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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저우苏州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던 곳으로 오나라의 머릿글을 따 오군,오주,오현으로 불리다 고소산姑苏山의 소자를 따서 수나라 시절부터 쑤저우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쑤저우에서 택시를 타고 그 지역에 대하여 물어보면 거의 백 프로 나오는 첫 마디는 '上有天堂 下有苏杭 상요우텐탕 샤요우수항(위에는 천당, 아래에는 쑤저우와 항저우)'이다. 쑤저우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항저우杭州에서 노년과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오나라의 수도였던 쑤저우와 저장성의 행정 중심인 항저우, 역사적으로 두 도시는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로서 지리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 융성했고 정치적으로 강성했다. 오랜 세월 문화적 향유를 누려온 것과 같이 당대의 시인들 백거이白居易와 이백李白이 <억강남>과 <오서곡>으로 찬양하고 중국 최고의 지성이라 불린 소동파苏东坡가 사랑한 쑤저우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는 놀랍게도 비교적 무명인 당나라 시인 장계张继의 <풍교야박枫桥夜泊>이란 시이다. 


月落乌啼霜满天 월락오제상만천(웨뤄우티쑤앙만텐) 달 지고 까마귀 울어 서리 가득한 하늘

江枫渔火对愁眠 강풍어화대수면(쟝펑위훠뛰쵸우멘) 강가 단풍과 고깃배 불빛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잠드네

姑苏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구수청와이한산쓰) 고소성 밖 한산사

夜半钟声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예빤쫑성따오커촨) 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려오네


가장 유명한 시구는 3구와 4구인데 지명을 직접 언급한 3구와 뱃전에 다다른 한밤의 종소리로 고향 떠난 나그네의 깊은 객창감을 건드는 4구가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 시가 유명해진 건 단순히 시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수 백년에 걸쳐 당대의 내노라 하는 지식인들 사이에 시를 둘러싸고 이어진 논쟁 때문이었다. 풍교야박이 쑤저우를 중심으로 유명세를 떨치자 시에 대한 비판이 서서히 생겨났다. 가장 유명한 비판은 종소리에 대한 비판이다. 첫째, 산사의 종은 한 밤에 울리지 않으므로 시인이 한밤에 들었다는 종소리는 허구다. 둘째, 한산사는 풍교와 지척이라 한밤중에 종을 울리면 시끄러워 시와 같은 은은함을 느낄 수 없다. 셋째, 한산사에는 종이 없더라. 당대부터 이어진 비판은 송대를 거쳐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이즈 마케팅에 편승한 시는 어느덧 쑤저우를 대표하는 시가 되어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이 시를 음송하지 못하는 소주인이 없다고 한다. 시적 사실과 시적 허용의 문제는 예전부터 늘 시 언저리에서 시와 함께 생명을 이어가고 있구나 싶다. 


<요즘 중국에도 고전 양식의 옷을 입는 젊은 세대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서시의 후예다.>


풍교야박의 논쟁을 직접 확인하러 풍교로 향했다. 시구 3구처럼 고소성에서 잠시 벗어난 한산사는 비교적 한적한 곳에 위치했으나 관광객은 중국 여느 곳과 같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한산사 정문을 빗겨 한 바퀴 도니 수향 마을답게 절 주위로도 수로가 형성되어 있다. 다리 높이로 보아 한때 절 주변으로 꽤나 큰 마을이 형성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풍교는 한산사 뒤쪽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난다. 풍교 주위로 단풍나무도 몇 그루 서 있고 다리 한 쪽으로 한산사의 모습도 보이니 시가 완전 허구는 아님을 알 수 있다. 한산사의 종은 직접 보지 못했고 종소리 또한 듣지 못했다. 밤에 오지 못한다는 점, 관광객이 너무 많아 장계 선생이 느낀 객창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풍교를 건너려니 바로 옆에 3D 체험관이 있다. 풍교야박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설명에 배에 올라탄다. 


<장계 선생이 시를 읊은 자리는 저 반대편 선상이었으리라 추측해본다.>


"뱃전에 앉으니 당나라 어느 수향 마을이 펼쳐진다. 바야흐로 봄이다. 동자와 꾸냥이 가져온 차를 한 잔 받아 마시니 배가 서서히 수로를 따라 움직인다. 막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봄이 수로 양 옆으로 가득하다. 겨울 빨래를 가져 나온 아낙들이 수다스럽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리는 꾸냥이 슬며시 미소짓는다. 배를 타고 꽃을 파는 소녀에게서 수선화와 장미를 받아보고 음식을 파는 배 옆에서 만두를 받아 먹어본다. 봄을 지난 수로는 여름으로 접어드는데 웃통을 벗어 제낀 아이들이 수로로 뛰어들고 번잡한 시장에서는 흥정이 한창이다. 한 켠에는 수로 위로 줄타기를 하는 광대가 위태롭다. "짜요 짜요" 응원 소리가 드높더니 갑자기 나타난 용선 3척이 앞다투어 질주한다. 그 물결에 두둥실 흔들리던 배는 갑자기 다리 위로 솟구친다. 아래로 한여름 축제가 한창인 고소성이 펼쳐진다. 밤의 불꽃 축제가 고소성 하늘을 뒤덮고 골목골목은 선남선녀의 흥청거림으로 번잡하다. 고소성을 한 바퀴 돈 나룻배가 다시 수로로 돌아오니 어느덧 늦가을, 문득 찾아온 쓸쓸함에 주위를 둘러보니 초승달이 지고 까악 까악 까마귀 우는 가을 밤 위로 흰 서리가 하늘 하늘 떨어지는데 붉은 단풍 위에 내려앉은 자태가 처연하다. 어디서 본 풍경이다 싶더니 바로 <풍교야박>의 구절이 아닌가. 뱃전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장계 선생이 홀로 술잔을 기울인다. 시중들던 동자가 나를 가르키며 "장계 선생, 이 분도 장안에서 피난온 사람입니다" 하니, 장계 선생은 더욱 깊은 우수에 젖어 긴 장탄식과 함께 술잔을 들고 일어선다. 뎅~뎅~ 한산사 종소리에 잠시 시름 겹더니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붙여 들어 왼손에 든 술잔 속의 술을 찍어 올려 가을 밤 하늘에 일필휘지로 갈겨쓰며 시를 음송한다. 족자를 들고 나온 동자가 장계 선생에게 시 제목을 청하니 <풍교야박>이라 적는다. 동자의 손을 떠나 족자가 가을 밤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다시 한번 가을 밤에 장계의 시를 적으며 음송을 권한다. 뱃전 여기저기서 <풍교야박>이 흘러나온다. 최대한 당대의 목소리로 크게 음송한다. '웨뤄우티쑤앙만텐~~~~' " 고글을 벗고 내리니 뒤에 탄 서생들이 전부 유치원생이다. 음, 초로의 중년이 유치원생과 다투어 시를 음송하다니. 살짝 부끄러웠다. 쑤저우에서 <풍교야박>이 천 년 세월을 살아난 이유이리라.


