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쓰촨성에서 윈난성으로 넘어가는 가장 일반적인 길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꽃이름을 도시명으로 가진 판쯔화攀枝花라는 곳을 거쳐 윈난 리장丽江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험난한 중국 내륙 지형이지만 청두成都-판쯔화 攀枝花사이 기차가 놓여 있어 가장 무난하게 여행할 수 있는 길이다. 또 하나의 길은 가장 유명한 길이자 인내와 고난의 길이기도 한 차마고도를 지나는 길이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도시 리탕理塘을 거쳐 샹그릴라香格里拉로 넘어가는 버스로만 서른 시간 넘게 걸리는 쉽지 않은 여행길이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길 하나가 더 있다. 쓰촨과 윈난 중간에 형성된 둘레가 50 킬로에 달하는 커다란 호수 루구후泸沽湖를 지나는 길이다. 루구후 외에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고 교통이 불편하여 그다지 이용되지 않는 길이었다. 판쯔화를 거치는 너무 상투적인 길에 대한 거부감과 언젠가 라싸로 넘어가는 길로 남겨 두고픈 기대감에 두 길을 제외하고 루구후를 거치는 길을 지나게 되었다.


청두에서 기차로 8시간, 그리고 다시 시골 버스로 8시간을 달려 도착한 마을 초입에는 자연목으로 만들어진 아치형의 커다란 대문 중간쯤에 '루구후'가 어설프게 양각 처리되어 있었다. 초입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던 '여인천하, 남성천당' 이란 표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마을에서 호수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온 곳에 위치한 어느 전통가옥에 숙소를 잡았다.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여행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늦은 밤 어느 집 마당에 동네 여인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불 주위를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마당 한켠에 걸터 앉아 한참을 구경하는데 왠지 남자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 있었고 여인들만의 춤판에 홀로 있기 어색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젊은 사내가 운영하는 술집에 머무르니 주인장이 루구후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루구후는 모쒀족이 자치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중국 56개 소수민족중 유일하게 모계 사회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아마 그 표어의 의미는 모계 사회를 나타내는 하나의 의미로 쓰여진 듯 했다. 


모쒀족摩梭族은 모계 중심의 사회이다. 어머니를 가장으로 하여 가족이 형성된다. 부부는 연을 맺기는 하나 같은 집에서 살지 않는다. 남자는 여인의 집으로 와서 밤을 지새고 아침이 오기 전 떠나간다. 특별한 혼례의 절차가 없다. 마음이 맞으면 남자가 담을 넘어 여자의 방문을 두드리고 여자가 문을 열어 받아들이면 암묵적인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고 한다. 이런 결혼의 형태를 주혼走婚이라고 한다. 결혼의 구속력이 없으니 이혼의 강제력도 없다. 여인은 마음이 떠나면 남자의 가방을 창가에 걸어 놓으며 남자는 이를 인연이 다한 것으로 여기고 돌아선다. 그러다 보니 한 집안에 같은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가 다른 자식들이 같이 생활하게 된다. 부부금실이 좋으면 모두 같은 아버지를 두게 되지만 금실이 별로면 모두 다른 아버지를 둔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생활하게 되고 장성한 딸들이 다시 독립하여 또 다른 모계를 이루게 된다. 외삼촌들은 어머니를 이어 장녀가 부양하게 된다. 모쒀족 여인 '양 얼처 나무'의 책 '아버지가 없는 나라'를 보면 부정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그리움과 눈물겨운 애정을 표현한 것과 달리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냥 핏줄에 대한 긍정 외에는 그다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라는 호칭이 없는 듯 그냥 이름만을 건조하게 적을 뿐이었다. 모든 경제 생활이 어머니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며 남자들은 산에서 가축을 기르거나 집 건축 수리 등 일부 일에만 관여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주로 차마고도를 따라 마방의 삶을 이어갔다.


모쒀족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풍습이 있 작지만 그들만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개에 대하여 가족 같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신화에 따르면 태곳적 하늘이 열리고 신들이 세상의 모든 동물을 일렬로 세워 생명을 부여할 때 개 뒤에 인간이 있었다. 개가 60년의 수명을 얻게 되고 인간이 15년의 수명을 얻게 되었는데 개가 슬퍼하는 인간에게 자리를 양보하여 지금의 수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매년 춘절에는 정성들여 음식을 장만하여 개에게 인간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음식을 대접하는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욕을 하는 행위는 철저하게 금기시되고 있다. 그래서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으면 방문을 박차고 나가 돼지나 닭에게 대신 욕을 한다고 한다. 어리둥절한 가축에게 "인간 같은 놈"이 최악의 욕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개에게는 욕하지 않는다. 


루구후는 아침 햇살이 특히 인상깊었다. 아침부터 뭔가 저녁처럼 쓸쓸하고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첩첩이 둘러싼 산을 넘어 여명보다 훨씬 늦게 호수에 도착한 햇살이 갈대 여기저기서 조금씩 비집고 들고서야 고즈넉함은 사라져갔다. 뱃사공들도 모두가 여인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로 키보다 훨씬 큰 삿대를 둘러 매고 석양을 거니는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다 눈이 마주친다. 이를 드러내고 환히 웃는 그녀들의 모습에 측은지심은 한낱 나그네의 객창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대숲 사이 사이를 삿대를 저으며 나아가는 그들의 나룻배를 빌려 한나절 호수를 유람하였다. 돌아오는 길 호수가 아래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올라가 보았다. 저기 아래로 두 대의 나룻배 사이 커다란 목재를 걸친 배가 지나다닌다. 그들 또한 여인들일까. 그들의 거친 생존력이 아직껏 모계 사회을 이어가는 원천이 되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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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8-07 0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루구후의 여인들은 조선의 여인들처럼 남존여비를 겪으며 살지 않았을듯 하여
참으로 다행이다 싶습니다.

