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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전우익 선생, 그는 늙은 농사꾼이다. 책에 실린 사진의 주름진 얼굴과 투박한 손을 보지 않더라도 그의 글에서는 진솔한 땅냄새가,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짙은 땀냄새가, 우직하고 투박한 땅에서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농사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땅에서 태어나 땅의 힘을, 진실을 말하던 그가 땅으로 돌아간지도 벌써 일년이 훨씬 지나가고 있다. 아쉽다, 이 시대의 진정한 노인을 결국은 떠나보내고 마음속에 그리워하다니.
난 그가 말하는 땅을 얼마나 알까, 결국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걸, 30년이 지나서야 겨우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한 내가 그가 말하는 땅의 진실을 얼마나 알까, 그가 말하는 자연의 현명함과 진실을 얼마나 알까, 살아가면서 단 한번의 탈피도 못하는 인간이 1주일을 위해서 7년을 땅속에서 보내는 이의 진실을, 껍데기를 버릴수 있는 용기를 알수 있을까, 고난과 역경의 시기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이 한겨울 역풍앞에 잎을 떨구고 홀로 선 나목의 진실을 알수 있을까.
이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아Q정전>의 작가 루쉰처럼 그 또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한없이 꾸짖는다. 한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우리들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모습은 대중의 계몽에 일생을 바친 루쉰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땅을 갈아엎을 줄만 알았지, 자기 자신을 갈아엎을 생각을, 세상을 갈아엎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농사꾼의 모습에 우리를 투영시켜 우직하게 꾸짖는다. 애정과 이해가 없는 꾸짖음은 그저 투정에 불과하지만 그의 꾸짖음은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은 시기가 묘하게도 5월초이다. 대추리로 대변되는 우리들 삶 어느 한구석이 심하게 흔들리던 날, 그의 말처럼 우리들 대부분이 스스로를 구경꾼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진솔한 사람들의 투쟁과 고통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킨 날이다. 그의 책 앞에서 느꼈던 부끄러움이라면 평생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싶은 날이다. 구경거리로 전락할때 느끼던 모욕과 눈물을 구경꾼의 입장에서 받아들일수 있는 날까지 그 부끄러움 간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