<AI로 풍교의 늦가을 정취를 표현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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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5-08 0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없던 종이 산사에 생겨나고, 치지 않은 종이 밤에 울리는 것은 시에서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분위기상 필요하다면 오후 5시에도 소쩍새가 울어줄 필요가 있듯이 말입니다^^ 님아, 또 가시려거든 그땐 혼자일랑 가지를 마오~

잉크냄새 2026-05-08 20:5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시적 허용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을. 당대의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이 간단한 문제로 천 년 세월 아옹다옹 다툼을 했다니,,, 틀에 집착한다는 것이 이리도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ㅎㅎ

마힐 2026-05-08 2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래 한산사의 한산은 승려의 이름입니다. 한산과 그의 친구 습득은 절에서 바보 취급 받았답니다. 다른 스님들에게 구박 받으면서도 둘은 뭐가 그리 좋은지 항상 웃으며 서로 장난치며 다녔다고 해요. 그런데 이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어 보면 도통한 경지가 드러났다네요, 지금도 한산문답이라고 전해진답니다. 이들의 우정은 상징이 되어 화합이선이라 부른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보살의 화신들 이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산사는 아이러니 하게도 화합이선이란 상징 때문에 절에 결혼식장이 있다고 하네요. 믿거나 말거나... ^^

잉크냄새 2026-05-08 21:32   좋아요 1 | URL
한산사가 논란의 중심에 설 이유가 또 있었군요. ㅎㅎ 종이 없다는 풍문도 그러하거늘 결혼식장까지 있다니.... 미리 알았다면 이번 발걸음에 예식장도 한번 찾아보는 건데 아쉽네요. ㅎㅎ
아, 한가지 더 한산사를 일본인이 유독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시가 <풍교야박>이라고 하더군요.

감은빛 2026-05-15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리 감각이 없어서 쑤저우와 항저우가 어딘지 몰라 지도로 찾아봤어요. 상하이 근처군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군요.

시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고, 체험하신 이야기도 마치 영상을 보는 듯 느껴지네요.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 <인생>을 보면 결혼식 날 평샤의 남편이 동료들과 거리를 행진하며 주위를 둘러싼 동네 하객들에게 담배와 사탕을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뿐 아니라 아직 전통 혼례 방식이 남아있는 여러 마을에서 예식이 거행되는 건물 앞에 작은 탁자를 펼쳐 놓고 그 위에 담배와 껌과 사탕을 쟁반이나 종이컵에 담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풍경을 종종 보곤 했다.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문을 나선 그 날 언덕 위 장족 전통 가옥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풍악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들던 그 집 앞에서 마침 담배가 똑 떨어졌다. 리탕理塘은 중국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가장 높은 고도인 4200m의 장족 마을이다. 담배 가게를 가려면 한참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 언덕을 다시 내려갔다 와야 했다. 염치 불구하고 두 손 합장하며 "꽁시꽁시恭喜恭喜 (축하해요)"를 외치고 쟁반에 담긴 담배 몇 까치를 들고 나와 담배를 물고 다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한 무리의 청년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탁자에 앉아 있던 노인과 몇 마디 주고 받은 후 나에게 험악한 얼굴로 성큼 성큼 다가왔다. "당신 중국인이냐?" "아니, 한국인이야" 중국어로 답변을 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리탕은 티벳 독립 운동 기간 저항이 가장 심했던 도시이다. 티벳 승려의 분신이 빈번히 행하여진 곳이었고 승려중 리탕 출신이 가장 많았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팽배한 지역이었다. 중국인과 외관상 구분이 쉽지 않은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하여 종종 실수로 폭력이 발생하기도 했다. 중심 도로는 CCTV로 가득 했고 몇 십 미터마다 공안을 가득 태운 버스가 도로를 점유하고 있었다. 몇 마디 더 나눈 후 중국인이 아님을 확인한 청년들은 조금 전 굳게 경직된 얼굴이 언제냐 싶게 하얀 이를 드러내며 경계심을 풀었다. 결혼식에 참석할 것을 권하는 그들의 요청을 점잖게 거절하니 거의 끌다시피 하여 건물 이층으로 올라갔다.


<잔치집 입구에는 사탕과 담배와 껌이 주로 올라간다>


장족의 결혼식은 삼일간 계속 된다. 그날이 며칠째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아직 축하연의 열기가 식지 않은 듯 장족 음악과 웃음 소리가 가득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층은 대략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과 손님을 접대하는 대형 홀, 그리고 신랑 신부가 축하 손님을 맞이하는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부엌에는 신부측 어머님을 중심으로 동네 아낙들이 모여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전통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커먼 그을음이 세월을 과시하듯 벽면에 도배되어 있었고 창을 통과한 한 줄기 햇살이 음식 연기와 먼지의 춤사위로 아늑했다. 천장에는 그을음으로 훈제된 라로우腊肉가 걸려 있었다. 손님 음식이 부족하면 큰 실례가 되기라도 하듯 음식은 층층이 쌓였다. 으레 부엌에서의 한담이 그렇듯 홀로 부엌을 방문한 이방인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었는데 동생을 먼저 시집 보내는 언니의 상대방으로 웃음소리와 함께 한참 동안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신랑 신부가 하객을 맞이하는 신방은 결혼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들락거렸는데 폐백실과 비슷한 용도로 보였다. 외지인인 나에게는 직접 대면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아마 부정을 탄다는 미신적 의미가 있지 않나 싶었다. 대형 홀에는 기다란 탁자가 가로 세로 몇 줄로 자리 잡고 있었고 양탄자가 깔린 낮은 의자가 양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탁자에는 티벳 전통 음식이 가득했고 막걸리 창과 뚝바 같은 전통 술이 놓여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주전자에는 수유차가 끈적거리는 버터맛을 풍기며 흘러 넘쳤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1.5리터 코카콜라와 500미리 환타가 쌩뚱맞은 얼굴로 자리해 있었다. 한 무리의 여인들이 일어나 테이블마다 돌며 축하 노래를 불러 제끼고 노래가 끝나면 다들 잔을 들고 축배를 들었다. 여인들이 한 바퀴 돌고 나면 남성들이 그 뒤를 이어받았다. '고산에서의 음주는 자살이야' 라고 다짐하고 수유차酥油茶를 마시며 최대한 술을 자제했으나 이미 거나하게 술에 취한 건장한 장족들의 강압에 한 잔 두 잔 잔술에 취하여 갔다.  