모쒀족의 풍습은 처용가를 떠올리게 하네요.
처용가를 통해 신라도 어쩌면
폴리가미(polygamy)의 사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하거든요.

어쨋든 루구후의 남녀 문화가 조선 사회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드는군요.
여인들에게 족쇄를 채우지 않는 다는 것 만으로도 말입니다.

음... 사진 잘 찍으시네요~

건강에 유의하십시요 잉크냄새님.
좋은 하루 되시구요~


잉크냄새 2026-08-07 21:26   좋아요 1 | URL
모쒀족은 폴리가미라기에는 관계 정리에 철저해 보입니다. 여성은 가방을 걸어둠으로써 상대와의 관계를 확실히 끊어버립니다. 남자 또한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에 미련을 가지지 않는 듯 합니다. 오랜 전통이 본성마저 바꿔버린 것 같기도 하네요.

사진은..... 하나 잘 얻어 걸렸다는 표현이 제일 적합해 보여요.
 


인도의 극장은 카스트 제도를 닮아 있었다. 극장 자체가 따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극장 좌석이 앞좌석부터 브론즈,실버,골드,플래티넘으로 등급이 나뉘어 있었다. 마치 카스트 제도를 극장 좌석에 넣어버린 모양새였다. 등급은 좌석 위치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게 옷차림 등 신분을 짐작할 수 있는 외부적인 요인으로도 구분되어졌다. 브론즈에는 길거리에서 주로 만나는 릭샤꾼이나 뱃구레를 거침없이 드러낸 여인들의 싸구려 사리처럼 지저분하고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들이고 실버, 골드로 올라갈수록 눈부신 사리의 장식처럼 옷차림도 세련되고 화려해졌다. 인원수는 브론즈가 압도적이었고 극장 전체의 분위기도 브론즈 인원들이 이끌었다. 당시 본 영화는 인도 액션 영화 <가지니>였는데 나쁜 놈을 응징하는 권선징악의 장면이나 주인공이 악인에게 얻어터지는 장면에서는 극장 안을 가득 메우는 감탄사와 푸념이 터져 나왔다. 인도 발리우드 마샬랴 영화 특유의 뜬금없는 중간 댄스 장면에서는 흥에 겨운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덩실덩실 몸을 흔들며 동참하기도 했다. 왁자지껄한 브론즈에 비해 실버와 골드는 왕족이 위엄을 갖추듯 무표정에 무반응으로 조용히 관람했고 플래티넘은 브라만의 신비주의를 품은 듯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난 신분에 걸맞지 않게 왕족의 좌석에 앉아 천민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상영 시간이 세 시간이 넘었는데 중간중간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대니 체감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왁자지껄한 모양새가 시체말로 교양 없는 폼이기도 하고 요즘의 극장 관람 문화와는 동떨어져 있으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언저리에 소환되는 장면이다. 문명은 이런 본능을 억제하고 포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은 아닐런지. 영화의 성격에 맞게 놀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액션은 액션답게, 멜로는 멜로답게,코미디는 코미디답게. 유안진은 그의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며>에서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 군밤을 깔 때는 아이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말자고 했다. 가끔 영화는 인도인처럼 신명나게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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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6-07-09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인도 가신 건가요?

잉크냄새 2026-07-09 21:25   좋아요 2 | URL
오래전에 다녀온 인도 여행을 지금에야 하나씩 정리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언젠가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수이 2026-07-09 21:28   좋아요 1 | URL
저는 예순 전에 가는 게 로망인데 언제쯤 이룰 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이미 다녀오셨다고 하니까 부럽습니다. 다음 인도여행기 기다리고 있을게요. :)

잉크냄새 2026-07-10 20:45   좋아요 1 | URL
저도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여행기라기에는 뭔가 부족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이 올리고 있으니 가끔이라도 재밌게 봐주세요. ㅎㅎ

nama 2026-07-11 1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이살메르인지 조드푸르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 연회장 같은 화려한 극장에서 세 시간짜리 영화를 보면서 세상을 다 가진듯한 뿌듯함을 느꼈었지요. 잠시 인도인이 된 듯한 기분에 빠져들기도 하고요. 인도를 얘기하면서 영화가 빠지면 서운하지요.

잉크냄새 2026-07-10 20:47   좋아요 0 | URL
자이살메르에는 큰 극장이 없었던 기억으로 보아 조드푸르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인도 영화는 마샬라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뭔가 이것 저것이 부자연스럽게 섞여 알듯 말듯한 향기를 풍기는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ㅎㅎ

nama 2026-07-10 21:41   좋아요 1 | URL
앗, 자이푸르의 라즈 만디르 극장이었어요. 이십여 년 전에 갔었지요. 인도는 일곱 번이나 다녀왔는데도 지명이 오락가락 하네요. 자이살메르는 가보지도 않았는데 마치 가본 것처럼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고요.

