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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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라사와 나오끼의 <몬스터>에 보면 60년 동안 숲에게 용서를 구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짧게 등장한다. 청년시절의 그는 맑은 사람이었다. 그가 거니는 숲속은 온갖 새들의 천국이었고 누구보다 맑은 심성의 그에게 새들이 몰려들어 앉곤 했다. 2차 대전의 발발로 게슈타포가 된 그는 당국의 명령으로 어느 청년을 쫓게 되었고 그가 거닐던 바로 그 숲에서 도망자를 사살했다. 그 이후, 새들은 더 이상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 이후 청년은 60년 동안 매일 숲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장영희 교수의 이 책도 그런 용서와 희망의 책이 아닐까 싶다. 타인에 대한 용서와 희망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그것이다. 자아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영혼마저 빼앗겨버린 우리들의 용서와 아직 그 끝자락을 놓지않고 있는 희망에 대한 글이다. 숲에게 용서를 구하는 노인처럼 우리도 저 멀리 절름거리며 뒤쳐지는 삶과 영혼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개체가 문학작품이다. 현실의 문제에서 문학작품의 세계로, 다시 현실의 깨달음과 희망으로 돌아오는 글의 구성은 문학의 가교 역활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맑고 정갈한 글의 장영희 교수가 걸어간 문학의 숲속길을 따라 한번 걸어가볼 일이다. 어느 한곳 웅크리고 있던 나의 영혼이 나의 그림자와 더불어 따라갈 것이다. 새들이 나의 어깨에 다시 앉는 그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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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19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두고 아직 못 읽었네요. 선선해지면 읽어야겠어요. 올여름 왜 이리 일에 밀려사는 것 같은지...^^

파란여우 2006-08-19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 속에서 님을 기다리다 잊고 있던 처자 반가워 덥썩 끌어 안습니다.
어맛, 책을 끌어 안았다구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08-21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도장만 찍어놓은 책.:)

잉크냄새 2006-08-2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 선선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폭염이네요. 선선해지는 독서의 계절, 양서 많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여우님 / 이 책, 기억나시죠? 요즘은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지라, 이리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읽었지 뭡니까.
사람님 / 눈도장을 찍으셨다니 이제는 책장을 넘기실 차례군요.^^

2006-08-23 0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6-08-23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네, 다시 사진속의 구렛나루를 보고 왔어요. 역시 제가 눈썰미가 떨어져서요. 풍경은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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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익 선생, 그는 늙은 농사꾼이다. 책에 실린 사진의 주름진 얼굴과 투박한 손을 보지 않더라도 그의 글에서는 진솔한 땅냄새가,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짙은 땀냄새가, 우직하고 투박한 땅에서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농사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땅에서 태어나 땅의 힘을, 진실을 말하던 그가 땅으로 돌아간지도 벌써 일년이 훨씬 지나가고 있다. 아쉽다, 이 시대의 진정한 노인을 결국은 떠나보내고 마음속에 그리워하다니.

난 그가 말하는 땅을 얼마나 알까, 결국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걸, 30년이 지나서야 겨우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한 내가 그가 말하는 땅의 진실을 얼마나 알까, 그가 말하는 자연의 현명함과 진실을 얼마나 알까, 살아가면서 단 한번의 탈피도 못하는 인간이 1주일을 위해서 7년을 땅속에서 보내는 이의 진실을, 껍데기를 버릴수 있는 용기를 알수 있을까, 고난과 역경의 시기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이 한겨울 역풍앞에 잎을 떨구고 홀로 선 나목의 진실을 알수 있을까.