<보통 3일 동안 축제가 이어진다>


건물 일층은 보통 사람이 거주하는 용도는 아닌 듯 했다. 공간의 구획이 명확하던 이층과 달리 일층은 건물을 지지하는 커다란 기둥 외에는 텅 빈 공간이었다. 다만 잔칫날 만큼은 동네 아낙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티벳 전통춤을 추고 있었다. 올라갈 때도 빙글 빙글 돌아가던 춤은 어둑어둑 어둠이 깔려 내려올 때까지 계속 되었다. 오전에 끌려 들어가 해가 뉘억뉘억 넘어갈 때 이층에서 내려왔는데 팔을 잡아 이끄는 장족 여인들에 이끌려 춤사위에 합류했다. 춤사위는 삶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춤이었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듯 그들의 습관처럼 몸에 벤 자연스런 춤이었다. 움직임이 많고 동작이 커 우리 춤사위보다 훨씬 동적이었다. 장족 마을에서는 식사를 마친 저녁 나절 이미 어두워진 광장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는 일이 일상이었다. 지나온 여러 마을에서 이미 본 일상적 풍경이어서 금방 춤사위에 합류했다. 춤도 빙글, 머리도 빙글, 카메라도 빙글, 오직 빙글빙글만 존재하는 아주 편안하고 흥겨운 기분이었다. 한참을 빙글거리며 돌아가다 기억이 끊어졌다. 문득 기억나는 것은 흰 물감 묻은 붓을 휘둘러 별자리마저 취하여 빙글거리던 은하수와 노랫가락 흥얼거리며 고도 4200미터의 마을을 헉헉거리며 걸어 내려오던 기분 좋은 취기였다.



<사진을 찍을 즈음에는 이미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 사진도 다 흔들린다>







<무희만큼의 동작은 아니지만 저녁 어스름이 짙어질 무렵 장족 마을 광장에는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이 몰려와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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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6-04-02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영화 <인생>도 수작이라고 말씀해주셔서 챙겨봤었는데, 펑샤 결혼식 장면이 떠오르네요. 글 읽는 동안 <걸어서 세계속으로> 보는 기분이었어요. 취기가 슬쩍 느껴지는 사진까지! ㅎㅎ
낯선 곳에서의 경계와 환대가 동시에 느껴지는 순간들이 생생하게 전해지네요. (빙글빙글)

잉크냄새 2026-04-03 19:50   좋아요 1 | URL
중국 결혼식 장면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의 그 길거리 풍경이 먼저 떠오르더군요.
낯선 곳에 가면 말씀하신 경계와 환대의 줄타기가 묘한 긴장감과 짜릿함을 동반합니다. 익숙지 않은 여행의 묘미죠. 그들 표정은 숨길 수 없는 감정이 금방 드러납니다. 경직된 얼굴이 금방 활짝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의 극적 변화란.....ㅎㅎ

Forgettable. 2026-04-02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라오스의 어느 마을에서 노래방기계의 bgm과 함께 춤추고 취하던 기억이 떠오르는 글이네요.
인도에서 만난 티벳 막걸리 창도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떠오르구요.. 모모인가.. 만두도 맛있던데 냠냠

잉크냄새 2026-04-03 19:53   좋아요 1 | URL
우린 역시나 춤의 DNA를 품은 민족입니다. 생각없이 취하고 춤추던 그때가 그립네요.
막걸리 창은 포카라에서 처음 마셨는데 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탄광 광부가 쓰는 랜턴 쓰고 마시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카스피 2026-04-03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족이 티벳인을 가리키는 말인지 처음 알았습니다.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58개의 소수민족(조선족 포함)이 있는데 과거에는 분리 독립등 여러 정치적인 사유로 나름 58개 소수 민족에 대한 자치권과 문화적 독립성을 인정했는데 요즘은 모두 중국 동화정책으로 과거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박탈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나 다른 소수 민족들과 달리 티벳은 과거 왕조시절부터 복속국이었지만 라마불교가 원이나 청같은 한족이 아니 왕실에서 우대를 받아서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었는데 1950년대 중공이 티벳을 침공하면서 강제적으로 병합해 지금도 티벳인들의 독립 의지가 상당히 강하다고 하더군요.
그나저나 잉크냄새님은 참 좋은 곳을 많이 여행 다니신것 같아 매우 부럽습니다.

잉크냄새 2026-04-03 20:04   좋아요 0 | URL
한글 발음 장족은 중국에서 두개의 소수 민족으로 나뉩니다. 티벳의 중국 표현인 시짱(西藏)의 주요 민족인 짱주(藏族)와 중국에서 한족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좡주(壮族)입니다.
제가 근무할때에는 만주족만 고유 언어에 대한 교육이 통제되었는데 얼마전 소수 민족 언어에 대한 교육을 통제한다는 뉴스를 저도 본 기억이 나네요.
여행은,,,저 스스로에게도 소중하고 풍요로운 기억입니다.

마힐 2026-04-03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졸지에 반 강제로 하객이 되셨군요. ㅎㅎ 신랑신부에게 홍빠오는 주셨나요. ㅎㅎ

잉크냄새 2026-04-04 09:34   좋아요 1 | URL
앗, 그러고 보니 홍빠오 건넨 기억이 없네요. 아마 폐백실에서 주지 않았나 싶은데 그 곳은 제가 들어갈 수 없던 곳이라....ㅎㅎ

책읽는나무 2026-04-04 0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국여행의 단짠단짠 그런 맛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위험했던 순간. 그리고 흥겨운 순간.
결혼식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인식하기에 저리도 흥겹게 3일 밤낮으로 축제를 이루는 걸까요?
그들의 전통문화가 참 신기합니다.
암튼 신선한 여행의 경험이 되셨겠습니다.^^

잉크냄새 2026-04-04 09:39   좋아요 1 | URL
사실 위험이라고 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고 살짝 긴장했다고 할까요. 혼자 여행의 장점이 이렇게 뜻하지 않은 각종 이벤트와 마주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죠.ㅎㅎ
소수 민족 전통 문화의 공통점이라면 결국 공동체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3일간의 축제도 가정,친지,마을로 이어지는 공동체에 대한 의례의 흔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한번 가면 다시 보기 힘든 작별의 장이죠.

차트랑 2026-04-04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써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장족의 장을 감출장(藏)을 쓴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장족무(藏族舞)를 시현하시는 분들의 발 동작은 우리와 다른듯 한데,
팔동작과 그 곡선, 그리고 상체의 움직임은 우리의 전통무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군요.

우리 전통무 팔의 곡선은 정말 남다르고 우아하죠.
이 모습을 장족무에서 발견합니다.
장족, 왠지 친근감 상승하네요~!

님아,
또 가시려거든,
그땐 혼자일랑 가지를 마오~!!





잉크냄새 2026-04-04 20:05   좋아요 1 | URL
아, 우리 춤사위와 유사성이 있나 보군요. 아니, 차트랑님, 음악에 이어 춤까지 조예가 깊으시다니....

실제 무희분들 말고 마을분들 저녁 나절 광장에 모여 춤추는 걸 보면 무희보다는 동작이 훨씬 작긴 합니다. 그래도 그런 문화 자체가 흥겹고 정이 많이 갑니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풍경일지도 모르겠네요.

감은빛 2026-04-04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잉크냄새님 글에는 늘 긴장감이 넘치네요. 쪼는 맛이라고 할까? 그런 맛이 있어요.

