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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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도 가보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어김없이 다섯손가락에 안에 꼽히는 곳이 인도의 갠지스강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막연한 동경이다. 명상가들이 수두룩하게 모여 갠지스강의 아침해를 맞이하는 장면을 떠올리더라도 그 이면에 존재하는 불결함, 반쯤 타다만 시체가 떠다니는 물에서 몸을 씻고 그 물로 밥을 짓는 장면에서 성스러움과 순결함을 떠올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 세상이 어떠한가보다 우리가 그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는 명제를 대입시키려하여도 쉽지 않은 일이다. 

여행가 한비야씨는 인도를 '못생긴 어머니의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인도에 있는 동안 맞이하게 되는 온갖 부조리,구걸,도둑질,사기,게으름,나태,가난... 현대 사회에서 죄악으로 치부시되는 온갖 부조리에 치를 떨며 인도를 떠날 때쯤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어찌할수 없는 모성과도 같은 힘이 존재하는 나라가 인도라는 것이다. 인간이 성장하는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의 부조리가 그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면 그녀의 말 또한 수긍이 간다.

그러나 류시화 시인이 바라본 인도는 또 다른 의미이다. 타인의 모습에 자신을 비추어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인도는 인도인들의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의 눈에 비춰지는 온갖 부조리가 그들에게는 신이 부여한 삶의 한 형태일 뿐인 것이다. 인도인들이 말하는 깨달음이란 인간 존재 개개에 존재하는 신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들의 부조리한 삶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현실너머의 자신을 바라볼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현재의 삶은 신이 부여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어쩌면 인도에서 부조리란 말은 우리가 만들어낸 스스로를 구속하는 감옥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통은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눈에 상처투성이인 그들이 ' 아 유 해피?'로 인사하고 ' 노 프라블럼'을 외치고 '다음'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현실의 세상속에서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할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삶이 힘들고 외로울때 인도로 떠날 일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여도 좋고 우리가 생각한 고통이 한낱 부질없는 망상이라고 결론내려도 좋다. 인도의 뜨거운 사막에 머리를 내려쪼일 일이다. 불에 닿으면 형체가 드러나는 오렌지 과즙으로 쓴 글씨처럼 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곳에서 벌거벗은 나와 대면할 일이다. 어차피 삶은 그곳에도 오롯이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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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10-0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에서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체념'과는 다른 의미이겠지요. '순응'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네요. 언뜻 비슷한 듯한 둘 사이의 차이를 저는 아직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리뷰 잘 봤습니다^^

설박사 2004-10-02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한번 가보고 싶네요. ^^

미네르바 2004-10-02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었네요. 인도 꼭 가보고 싶은 나라지요. 그 곳에 가면 삶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sweetmagic 2004-10-03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 이번 여름에 갈까했는데 이러저러한 구질한 사정이 생겨서 못 갔습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입니다. 저 역시.... 그나 저나 리뷰 참 담백하게 잘 쓰시네요 ^^
추천입니다.

잉크냄새 2004-10-0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 여름에 인도 여행을 계획했다가 구질구질한 사정으로 가지 못했답니다.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나라입니다.
체념과 순응. 저도 알듯 모를듯 쉽지 않은 개념인것 같습니다. 그냥 단어적인 어감으로 무어라 말할수 없는 부분인것 같아요.
 
보랏빛 소가 온다 - 광고는 죽었다
세스 고딘 지음, 이주형 외 옮김 / 재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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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왠지 책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시집이나 산문집을 연상시킨다. 처음 보관함에 넣을때쯤에는 시집이 아님을 알았지만 제목의 이미지는 나에게 있어 마우스를 클릭하게 만드는 첫째 요소였음을 부인할수 없다. 책제목부터 어딘가 주목할만하지 않은가.

저자 세스 고딘이 많은 소중 보랏빛 소를 선택한 것부터가 독특하다. 보라색이 주는 독특한 이미지뿐 아니라 마케팅의 5P ( Product, Pricing, Promotion, Positioning, Publicity, Packaging, Pass-along, Permission중 5가지로 일컬어진다)에 착안하여 보랏빛 소 ( Purple Cow) 를 채택했다. 또한 책의 초기 판매 단계에서 발췌 요약본을 잡지에 등재한후 배송료 5달러만 받고 원문을 발송하여 초기 독자층을 형성한 것이나 그 이후의 주문에 대하여 12권씩 보랏빛 우유팩에 묶어서 60달러에 보낸 위험한 발상 자체가 저자가 주장하는 퍼플 카우의 정의를 보여주고 있다. 언뜻 보면 위험하고 어리석은 발상같지만 그것이 바로 그가 주장하는 퍼플 카우이다. .