이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아Q정전>의 작가 루쉰처럼 그 또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한없이 꾸짖는다. 한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우리들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모습은 대중의 계몽에 일생을 바친 루쉰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땅을 갈아엎을 줄만 알았지, 자기 자신을 갈아엎을 생각을, 세상을 갈아엎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농사꾼의 모습에 우리를 투영시켜 우직하게 꾸짖는다. 애정과 이해가 없는 꾸짖음은 그저 투정에 불과하지만 그의 꾸짖음은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은 시기가 묘하게도 5월초이다. 대추리로 대변되는 우리들 삶 어느 한구석이 심하게 흔들리던 날, 그의 말처럼 우리들 대부분이 스스로를 구경꾼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진솔한 사람들의 투쟁과 고통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킨 날이다. 그의 책 앞에서 느꼈던 부끄러움이라면 평생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싶은 날이다. 구경거리로 전락할때 느끼던 모욕과 눈물을 구경꾼의 입장에서 받아들일수 있는 날까지 그 부끄러움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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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5-2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전에 선생님을 뵌 적이 있답니다.
거북이 등짝처럼 두터운 손바닥과 검게 닳아서 빠져나간 손톱
허여멀건 제 손을 감추느라 진땀을 흘렸답니다.
아니요, 무엇보다 입만 나발대는 제 삶을 감추고 싶었던게지요
역시나 추천의 단물을 콸콸 드리고 갑니다.

kleinsusun 2006-05-28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요.^^
이 책을 몇년 전에 선물 받았는데...느낌표 추천 도서라는 이유만으로 괜히 읽기가 싫어서 책장 한켠에 꽂아 뒀거든요. ㅠㅠ 잉크님의 글을 읽으니 부끄러워 지네요.저도 읽어봐야 겠어요.

프레이야 2006-05-28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해전인가 이책으로 전우익선생을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몹시도 부끄럽다 생각했으면서도 여태껏 그리 많이 달라지지도 못하고 살고 있네요. 추천합니다...

잉크냄새 2006-05-29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직접 만나셨다니 부럽네요. 저도 그 앞에 선다면 감추어야 할것이 너무 많을것 같습니다. 아마 존재하는 모든것을 감추어야할지도 모르겠어요.
수선님 / 느낌표 라는 프로그램이 그 취지와는 상관없이 좋은 책을 많이 사장시킨 경우도 있나 봅니다. 느낌표 추천 도서라는 이유로 괜히 읽기 싫어 하시는 분들이 꽤 많더군요. 아마도 상업성을 슬쩍 묻혀버리지 않았나 하는 우려때문인가 봅니다.
배혜경님 / 책을 읽는 내내 천둥같은 꾸짖음에 머리 조아리고 읽었습니다. 그 가르침 품고 있어야할텐데, 시간은 세상은 또 망각속으로 저를 잡아끌고 있습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06-03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느낌표 때문에 멀리하다가, 읽고는 남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잉크냄새 2006-06-06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님 / 전 느낌표를 한번도 보지는 않았지만 이책 표지 둘레에도 무슨 표창처럼 "느낌표 선정도서"라는 문구가 찍혀있더군요. 추천하고픈 책, 저도 동의합니다.

누미 2006-06-20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만 잘 살면 부끄럽죠. 그 부끄러움조차 모르고 사는 인간들에게(나 자신 머 그리 부끄럽지 않다 자신할 수도 없지만 ㅡㅡ;;) 삶으로 일깨워주는 글이지요.

잉크냄새 2006-06-20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미님 / 반가워요. 부끄러움이 부덕의 소치가 아닌 덕의 한 형태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어요.

2006-07-01 0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6-07-10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 그 교육 그리 녹녹치가 않지요. 특히 사무업무에는 적용하기가 쉽지도 않고요. 먼저 교육을 받았을뿐, 벌써 조금씩 잊어가고 있군요. 이런...ㅎㅎ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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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피신 몰리토 파텔 이란 긴 이름을 3.141592의 파이로 바꾸어 버린 이 꼬마가 맘에 드는 것은 신에 대한 사고의 일치 때문일 것이다.  교회에서 예수님께 회개하고 기도하기를 좋아하고 물드는 석양 아래서 융단을 펴고 알라신께 기도하기를 좋아한 파이는 크리슈나 신을 사랑하는 정통 힌두교 집안 태생이다. 어느날 이 세 종교의 대리인이 모인 자리에서 신의 모독에 가까운 그의 행동(?)이 들통나고 세 종교의 우월성과 진정성에 대한 논리들이 분분한 곳에서 이 어린 꼬마가 나의 맘에 꼭 드는 말을 외친다. "신을 사랑하니까" 이처럼 명쾌한 답변이 있을까.