잉크냄새 2026-07-12 09:52   좋아요 0 | URL
와우, 난이도 최상을 자랑하는 인도를 일곱번이나 다녀오시다니... 세상 그 어떤 여행도 두렵지 않으실 것 같아요. 전 한번 더 다녀오고자 항상 생각중입니다.

2026-07-09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7-10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26-07-09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도 여행도 갔다오셨다니 넘 부럽습니다^^

잉크냄새 2026-07-10 20:50   좋아요 0 | URL
한참 세월 지난 여행기입니다. ㅎㅎ 언젠가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지요.

감은빛 2026-07-10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정말 좋아했던 영화가 [가지니]예요. 아마 대여섯번 이상 봤을 거예요. 이 영화를 인도 극장에서 보셨다니! 정말 부럽네요.

잉크냄새 2026-07-10 20:52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예전 감은빛님 인도 영화 소개한 페이퍼에서 <가지니>에 대하여 언급하신 기억이 나네요. <가지니>는 인도에서도 상당한 흥행을 했다고 하더군요. 피터지게 두드려 패다 같이 노래하고 춤추는 마샬라 영화의 세계로 빠져봐야 알 수 있는 매력이 있죠. ㅎㅎ

감은빛 2026-07-17 16:15   좋아요 1 | URL
어쩌다 잉크냄새님께서 제 글에 남기셨던 댓글을 다시 읽었어요. 2008년에 바라니시에 있는 극장에서 가지니를 보았었다는 댓글을 이미 24년 1월에 남기셨었네요. 저는 그 사실을 완전히 잊고 여기 이런 바보 같은 댓글을 달았군요. ㅠㅠ 죄송합니다!!

잉크냄새 2026-07-17 18:41   좋아요 0 | URL
아이고, 별 말씀을요. 항상 정성어린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페크pek0501 2026-07-13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도기행, 이란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뭔가 특별한 나라, 같았어요.
수필을 인용해 잘 마무리하셨네요. 그 수필이 좋아서 프린트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잉크냄새 2026-07-14 21:17   좋아요 0 | URL
법정 스님의 인도기행 이군요. 마침 저도 얼마 전에 다시 한번 읽었어요. 한동안 직접 갈 수 없으니 인도가 그리울 때는 다른 이들의 여행기로 허기를 채우곤 합니다.
유안진 님의 저녁을 먹고... 로 시작하는 저 수필은 한때 엄청났죠. 지란지교를 꿈꾸며....
 

땅덩이가 넓은 나라를 여행하는 하나의 묘미는 야간 버스에 구겨져 밤을 보내는 일이다. 땅이 넓다 보니 야간 버스가 나라 구석구석 거미줄처럼 잘 배치되어 있고 여행자 입장에서도 시간 절약, 숙박비 절약에 이국의 밤을 오롯이 느낄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 할 수 있다. 특히 튀르키예의 야간 버스는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남자 차장이 고급 레스토랑의 지배인처럼 격식있는 옷차림으로 밤새 시중을 든다는 점이다. 졸다 깨어나면 밤새 지켜보고 있다 달려왔는지 바로 눈앞에서 멋드러진 콧수염 아래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다소 과장된 큰 미소를 지으며 쟁반에 담긴 과자류와 달짝지근한 홍차를 권한다. 홍차를 다 마시면 손을 펼치게 하고 손바닥에 레몬수를 분무기로 가볍게 뿌려준다. 손을 비비고 얼굴을 문지르며 잠결에 맡던 레몬향은 얼마나 상큼하던지. 잠의 요정이 아직 떠나지 못한 자리에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레몬향은 시간이 지나도 코끝에 떠오를 만큼 인상적이었다.


<갈라타 타위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내>


이스탄불에서 샤프란볼루로 가는 버스는 늦은 밤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였다. 저녁을 먹고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일찍 불 끄고 잠 든 도심과 달리 웅성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버스 뒷편의 넓은 공간은 듬성듬성 놓인 드럼통에서 붉은 불꽃이 넘실거렸다. 그 주위로 웃통을 벗은 청년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노래를 부르거나 허리를 들썩이며 위아래로 파도타기 하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목마를 탄 몇몇 청년들은 국기를 흔들며 분위기가 애국가인 듯한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있었다. 흡사 소요 사태가 발생한 듯 싶어 몸을 구부리고 잽싸게 차에 올라타 커튼 사이로 몰래 훔쳐보았다. 어리둥절한 소란은 버스 차장이 출발 시간을 알리며 독촉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청년들이 하나 둘 버스로 다가올 때가 되어서야 다소 떨어져 지켜보던 히잡을 둘러 쓴 중년의 여성들이 버스 주위로 서둘러 모여들었다. 청년들과 가볍게 포옹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한참을 바라보며 아쉬움에 손을 놓지 못했다. 버스가 시동을 걸고 움직이자 그녀들은 다시 창 주위로 몰려와 창문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이며 차창 속 청년들을 다시 애타게 바라봤다. 아, 저 눈빛, 낯설지 않다 싶었다. 어머니의 눈빛, 자식을 군대로 떠나 보내던 그 눈빛을 이 곳 타국에서 다시 마주치다니. 참 환송회 한 번 거창하다 싶던 마음이 그 마주침에는 다소 울컥하였다. 울음을 삼키는 여인들의 눈물은 버스가 떠나고 나서야 터질 듯 했다.