오전에 끌려들어가 해가 넘어갈 때까지 계셨다니, 그것도 신기하네요. 춤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취했어도, 조금은 흔들렸어도 참 잘 찍은 사진이다 싶어요. 춤추는 모습 영상도 잘 봤어요. 저처럼 춤을 못추는 사람은 여러번 같은 춤을 보아도 따라 추지는 못 했을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26-04-04 19:49   좋아요 0 | URL
아 그럼 다음에는 더 쫄깃쫄깃한 여행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장족춤을 자세히 보시면 대부분 유사한 동작의 반복입니다. 술만 조금 드시면 금방 따라 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카파도키아 괴레메 지역에 도착한 것은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고 마을 안 골목길은 멀찌감치 하나씩 가로등이 켜져 있어 겨우 길을 잡아 나갈 수 있었다. 대부분 숙소는 문을 닫았고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에 가로등과 함께 숙소 하나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국적인 풍취와 보슬비가 옷을 적시는 을씬년스러운 분위기는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삐거덕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주인은 퇴근하고 한 여행자가 대신 수속을 해주었다. 늦은 밤 맥주 하나를 시켜 마시며 홀을 돌아보니 이국적인 가파도키아 풍경 사진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양한 색깔의 열기구가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열기구를 배경으로 한 여성이 찍은 사진은 참 멋졌는데 그 뷰포인트가 숙소 바로 뒤 언덕이었다. 게다가 여성은 어딘지 낯익다 싶더니 모델 박둘선이었다. 


<아침에 바라본 카파도키아는 지구가 아닌 외계 행성에서 꾸는 꿈 같았다.>


카파도키아를 떠나기 전날 열기구를 타게 되었다. 비용은 20만원부터 80만원에 이르기까지 그 편차가 다양했다. 물론 장기 배낭 여행자 주머니 사정에 맞추어 30만원대 초저가 열기구를 신청하였다. 신청한다고 하여 다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변수는 날씨이다. 특히 바람이 센 날은 열기구 운행이 중지된다.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하늘을 온통 수 놓은 열기구의 향연은 하늘이 허락해야지만 가능한 것인데 의외로 그런 날씨는 많지 않다고 한다. 그 날은 약간의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내가 타기로 한 열기구는 운행을 하기로 했는지 봉고차가 이른 새벽 문 앞에 도착했다. 출발지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우리 팀이 열기구 풍선을 채우기 시작했고 뒤이어 다른 팀들의 열기구 풍선도 여기 저기서 하나 둘 한껏 바람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옆으로 누운 풍선이 기지개를 켜듯 천천히 일어서는 장면은 별 것 아님에도 묘한 긴장감과 흥분을 동반하고 있었다. 내가 탄 열기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미명에 떠오른 하늘은 사람을 한껏 흥분시켰고 곧 마주하게 된 하늘에서의 일출은 높아진 눈 높이만큼 더 두근거렸다. 뒤를 이어 기지개를 켠 열기구들이 하나 둘 뒤를 이어 하늘로 떠올랐다. 장관이었다. 녹색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흰 돌산을 배경으로 열기구들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다행히 먼저 출발한 우리는 하늘에서 일출을 맞이했다>


어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열기구는 수평 이동만을 하고 있다. 열기구의 바구니가 언덕 위의 나무가지를 스치는 순간 열기구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자신이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그에게서 당혹감이 느껴졌다. 버너의 화력을 높여 상승을 시도하는데 열기구는 영 올라가지 않았다. 비명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어느 순간 눈 앞에 돌산이 나타났다. 하늘 위 빈 공간에서는 크게 속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돌산을 향해 날아가는 열기구는 엄청 빠르게 느껴졌다. 쿵~ 급기야 돌산에 열기구가 부딪히더니 아래로부터 불어 닥친 상승기류에 끼기기~ 기괴한 소음을 내며 위로 빠른 속도로 솟구쳤다. 출렁하며 바구니가 돌산 봉우리를 넘어섰다. 상승 기류로 잠시 솟구치던 열기구는 또 다시 수평 이동만을 하고 있었고 조정사는 당황한 얼굴로 혼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고개를 들어 열기구 안을 바라보니 오~ 풍선 측면이 'ㄱ'자 형태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 돌산에 부닺혀 바람에 끌려 올라갈 때 찢어진 모양이었다. 당연히 바구니에 웅성웅성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걱정과는 달리 급격한 추락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찢어져 펄럭이는 모양새 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출력을 최대로 올려 추락을 최대한 늦추며 돌산이 집중된 곳을 벗어나 넓은 목초지가 나오자 불시착을 시도했다. 불시착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지면에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붙어 지면에는 꽤 충격을 받으며 떨어졌다. 추락은 그 이름만으로도 손에 땀이 배었다. 역시 추락하는 것들은 날개가 없었다.


<내가 탄 열기구도 한때는 높이 날았던 적이 있었다. 바람이 불어 운행한 열기구가 많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바구니가 쓰러지지 않은 이유인지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다. 공기가 거의 빠져 옆으로 누워버린 풍선을 보니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 두려웠냐는 듯 찢어진 풍선을 배경으로 '치즈'하며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니 공포는 극복하기만 하며 도파민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샴페인 못 따게 하세요" 돌아보니 조정사가 테이블을 설치하고 샴페인을 따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이 달려들어 가벼운 항의와 함께 그의 손에서 샴페인 따개를 빼앗아 버렸다. 샴페인을 따는 것이 열기구 여행의 마지막 행사이며 그럴 경우 환불을 못 받는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티격태격 실랑이가 벌어지고 조정사는 사무실과 연락을 취하더니 내일 다시 공짜로 운행한다는 것이었다. 난 오늘 여기를 떠날 것이므로 환불을 요구했고 관철되었다. 봉고차가 오는 동안 찢어진 풍선이 나부끼는 것을 보며 담배를 피웠는데 연기 속으로 자꾸만 비실비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열기구는 한 시간 코스인데 30분 탔으며 됐고, 더 높이 올라가지 못했지만 평생 상상도 못할 추락도 경험해봤다. 거기다, 아싸! 30만원 굳었다. 거봐, 공포는 지나가기만 하면 도파민 뿜뿜!! 이라고... 

<님아, 그 샴페인 따지를 마오. 직업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분위기 파악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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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03-13 0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휴... 열기구 보기에는 재미있어 보이는데... 아찔한 경험이셨네요. 그때 샴페인 터뜨려 다 같이 한잔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ㅎㅎ 암튼 결국은 해피엔딩이라 다행입니다.

잉크냄새 2026-03-13 19:50   좋아요 1 | URL
그 샴페인 한 잔 가격이 열기구 한 번 타는 30만원에 해당하는 것인지라....ㅎㅎ
받아서 바로 시리아로 탈출했습니다. ㅎㅎ

firefox 2026-03-13 0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이네요. 그래도 산의 풍경은 너무 예뻐 보이긴 하는데, 저는 고소공포증이라서 기구는 못타겠지만 잉크냄새님 덕에 좋은 사진 잘 구경했습니다.