"힌두교도들도 사랑의 용량에 있어서는 기독교 대머리들과 같다고. 이슬람교도들이 모든 사물에서 신을 보는 방식이 수염난 힌두교도와 같고, 기독교도들이 신에게 헌신하는 마음은 모자를 쓴 이슬람교도들과 같은것 아니겠느냐고."

난 "사랑하니까" 정도는 아닐지라도 "믿으니까" 라고는 말할수 있을것 같다. 대입시를 앞두고 교회에서 기도하고 절에서 탑돌이를 하고 돌아오던 친구 녀석에게 "종교의 충돌로 물 건너 갔구나" 라고 한 적이 있다. 지금이라면 " 이 자식, 넌 신을 참 사랑하는구나" 라고 말해줄수 있겠다.

동물학

파이가 난파를 당한 구명보트에는 4마리의 동물이 타고 있었다. 다리가 부러져 얼룩이 더 측은해 보이던 얼룩말,  말아톤의 얼룩말처럼 달릴때 얼룩이 윤기있고 역동적인 것이지 보트에 축 늘어져 있는 얼룩은 눈물진 얼굴의 얼룩과 다를바 없다. 파이, 너보다 불운한 운명이 있구나!. 바나나 통을 타고 나타난 오랑우탄, 머리만 크지 뇌는 콩알만 하고 생긴것 구부정하고 인류진화의 시초라고 믿기도 싫은 오랑우탄이 그리 살갑게 느껴졌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결국 그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초식동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으니. 파이, 남의 일같지 않았겠지. 조용필의 노래에서도 배척받던 하이에나, 동물의 왕국을 볼때마다 너만은 참 싫었다. 음울하고 비겁하고 뭔가 뒤가 구린 인상의 너가 싫었고, 네 발 짐승치고 축 처진 너의 엉덩이, 항문은 항상 땅바닥을 쓸고 다니는지 치질이 있을까 싫었다. 그래도 육식동물이니 발톱을 세우고 이빨을 갈겠지. 파이, 이 정도 절망은 버틸만 하겠지. 난파후 며칠동안 존재도 나타내지 않던 벵갈 호랑이, 리차드 파커, 그래 왕의 미덕은 주려도 함부로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이지. 하이에나가 설쳐도 근엄하게 있었던 것은 너가 먹이 사슬의 최상위이기 때문이겠지. 파이, 이 망할 놈의 절망은 어쩔꺼냐!

추락이든 침몰이든 바닥은 있다. 모든 비상은 바닥을 차고 시작된다. 리차드 파커라는 절망 덩어리를 안고 태평양 바닥으로 추락하던 파이에게 들어온 풍경은 새로움이다. 막막하고 검기만 하던 태평양이 태양빛 찬란한 바다로, 물고기들의 향연장으로 보이는 시점. 절망의 끝에는 늘상 보던 풍경이 눈물나도록 눈부실때가 있다. 그것은 희망이 내미는 손이고 구원이 던져주는 빛이다. 나에게도 눈물나도록 눈부신 풍경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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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5-1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려 8개월만에 리뷰에욧!
세월의 충돌로 물이 오른 리븁니다.
참 책을 사랑하시는군요.^^
오랜만에 올린 리뷰이므로 이주의 리뷰에 당선될지도...험험..