<블루 모스크>


입영 전야를 거창하게 보낸 청년들을 태운 버스가 멈춰 선 것은 이스탄불을 막 벗어난 어느 벌판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바라보니 십여 명의 청년들이 낮은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뭔가 싶어 그들을 따라 오르니 중간 즈음에 일렬횡대로 도열하여 노상방뇨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무심결에 그들 옆에 일렬횡대로 줄을 맞춰 노상방뇨를 하였다. 바지춤을 올리다 왠지 묘한 느낌에 옆을 보니 일렬횡대를 삐죽이 빠져 나온 머리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꺼림칙한 마음에 얼른 언덕을 내려오니 몇몇 청년이 따라와 어깨를 잡았다. 돌아보니 울그락불그락한 얼굴이 다소 흥분한 듯 했다. 튀르키예어로 침 튀기며 거친 말을 내뱉었다. 다소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서 있으니 영어가 유창한 청년이 중간에 끼어들어 통역을 해주었다. 말인 즉 "왜 남의 나라에서 노상방뇨를 하느냐"는 항변이었다. 말만 놓고 보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만 상황을 놓고 보면 나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니들 따라 한건데...." 라는 논리정연한 반론에도 몇몇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는 군입대를 앞두고 고향 앞으로 쏴!를 한거라고..." 음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의식이었던 모양이다. 신성한 의례에, 신성한 땅에 오줌을 갈겼으니 화가 날만 하겠다 싶었다. 미안함을 표시했지만 그래도  "니들 따라 한건데...."라는 막강한 논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입대를 앞둔 스트레스에 묘한 애국심이 들러붙은 상황이 민족주의에 불을 지핀 모양이었다. 


묘하게 이어지던 대치 상황은 나의 어설픈 외침으로 마무리 되었다. "I was a soldier, too(나도 한때 군인이었다 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여행 당시 나의 영어 수준이 딱 이만큼이다)" 뭔가 어색한 영어로 군인이라는 동질감에 호소하고자 특히 "too"에 침 튀기며 방점을 찍었다. 다소 당황한 그들을 뒤로 하고 냉큼 버스에 오르니 통역이 다시 통역해주는 듯 했다. 겉옷을 뒤집어쓰고 잠든 척 하고 있으니 soldier 어쩌구 하는 말이 잠시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예비역을 바라보는 훈련병의 입장이랄까. 새벽 한기만큼 낯선 군대라는 두려움을 경험한 이에 대한 경외일까. 역시 입장의 동질감은 어떤 분쟁도 막을 내리게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한때 군인이었던 여행자와 막 군인이 될 청년들을 태운 버스는 다시 밤을 달려 여명이 밝을 때쯤 목적지인 샤프란볼루에 도착했다. 나 혼자 내리는 걸 보니 저들의 목적지는 아직 더 새벽을 달려야 하는 모양이었다. 버스를 내리며 곤히 잠든 그들의 영혼에 무훈을 빌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뺑이 까라~~~.' 한때 군인이었던 여행자가 투르크 전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이었으리라


<아야소피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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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6-06-25 0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혼자하는 여행의 로망이 팍팍 느껴집니다.ㅎㅎ 버스나 기차로 하는 여행은 비행기여행과는 또다른 맛이 있죠.ㅎ

잉크냄새 2026-06-25 20:32   좋아요 1 | URL
네, 아무래도 혼자하는 여행이 자유롭기도 하지만 돌발성 이벤트가 자주 발생합니다. 여행이 우연과 의외성에 의미가 있다면 여행의 참맛은 혼자 맞이하는 일들과의 조우가 아닐까 합니다.

감은빛 2026-07-17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간버스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나는 것, 언젠가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 편으로 그러기엔 이젠 늙은 몸뚱이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시중을 들어주는 차장이 버스에 있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그리고 입대를 앞둔 청년들과의 대치하셨다니!! 큰 일이 벌어지지 않아 다행입니다.
외국 남성들은 군대를 다녀온 우리나라 남성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26-07-17 18:37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는 그런 고생스런 여행들이 쉽지 않은 나이가 되어버렸네요. 15시간을 버스에 구겨져 비포장도로를 달려갈 여행길을 버텨낼 몸뚱이가 아니죠. 또한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그런 여행을 할 장소도 다 사라져 갈꺼고요.

대치라기보다는 작은 헤프닝이었죠. 그래도 심장이 쿵쾅쿵쾅 했습니다.
 


쑤저우苏州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던 곳으로 오나라의 머릿글을 따 오군,오주,오현으로 불리다 고소산姑苏山의 소자를 따서 수나라 시절부터 쑤저우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쑤저우에서 택시를 타고 그 지역에 대하여 물어보면 거의 백 프로 나오는 첫 마디는 '上有天堂 下有苏杭 상요우텐탕 샤요우수항(위에는 천당, 아래에는 쑤저우와 항저우)'이다. 쑤저우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항저우杭州에서 노년과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오나라의 수도였던 쑤저우와 저장성의 행정 중심인 항저우, 역사적으로 두 도시는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로서 지리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 융성했고 정치적으로 강성했다. 오랜 세월 문화적 향유를 누려온 것과 같이 당대의 시인들 백거이白居易와 이백李白이 <억강남>과 <오서곡>으로 찬양하고 중국 최고의 지성이라 불린 소동파苏东坡가 사랑한 쑤저우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는 놀랍게도 비교적 무명인 당나라 시인 장계张继의 <풍교야박枫桥夜泊>이란 시이다. 