이 책에서 퍼플 카우와 더불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리마커블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고, 예외적이고, 새롭고 흥미진진한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과거의 마케팅 법칙이 안전하고 평범한 제품을 만들고 이를 위대한 마케팅과 결합하는 것이라면 퍼플 카우에 입각한 법칙은 리마커블한 제품을 창조하고 소수를 공략하라는 것이다. 제품의 입소문을 담당할 소수의 잠재 소비집단 ( 이책에서 스니저, 얼리 어댑터로 일컬어짐)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주목할만한 제품을 공급한다. 그 이후 집단인 다수 수용자 집단을 겨냥하는 것은 과거에나 통하던 방법이며 현재는 잠재 소비집단에 의하여 퍼져나간 제품이 살아남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얼마나 리마커블한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더 이상 광고하지 말고 혁신하라는 것이다

그럼 알라딘은 퍼플 카우인가. 내가 보기에는 퍼플 카우이다. 퍼플 카우를 만들어내기에 필요한 허락, 오타쿠,  스니저 집단을 보유하고 있다. 독특한 시스템인 서재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서재인들이 E-mail을 통해서 받게되는 새로운 책에 대한 정보에 대하여 그다지 부정적인 입장은 아닐 것이다. 서재의 댓글 정도로 인식하게 되는 행위를 통하여 암묵적으로 우리는 알라딘의 초기 마케팅에 동의하는 것이다. 책에 대한 오타쿠 또한 어떠한가. 다른 어느 곳과 비교될수 없을 정도의 오타쿠를 지닌 집단이 존재하며 그 집단이 바로 알라딘의 인터넷 서점으로서의 강점에 대한 입소문을 담당한 스니저 집단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얼리 어댑터에 대한 공략은 성공적이라고 본다. 이제 알라딘이 해야할 일은 퍼플 카우의 젖을 짜고 또 다른 퍼플 카우를 만들어내는 일인 것이다.

세스 고딘은 퍼플 카우가 되기 위한 방법론이나 전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정형화된 방법이나 전략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더 이상 리마커블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리마커블한 사고와 그러한 사고로 성공한 사례를 들려준다. 단순히 마케팅뿐 아니라  살아가는 문제에 있어 좀더 자신의 가치를 내보이고자 하는 이들에게 충분히 리마커블한 책이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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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4-09-19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랏빛 소','리마커블'은 한마디로 "튀는 것"인가요?
구멍가게에서도 독특한 마케팅전략을 써서 성공하는 것 보면, 마케팅은 자본이나 능력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비상한 아이디어가 몫을 하는구나 싶어요.
동화만 많이 읽다보니 어려운 어휘에 긴장하고 갑니다^^;
(그나저나, 제게는 알라딘에서 아무 것도 메일로 온 적이 없는데, 남들은 뉴스레터다 뭐다 하고 받는다고 하던데요...메일을 안 받는 걸로 설정이 되어있나 확인해봐야겠어요.)

stella.K 2004-09-19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잉크님,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를 쓰셔서(이를테면, 퍼플 카우는 물론이고, 오타쿠니, 리마커블, 스니저니 하나도 모르겠어요. 각주를 다심이 어떠하올런지 ㅜ.ㅜ) 무슨 책인가 한참 봤네요. 마케팅에 관한 책이었군요. 근데 전 윤대녕의 소설집인가 했다는...이책 재미있을 것 같네요.^^

잉크냄새 2004-09-20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저도 저자의 의도를 나타내려다 보니 그 말들을 그냥 사용했어요.그렇다고 한글로 풀어쓰면 좀 이상하고요. 퍼플카우는 말 그대로 보랏빛소로 리마커블한 사고를 상징한다고 보시면 될것 같아요. 리마커블은 위에 정의한 대로입니다. 스니저는 재채기하는 사람의 원뜻처럼 새로운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내는 구매자 집단입니다. 얼리 어답터는 초기 제품의 단계에 의욕적으로 신상품을 구매하는 집단입니다. 저도 마케팅에 대하여 잘 모르는지라 저자의 원어을 그대로 사용했어요.^^

미네르바 2004-09-19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저도 읽으면서 한참 긴장했다는...^^ 내가 살아오면서 모르는 말이 저렇게 많다는데에 잠시 위축되었죠. 저도 제목만 봐서는 소설집으로 착각했는데 너무나 생소한 단어에 그만 잠시 기가 죽었답니다. 재밌을까? 서점에 갈 일이 있으면 훑어 보았다가 생각해 보아야 할 책 같아요. 마케팅에는 그리 관심이 없거든요.

icaru 2004-09-20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퍼플 카우인가를 알라딘에 적용시켰네요... 근데...저는 스니저도 얼리 어답터도 아니네요...하지만...스니저와 얼리 어답터들의 영향력 휘에 있긴 하지만요...
스니저와 얼리 어답터는 멀리 볼 것 없이, 바로 가까이 ...있네요..요기 주인장님요..