겨울 2006-05-11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싱에서 파이로 거듭날 때부터 어딘가 범상치 않더니,
망망대해 구명보트 위에서 인도산 벵갈 호랑이를 조련하는 대범함에,
책을 읽다 소리내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 여튼, 재밌게 읽은 책이었어요.

icaru 2006-05-12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교의 충돌로 물건너 갔구나~ ㅎ.ㅎ 사실은 신들을 사랑했던 것일 뿐인데..
정말 오랜만의 리뷰 반가워서 꺼이꺼이~입니다.
게다가... 이 책은~ 음... 언젠가는 읽으실 줄 알았어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05-12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들이 먼저 읽어버린 책들에는 잘 손이 안 가는데, 님 리뷰 보고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헤헷 :)

잉크냄새 2006-05-12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그리도 오랜 시간이 지났던가요. 작년말부터 한동안 책을 읽지를 못했어요. 이유는 모르겠고요. 그냥...
우울과몽상님 / 삶에 대한 열망과 신에 대한 순수한 갈구가 파이로 하여금 파커를 조련하는 대담함을 부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카루님 / 이 책. 저 말고도 이안님, 복돌님.. ㅎㅎ 이리도 반겨주시니 종종 허접한 리뷰라도 올려야할까 봅니다.
사람님 / 님의 멋드러진 리뷰 기대해도 되겠죠. 벵갈 호랑이 얼굴이 아마 님의 손에 쭈욱 펴진 이미지 사진과 비슷하지 않을까요?ㅎㅎ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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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집, 언제부터인가 그곳은 죽음보다는 삶을 이야기하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향내가 가득한 빈소에서 상주와 절을 한후 삼삼오오 둘러앉은 상위에서 고인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짧은 순간이다. 오랫만에 만난 세상 한 귀퉁이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눌린 돼지머리에 소주를 마시며 누구는 장가가고 아들난 이야기를, 누구는 조그만 사업 간신히 꾸려가는 이야기를, 누구는 지나간 영화로움 꿈인냥 이야기하고....불콰해진 얼굴로 담벼락에 머리를 처박고 오줌이라도 갈길 냥이면 뒷통수를 때리는 달의 시선에 잠시 상주의 슬픔을 생각해보곤 한다. 새벽녘, 술이 덜깬 얼굴로 차를 몰고 갈 일을 걱정하고 냉방에 뻣뻣해진 몸을 승냥이처럼 쭈욱 기지개를 켜면 문득 현실로 되돌아온 삶이 코앞에 다가와 허전해지곤 한다. 상가집에서 돌아오는 차 속에서 그 허전함은 항상 동승하곤 했다.

시골의사의 이야기는 상가집 새벽녘의 허전함과도 같다. 한바탕 축제 뒤에 남겨진 무서울 정도의 적막함, 남의 슬픔에 기대어 눈물 한방울 찔끔 흘려보는 슬픔뒤에 다가오는 그 허전함, 결국 내 슬픔이 될수 없기에 내심 안도하는 역설적인 슬픔이다. 관음증 환자처럼 흘낏 쳐다보는 타인의 죽음이 어떤 카타르시스를 주는지 알수는 없지만 최소한 죽음앞에 겸허해질수 밖에 없는 삶이다. 그 숱한 사람들의 삶, 죽음앞에 의젓했던 삶, 절망에 몸부림치다 떠나는 삶, 생의 고난을 끝까지 떨쳐버리지 못하고 가는 삶, 어떠한 행태여도 삶이란 단어는 망자 앞에서도 떨쳐버릴수가 없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평행선상에 있다고 하나 보다.

타인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겸손하고 겸허해야 한다고 본다. 내가 타인을 대신할수 없고 우산을 씌워줄수는 있을지라도 같이 비를 맞아준다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다. 가끔 타인의 불행과 비극에 내 행복을 가늠해보곤 안도하는 자신이 싫어질때가 있다. 그 기분이 싫어 책을 몇번 덮다가 끝까지 읽었다. 어찌되었든 그것도 가난한 우리들 삶의 모습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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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2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안할려고 했는데, 마지막 문장에 넘어가고 말았다는. 헹!!
타인의 비극을...겸손하고 겸허해야 한다.
칫, 경허 대 선사의 말씀 같잖아요.