잉크냄새 2026-03-13 19:52   좋아요 1 | URL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이국적인 풍경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번쯤 큰 맘 먹고 고소공포증에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열기구 체험이 아닐까 싶네요. ㅎㅎ

차트랑 2026-03-13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아!
다음 번에 또 가시려거든
저즘 데려가 그 구멍난 풍선즘 높이 태워주오~!!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로군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막화된 외계 행성 느낌 옵니다.
완전 로케이션 !!!

글은 아찔아찔 했습니다.
천만 다행이에요~^^


잉크냄새 2026-03-13 19:56   좋아요 1 | URL
카파도키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떤 계곡이 스타워즈 전투기 추격씬에 실제로 사용된 걸로 알고 있어요.
깜깜한 밤에 도착해 아침에 눈 뜨고 바라본 카파도키아는 외계 행성 느낌 정도가 아니라 꿈을 꾸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현실적이더군요.

카스피 2026-03-14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곳 여행하셨네요.넘 부럽습니다

잉크냄새 2026-03-14 20:34   좋아요 0 | URL
지구상 인간이 거주하는 외계 행성과 가장 닮은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은빛 2026-03-15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추락사고가 나는 건가? 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정말 다행히 아무도 안 다치고, 환불도 받으셨네요.
올려주신 사진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캡쳐한 스냅샷 같아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은 정말 멋지네요.
저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타지 못할 것 같아요.
제가 이 일을 겪었다면 무슨 일이 벌여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하네요.
몇 해 전에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제법 긴 시간 아주 크게 내려앉았을 때
이제 죽는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잉크냄새 2026-03-15 20:28   좋아요 0 | URL
글을 쓰면서 검색해보니 최소 일 년에 한 번 정도의 추락 사고가 발생했더군요. 사망자는 별로 없는데 부상자는 꽤 많이 발생하는 사고 유형으로 보입니다. 저의 사고는 부상자가 없는 이유로 아마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듯 합니다.

이번 글을 통해 꽤 많은 분들이 고소공포증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저도 무섭고 긴장되기는 하는데 공포스러울 정도는 아니니 그저 버틸만한 수준의 공포증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네요.
 

"이슬람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막혀 있었다. 모든 이교도에 대하여 출입을 불허했다. 아테네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다 에게해로 나와 크레타 섬을 지나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그 곳에는 '지성의 햇불'이라 불리는 도서관이 있었다. 이교도인 난 밤이 되길 기다려 몰래 잠입하거나 이슬람 복장으로 변장한 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저녁이 찾아 들면 고딕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지중해의 붉은 손길이 넘실거렸다 . 붉은 유혹에 책을 덮고 나와 지중해가 바로 바라 보이는 바위에 앉아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던 석양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응시하곤 했다." - 잉글랜드 삼등훈작사 조르바 -


일행과 시와 사막에서 헤어졌다. 이집트 남부 아스완의 아부심벨로 떠나는 일행과 헤어져 사막에서 며칠을 더 머문 후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일반적인 여행 코스인 아부심벨을 뒤로 하고 알렉산드리아로 간 이유는 그 곳에 기원전 3세기경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의해 건립된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가 작성되고 보관되어 '지성의 햇불'이라 불리는 이 도서관은 오랜 세월 화재와 침략 등으로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 가치와 역사적인 의미를 인정받아 유니세프의 지원 아래 재건되었다. 이런 역사적 의미와 별개로 이 도시가 내 흥미를 끈 것은 30대 초반 한참 열중하던 온라인 게임 <대항해 시대>의 추억 때문이었다. 15세기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온라인 게임에서 잉글랜드 출신 고고학자인 내 케릭터가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애용한 루트 중 하나가 아테네-알렉산드리아 구간이었다. 머릿글에 기록한 내용이 그 당시의 게임 장면이다. 실제 키보드로 화면을 돌려 바라보던 지중해의 풍경은 묘한 동경을 자아냈는데, 그 풍경을 바라보며 언젠가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게임 속에서 응시하던 지중해의 붉은 석양에 직접 휩싸이게 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맨 왼쪽에 '월'이 새겨져 있다. '워~얼' 하고 테이프 늘어지는 모양새다.>


도서관은 트램이 통과하는 복잡하고 지저분한 길을 배경으로 주변 풍경과는 이질적인 깨끗하고 현대적인 하얀색 건물이었다. 활처럼 약간 휘어진 직사각형의 전면부 넓은 벽면에는 지구상 존재하는 많은 언어가 조각 되어 있었다. 익숙한 몇몇 언어를 제외하면 상형문자라 해도 무방할만큼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한글도 포함되어 있는데 여섯 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내가 찾은 건'월','세','름' 세 자 뿐이다. 초,중,종성의 조합이라는 이론에만 충실했는지 초,중,종간 간격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왠지 소리 내어 읽으면 테이프 늘어지는 소리가 날 듯 했다. 자음 크기 하나가 알파벳 크기만 하니 한글 한 글자가 차지하는 공간이 유독 커 보였다. 누군가는 그 곳에 새겨진 글자 수로 각 언어의 우월함을 자랑하고자 하는데 재건 관련 유니세프에 기부한 기부금 액수에 비례하는 바가 크다고 하니 문화마저 우열과 차별에 이용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책과 도서관이야말로 그런 편견과 차별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이지 않을까. 도서관다운 아이디어가 돋보인 건축물이었다.


< 도서관 이용 여성들은 대부분 히잡을 착용했고 챠도르 이상의 복장은 보기 힘들었다.>


이슬람 문화권을 여행하면서 가장 관심있게 바라본 것 중 하나는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였다.도서관은 가장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장소라 여겨져 특히 눈여겨 지켜보았다. 히잡을 두른 학생들이 모여서 책을 검색하고 열람하고 공부하는 모습은 왠지 이질적이면서도 희망적이었다. 이슬람의 전통 의복은 그 개방성 순으로 나열하자면 히잡-챠도르-니깝-부르카의 순이라 할 수 있는데 히잡이 가장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도서관에도 히잡을 착용한 여성이 가장 많았으며 니깝 이상의 복장을 한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문화가 행동을 규제한다고 한다. 근데 문화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관찰자마저 규제한다. 묘하게도 니깝이나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을 볼 때마다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는 나의 행동 하나 하나를 스스로 규제하게 만드는 자기 검열에 빠지곤 했다. 반나절 정도 도서관에 머물렀다. 주로 문학과 인문학 관련 서가를 돌아다녔는데 문학 관련 한글 서적은 한 권도 찾지 못했고 인문학 쪽에만 세 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었다. 