月落乌啼霜满天 월락오제상만천(웨뤄우티쑤앙만텐) 달 지고 까마귀 울어 서리 가득한 하늘

江枫渔火对愁眠 강풍어화대수면(쟝펑위훠뛰쵸우멘) 강가 단풍과 고깃배 불빛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잠드네

姑苏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구수청와이한산쓰) 고소성 밖 한산사

夜半钟声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예빤쫑성따오커촨) 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려오네


가장 유명한 시구는 3구와 4구인데 지명을 직접 언급한 3구와 뱃전에 다다른 한밤의 종소리로 고향 떠난 나그네의 깊은 객창감을 건드는 4구가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 시가 유명해진 건 단순히 시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수 백년에 걸쳐 당대의 내노라 하는 지식인들 사이에 시를 둘러싸고 이어진 논쟁 때문이었다. 풍교야박이 쑤저우를 중심으로 유명세를 떨치자 시에 대한 비판이 서서히 생겨났다. 가장 유명한 비판은 종소리에 대한 비판이다. 첫째, 산사의 종은 한 밤에 울리지 않으므로 시인이 한밤에 들었다는 종소리는 허구다. 둘째, 한산사는 풍교와 지척이라 한밤중에 종을 울리면 시끄러워 시와 같은 은은함을 느낄 수 없다. 셋째, 한산사에는 종이 없더라. 당대부터 이어진 비판은 송대를 거쳐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이즈 마케팅에 편승한 시는 어느덧 쑤저우를 대표하는 시가 되어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이 시를 음송하지 못하는 소주인이 없다고 한다. 시적 사실과 시적 허용의 문제는 예전부터 늘 시 언저리에서 시와 함께 생명을 이어가고 있구나 싶다. 


<요즘 중국에도 고전 양식의 옷을 입는 젊은 세대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서시의 후예다.>


풍교야박의 논쟁을 직접 확인하러 풍교로 향했다. 시구 3구처럼 고소성에서 잠시 벗어난 한산사는 비교적 한적한 곳에 위치했으나 관광객은 중국 여느 곳과 같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한산사 정문을 빗겨 한 바퀴 도니 수향 마을답게 절 주위로도 수로가 형성되어 있다. 다리 높이로 보아 한때 절 주변으로 꽤나 큰 마을이 형성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풍교는 한산사 뒤쪽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난다. 풍교 주위로 단풍나무도 몇 그루 서 있고 다리 한 쪽으로 한산사의 모습도 보이니 시가 완전 허구는 아님을 알 수 있다. 한산사의 종은 직접 보지 못했고 종소리 또한 듣지 못했다. 밤에 오지 못한다는 점, 관광객이 너무 많아 장계 선생이 느낀 객창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풍교를 건너려니 바로 옆에 3D 체험관이 있다. 풍교야박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설명에 배에 올라탄다. 


<장계 선생이 시를 읊은 자리는 저 반대편 선상이었으리라 추측해본다.>


"뱃전에 앉으니 당나라 어느 수향 마을이 펼쳐진다. 바야흐로 봄이다. 동자와 꾸냥이 가져온 차를 한 잔 받아 마시니 배가 서서히 수로를 따라 움직인다. 막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봄이 수로 양 옆으로 가득하다. 겨울 빨래를 가져 나온 아낙들이 수다스럽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리는 꾸냥이 슬며시 미소짓는다. 배를 타고 꽃을 파는 소녀에게서 수선화와 장미를 받아보고 음식을 파는 배 옆에서 만두를 받아 먹어본다. 봄을 지난 수로는 여름으로 접어드는데 웃통을 벗어 제낀 아이들이 수로로 뛰어들고 번잡한 시장에서는 흥정이 한창이다. 한 켠에는 수로 위로 줄타기를 하는 광대가 위태롭다. "짜요 짜요" 응원 소리가 드높더니 갑자기 나타난 용선 3척이 앞다투어 질주한다. 그 물결에 두둥실 흔들리던 배는 갑자기 다리 위로 솟구친다. 아래로 한여름 축제가 한창인 고소성이 펼쳐진다. 밤의 불꽃 축제가 고소성 하늘을 뒤덮고 골목골목은 선남선녀의 흥청거림으로 번잡하다. 고소성을 한 바퀴 돈 나룻배가 다시 수로로 돌아오니 어느덧 늦가을, 문득 찾아온 쓸쓸함에 주위를 둘러보니 초승달이 지고 까악 까악 까마귀 우는 가을 밤 위로 흰 서리가 하늘 하늘 떨어지는데 붉은 단풍 위에 내려앉은 자태가 처연하다. 어디서 본 풍경이다 싶더니 바로 <풍교야박>의 구절이 아닌가. 뱃전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장계 선생이 홀로 술잔을 기울인다. 시중들던 동자가 나를 가르키며 "장계 선생, 이 분도 장안에서 피난온 사람입니다" 하니, 장계 선생은 더욱 깊은 우수에 젖어 긴 장탄식과 함께 술잔을 들고 일어선다. 뎅~뎅~ 한산사 종소리에 잠시 시름 겹더니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붙여 들어 왼손에 든 술잔 속의 술을 찍어 올려 가을 밤 하늘에 일필휘지로 갈겨쓰며 시를 음송한다. 족자를 들고 나온 동자가 장계 선생에게 시 제목을 청하니 <풍교야박>이라 적는다. 동자의 손을 떠나 족자가 가을 밤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다시 한번 가을 밤에 장계의 시를 적으며 음송을 권한다. 뱃전 여기저기서 <풍교야박>이 흘러나온다. 최대한 당대의 목소리로 크게 음송한다. '웨뤄우티쑤앙만텐~~~~' " 고글을 벗고 내리니 뒤에 탄 서생들이 전부 유치원생이다. 음, 초로의 중년이 유치원생과 다투어 시를 음송하다니. 살짝 부끄러웠다. 쑤저우에서 <풍교야박>이 천 년 세월을 살아난 이유이리라.