비로그인 2005-09-29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강원도의 힘'이었습니다. 괴력리뷰군요!! 책내용에 관한 전반적인 소개없이도 이리 가깝게 감상이 느껴지다니요. 맞아요, 타인과 완벽한 소통이나 완벽한 공감은 불가능하죠.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따순 정이 콸콸 넘쳐나는 잉크냄새님의 마음이 제게도 전해 옵니다, 느껴봅니다. 우리 우, 우산 같이 쓰고 걸어 갈까요? ^^a(스읍, 흐..호시탐탐 -ㅡ+)

2005-09-29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5-09-2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가집......... 아, 콧등이 시큰해지는데요. 그렇죠. 어떤 시인이 썼듯이 (문정희 였던듯) 죽은 엄마를 옆에 두고 배고파 육계장 먹는 자신을 그린 것처럼 상가집의 담론은 늘 삶이죠. 아~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파 오네요~~

Laika 2005-09-2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가집"하면 밤새 국과 밥을 푸던 일이...그리고 꼭 한군데서는 싸움이 벌어지는 모습.... 그런데 이거 상가집에 대한 책 아니잖아요...하여간 읽으면 빠져드는 잉크님의 글....복돌이님 말처럼 "괴력리뷰" 맞다니까요..^^

paviana 2005-09-2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포스의 '괴력리뷰'입니다.
등단하세요.^^

잉크냄새 2005-09-2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제가 쓰는 허접한 리뷰에 달려있는 추천중 하나는 분명 여우님의 것임을 애당초 알고 있지요. 제 서재에는 유독 추천에 후하신 분들이 많다니까요.^^
복돌님 / 에피소드 형식으로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들어있더군요. "아직 세상은 살만해" " 죽음보다 가까운 것이 목구멍이야"....이런 울림들이 둥둥 떠다니는 책입니다.^^ 글고, 우산이 아니라 비를 맞아야 한다니까요.
속삭님 / 접수완료. 그 웃음소리는 아무래도 상가집과 연관이 있을듯...으흐흐흐...
플레져님 / 죽음앞에 벌거벗은 삶처럼 처절하고 애틋한 모양새가 있을까 싶네요. 님이 쓴 장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파 오네요~~.
라이카님 / 그럼 모년 모월 모일에 그 상가집에서 국밥을 푸던 아리따운 처자가 님이셨구려. 전 요즘 일요일의 전창걸을 무너뜨린 라이카표 영화평에 빠져든다고요.^^
파비아나님 / 흐미, 조용하시던 님까지 저를 쑥쓰럽게 만드시다니요. 전 님들이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늘 감사해요.^^

겨울 2005-09-29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몇 개 읽은 둣한데 그 중 가장 생경하네요. 가벼움과 감동 역시 삶이 좋아 등등을 막연히 생각했는데, 어인 상가집입니까. 여자들에게 상가집은 남루한 상복에 윤기 없는 머리를 대충 묶어 올리고, 곡에 지친 쉰 목소리와 잠이 부족해 충혈된 눈으로 술취한 남자들까지 거둬야 하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의 비통 애통 절통한 상가집은 숨도 크게 쉴 수가..... 무덤까지도 늘 다니는 밭 가장자리에 마련하고 하루에도 몇 번을 가셔서 통곡을 하신다는 그 댁은 십수년이 흐른 지금도 망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요.... 어쨌거나 책의 실체가 궁금합니다. ^^

2005-10-04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weetmagic 2005-10-0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번을 읽어봐도 정말 멋진 리뷰예요.
괴력리뷰 라는데 동감 !!!!!!!!!!