<아마 지금은 한강의 소설들이 많이 자리했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바닷길은 석양이 지중해를 서서히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도시 한 끝을 물들이기 시작한 노을이 굽이 도는 해안길을 돌아 숙소 앞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몰래 내 뒤를 밟아 이 곳까지 침범해 있었다. 오래된 성벽처럼 자리한 방파제 한 끝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면 하늘과 바다 전체가 붉어질 것이었다. 순간 검은 실루엣이 나를 지나치는가 싶더니 석양 속으로 성큼 성큼 걸어갔다. 석양 속으로 낚싯대를 던지는 노인의 뒷모습이 노을 속에 박제 되는가 싶더니 그대로 풍경이 되어 버린 듯했다. 대항해 시대의 어느 촌부와도 같았다. 구태여 이슬람 복장으로 변장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백년 만에 도래한 것에 감격하다 웃음이 나왔다. 대항해시대 내가 타고 온 갤리선이 보이는 듯 했다. 노를 저어 다시 아테네로 가야 하나!!! 

<가끔 풍경이 되는 피사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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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2-06 0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년 전 이맘 때 이집트 다녀왔어요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다른 어느 도시와도 달랐어요. 알렉산더 대왕의 영향으로 서구 문물의 영향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곳이었지요.
저도 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막 헤집고 다녔답니다. 이래도 되나 하면서요.

잉크냄새 2026-02-06 20:03   좋아요 0 | URL
2년 전이면 제가 방문한 시기에 비해 많은 부분이 변했겠네요. 제가 갔을 때는 주변으로 낡은 트램이 다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중해 항구로서 유럽과의 교류가 빈번했는지 확실히 이집트 다른 이슬람 도시들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이긴 했어요.
도서관은 마구 헤집고 다녀도 됩니다. 소리만 안 내면...ㅎㅎ

마힐 2026-02-06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게임 속 루트를 현실에서 적용하셨다니... 잉크냄새님은 전생에 진짜 고고학자였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하필 눈에 띈 한글이 왜 월, 세, 름 이였을 까요? ‘월세 룸‘ 으로 들릴 것 같은데요..

잉크냄새 2026-02-06 20:07   좋아요 1 | URL
아, 고고학자 하니까...고등학교 2학년때 인디아니 존스 최후의 성전을 보고 이과에서 문과로 변경하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월세 룸‘, 한국의 망조 든 현실을 잘 아는 공인중개사 출신이 벽면 디자인에 참여한 듯 합니다.ㅎㅎ

감은빛 2026-02-06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기다렸던 여행기가 올라왔군요. 새로 재건한 도서관이 아주 멋지네요. 저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

어렸을 때는 유럽, 그 중에서도 독일을 가보고 싶었어요. 에너지를 중심으로 환경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비행기로 장거리 비행을 하는 일입니다. 평소 일상에서 탄소배출량이 매우 적은 제가 만약 유럽을 한번 다녀오면 10년치 이상의 탄소를 배출하는 결과가 되죠.

그럼에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두 곳 있는데, 하나는 여기 알렉서드리아 이고, 또 하나는 옛 콘스탄티노플입니다.

잉크냄새 2026-02-06 20:11   좋아요 0 | URL
와! 제가 글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매번 이렇게 여행기 기다려 주시는 분이 계시니 힘이 납니다. 불끈!!!

전 코로나때 도심에 사슴이나 멧돼지가 출몰하는 걸 보고 기후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탄소배출 관련하여 삶이 많이 변화되었어요. 글 마지막에도 보시면 비행기가 아닌 갤리선 노 저을 궁리를 하고 있잖아요. ㅎㅎ

카스피 2026-02-06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 지었다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로 대 도서관이네요.이집트가 경제사정이 좋지 않음에도 많은 돈을 들여 도서관을 새로 건립할 정도로 과거 이집트의 영광에 많은 자부심이 있음을 느낄수 있네요.

잉크냄새 2026-02-06 20:13   좋아요 0 | URL
이집트는 죽은 자가 산 자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대 이집트 문명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죠.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 이집트뿐 아니라 전 세계의 보물이니 재건의 필요성은 충분해 보이네요.

firefox 2026-02-17 0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도 행복한 한해 되세요^^

잉크냄새 2026-02-17 21:28   좋아요 0 | URL
불여우님도 행복한 한해 되세요.
올해도 즐거운 독서 생활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레이스 2026-02-28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집트에 거대한 박물관이 건립되었다 해서 그곳에 가고 싶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가져간 유물 되돌려 달라고 한다던데,,, 과연 돌려줄까 싶네요 ^^;;

잉크냄새 2026-02-28 21:29   좋아요 1 | URL
제가 여행중인 시기에는 박물관이 시내에 위치했었는데 외관상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박물관 입구 양측으로 커다란 석상이 서 있던 모습과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던 투탕카멘이 기억 나네요.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미이라들도요.ㅎㅎ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돌려줘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유럽제국주의 입장에서는 그냥 시혜 베풀듯 몇 개 던져줄 것 같네요.
 

티벳으로 들어가는 길이 또 다시 막혔다. 첫번째는 티벳 독립 운동이 일어난 3월에는 티벳 출입 자체가 봉쇄되기 때문이었고 두번째는 당시 달라이 라마에게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했던 한국이 북유럽 몇몇 국가와 더불어 출입국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티벳행은 불가능해졌고 꿩 대신 닭이라고 잡은 코스가 동티벳이었다. 동티벳은 현재 행정구역상 쓰촨성에 속하나 티벳 독립 전 티벳의 영토를 잘라 쓰촨에 넘겨준 곳이라 동티벳으로 불린다고 한다. 운이 좋다면 티벳의 바로 앞 빠탕巴塘까지 갔다가 샹그릴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갈 예정이었다. 사실 동티벳으로의 일정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식적으로 출입이 통제된 곳은 아니지만 외국인에 한하여 버스표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다만 사람이 아닌 버스표의 문제이니 들어가는 것이 마냥 불법은 아닌 상황이었다. 리탕理塘까지만 들어가면 추방 당할 때 쓰촨이 아닌 윈난으로 내려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캉딩 초입 차마고도 청동상들이 즐비하다.>


청두成都에서 9시간을 달려 도착한 동티벳의 첫 도시 캉딩康定은 차마고도로 알려져 있다. 마을 초입에 '차마고도의 첫 도시' 라는 문구가 걸려 있지만 보통 팬더의 고향 야안雅安을 차마고도의 시발점으로 본다. 국가 지정 차 집결지 '차마사'가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캉딩은 큰 물줄기가 시내 중심을 가로지르는 해발 고도 2600m의 작은 마을이다. 티벳의 초입답게 돌산에는 불경과 불상이 새겨진 바위가 눈에 띄었고 타르쵸와 룽다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도착한 첫 날 저녁 비를 맞으며 찾아간 숙소에는 방이 없었다. 난처해 하는 나를 가만히 쳐다 보던 숙소 여주인이 우산을 들고 삼십 분 가량 같이 다녀준 것이 따스하고 오래도록 기억으로 남는다. 여기에서 이틀을 묵었는데 밤새 벼락치는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해야 했다. 다음 날 버스 정류장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는데 역시나 외국인은 리탕행 표를 끊을 수 없었다. 꼬인 일정을 걱정하며 건물을 나오니 한 건장한 사내가 따라붙으며 외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현재 외국인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며 자기가 운전하는 헤이쳐黑车를 이용하라고 했다. 헤이쳐는 불법적으로 운행되는 봉고차였다. 새벽 3시로 출발 시간을 정한 후 헤어졌는데 잠시 눈을 붙이는 내내 한밤중에 불법차를 이용한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나와 같은 배낭 여행객이 있으리라 위안 삼으며 잠을 청했다. 


