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초대
이현숙 지음 / 산지니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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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소설이 하나같이 극단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다루어 어둡고 칙칙하게 보인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거칠게 부대끼고 사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선택하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품는 쪽이다. 

'여행의 한 방식'에 나오는 아버지의 횡포는 아무리 노인이고 병자라고 하지만 선을 넘었다고 할 수 있다. 자식을 인간이 아닌 소유물로 보는 정신나간 늙은이인데 작가는 끝까지 그 망종 같은 늙은 아버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태풍의 집'에서 티켓을 팔아 성매매를 하는 소녀 제지는 태풍으로 다방이 물에 잠기는 날 자신에게 몸을 맡겼던 지체장애자 소년을 위해 쿠션을 사들고 그에게로 간다. '검은색 스키니진'에서 어린 이주민 여성과 결혼한 남편은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고 옷을 바다에 던져버리는데 알고보니 아내는 생계를 돕겠다고 선박에서 버려진 생선을 줍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로티스'에서 화자인 나는 맞춤구두 장인인 남편이 사실은 고교 때 친구와의 사랑을 잊지못하는 동성애자임을 알고 충격받지만, 남편의 지극한 사랑앓이를 연민해 화장을 도와주고 그 자신이 만든 구두와 친구 구두를 내밀며 가서 사랑하라고 보내준다. 

'비트의 세상'과 '수상한 초대'에서는 동생의 죽음, 골수이식을 기다리는 동생이 나온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완성하려는 동생의 자살과 골수이식을 기다리는 동생을 버리고 떠나는 주인공의 상황이 매몰차 보이지만, '비트의 세상'에서 화자는 동생이 보냈던 그림을 보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직면하고 자아를 찾는다. 그리고 '비트의 세상'의 나는 늘 동생과 가족에게 피해자로 살면서 스스로 팽개쳤던 자신을 품고 새로운 미래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섯 편의 소설을 보면서 이현숙 작가가 다루는 세계가 한결같이 불안하고 위태롭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살아낸 세상이 그만큼 굴곡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설은 작가의 삶을 다루는 게 아니지만 작가의 인생관과 심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는 거니까 말이다. 

그렇게 불안한 상황을 펼쳐놓고, 여섯 개의 단편을 완성함으로써 이현숙 작가가 끌어낸, 끝까지 잃지 않은 인간에 대한 다정함,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 시선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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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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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과 광주는 무겁고 아프다. 삼풍과 세월호와 이태원은 끔찍하고 비통하다. 한국전쟁은 내 경우, 안타깝고 슬프지만 심정적으로는 가장 멀리 있는 비극이다. 가까운 친인척 중에 이산가족이 생겼다든가 집안살림이 망했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어 그럴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유령의 시간>이 나왔을 때 골라 들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번에 <유령의 시간> 개정판을 읽은 것도 한국전쟁보다는 김이정 작가의 개인사에 궁금증이 생겨서였다.
알다시피 <유령의 시간>은 김이정 작가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자서전 원고를 발견하고 그 일기를 완성하려는 염원으로 완성한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김이섭이다. 이섭과 함께 화자의 역할을 하는 딸 지형이 김이정 작가의 분신이고.
나한테 <유령의 시간>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인연에 전력하다 스러진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맑은 이마를 가진 진과 결혼해 세 아이를 낳은 이섭은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활동한 게 발각되어 감옥에 가면서 가족을 다 잃게 된다. 소문에는 진이 북으로 간 남편 이섭을 따라 북으로 가는 행렬에 끼었다고 한다.
이섭은 지형 남매의 엄마가 되는 박미자와 결혼한 뒤에도 북으로 갔다는 첫 아내 진과 세 아이를 잊지 못해 박미자와는 혼인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박미자와 지형 남매를 위해 몸이 쓰러질 때까지 일한다. 온 마음과 몸을 바쳐 자신이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심지어 진과 헤어졌으면서도 그녀의 아버지인 장인과도 평생 연을 끊지 않고 서로 끔찍이 생각하고 위한다. 미련하달까 지극하달까, 암튼.
더 나아가 이섭은 어린 시절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괴롭히는 운식이가 “네가 나뭇가지 거둬가는 바람에 내가 주워갈 게 없다”는 억지스러운 말에 가진 자로서의 잘못(?)을 크게 깨닫는데 세월이 흘러 선박회사 사장이 된 운식을 만나서는 “내가 가졌던 것을 운식이가 가지게 되어서 마음이 편하다”라고 마음을 토로한다. 운식과의 만남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풀어야 할 숙제로 간직했던 셈인데, 이것은 자신의 운명을 통째로 말아먹게 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마음에서도 드러난다. 이섭은 자신이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공산당 조직에 합류한 것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유령처럼 살아왔지만, 가진 것을 나누어 다 같이 잘살자는 사회주의 사상이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었다는 생각을 놓지 않는다. 물론 대학교수가 되어 자기 인생을 깔끔하게 정돈해서 살아가는 친구 앞에서 자신이 몽상주의자였을 뿐이라고 자학하긴 하지만 그건 고통 속에서 지르는 비명일 터다.
이 소설의 서두에서 새우양식업을 하는 이섭은 새벽녘 바닷가에 서서 혹시라도 올지 모를 그들을 기다리며 두려움과 설렘으로 떠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설이 끝나갈 때는 막내딸 지우가 죽는 장면이 나온다. 이 두 장면은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은데 독자로서 나는 이 두 장면이 하나의 비극으로 뭉쳐서 다가왔고 지우의 죽음에 이르러 무너지는 이섭처럼 마음이 무너져 눈물을 쏟아냈다. 이섭이 살아낸 시간에 ‘유령의 시간’이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붙였는지 작가 김이정이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 이섭만의 시간이 아니었던 거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이섭은 사회안전법이라는 국가폭력에 뇌혈관이 터지면서 쓰러진다. 이 소설의 화자로서 아버지 이섭의 생을 지켜본 지형은 바람부는 호지(새우양식장으로 물 고인 웅덩이) 밑에서 온 몸으로 물결을 버텨내던 새우를 떠올린다. 이섭을 차갑고 어두운 곳에 갇혀버린 한 마리 등 굽은 새우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소설을 끝낸 김이정 작가는 후기에서 자신이 아버지를 너무 작은 사람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염려한다. 염려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섭의 생애는 멀어졌던 한국전쟁의 비극을 이 시대로 소환한 소설적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이섭은 마음을 저미게 하는 한 시대의 주인공이었고.