잉크냄새 2005-12-0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몽상님 / 제 리뷰보다도 님의 댓글이 더 인상적이네요. 상가집 풍경과 그림자가 베어나네요.
속삭이신님 / 그렇죠. 여성보다는 남성들이 더 공감할 내용이죠.
매직님 / 전 님의 리뷰에 늘 감동합니다. 새롭고 파격적인 형태의 리뷰. 실험정신이 투철하신것 같아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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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님, 안타깝게도 그분을 알게된 것은 불과 몇해전의 일이다. < 더불어 숲>을 읽으며 장강의 깊은 물과도 같은 흔들림없는 삶과 호통치지 않되 가슴 가장 깊은 곳을 울리는 단호한 어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와 너만이 아닌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자고, 더불어 숲이 되자고 말하시던 분, 스승이 없는 시대에 감히 스승이라 부르고 싶었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스물여덟의 나이에 수감되어 이십년의 옥중생활을 겪어내신 분, 주체할수 없는 청춘의 열정과 삶의 희노애락과 성숙을 단절된 15미터의 벽앞에서 고스란히 보내야 했다. 벽은 한정과 단절과 구속이다. 벽앞에서 인간의 내면은 입체적이지 못하고 평면이나 소실점으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신적 억압으로 대변되는 벽앞에서도 그분는 결코 자신만의 세상속으로 침잠하지도, 세상과의 소통을 끊어버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어떠한 가식이나 허위도 필요치 않은 벌거숭이로 만나는 수인들의 삶속에서 진정한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를 경험한다. 삶의 애락과 오호의 감정이 오직 인간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한정된 공간속에서 이끌어낸 관조적인 삶의 시각은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그러나 오직 관념뿐인 삶이란 얼마나 허무할까? 그분의 고뇌는 서간문 곳곳에 드러난다. 
"지식은 실천에서 나와 실천으로 돌아가야 참다운 것이라 믿습니다"  - p140 -
"이처럼 실천->인식->재실천->재인식의 과정이 반복되어 실천과 더불어 인식도 감정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으로 발전해갑니다. 그러므로 이 실천이 없다는 사실은 거의 결정적인 의미를 띱니다. 그것은 곧 인식의 좌절, 사고의 정지를 의미합니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고, 발전하지 못하는 생각이 녹슬수 밖에 없는 이치입니다."  - p277-

수감초기의 냉철한 자기 성찰과 중반기의 진지한 삶과 인생에 대한 태도, 그리고 후반기의 완숙한 삶의 성찰은 시간에 따른 그의 의식변화를 보여주는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80년대 초반에 쓰여진, 후반기의 편지글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후반기의 주된 내용은 관계와 실천이다. 그분에게 있어서 관계는 곧 존재이고 실천이 곧 인식이다. 한정된 관계와 실천이 배제된 인식만으로 이어지는 불완전한 삶의 반복속에서도 자기 논리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그분의 삶의 태도와 시각이 이 책의 근간이 아닌가 싶다.

책장을 덥자마자 다시 첫장을 넘겼다. 반복해 읽을수록 그분의 글은 명징하게 다가온다. 잔잔한 호수처럼 맑고 명징하다. 허영심이 없다. 말과 글의 본질 위로 올라서려는 허영심이 완전히 배제된 글이다. 그분의 글을 읽는 순간, 난 가장 맑은 호수에서 가장 맑은 삶을 한 웅큼 낚아올린 기분이다. 책장을 넘기는 손맛이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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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8-30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 세상에 울리는 선생님의 맑고 고운 울림(!)은 시대가 큰 폭으로 변화할수록 더욱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관계는 존재이고 실천은 인식이다.. 흠..고통 속에서도 오히려 더욱 세상을 사랑하고 존재를 껴안을 수 있다니..참.. 닮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지만 저같았다면 오히려 타인에게 더욱 상처를 내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잉크냄새님의 감정과 이성의 상승이 조화롭게 잘 느껴지는 좋은 리뷰네요. (하나를 알면 가끔 열을 까먹지만, 일케 또 복습을 해 봐야 나중에 잘난 척을 할 수 있쭁..)