새벽 세 시에 터미널로 나가니 어둠 속에 검은 봉고차가 한 대 서 있었다. 내가 제일 늦은 듯 이미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가운데 자리만 하나 비어 있었다. 일가족인 듯 비슷한 외모의 기골이 장대한 장족들이었다. 여행객은 나 혼자였다. 여자들은 맨 뒤에 타고 남자들이 앞에 두 칸을 차지했는데 어깨가 떡 벌어진 그들 사이에서 꼼짝없이 갇힌 형국이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잘 씻지 않는 그들에게서 참기 힘든 악취가 풍겼는데 싸늘한 한밤중에 문을 닫고 달리는 흔들리는 봉고차에서 기절하듯 잠이 들 때까지 꽤나 힘들었다. 차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눈을 뜨니 푸른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뭉게 구름은 초원의 양들이 바람에 날려간 듯 흘러갔다. 초르텐 주위로 실제 양들이 풀을 뜯고 있었고 녹색 초원을 배경으로 타르초와 룽다가 경전 소리를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창 밖의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는데 평야에서 초원으로, 계곡에서 산등성이로, 산등성이가 갑자기 탁 트인 초원으로 바뀌었다. 바다를 제외한 모든 풍경이 그 길 위에 있는 듯 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그냥 일상적인 풍경이었는지 차는 무심코 쉬지 않고 길을 달렸다. 길을 막은 나무와 바위도 치우며 달렸고 양지 버섯을 팔려 길을 막고 선 현지인과 진지한 가격 협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둠이 깔리자 날씨가 급변하고 좁고 구부러진 도로의 풍경은 경이가 아닌 경악으로 바뀌었다. 오른쪽 도로면이 강인지 절벽인지 모르는 미지가 공포를 더 부채질했다. 리탕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새벽 1시였다. 리탕은 중국에서 사람이 사는 가장 높은 마을인 해발고도 4200m의 마을이었다. 캉딩에서 리탕까지 보통 8시간이 걸리는데 특별히 차가 막히는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22시간이 걸린 것이 의아해 물어보니 중간에 길을 우회하여 온 것이다.  


<리탕 언덕배기 초르텐과 양떼>


차마고도는 야안雅安~라싸拉萨 구간의 천장공로川藏公路와 쿤밍昆明~라싸拉萨 구간인 전장공로滇藏公路로 나뉜다. 천장공로는 다시 망캉芒康을 지나는 천장남로와 창뚜昌都를 지나는 천장북로로 나뉜다. 그러니까 천장공로인 캉딩에서 출발한 버스는 천장남로를 달려 리탕에 도착하는데 헤이쳐는 천장북로와 남로의 분기점인 신뚜챠오新都桥에서 천장북로로 접어든 것이었다. 이름 모를 길을 거쳐 단빠丹巴와 따오푸道孚를 지나 남쪽으로 길을 꺽어 리탕으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리탕에서 버스표를 구하지 못해 샹그릴라香格里拉로 방향을 틀었다. 뜻하지 않게 천장남로와 천장북로, 그리고 전장공로를 모두 달리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각자가 느끼는 여행의 묘미는 모두 제각각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의 의외성을 가장 흥미로워한다. 그래서 여행시 큰 밑그림만 그리고 중간 일정은 그때 그때 상황에 맡기는 편이다. 가장 아름다운 길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기대이며 가장 소중한 길은 이미 지나온 길에 대한 기억이다. 우연히 탄 헤이쳐, 우연히 일행이 된 장족, 우연히 접어든 천장북로의 여정, 차마고도 세 개의 길을 모두 지나는 행운까지, 뜻하지 않은 의외성이 품고 있는 순간의 긴장감과 다소의 스트레스, 뜻밖의 환희는 여행이 가져다주는 백미이다. 


천장북로를 달린 그 날 차가 정차하지 않아 사진은 거의 찍지 못했는데 며칠 후의 여행기록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 날의 풍경은 두 번 다시 허락되지 않았다" 


<쓰촨 청두에서 윈난 쿤밍까지 7대의 버스를 갈아타며 59시간을 달렸다. 따오청에서 야딩 풍경구로 들어간 것까지 포함하면 9대의 버스, 67시간이다. 이제는 소화하기 힘든 여정이다.>




<리쟝의 어느 까페에서 통기타 연주로 알려지기 시작해 내가 이 길을 여행할 즈음에는 차마고도 거의 모든 마을에서 들려오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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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1-08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은 여행가 이신가요?
오래 전 tv에서 차마고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납니다.
그곳에서 끊임없이 노동을 하던 여인들이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해요.

잉크냄새 2026-01-08 22:20   좋아요 1 | URL
거창하게 여행가는 아니고요 그냥 여행을 좋아합니다. 처음 직장 옮길 때 큰 맘 먹고 반 년 정도 돌아다녔어요. 그 후로도 가끔 시간 내서 돌아다니고요. ㅎㅎ
다큐멘터리에 나온 곳은 아마 옌징 소금 염전에서 일하는 여인들일 겁니다. 위에 지도 보시면 망캉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그 당시 티벳 퍼밋을 못 받아 들어가지 못했어요. 지금은 아마도 댐 건설로 사라져 버렸을 겁니다.

차트랑 2026-01-08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이 쪽이 빠를것 같아 이곳에 답 드립니다.
공유하기를 클릭하시면
화살표 표시가 있을겁니다 < > 이런 식으로요.
이때 우측 화살표시를 누르면
전체 소스를 보여줍니다.
그 소스 전체를 복사하셔서 붙이기 하시면
성공하시리라 믿습니다.

설명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행여 실패하시면 다시 알려주십시요 잉크냄새님~!

잉크냄새 2026-01-09 00:14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공유에서 < > 누르니 전체 소스가 나오네요.
알라딘의 설명이 잘못된 것인지 유튜브의 소스코드 복사 자체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알라딘에 수정 요청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차트랑 2026-01-08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튼 양 옆으로 < > 보이는데 이걸 보셔야합니다 ㅠ

잉크냄새 2026-01-09 00:15   좋아요 0 | URL
수정 완료했습니다.
노래 한번 들어보세요. ㅎㅎ

차트랑 2026-01-09 18:4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댓글 센터링을 어떻게 해야 정확히 들어가는지 몰라
엉뚱한 곳에 센터링을 하게되더군요.

