄 야간 버스가 8시간을 달려 꾸이린桂林에 도착한 것은 새벽녘이었다. 꾸이린은 '桂林山水甲天下꾸이린산수이쨔텐샤(꾸이린의 풍경이 천하 제일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도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카르스트 지형의 영향으로 둥글둥글하고 나지막한 산들이 작은 어깨를 맞대어 있는 모습이 정겹다. 개인적으로 중국하면 떠오르는 가장 중국다운 풍경으로 여기는데 아마도 무협지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그런 꾸이린의 풍경중에서도 더욱 아름다운 곳으로 버스로 시간 반을 더 달려 도착하는 양수오阳朔라는 지역이 손꼽힌다. 대나무 땟목을 타고 강을 내려오며 천천히 바라보는 풍경은 압권이다. 리강漓江을 따라 땟목을 타거나 강변을 산보하는 것은 한 폭의 수묵화 속을 유영하는 느낌이었다.

<둥글둥글하고 나지막하게 어깨를 맞댄 산들이 이어진다. 수묵화처럼 여백이 느껴진다>


저녁 나절 강가에서 늙은 뱃사공을 만났다. 대나무 땟목을 타고 천천히 강을 거슬러 올라오던 그는 마침 해 지는 강가에 앉아 있던 나에게 다가왔다. 양수오의 풍경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가마우지 낚시를 보여주겠노라고 제안했다. 해 저문 이후라 잠시 망설이다 좁다란 땟목에 올라탔다. 다시 강을 거슬러 힘겹게 한참을 지나 강변에 위치한 어느 배 옆에 멈추었다. 그 배 위에는 나무집이 올려져 있었고 그 곳에서 가족이 생활하고 있는 듯 했다. 저녁 식사 중이었는지 숟가락을 입에 문 아이가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뒤로 백열등의 붉은 기운이 창문을 통해 번져 나오고 있었다. 석양이 마지막 긴 꼬리를 감춰버린 어두운 강가에 창문에서 작게 번지던 불그스름한 기운이 묘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옆으로 타고 온 땟목과 유사한 형태의 땟목이 두 대 가량 메여 있었고 주위에 가마우지 몇 마리가 자유롭게 노닐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려 선상가족의 뱃사공과 강으로 다시 나갔다. 낚시용 땟목은 강을 거슬러 온 땟목에 비해 좀 더 넓었고 후미에는 모터가 장착되어 있었다. 가운데에는 물고기를 담을 커다란 둥근 통이 놓여져 있었고 그 중간에 뱃사공이 서서 삿대를 저었다. 선수에는 집어등 역할을 하는 백열등이 'ㄱ'자 형태로 높다란 장대에 매달려 밝게 빛나고 있었고 그 집열등 아래에 목욕탕 의자를 펼치고 내가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아귀의 주둥이에 해당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셈이었다. 둥근 대나무가 이어진 위에 의자를 펼쳐야 해서 수평을 잡기가 쉽지 않아 낚시하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대여섯 마리의 가마우지들은 땟목 곳곳에 자리를 잡고 꽥꽥거리고 있었고 낚시 지점에 도착해서야 사공의 삿대에 떠밀려 물로 잠수하였다.

<당시에는 손떨림 방지 기능이 없는 카메라여서 다 흔들렸다>


보통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가마우지의 목에 줄을 묶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줄이 묶여져 있지 않았다. 원래 그러한 것인지, 이 지역만의 특성인지, 아니면 이 사공만의 배려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줄이 묶여져 있지 않으니 물고기의 크기에 따라 가마우지들의 행동 양식이 바뀌었는데 그 모습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먼저 작은 물고기를 잡았을 때 가마우지들은 배로 다가오지 않는다. 물 위로 떠올라 그 자리에서 가볍게 울대를 움직여 꿀꺽 삼켜버린다. 맛을 음미하는지 잠시 물 위에 둥둥 떠서 노닐다 노동을 재촉하는 뱃사공의 삿대가 다가오고 나서야 다시 물로 자맥질해 들어간다. 뱃사공 또한 작은 물고기에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큰 물고기를 잡았을 때는 주변이 온통 떠들썩해진다. 입 안 가득 담고도 모자라 몸통의 절반 정도가 입 밖으로 나와 버둥거리는 물고기를 물고 표면으로 튀어 나온다. 월척을 알리는 신호인지 다른 때에 비해 유독 시끄럽게 꽥꽥 소리를 내는데 그 순간 주변에 잠수 중이던 다른 놈들까지 몰려와 합창으로 떠들어 댄다. 개선 장군의 후광 효과를 노리는 것인지, 상금 쟁탈전을 치르려는 것인지, 주인공을 중심으로 몰려드는데 별다른 소요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전자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배 위로 올라온 주인공은 쥴리메 컵을 들어 올리던 펠레처럼 의기양양하게 잠시 두리번거리다 커다란 통에 물고기를 뱉어내고 잠시 숨을 고르는데 월척에 대한 보상인지 사공도 잠시의 휴식 시간을 허락한다. 주변에 몰려들었던 추종자들도 배에 오르려다 삿대에 쫓기어 다시 자맥질 하는데 그걸 바라보는 월척 사냥꾼의 눈빛이 거만하다. 그도 잠시 후 삿대에 떠밀려 다시 자맥질한다. 