거리는 온통 잿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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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초대
이현숙 지음 / 산지니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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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소설도 재밌지만 ‘태풍의 집‘ 은 아주 실감나고 생생해서 재미를주는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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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헌터스
폴 윤 지음, 황은덕 옮김 / 산지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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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졸업석사 논문 제목이 '최인훈 문학의 삐리리리적 연구'다. 학구적인 머리가 아닌 걸 일찌감치 깨닫고 이왕 시작한 거 졸업이라도 하자 싶어 삐리리릭한 내용을 써서 제출한 거다. 의미없는 결과물을 내면서 지금도 기억나는 건 한 가지 가설이랄까, 아쉬움을 마음에 간직했다는 것이다.
주인공 이명준이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을 택해 항해하던 중 투신자살로 삶을 마감하게 하는 소설 '광장'을 읽어본 독자라면 거의 다 가졌을 의문이고 가설일 텐데, '이명준은 왜'라는 의문과 '이명준이 만약'이라는 가설이 그것이다.
내가 학구적인 열정이 있거나 늦깎이로 등단했을지언정 제대로 된 소설가였다면 '이명준은 왜 제3국을 선택했는지'와 '이명준이 만약 죽지않고 살아남았다면' 중 하나라도 붙잡아 논문을 쓰거나 소설을 썼을 것인데 어느 하나 근처 스치지도 못했구나, 하는 사실을 오늘 느닷없이 깨달은 것은 바로 이 책 때문이다.
스토우 헌터스.
한국계 미국인 작가 폴 윤(44)의 장편소설 '스노우 헌터스'는 북한군 포로 요한이 제3국인 브라질을 선택해 그곳에서 살아가며 전쟁의 상흔을 지워나가는 이야기다. '광장'을 잇는 소설은 아니지만, 광장세대(?)의 상실감을 메워주는 소설로 독자를 찾아온 책이라고 해도 무방한 줄거리 아닌가.
"그 겨울, 비가 내릴 때, 그는 브라질에 도착했다. 그는 바다를 건너왔다. 화물선에 탑승한 유일한 승객이었다."
소설의 서두를 여는 문장으로, (이명준이 아닌) 요한이 브라질 항구에 도착하는 장면이다. 생애 처음 바다를 보는 스물다섯의 청년 요한이 낯선 나라에서 환대를 받으며 상처를 극복해 가는 소설을 구상할 수 있었던 건 작가의 할아버지가 모아둔 6.25 관련 자료와 사진 덕분이라고 한다.
'영 라이언스 픽션 어워드'(Young Lions Fiction Award) 수상작인 이 소설에 꽂혀 한동안 연락두절 상태로 번역에 몰두한 황은덕 소설가의 노고와 애정 덕분일까. 번역서가 아니라 원작이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편안하게 읽힌다. 아참, 번역자인 황은덕 샘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우리는 왜 이명준을 살려낼 생각을 못했을까, 한탄을 주고받았다는 TMI도 살짝 덧붙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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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 숲의 휘파람새
장미영 지음 / 산지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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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집어든 책은 장미영 작가의 '사려니 숲의 휘파람새'다. 한두 편 읽는다는 게 나도 모르게 고만 다 읽어버렸다. 일상적인 소재를 가져와 조물조물 버무리고 속닥속닥 들려주는 텔러로서의 기술이 은근 능숙해서일 것이다.
단편소설 하나하나가 완성도를 가지고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마지막 작품을 읽고나자 일곱 편 전체가 일곱 개의 메시지를 더하고 아우른 작품집의 의미를 묵직하게 전해준다.
특히 요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불협화음, 교사가 겪고있는 현실적 고통을 그린 '거짓말의 기원'은 첫번째 실린 단편인데 매우 시의적이고 심층적이다. 내 아이만을 끌어안느라 인간적 도리에 무딘 분들한테 읽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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