이젠 좋 알듯합니다^^

차트랑 2026-01-09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싸~!
노래 잘듣겠습니다 잉크냄새님~ ^^

잉크냄새 2026-01-09 18:26   좋아요 0 | URL
최초의 글에 연이어 댓글을 다시려면 맨 처음 작성한 댓글에서 댓글달기 누르시고 댓글 다시면 됩니다.
노래 관련은 아래 댓글에 남길게요. ㅎㅎ

차트랑 2026-01-09 18:42   좋아요 0 | URL
앗 그쪽이 아니었네요 이쪽이었는데
센터링을 잘못 했군요 ㅠ
이제 정확한듯요~

차트랑 2026-01-09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어나면서 늘 노래를 듣는데요.
오늘 아침은 이 쪽 서재의 노래를 듣습니다.
업로드 해주신 노래가 아주 마음에 드네요.
잘 듣겠습니다.

내용이 궁금해서 번역기를 돌렸는데,
번역기가 시킨일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번역기가 해낸 결과가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제목을 알려주는데...
滴答부터 저의 예상이 완전 틀려버리네요 ㅠ
滴 = 물방울 적, 인지라 속으로 판타스틱한 해석을 해본 연후의 깜놀시전입니다.


《똑딱》 노래:칸칸 작사:고지 작곡:고지 (운남瀘구호)

똑딱똑딱똑딱 시계는 계속 돌아간다
똑딱똑딱똑딱 소우(小雨)는 물보라를 두드리고 있다
똑딱똑딱똑딱 아직도 그를 괴롭히지 않을까?
똑딱똑딱똑딱 눈물 몇 방울이 이미 떨어졌다
똑딱똑딱똑딱 외로운 밤 누구와 이야기할까
똑딱똑딱똑딱 슬픈 눈물은 누가 닦아줄까
똑딱똑딱똑딱 마음을 정리하고 출발하자
똑딱똑딱똑딱 또 누군가가 너를 잡아당길 거야

아, 이 노래, 중독성 있네요 ㅠ

잉크냄새 2026-01-09 18:35   좋아요 0 | URL
역시 노래를 좋아하시는 차트랑님께서 알아봐 주시는군요. ㅎㅎ
˝지음˝ 이로세

해석은 다 비슷한데 삼구와 마지막구의 牵挂(첸과)의 해석이 좀 틀렸네요.
牵挂(첸과)는 걱정하다 로 해석하면 됩니다.
삼구 : 아직도 그 사람 걱정을 하고 있나요
마지막구: 누가 또 당신을 걱정해줄까요

특히 낯선 도시에서 통기타 선율로 듣는 도입부가 참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차트랑 2026-01-09 18:48   좋아요 1 | URL
노래가 좋아서 가사가 궁금했는데,
어쩐지 특히 마지막은 이상하다 했습니다.
갑자기 잡아당긴대서 행여나 했더니....
AI형께서 마지막에 특히 오류를 내셨군요.

좋은 저녁되십시요 잉크냄새님~~
노래 잘 듣겠습니다~

잉크냄새 2026-01-10 00:03   좋아요 0 | URL
의미보다는 감성이죠.
좋은 노래 되었길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6-01-09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가의 글 같습니다. 여행 작가, 하면 더 멋있지 않습니까?
˝그 날의 풍경은 두 번 다시 허락되지 않았다˝ - 이 순간도 두 번 다시 오지 않지요. 이런 것 생각하면 시간을 아껴 써야 할 것 같아요.
청동상 사진이 참 신기합니다.
멋진 여행가가 되시겠다면 응원하겠습니다. 여행과 글, 잘 어울립니다.^^

잉크냄새 2026-01-09 18:39   좋아요 0 | URL
그날 천장북로의 사진을 찍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 풍경은 앞으로도 펼쳐질꺼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했거든요. 아마 티벳으로 들어갔다면 더 멋진 풍경도 만났겠지만 티벳행이 무산되면서 진짜 그런 풍경은 다시 허락되지 않았어요. 어떤 풍경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와 인연이 되어야만 만나나 봅니다.

여행가가 못되더라도 기억에 남은 여행의 추억을 글로는 계속 써볼까 합니다.

마힐 2026-01-09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생 때 헤이처로 라싸를 들어가려다 검문에 걸려 여행국에서 2박 3일 취조(?)받았던 생각이 나네요. ㅎㅎ 우여곡절 결국 라싸를 가게 되었지만, 곤륜산맥을 넘어갈 때 고산증이 너무 심하게 오는 바람에 여행이고 뭐고 집에 돌아갈 생각 밖에 안 났어요. ㅜㅜ 잉크냄새님은 고산반응이 없으신 것 같은데 나중에 다시 한번 꼭 ‘라싸 가기‘ 도전하시길 바래요. ^^

잉크냄새 2026-01-10 00:06   좋아요 1 | URL
저보다 오랜 중국 생활을 하셨으니 더 멋진 경험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기억 하나하나가 또 추억을 만들어 가리라 봅니다. 2박 3일이 절대 헛된 시간이 아니었을 겁니다.
참고로 전 폐활량이 좋은 편이 아닌데 고산 증상은 없는 몽뚱이입니다. ㅎㅎ

감은빛 2026-01-26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래전에 일했던 춣판사에서 윈난성 여행 에세이를 낸 적이 있어요.
그 작가님은 노동운동 판에 계셨던 전교조 교사였는데, 시를 잘 쓰셨던 분이었어요.
그때는 아직 제가 편집 일을 시작하기 전이어서 그저 마케터로서 원고를 읽기만 했었네요.
이후 다른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배워 익히면서 좀 더 일찍 이 일을 했다면,
훨씬 더 많은 글들을 다른 시각으로 읽었을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암튼 그 책을 내는 과정에서 읽었을 때에는,
윈난성이 어딘지도 몰랐고, 그냥 머나먼 중국 땅 서쪽 어딘가라고만 어렴풋이 생각했었어요.

잉크냄새님의 이 글을 읽으니 참 사람의 경험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9대의 버스로 67시간이라니!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을지 짐작하기 어렵네요.
오래 전에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바양고비까지 12시간? 14시간?
암튼 초원을 가로지르며 비포장 도로를 버스로 이동했었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우리나라 차량과는 달리 서스펜션이 거의 없는 거의 수명이 다 한 낡은 버스는 그냥 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아픈 상황이었는데, 초원을 그냥 달리는 건 정말 힘들었습니다.
잉크냄새님의 67시간 중 대부분이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허리 괜찮으십니까? ㅎㅎㅎㅎㅎ

잉크냄새 2026-01-26 21:44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제는 무리수입니다. 아마도 허리가 버텨내지 못할 겁니다.
그때만 해도 그냥 엉덩이가 눌려 감각이 없어진 것 외에는 버틸 만 했거든요. 차 타면 바로 잠들고 차창 밖으로 풍경 보는 것도 너무 좋아하는 개인적인 성향도 저런 장거리 여행을 버티게 한 큰 이유일 겁니다.
지금은 아마도 저 마을 중간 어디쯤에는 비행장이 건설되지 않았을까요? 제가 다닐 즈음에도 따오청에 작은 비행장이 들어선다는 풍문이 돌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험난한 일정이 가져오는 여행의 묘미는 잊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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