<월척을 잡은 애들만이 잠시의 휴식시간이 허락된다. 노동은 가혹하다>


어중간한 크기의 물고기를 잡았을 때는 야밤의 살풍경한 추격전이 벌어진다. 보통 가마우지는 땟목의 집어등을 기준으로 주변을 돌며 자맥질을 하는데 넘어갈 듯 말 듯한 물고기를 문 가마우지는 순간 땟목으로부터 달아난다. 그 순간을 포착하기 어렵지 않은 것은 눈치 없는 주변의 추종자들도 그 뒤를 무리 지어 따르기 때문이다. 사공이 후미의 모터를 켜는 것이 이 순간이다. 한 손으로 모터를 조정하고 한 손으로 삿대를 들어 올려 도망자 가마우지가 숨을 쉬러 나오는 포인트를 사전에 명확히 선점한다. 강물은 맑고 집어등이 밝아 한 밤에도 물 속을 유영하는 가마우지의 날쌘 몸놀림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이리 저리 방향을 트는 가마우지보다 쫓아가는 사공의 실력이 한 수 위다. 물 위로 나오는 지점에 삿대가 먼저 자리 잡아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몇 차례 타이밍을 놏쳐 버린 가마우지는 잠시 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긴 탄식을 쏟아내며 배로 다가온다. 나무통에 물고기를 뱉어내고 애처로이 사공을 바라보는 가마우지에게 이번에는 괘씸죄가 적용되어 휴식 시간의 보장도 없이 삿대에 떠밀러 다시 물 속으로 자맥질한다. 


자맥질에 지친 가마우지와 돌아오는 길, 땟목에 올라타 숨을 고르는 그들을 바라보다 문득 욕망은 인간이나 가마우지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당할 수 있는 욕망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가늠하기 힘든 욕망이 다가올 때이다. 욕망은 절대 불가능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목울대를 넘어갈 듯 부드럽고 젠틀하게, 손만 뻗치고 조금만 노력하면 잡힐 듯 가깝고 친밀하게, 하지만 그건 허상이고 미끼다. 욕망은 허상을 삼키며 그 크기를 키운다. 미늘에 꿰여 끌러갈 때에야 비로소 욕망은 아프고 허탈하다. 삼킬 수 없이 커져버린 욕망 앞에서는 오히려 가마우지가 현명하다. 인간은 이룰 수 없는 욕망 앞에서 좌절하지만 가마우지는 포기할 줄 아는 현명함을 가졌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땟목 위에 엎드린 그들을 보니 놀고 먹는 놈이 뭘 보냐며 다시 꽥꽥거린다. 

<낚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멀리 양수오 시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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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0-22 0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떨방이 없느 카메라라고 하시니 오래전에 찍으신 사진이신가 보네요.그나저나 댜큐에세 본 가마우지 낚시는 다시 봐도 신기하긴 한데 너무 동물학대인 것 같아서 보기 안쓰럽네요.

잉크냄새 2025-10-22 18:27   좋아요 0 | URL
네, 십 년 조금 넘었네요. 특히 야밤에 흔들리는 작은 배 위라 더 심했던 것 같아요.

가마우지가 가축의 범주에 속할진 않겠지만 수 만년 동안 인간에게 길들여진 가축의 운명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뚜렷한 방향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생명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말 밖에...

2025-10-26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0-26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0-26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0-26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5-10-30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수묵화네요. ˝저녁 식사 중이었는지 숟가락을 입에 문 아이가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뒤로 백열등의 붉은 기운이 창문을 통해 번져 나오고 있었다. 석양이 마지막 긴 꼬리를 감춰버린 어두운 강가에 창문에서 작게 번지던 불그스름한 기운이 묘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멋진 문장입니다.