잉크냄새 2004-09-21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이 진정한 스니저 집단의 선두주자죠. 전 스니저 집단의 영향력하에 놓여있는 소비자입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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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라는 가곡 사월의 노래의 한 구절로 기억되는 베르테르를처음 안 것은 고등학교때이다. 데미안과 더불어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기도 한 그는 결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주인공이 아니었다. 서글픈 결말마저 그토록 아름답게 만든 폭풍과 같은 열정을 가슴에 품은 순수한 청년이었다. 그의 자살마저도 순수함의 극치로 여겨졌다. 그는 결코 사랑으로 구원받지 못한 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베르테르를 다시 만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다시 만난다.그의 편지를 하나하나 다시 읽어본다. 아마 그때의 나는 작은 행복 뒤에 찾아온 절망의 선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서야 로테를 사랑하기 전과 후의 시공간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허락하지 않은 신을 원망하는 그의 고뇌를 느낀다. 로테와 함께하는 작은 행복감과 그 뒤에 찾아오는 폐부를 내리누르는 절망감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를 이해할수 있다. 동조하지는 않지만 결국 고뇌의 방아쇠를 당기고만 그의 마지막 절규를 듣는다.

아홉명의 여인과 염문을 뿌린 괴테는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사랑하다 상처받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의 친구 예루살렘이 유부녀와의 사랑에 상처받아 권총 자살을 한 일을 계기로 이 소설을 집필했다. 어쩌면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베르테르를 통하여 그는 자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르테르를 죽임으로써 괴테는 절망에서 벗어나 살아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절망과 시련의 중압감을 베르테르에게 무거운 삶의 무게로 지우고 고뇌에 찬 총부리를 그의 머리에 겨누고 마는 것이다. 베르테르는 죽고 우리는 남는다.그리고 남겨진 우리는 다시 살아가고 사랑하는 것이다.

삶이든 사랑이든 패배와 실패에 한 조각의 여백조차 남겨두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만큼 가능성이 남겨져 있다는 말이다. 일단은 살아보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운으로 맞이하게 되는 작은 행복이어도 좋고 가슴을 난도질하는 시련이어도 좋다. 결국 다시 사랑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절망의 선율과 시련의 중압감을 벗어버릴수 있는냐 없는냐의 문제이다. 다시 살아가고 사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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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9-07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춘기 때 이 책을 읽긴 읽었는데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지금쯤 다시 읽으면 읽혀질려나?^^

파란여우 2004-09-0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테르가 노란조끼를 즐겨 입었던가요?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

잉크냄새 2004-09-07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노란조끼. 그 당시 베르테르로 인하여 독일 사회에 노란조끼 열풍이 불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고전은 지금에 다시 읽으니 느낌이 새롭네요.

水巖 2004-09-0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랜 시절 1955년인가 54년인가 그때 읽은 책입니다. 완역본은 생각도 못했을 시절,
시인 김용호님이 번역을 했으니까 일본책 중역 했을거에요.
모방 자살이 유행했을때 꾀테는 시 한편을 썼지요. 그 시 마지막 연이
' 사나이일진데 나의 길을 밟지마라 ㅡ ' 그랬던가요.

진주 2004-09-0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 연미복에 노란색 조끼를 입었다죠....
유행을 선도할 만한 패션감각^^

잉크냄새 2004-09-0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이 읽으셨다는 50년대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책을 보고 싶군요. 무슨 냄새가 날까 궁금하네요. 푸른 연미복에 노란색 조끼. 정확합니다. 어떻게 그런걸 다 기억하시나요?