<AI로 풍교의 늦가을 정취를 표현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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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5-08 0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없던 종이 산사에 생겨나고, 치지 않은 종이 밤에 울리는 것은 시에서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분위기상 필요하다면 오후 5시에도 소쩍새가 울어줄 필요가 있듯이 말입니다^^ 님아, 또 가시려거든 그땐 혼자일랑 가지를 마오~

잉크냄새 2026-05-08 20:50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시적 허용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을. 당대의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이 간단한 문제로 천 년 세월 아옹다옹 다툼을 했다니,,, 틀에 집착한다는 것이 이리도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ㅎㅎ

마힐 2026-05-08 21: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원래 한산사의 한산은 승려의 이름입니다. 한산과 그의 친구 습득은 절에서 바보 취급 받았답니다. 다른 스님들에게 구박 받으면서도 둘은 뭐가 그리 좋은지 항상 웃으며 서로 장난치며 다녔다고 해요. 그런데 이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어 보면 도통한 경지가 드러났다네요, 지금도 한산문답이라고 전해진답니다. 이들의 우정은 상징이 되어 화합이선이라 부른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보살의 화신들 이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산사는 아이러니 하게도 화합이선이란 상징 때문에 절에 결혼식장이 있다고 하네요. 믿거나 말거나... ^^

잉크냄새 2026-05-08 21:32   좋아요 2 | URL
한산사가 논란의 중심에 설 이유가 또 있었군요. ㅎㅎ 종이 없다는 풍문도 그러하거늘 결혼식장까지 있다니.... 미리 알았다면 이번 발걸음에 예식장도 한번 찾아보는 건데 아쉽네요. ㅎㅎ
아, 한가지 더 한산사를 일본인이 유독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시가 <풍교야박>이라고 하더군요.

감은빛 2026-05-15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리 감각이 없어서 쑤저우와 항저우가 어딘지 몰라 지도로 찾아봤어요. 상하이 근처군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군요.

시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고, 체험하신 이야기도 마치 영상을 보는 듯 느껴지네요.

잉크냄새 2026-05-17 09:48   좋아요 1 | URL
네 상하이에서 내륙 쪽으로 한 시간 가량 떨어져 있어요. 상하이와 근접한 이유로 한국에서 쑤저우로 직항하는 비행기 편이 없어서 다소 불편합니다. 그래도 이천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중국에서 가장 문명스러운 도시라는 것을 살아보면서 충분히 느꼈습니다. 그에 비하면 상하이는 이제 한 세기 정도 밖에 안된 신도시라고 볼 수 있죠.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 <인생>을 보면 결혼식 날 평샤의 남편이 동료들과 거리를 행진하며 주위를 둘러싼 동네 하객들에게 담배와 사탕을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뿐 아니라 아직 전통 혼례 방식이 남아있는 여러 마을에서 예식이 거행되는 건물 앞에 작은 탁자를 펼쳐 놓고 그 위에 담배와 껌과 사탕을 쟁반이나 종이컵에 담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풍경을 종종 보곤 했다.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문을 나선 그 날 언덕 위 장족 전통 가옥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풍악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들던 그 집 앞에서 마침 담배가 똑 떨어졌다. 리탕理塘은 중국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가장 높은 고도인 4200m의 장족 마을이다. 담배 가게를 가려면 한참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 언덕을 다시 내려갔다 와야 했다. 염치 불구하고 두 손 합장하며 "꽁시꽁시恭喜恭喜 (축하해요)"를 외치고 쟁반에 담긴 담배 몇 까치를 들고 나와 담배를 물고 다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한 무리의 청년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탁자에 앉아 있던 노인과 몇 마디 주고 받은 후 나에게 험악한 얼굴로 성큼 성큼 다가왔다. "당신 중국인이냐?" "아니, 한국인이야" 중국어로 답변을 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리탕은 티벳 독립 운동 기간 저항이 가장 심했던 도시이다. 티벳 승려의 분신이 빈번히 행하여진 곳이었고 승려중 리탕 출신이 가장 많았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팽배한 지역이었다. 중국인과 외관상 구분이 쉽지 않은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하여 종종 실수로 폭력이 발생하기도 했다. 중심 도로는 CCTV로 가득 했고 몇 십 미터마다 공안을 가득 태운 버스가 도로를 점유하고 있었다. 몇 마디 더 나눈 후 중국인이 아님을 확인한 청년들은 조금 전 굳게 경직된 얼굴이 언제냐 싶게 하얀 이를 드러내며 경계심을 풀었다. 결혼식에 참석할 것을 권하는 그들의 요청을 점잖게 거절하니 거의 끌다시피 하여 건물 이층으로 올라갔다.


