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상가집, 언제부터인가 그곳은 죽음보다는 삶을 이야기하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향내가 가득한 빈소에서 상주와 절을 한후 삼삼오오 둘러앉은 상위에서 고인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짧은 순간이다. 오랫만에 만난 세상 한 귀퉁이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눌린 돼지머리에 소주를 마시며 누구는 장가가고 아들난 이야기를, 누구는 조그만 사업 간신히 꾸려가는 이야기를, 누구는 지나간 영화로움 꿈인냥 이야기하고....불콰해진 얼굴로 담벼락에 머리를 처박고 오줌이라도 갈길 냥이면 뒷통수를 때리는 달의 시선에 잠시 상주의 슬픔을 생각해보곤 한다. 새벽녘, 술이 덜깬 얼굴로 차를 몰고 갈 일을 걱정하고 냉방에 뻣뻣해진 몸을 승냥이처럼 쭈욱 기지개를 켜면 문득 현실로 되돌아온 삶이 코앞에 다가와 허전해지곤 한다. 상가집에서 돌아오는 차 속에서 그 허전함은 항상 동승하곤 했다.

시골의사의 이야기는 상가집 새벽녘의 허전함과도 같다. 한바탕 축제 뒤에 남겨진 무서울 정도의 적막함, 남의 슬픔에 기대어 눈물 한방울 찔끔 흘려보는 슬픔뒤에 다가오는 그 허전함, 결국 내 슬픔이 될수 없기에 내심 안도하는 역설적인 슬픔이다. 관음증 환자처럼 흘낏 쳐다보는 타인의 죽음이 어떤 카타르시스를 주는지 알수는 없지만 최소한 죽음앞에 겸허해질수 밖에 없는 삶이다. 그 숱한 사람들의 삶, 죽음앞에 의젓했던 삶, 절망에 몸부림치다 떠나는 삶, 생의 고난을 끝까지 떨쳐버리지 못하고 가는 삶, 어떠한 행태여도 삶이란 단어는 망자 앞에서도 떨쳐버릴수가 없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평행선상에 있다고 하나 보다.

타인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겸손하고 겸허해야 한다고 본다. 내가 타인을 대신할수 없고 우산을 씌워줄수는 있을지라도 같이 비를 맞아준다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다. 가끔 타인의 불행과 비극에 내 행복을 가늠해보곤 안도하는 자신이 싫어질때가 있다. 그 기분이 싫어 책을 몇번 덮다가 끝까지 읽었다. 어찌되었든 그것도 가난한 우리들 삶의 모습이었나보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9-2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안할려고 했는데, 마지막 문장에 넘어가고 말았다는. 헹!!
타인의 비극을...겸손하고 겸허해야 한다.
칫, 경허 대 선사의 말씀 같잖아요.

비로그인 2005-09-29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강원도의 힘'이었습니다. 괴력리뷰군요!! 책내용에 관한 전반적인 소개없이도 이리 가깝게 감상이 느껴지다니요. 맞아요, 타인과 완벽한 소통이나 완벽한 공감은 불가능하죠.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따순 정이 콸콸 넘쳐나는 잉크냄새님의 마음이 제게도 전해 옵니다, 느껴봅니다. 우리 우, 우산 같이 쓰고 걸어 갈까요? ^^a(스읍, 흐..호시탐탐 -ㅡ+)

2005-09-29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5-09-2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가집......... 아, 콧등이 시큰해지는데요. 그렇죠. 어떤 시인이 썼듯이 (문정희 였던듯) 죽은 엄마를 옆에 두고 배고파 육계장 먹는 자신을 그린 것처럼 상가집의 담론은 늘 삶이죠. 아~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파 오네요~~

Laika 2005-09-2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가집"하면 밤새 국과 밥을 푸던 일이...그리고 꼭 한군데서는 싸움이 벌어지는 모습.... 그런데 이거 상가집에 대한 책 아니잖아요...하여간 읽으면 빠져드는 잉크님의 글....복돌이님 말처럼 "괴력리뷰" 맞다니까요..^^

paviana 2005-09-2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포스의 '괴력리뷰'입니다.
등단하세요.^^

잉크냄새 2005-09-2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제가 쓰는 허접한 리뷰에 달려있는 추천중 하나는 분명 여우님의 것임을 애당초 알고 있지요. 제 서재에는 유독 추천에 후하신 분들이 많다니까요.^^
복돌님 / 에피소드 형식으로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들어있더군요. "아직 세상은 살만해" " 죽음보다 가까운 것이 목구멍이야"....이런 울림들이 둥둥 떠다니는 책입니다.^^ 글고, 우산이 아니라 비를 맞아야 한다니까요.
속삭님 / 접수완료. 그 웃음소리는 아무래도 상가집과 연관이 있을듯...으흐흐흐...
플레져님 / 죽음앞에 벌거벗은 삶처럼 처절하고 애틋한 모양새가 있을까 싶네요. 님이 쓴 장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파 오네요~~.
라이카님 / 그럼 모년 모월 모일에 그 상가집에서 국밥을 푸던 아리따운 처자가 님이셨구려. 전 요즘 일요일의 전창걸을 무너뜨린 라이카표 영화평에 빠져든다고요.^^
파비아나님 / 흐미, 조용하시던 님까지 저를 쑥쓰럽게 만드시다니요. 전 님들이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늘 감사해요.^^

겨울 2005-09-29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몇 개 읽은 둣한데 그 중 가장 생경하네요. 가벼움과 감동 역시 삶이 좋아 등등을 막연히 생각했는데, 어인 상가집입니까. 여자들에게 상가집은 남루한 상복에 윤기 없는 머리를 대충 묶어 올리고, 곡에 지친 쉰 목소리와 잠이 부족해 충혈된 눈으로 술취한 남자들까지 거둬야 하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의 비통 애통 절통한 상가집은 숨도 크게 쉴 수가..... 무덤까지도 늘 다니는 밭 가장자리에 마련하고 하루에도 몇 번을 가셔서 통곡을 하신다는 그 댁은 십수년이 흐른 지금도 망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요.... 어쨌거나 책의 실체가 궁금합니다. ^^

2005-10-04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weetmagic 2005-10-0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번을 읽어봐도 정말 멋진 리뷰예요.
괴력리뷰 라는데 동감 !!!!!!!!!!

잉크냄새 2005-12-0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몽상님 / 제 리뷰보다도 님의 댓글이 더 인상적이네요. 상가집 풍경과 그림자가 베어나네요.
속삭이신님 / 그렇죠. 여성보다는 남성들이 더 공감할 내용이죠.
매직님 / 전 님의 리뷰에 늘 감동합니다. 새롭고 파격적인 형태의 리뷰. 실험정신이 투철하신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