잉크냄새 2025-10-30 19:34   좋아요 0 | URL
네, 여행을 하다 보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모습들이 있어요. 이 모습도 여행지의 멋진 풍경 못지 않게 기억 속에 남아있던 따뜻한 풍경입니다.
양수오의 풍경은 좀 더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면 진짜 멋진 수묵화의 한 장면처럼 붓이 이리저리 지나간 느낌이 들곤 합니다.

2025-12-06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07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뭄바이에서 테러가 터졌다. 수 많은 사상자를 낸 테러의 다음 목적지로 델리가 지목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델리 입국 칠일 전이었다. 당시 첫 배낭 여행에 대한 기대반 두려움반으로 '인도방랑기' 라는 다음 카페에 가입해 여행 정보를 얻고 있었다. 인도는 남미와 더불어 배낭 여행 최악의 난이도로 쌍벽을 이루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여행자가 여성인 인도 여행의 특성상 청일점이었던 난 일정과 루트가 비슷한 많은 이들에게 동행을 요청 받아 놓은 상태였다. 그들 모두가 여행을 취소했다. 미안함을 표시하는 그들의 쪽지가 왠지 명복을 빌어주는 쪽지 같았다. 하루 정도 고민했다. 배낭 여행을 위해 회사를 퇴사하고 잡은 일정이었다. 테러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냥 내가 부정당해 버린다는 기분에 화가 났다. 그냥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왠지 어줍잖은 비장함도 가슴 한 켠에 자리한 듯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여행 전날 카페 글을 확인하다 도움 요청글 하나를 보았다. 델리에 있는 '서울 식당'에서 급하게 핸드캐리를 요청한 사항이었다. 댓가는 하루 숙박과 아침밥 제공이었다.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 식당 여주인을 만나니 고추장 등속이 담긴 라면 박스 하나를 넘겨줬다. 뒤돌아서던 그녀는 내 짐을 힐끗 보더니 배낭은 들고 타고 고추장 박스 하나를 더 전달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번잡함을 싫어하던 내 성격이 배낭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인데 보부상 개나리 봇짐 정도의 짐을 메고 있었다. 더구나 배낭 유명 브랜드인 columbia는 침낭이 배낭 위에 묶이는 구조인데 반하여 국산 travel mate는 침낭이 배낭 아래에 메여지는 구조였다. 그리하여 이 개나리 봇짐처럼 아래로 푹 꺼진 배낭에 고추장 박스 두 개를 들고 인생 첫 배낭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 복장은 델리 공항에서 검문을 자주 당하는 원인이 되었다. 아마 전도연 주연의 <집으로 가는 길>이 먼저 상영되었다면 이 제안을 분명 거절했을 것이다.

  

<국산 travel mate는 침낭이 배낭 아래에 메여지는 구조이다. 저 보부상 스타일에 양 손에 고추장이 든 라면 상자를 들고 테러가 예고된 델리에 도착했다>


홍콩을 경유한 비행기가 델리 공항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 지나서였다. 내세관이 남다른 인도인들은 테러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북적북적 하였다. 여행자는 남녀 두 쌍이 팀을 이룬 서양인 한 팀만 보였다. 여행 베테랑으로 보이는 그들을 따라가면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들 뒤를 따랐는데 입국 심사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주소지 불명. 그러니까 델리에서 머물 숙박 업소도 없이 들어온 것이다. 출장만 다니고 여행이 처음이니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어디로 가느냐는 그들의 물음에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주소는 '서울 레스토랑'이었다. 심지어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엉성한 영어의 추궁과 답변이 지리하게 이어졌다. 나의 막무가내와 부탁에도 불구하고 폭탄 테러 위협으로 강화된 심사에 그들도 만만히 물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서울 레스토랑'이 공항에 무료 광고를 때리고 있을 즈음 나타난 상사인 듯한 관리가 나타났다. 그가 귀찮은 듯 간단한 질문만으로 이 상황을 끝내준 것은 자정 두 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심사대를 지나니 테러 지목에 난리난 공항의 상황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꽁무니를 쫓던 서양 여행자는 물론 인도인들조차 모두 사라지고 나 혼자 덩그러니 넓은 공항에 버려졌다. 다음 비행기조차 입국하는 기색이 없었다. 황토색 군복에 총을 든 군인들이 공항 곳곳을 물샐 틈 없이 경계하고 있었고 폭탄 탐지견들이 꼬리를 흔들면 재기발랄하게 오가고 있었다. 고추장 두 박스를 들고 개나리 봇짐을 멘 모습은 지나가는 군인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폭탄 탐지견들도 고추장 냄새를 처음 맡아본 것일까. 폭탄을 탐지해야 할 탐지견들이 관심을 보였다. 박스를 열어 볼 것을 요청하는 군인들에게 고추장을 보이며 korean red pepper sauce 라고 친절히 설명해도 잠시후 또 다른 군인들이 검문하는 식으로 몇 번을 반복했다.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very spicy 라고 친절하게 덧붙여 주기도 했다.