<잔치집 입구에는 사탕과 담배와 껌이 주로 올라간다>


장족의 결혼식은 삼일간 계속 된다. 그날이 며칠째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아직 축하연의 열기가 식지 않은 듯 장족 음악과 웃음 소리가 가득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층은 대략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과 손님을 접대하는 대형 홀, 그리고 신랑 신부가 축하 손님을 맞이하는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부엌에는 신부측 어머님을 중심으로 동네 아낙들이 모여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전통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커먼 그을음이 세월을 과시하듯 벽면에 도배되어 있었고 창을 통과한 한 줄기 햇살이 음식 연기와 먼지의 춤사위로 아늑했다. 천장에는 그을음으로 훈제된 라로우腊肉가 걸려 있었다. 손님 음식이 부족하면 큰 실례가 되기라도 하듯 음식은 층층이 쌓였다. 으레 부엌에서의 한담이 그렇듯 홀로 부엌을 방문한 이방인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었는데 동생을 먼저 시집 보내는 언니의 상대방으로 웃음소리와 함께 한참 동안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신랑 신부가 하객을 맞이하는 신방은 결혼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들락거렸는데 폐백실과 비슷한 용도로 보였다. 외지인인 나에게는 직접 대면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아마 부정을 탄다는 미신적 의미가 있지 않나 싶었다. 대형 홀에는 기다란 탁자가 가로 세로 몇 줄로 자리 잡고 있었고 양탄자가 깔린 낮은 의자가 양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탁자에는 티벳 전통 음식이 가득했고 막걸리 창과 뚝바 같은 전통 술이 놓여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주전자에는 수유차가 끈적거리는 버터맛을 풍기며 흘러 넘쳤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1.5리터 코카콜라와 500미리 환타가 쌩뚱맞은 얼굴로 자리해 있었다. 한 무리의 여인들이 일어나 테이블마다 돌며 축하 노래를 불러 제끼고 노래가 끝나면 다들 잔을 들고 축배를 들었다. 여인들이 한 바퀴 돌고 나면 남성들이 그 뒤를 이어받았다. '고산에서의 음주는 자살이야' 라고 다짐하고 수유차酥油茶를 마시며 최대한 술을 자제했으나 이미 거나하게 술에 취한 건장한 장족들의 강압에 한 잔 두 잔 잔술에 취하여 갔다.  


<보통 3일 동안 축제가 이어진다>


건물 일층은 보통 사람이 거주하는 용도는 아닌 듯 했다. 공간의 구획이 명확하던 이층과 달리 일층은 건물을 지지하는 커다란 기둥 외에는 텅 빈 공간이었다. 다만 잔칫날 만큼은 동네 아낙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티벳 전통춤을 추고 있었다. 올라갈 때도 빙글 빙글 돌아가던 춤은 어둑어둑 어둠이 깔려 내려올 때까지 계속 되었다. 오전에 끌려 들어가 해가 뉘억뉘억 넘어갈 때 이층에서 내려왔는데 팔을 잡아 이끄는 장족 여인들에 이끌려 춤사위에 합류했다. 춤사위는 삶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춤이었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듯 그들의 습관처럼 몸에 벤 자연스런 춤이었다. 움직임이 많고 동작이 커 우리 춤사위보다 훨씬 동적이었다. 장족 마을에서는 식사를 마친 저녁 나절 이미 어두워진 광장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는 일이 일상이었다. 지나온 여러 마을에서 이미 본 일상적 풍경이어서 금방 춤사위에 합류했다. 춤도 빙글, 머리도 빙글, 카메라도 빙글, 오직 빙글빙글만 존재하는 아주 편안하고 흥겨운 기분이었다. 한참을 빙글거리며 돌아가다 기억이 끊어졌다. 문득 기억나는 것은 흰 물감 묻은 붓을 휘둘러 별자리마저 취하여 빙글거리던 은하수와 노랫가락 흥얼거리며 고도 4200미터의 마을을 헉헉거리며 걸어 내려오던 기분 좋은 취기였다.



<사진을 찍을 즈음에는 이미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 사진도 다 흔들린다>







<무희만큼의 동작은 아니지만 저녁 어스름이 짙어질 무렵 장족 마을 광장에는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이 몰려와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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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6-04-02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영화 <인생>도 수작이라고 말씀해주셔서 챙겨봤었는데, 펑샤 결혼식 장면이 떠오르네요. 글 읽는 동안 <걸어서 세계속으로> 보는 기분이었어요. 취기가 슬쩍 느껴지는 사진까지! ㅎㅎ
낯선 곳에서의 경계와 환대가 동시에 느껴지는 순간들이 생생하게 전해지네요. (빙글빙글)

잉크냄새 2026-04-03 19:50   좋아요 1 | URL
중국 결혼식 장면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의 그 길거리 풍경이 먼저 떠오르더군요.
낯선 곳에 가면 말씀하신 경계와 환대의 줄타기가 묘한 긴장감과 짜릿함을 동반합니다. 익숙지 않은 여행의 묘미죠. 그들 표정은 숨길 수 없는 감정이 금방 드러납니다. 경직된 얼굴이 금방 활짝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의 극적 변화란.....ㅎㅎ