진주 2004-09-1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 팬이었거든요. 4월의 노래도 그래서 좋아했고요 ^^*
잉크냄새님을 직접 못 봐서, 내겐 어쩐지 베르테르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제임스딘을 조금 섞은 듯한.......그딴 생각이 듭니당^^;;

수련 2004-09-14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를르의 보리밭에서 탕!!하고 방아쇠를 당겨 자신을 죽게한 고흐....베르테르와 어떤차이가 있을수 있겠는가? 그의 자살은 여러설이 분분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절망감이 아니었을까? 그의 분열적인 방아쇠 당김은 진정으로 지고지순한 사랑을 주고 받고 싶어했던 열망의 끝이였는지 모른다. 진정한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실연의 아픔을 이길수 있는 면역성도 함께 생기기에....상실의 아픔을 이길수도 있을법한데.....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랑끝엔 죽지 않을 희망도 있지 않은가~~

잉크냄새 2004-09-14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테르가 수련님의 글을 조금만 빨리 읽었다면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없었을것 같군요. [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랑끝엔 죽지 않을 희망도 있지 않은가 ] 깊은 울림이 있는 말입니다.

* 2004-09-22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련님... 진정한 사람을 해보았다면, 실연의 아픔도 이길 수 있는 면역성이 반드시 함께 생긴다고 할 수 있나요...??? 저는,,, 아닌 것 같은 데....요....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이원규 지음 / 좋은생각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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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참 많은 길을 걸었습니다. 강원도 황지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낙동강 1,300리를 걷고, 지리산 아랫자락 850리를 도보순례하고, 백두대간 종주 1,500리 길을 걷고, 새만금 삼보일배 800리를 걸었습니다. 욕망의 무한질주가 아닌 사람의 걷는 속도로 천천히 걷는 길 위에서 걷는 목적마저도 잊어버리고 무아지경에 빠지는 순간, 시인은 무릎을 치며 깨닫습니다. 기다림이란 대문 앞에서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누군가에게로 가는 것을. 그 깨달음이 시인을 지리산 자락으로 데려간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신의 몸을 눕힐만큼의 공간,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생활, 지리산을 닮은 이웃사람들, 저절로 삶의 진리를 깨우쳐주는 자연. 시인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하더군요.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의 봄, 어름나무의 그늘속에서 보내는 여름, 낙엽을 쓸면서 바라보는 낙엽 하나하나의 손금에 얽힌 사연속의 가을, 지붕을 소복히 덮으며 고립무원의 절대고독을 선사하는 겨울, 그곳에 뿌리내린 그에게는 자연이 곧 삶이요 진리입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가 있는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소시민의 삶이 그렇게 쉽게 그 자리를 옮길수는 없을겁니다. 가슴속에 무아지경의 도원경 하나 꿈꾸지 않는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다만 뿌리를 들고 이 자리를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붙잡지요. 어쩌면 그 두려움이 삶을 이루어가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휴가철마다 꿈꾸어왔던 도원경으로 짧은 일탈을 감행하지만 결국은 작은 미련이나 애증조차도 버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 삶의 모습을 가꾸어가지요. 그것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요. 현재 자신의 자리에서 가치를 가꾸어가는 삶, 서로의 뿌리가 엉켜 잡아주고 서로의 그늘을 만들어가는 숲과 같은 삶, 전 그 삶 속에서 살기를 오히려 희망합니다.

그래도 올해 가을은 한번 걸어볼까 하고 꿈꾸어 봅니다.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를 따라 걸어간다면 하루 백리길, 해남의 땅끝 마을까지 단풍의 향연속에서 길을 걸을수 있을겁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그 길에서 만나는 들꽃의 키만큼만 사랑하고 생각하며 길을 걸어볼까 합니다. 모자라면 미련이 남고 넘치면 애증이 남는 것이라면 딱 그 키만큼만 사랑하고 생각할까 합니다. 어차피 돌아오는 길에는 여행길을 동행한 나의 그림자속에 미련과 애증의 그림자 또한 품고 돌아오겠지만 나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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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08-2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게 그 자리를 옮길수 없는 소시민의 삶" 이라 우린 여행에 더 목말라하는것 같네요.. 우리 국토 구석구석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올해라서 이번 가을엔 저도 많이 걸어보고 싶어지네요..

stella.K 2004-08-22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은 마음만 먹으면 갈수도 있을텐데, 전 이렇게도 못 떠나는군요. 당장 정선에 언니가 살고 있는데도 못가니 말입니다. B형은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떠도는 뭔가가 있다는데, 전 그런 점에선 B형이 아닌듯도 하네요.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잉크님 글은 참 정갈해요. 특히 오늘 글은 더더욱. 두분이나 추천을 받으셨는데 저도하고 가요.^^

미네르바 2004-08-22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 여행동안 참 많이 걸어보았어요. 물론 들꽃을 찾아 떠나는 목적있는 발걸음이지만, 한없이 길을 걷고, 또 걷다보면 목적은 사라지고 나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숨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욕망들, 애증들 모두 벗어버리고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 그 느낌이 참 좋아요. 참 정갈하게 쓰셨어요. 저도 단풍길 따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올 가을에는...