<다음날 찾아간 델리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지는 공항만큼 어수선했다>


공항 전체는 중동에서 축구 중계를 할 때 들리던 부부젤라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입국장으로 나와도 군인 외에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안전을 위해 공항 자체를 통제한 모양이었다. 공항에서 나오려고 유리창으로 다가서다 움찔 놀라 뒷걸음질 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공항 유리창에 수 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약간 검은톤의 피부에 사기처럼 불투명한 백색의 눈동자를 가진 인도 사람들. 그들이 유리창에 일렬로 늘어서 양손으로 손가리개를 하고 일제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 평소처럼 많은 여행자를 예상하고 곳곳에서 몰려든 호객꾼들이 영업에 실패하고 마지막 남은 먹잇감으로 날 찜해두고 있는 것 같았다. 사리 입은 여인, 터번 두른 아저씨, 붉은 색 점을 찍은 사두...그 수많은 안광은 내 영혼을 집중적으로 구타해 바닥에서 감히 일어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였다. '아, 출국 비행기표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입국 한 시간 만에 들었다. 문득 그가 떠올랐다. '류시화씨, 당신이 말한 인도, 이건 아니잖아.'


시인을 잘근잘근 씹고 출국 비행기표를 고민하며 한참을 보내니 가출했던 영혼이 다시 돌아왔다. 서울 식당에서 픽업 나오기로 한 것이 그제서야 생각났다. 입국장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상태였으니 아마도 공항 밖에 있지 않을까 창문으로 다가가니 다시 호객꾼들이 손가리개를 하며 창문으로 몰려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어 군인이 경계를 서고 있던 출입문으로 이동하여 상반신만 내놓은채 소리쳤다. "서울 레스토랑, 서울 레스토랑~~~" 무상 광고의 메아리가 길게 울려퍼질 때쯤 불을 피워 놓은 드럼통 근처에서 한기를 녹이던 한 청년이 서울 식당이 적힌 A4 용지를 흔들며 인도인 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기를 머금고 등장했다. "당신, 픽업하려 나와서 이렇게 하고 있으면 무슨 수로 찾아, 최소한 종이는 들고 있어야지" 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너무 반갑고 영어가 짧아 "땡큐, 렛츠 고"라고 짧게 말하며 공항을 탈출했다. 공항을 벗어나며 뒤돌아보니 공항은 여전히 부부젤라 소리로 가득했고 그들은 아쉬운 눈길을 돌려 다시 유리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루프탑에서 바라보며 과연 인도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이틀 고민했다. 델리 여행자 거리가 이 정도면....>


다행히 델리에 테러는 발생하지 않았다. 군인들은 어떤 테러의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으나 korean red pepper sauce가 very spicy하다는 사실은 알아냈다고 한다. 테러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테러는 두려움보다는 끊어질 듯 팽팽한 긴장감과 생뚱맞은 호기심이 더 적절했다. 내가 실제 마주한 공포는 막연한 테러보다는 유리창에 붙어 있던 사람들이 내뿜던 안광이었다. 피부색과 완벽히 대비되던 그들의 불투명한 백색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던 안광은 그 이후로도 델리 기차역에서 절정을 맞이했다. 테러로 여행자 발길이 끊긴 기차역에서 CCTV 돌아가듯 얼굴을 180도 돌리며 따라오던 무표정한 백색의 불투명한 눈동자들. 기차역을 한가로이 거닐던 소의 눈망울마저 나를 따라오는 듯 했다. 세렝케티 초원에 남겨진 초식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그 두려움이 사라지기까지 이틀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튼 델리 도착 후 이틀을 더 고민했으나 출국 비행기표는 결국 끊지 않았다. 그리고 인생 최고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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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04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다른 사람 물건 대행 핸드캐리는 절대 하면 안되는 주의사항 1번이죠. 오래전 여행기같은데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무사히 잘 다녀오셨으니 나머지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될거같네요.