Forgettable. 2026-04-02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라오스의 어느 마을에서 노래방기계의 bgm과 함께 춤추고 취하던 기억이 떠오르는 글이네요.
인도에서 만난 티벳 막걸리 창도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떠오르구요.. 모모인가.. 만두도 맛있던데 냠냠

잉크냄새 2026-04-03 19:53   좋아요 1 | URL
우린 역시나 춤의 DNA를 품은 민족입니다. 생각없이 취하고 춤추던 그때가 그립네요.
막걸리 창은 포카라에서 처음 마셨는데 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탄광 광부가 쓰는 랜턴 쓰고 마시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카스피 2026-04-03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족이 티벳인을 가리키는 말인지 처음 알았습니다.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58개의 소수민족(조선족 포함)이 있는데 과거에는 분리 독립등 여러 정치적인 사유로 나름 58개 소수 민족에 대한 자치권과 문화적 독립성을 인정했는데 요즘은 모두 중국 동화정책으로 과거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박탈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나 다른 소수 민족들과 달리 티벳은 과거 왕조시절부터 복속국이었지만 라마불교가 원이나 청같은 한족이 아니 왕실에서 우대를 받아서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었는데 1950년대 중공이 티벳을 침공하면서 강제적으로 병합해 지금도 티벳인들의 독립 의지가 상당히 강하다고 하더군요.
그나저나 잉크냄새님은 참 좋은 곳을 많이 여행 다니신것 같아 매우 부럽습니다.

잉크냄새 2026-04-03 20:04   좋아요 0 | URL
한글 발음 장족은 중국에서 두개의 소수 민족으로 나뉩니다. 티벳의 중국 표현인 시짱(西藏)의 주요 민족인 짱주(藏族)와 중국에서 한족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좡주(壮族)입니다.
제가 근무할때에는 만주족만 고유 언어에 대한 교육이 통제되었는데 얼마전 소수 민족 언어에 대한 교육을 통제한다는 뉴스를 저도 본 기억이 나네요.
여행은,,,저 스스로에게도 소중하고 풍요로운 기억입니다.

마힐 2026-04-03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졸지에 반 강제로 하객이 되셨군요. ㅎㅎ 신랑신부에게 홍빠오는 주셨나요. ㅎㅎ

잉크냄새 2026-04-04 09:34   좋아요 1 | URL
앗, 그러고 보니 홍빠오 건넨 기억이 없네요. 아마 폐백실에서 주지 않았나 싶은데 그 곳은 제가 들어갈 수 없던 곳이라....ㅎㅎ

책읽는나무 2026-04-04 0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국여행의 단짠단짠 그런 맛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위험했던 순간. 그리고 흥겨운 순간.
결혼식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인식하기에 저리도 흥겹게 3일 밤낮으로 축제를 이루는 걸까요?
그들의 전통문화가 참 신기합니다.
암튼 신선한 여행의 경험이 되셨겠습니다.^^

잉크냄새 2026-04-04 09:39   좋아요 1 | URL
사실 위험이라고 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고 살짝 긴장했다고 할까요. 혼자 여행의 장점이 이렇게 뜻하지 않은 각종 이벤트와 마주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죠.ㅎㅎ
소수 민족 전통 문화의 공통점이라면 결국 공동체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3일간의 축제도 가정,친지,마을로 이어지는 공동체에 대한 의례의 흔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한번 가면 다시 보기 힘든 작별의 장이죠.

차트랑 2026-04-04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써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장족의 장을 감출장(藏)을 쓴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장족무(藏族舞)를 시현하시는 분들의 발 동작은 우리와 다른듯 한데,
팔동작과 그 곡선, 그리고 상체의 움직임은 우리의 전통무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군요.

우리 전통무 팔의 곡선은 정말 남다르고 우아하죠.
이 모습을 장족무에서 발견합니다.
장족, 왠지 친근감 상승하네요~!

님아,
또 가시려거든,
그땐 혼자일랑 가지를 마오~!!





잉크냄새 2026-04-04 20:05   좋아요 1 | URL
아, 우리 춤사위와 유사성이 있나 보군요. 아니, 차트랑님, 음악에 이어 춤까지 조예가 깊으시다니....

실제 무희분들 말고 마을분들 저녁 나절 광장에 모여 춤추는 걸 보면 무희보다는 동작이 훨씬 작긴 합니다. 그래도 그런 문화 자체가 흥겹고 정이 많이 갑니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풍경일지도 모르겠네요.

감은빛 2026-04-04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잉크냄새님 글에는 늘 긴장감이 넘치네요. 쪼는 맛이라고 할까? 그런 맛이 있어요.

오전에 끌려들어가 해가 넘어갈 때까지 계셨다니, 그것도 신기하네요. 춤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취했어도, 조금은 흔들렸어도 참 잘 찍은 사진이다 싶어요. 춤추는 모습 영상도 잘 봤어요. 저처럼 춤을 못추는 사람은 여러번 같은 춤을 보아도 따라 추지는 못 했을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26-04-04 19:49   좋아요 0 | URL
아 그럼 다음에는 더 쫄깃쫄깃한 여행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장족춤을 자세히 보시면 대부분 유사한 동작의 반복입니다. 술만 조금 드시면 금방 따라 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