비로그인 2004-08-22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겸손하면서도 행간 행간, 말로는 다 풀어 내지 못한 자연과 삶에 대한 감사함이 묻어 나오는 책이죠? ^^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이만큼, 욕심 없이 자연에 귀 기울이며 사심 없이 길 위에서 길을 찾는, 그리하야 길에서 돌아오자마자 또다시 길을 나서는 작가의 맘을 잘 대변해 주는 제목도 없을 듯 해요.
성큼 다가온 가을.. 님이 꿈꾸는 가을, 이루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잉크냄새 2004-08-2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과 삶에 대한 겸손함과 감사함, 그런 가슴을 지닌 시인이 걸어간 길은 분명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삶이었을겁니다. 그런 시인에게 욕심없고 사심없는 삶이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저에게는 아직 지금의 삶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있나 봅니다. 그래도 올해 가을은 단풍드는 숲으로 길을 나서고 싶네요.
 
틀렸다 1 -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
리스 킥 엮음, 장순욱 옮김 / 창과창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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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문, 방송등의 언론매체에 의해 우리는 쉽게 주류의 가치관에 물들어왔다. 주류의 가치관은 진실로 여겨지고 비주류의 가치관은 단순한 반대를 위한 견해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처럼 언론매체의 영향력이 큰 사회구조에서 언론매체의 장악은 곧 사상구조의 지배와 동일시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비록 인터넷의 급속한 성장으로 비주류를 접할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고는 하나 방대한 양의 정보속에서 진실을 찾아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비주류의 대안적 생각들에 대한 책을 발표해온 리스 킥 박사가 그의 글을 포함하여 비주류의 글들을 발표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글을 수록하고 있다.   

그가 다루는 주제가 흥미롭다. 제1부 <병들고 있는 인간의 육신>에서는 낙농국가 미국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고 있는 광우병의 진실과 정신 질환자의 범죄도 보통의 인간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받아 처벌받을 권리에 대하여 말한다.  제2부 <중독된 사회>에서는 남녀평등의 원칙 아래에서도 가정폭력에 대해서 남성에게 적용하는 이중적 잣대의 실체와 태고 이래로 범죄시 되어온 매춘을 매춘녀들의 권리라는 입장과 현실적인 대안에 대하여 서술한다. 제3부 <거대 괴물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유럽연합으로 대표되는 전제주의의 부활과 기본 사상을 망각하고 개최국의 돈벌이로 전락한 올릭픽의 허상을 파헤친다. 제4부 <예고된 테러 911>에서는 텔레반 정권, 오사마 빈 라덴과 미국의 유착관계를 파헤치고 이미 예고된 911테러에 대한 미국 내부의 허술한 대응방안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책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오류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이분법적 사고 방식의 한계일 것이다. 이 책 또한 몇몇 주제에서는 그러한 오류의 흔적이 보이나 전체적인 내용에서는 정반대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사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의 제공 측면에서 꽤 충실한 편이다.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진실과 허구에 대한 도전을 받는다. 어떤 사실을 둘러싼 포장을 하나씩 벗겨가는 일련의 행위들이 진실에 다가가는 행위인지 아니면 진실을 더 왜곡하는 행위인지의 판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세상을 폭넓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사고와 냉철한 비판의식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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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4-08-15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읽고 싶어지네요. 때로는 진실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회색지대에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이분법적인 사고가 진실을 보는 눈을 흐리게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비주류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 더 호기심이 나네요. 잘 읽고 갑니다.

호밀밭 2004-08-15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아직 다 읽지는 못했어요. 사실 제가 상식이 좀 없어서 제가 알고 있는 게 틀린 게 아니라 이 책의 내용이 생소한 경우가 많았어요. 이분법적 사고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좋네요. 가끔 세상을 살아가는 상식이 나한테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에 폭넓은 독서를 하려고 하는데 그게 참 어려워요. 저도 잘 읽고 가요.

잉크냄새 2004-08-17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의 내용이 생소한 부분이 많았어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도 무조건적인 찬성이나 반대의 시각에 치우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더군요. 그런 생각은 이런류의 책을 볼때마다 들더군요. 세상을 폭넓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사고와 냉철한 비판의식이라는 부분,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이었답니다.

겨울 2004-08-16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네요. 읽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