겨울 2005-08-30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첫장으로 돌아가 읽은 자리를 더듬는 근사한 기분, 알지요. 이 책, 다시 읽지 않으면 안되겠어요. 썩은 냄새나는 고인 물에 잠긴 듯 나태했던 일상을 위해서라도요.^^

파란여우 2005-08-30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의 철학적 사유가 신영복 선생의 사색처럼이나 난이도가 높아요.
저도 이 책 읽은지 오래 되었지만 기억력이 별로 없다죠.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걸 어떡합니까.
고통속에서도 세상을 아름답게 보겠다는 근사한 말은 겨우 기억하는데
그게요, 저는 도무지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맨날 잘난척 하면서 깨지고 산다죠.

icaru 2005-08-3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승이 없는 시대에 스승을 삼고자 했다는 것에서, 신영복 선생님을 향한 잉크냄새 님의 마음을 알 수 있겠네요.
님의 말씀처럼 불완전한 삶의 반복속에서도 자기 논리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분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신영복 선생님의 책 <강의>는 읽기에 쉽지가 않더군요.. 오래 전에 중도포기...재시도의 기회를 틈틈이 노리는 중이긴 하지만....
원래 고전 관련이 쉽게 읽어낼 성질의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요...

stella.K 2005-08-31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읽으니 전에 서재 지인으로부터 받은 다른 책이 생각이났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착 가라앉아있는 요즘이었는데 그의 책이라도 붙들걸 그랬습니다.^^

잉크냄새 2005-08-3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 감정과 이성의 조화라는 부분,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면도 있었는데 님이 예를 들어주신 짱구 사례로 확 깨달았습니다. 신영복 교수님 글은 항상 우리를 겸허하게 만듭니다.
우울과 몽상님 / 맞아요 그 기분 참 좋더군요. 책장을 덥자마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경험, 처음이고 근사했지요. 제가 신교수님의 책을 접한 것도 님의 < 더불어숲> 리뷰를 통해서였습니다.
여우님 / 저는 실천할수 있는 여건이 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니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고가 썩는지, 녹스는지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잘못인가 봅니다. 여우님이 아니시지요.
이카루님 / 그래요. 하나의 점으로 사라질수 있는 자기만의 세상을 박차고 인간의 관계와 소통을 이야기하시는 분이시죠. 저도 이분의 다른 책을 물색중인데...<엽서>로 할지...<강의>로 할지...아직 미지수입니다.
스텔라님 / 님이 작년에 페이퍼로 꼬박꼬박 올려주시던 <더불어숲>의 구절들이 참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타성이라는 구절은 평생 간직될 겁니다.

2005-08-31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5-09-0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완전한 삶의 반복속에서도 자기 논리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 저와 정 반대되는 모습이라 고개가 숙여집니다. 언제쯤 이 불안한 항해는 끝날런지요...

2005-09-02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5-09-02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20년이란 세월이 얼마나 장구한 세월인지..그것도 인생의 최고점이라 할수 있는 20대후반에서부터의 20년이니 얼마나 엄청난 세월인가요. 그런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스리는 삶의 자세는 이곳의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플레져님 / 보통 사람들은 자기애가 너무 강한가 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이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자기애도 혼자만의 사고는 아닌듯 합니다. 혼자라는 생각은 관념뿐인 함정이라고 합니다.
속삭님 / ㅎㅎㅎ 볼건 보면서 엮읍시다요.^^

sweetmagic 2005-10-06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지하게 부끄럽긴한데...입장 바꿔 하라면 전 진짜 못 할 것 같아요
사색은 커녕 맨날 자학만 하거나 매일매일 미쳐갈지도 .....
이렇게 못난 제가 저도 ....참 애닮고 가슴이 아파요 ,......ㅠ.ㅠ

잉크냄새 2005-12-06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직님 / 보통 사람들의 삶이겠죠. 느끼고 감동하는 가슴에 비해 행동하지 못하는 가슴이 늘 아프답니다.

포로롱 2005-12-26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책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어요. 어제 영풍문고에 가보니 한국 스테디셀러 칸에 있더군요.

잉크냄새 2006-01-16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로롱님 / 훌륭한 책이죠. 개인적으로 수세기가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명작이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