잉크냄새 2025-09-05 21:10   좋아요 1 | URL
네, 전도연의 영화를 보고 실감하게 되었죠. 다만, 여행 전 저의 업무가 핸드캐리의 도움을 받았던 부분이 있어 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도움이 필요할때 선뜻 손을 내밀게 된 거죠. ㅎㅎ
오래된 여행기를 다시 정리해 보는 중입니다.

2025-09-05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05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ika 2025-09-05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최고의 여행이 시작되었다,로 끝나다니요. 그 이야기를 들려주셔야지요.
언제적일까 싶어 뭄바이테러,로 검색하니 08년과 11년이 나오네요. ^^

잉크냄새 2025-09-05 21:14   좋아요 1 | URL
인생 최고 여행이 뭐 특별한 것 없고 그냥 자신에게는 어떤 여행도 최고가 아닌가 싶어요.
뭄바이 테러는 2008년 11월말 뭄바이 타지마할 호텔에서 발생했죠. 제가 들어간 건 정확히 일주일후 그들이 델리를 공개 타겟으로 지정한 날이어서 좀 삼엄했죠.

Forgettable. 2025-09-05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08년에 갔던 것 같은데..!! ㅎㅎ 고추장 때문에 아래로 축 늘어진 배낭 너무 웃긴데요 ㅋㅋㅋㅋㅋㅋ 오래전 여행을 엄청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신것이 신기하네요. 저는 이제 정말 가물가물..

잉크냄새 2025-09-05 21:16   좋아요 0 | URL
08년이면 저보다 먼저 여행하고 나오셨겠네요. 제가 입국한 건 12월초였거든요. 어쩌면 델리 빠하르간지 인도방랑기에서 보았을 수도....ㅎㅎ
전 다른 기억은 연기처럼 사라지는데 여행 기억만큼은 아주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아마 여행이 인생에서 의미가 있기는 했나 봅니다.

마힐 2025-09-07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상 광고. 서울 레스토랑, 아직도 있을라나요?
잉크 냄새님, 사투리 어린왕자, 이달의 당선작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
베리 베리 스파이스! ㅎㅎ

잉크냄새 2025-09-07 20:23   좋아요 1 | URL
요즘은 여행지에서 생업을 유지하는 일이 예전과 많이 달라 아마도 지금은 없지 않을까 싶군요. K푸드의 원조는 제가 델리 공항에서 전파한 ˝베리 스파이시˝ 가 아닐까요.ㅎㅎ
당선은 근 20년만입니다. ㅎㅎ 열심히 책 사 읽으라는 계시같아요.

transient-guest 2025-09-13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도. 난이도 최상으로 알려진 곳. 저는 아마 못 갈 듯.ㅎㅎㅎ

잉크냄새 2025-09-14 09:58   좋아요 1 | URL
인도는 남미와 더불어 최상위 경쟁중입니다.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전 난이도도 최상이지만 여행의 매력 또한 최상이라고 생각해요.

감은빛 2025-10-06 0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너무 바빠서 잉크냄새님의 여행기가 올라온 줄도 모르고 지나갈 뻔 했네요.
인도, 정말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입니다.
하필 테러 직후에 새로운 테러 예고가 있었던 곳에 가셨군요.
참, 이런 것도 어찌보면 운인 것 같아요.

델리 공항에서 고추장에 관심을 가진 인도 군인 이야기를 읽으니,
몽골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쉰 김치(문화교류행사 음식 재료) 때문에 저 혼자 입국을 못하고
곤란한 상황을 겪었던 일이 생각나네요.
저는 몽골어를 한 마디도 못했기에 영어로 계속 얘기했는데,
몽골 군인(공항경철이었던 것 같기도)들은 영어를 아예 모르더라구요.
아, 정말 손짓발짓에 바닥에 손가락으로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했는데도,
꼼짝도 못하고 붙잡혀 있었어요. ㅠㅠㅠㅠ

잉크냄새 2025-10-06 21:51   좋아요 0 | URL
인도는 참 매력적인 여행지입니다. 물론 호불호가 너무 명확하게 갈리는지라 싫어하는 분들은 저주하지만 전 다시 한번 꼭 가보고 싶은 최고의 여행지입니다. 인도만이 지닌 여행의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공항에 발이 묶이면 참 난감합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라는 말이 나올까 조마조마하기도 하고요. 쉰김치를 그들은 어떤 것으로 여겼을까요? ㅎㅎ 지금이야 김치를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겠지만 그때만 해도 부패된 어떤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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