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입소를 앞두고 거닐던 해질녘의 부둣가 어느 전봇대에 원양어선 선원을 모집하는 전단지가 나부끼고 있었다. 1년 반의 선원 생활이면 남은 3,4학년의 학비/생활비 걱정도 없고, 잘하면 짧은 한달간의 유럽 여행도 가능한 금액이었다. 어촌에서 상경한 고학생에게 생활비를 벌기 위한 노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4년의 대학 생활동안 7개월 정도의 막노동을 하였다. 곰방,비계공,배관공,미장공,시다,잡부,철근공,콘크리트,황태덕장 상덕,정원사...땅의 많은 일을 경험한 나에게 바다의 소식은 나름 매력있는 제안이었다. 어차피 돈이 가장 큰 매력이었지만. 그당시의 난 어쩌면 졸업후 나의 삶이 지금처럼 사무직으로 굳어질거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졸업전에 세상의 다양한 일들을 접하고 싶어했다. 사실 이것도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한 하나의 자기 최면의 일종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평발, 신검시 평발 판정을 받은것이 생각났다. 훈련소에서 최종 재검이 있다고 하기에 병원에서 다시 X-RAY와 진단서를 끊고 돌아서는 나의 뒷통수를 향해 의사는 "50만원 정도면 면제 가능하겠는데요"라고 말했다. 젊기에 가능한 결정을 하고 돌아섰다."흥". 이런 저런 정의니 논리를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왠지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게 젊음인거다.

너의 어머니에게 다시는 너의 평발을 내밀지 말아라.아프고 괴롭겠지만, 나라의 더 큰 운명을 긍정하는 사내가 되거라. 네가 긍정해야 할 나라의 운명은 너와 동년배인 동족 청년과 대치하는 전선으로 가야 하는 일이다. 가서, 대통령보다도 국회의원보다도, 그리고 애국을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보다도 더 진실한 병장이 되어라.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p20-



재검에서 떨어진후 돌아가던 봄밤은 조용조용 봄비가 내렸다. 훈련소를 끌려가던 버스는 암울하고 적막했다. 내 인생 절대 잊지 못할 노래가 되어버린 김건모의 "잠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는 왜 그리 처량한던지. 가슴과 옆구리로 날아들 군화발과 배신의 이미지로 낙인찍힐 치욕보다도 뒷주머니에 고이 접혀있던 원양어선 선원 모집 전단서는 또 왜 그리 눈에 밟히던지. 자정이 되기전 도착한 훈련소에서 숱한 군화발과 치욕속에서 이를 갈며 생각했다.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그러나, 얼마전 다시 평발을 내밀었다. 회사 통합후 새로 부임한 부회장이 마라톤과 등산 매니아였다. 천성이 뒷통수에 반골이 있는지라 강압적인 마라톤에 참여를 거부하고 평발을 내밀었다. 몇번의 강압에도 버티었다. 총무팀에서 이 문구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마라톤 불참 사유 - " OO본부 OOOO팀 잉과장 - 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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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8-2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마노아 2007-08-21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눈물을 앞세우며 추천! 크흑...;;;;

Mephistopheles 2007-08-21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과 메차장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하는 페이퍼였습니다.^^

프레이야 2007-08-21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발이 많으시구나.. 아무개님에 메차장님에 잉크님까지..
강압적인 건 뭐든 싫어요, 그죠? ^^

비로그인 2007-08-21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발만 아니면 내 이상형인데;;; 아쉽 잉과장님 :)

잉크냄새 2007-08-2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아무개님 / 무엇에 동감하시는지요. 평발? ㅎㅎ

비연님 / 김훈이 평발이었다면 아들에게 저러지 못할겁니다.

마노아님 / 눈물이 훈련소 때인지 총무팀에 걸린 치욕 때문인지...ㅎㅎ

메차장님 / 그럼 메차장님도 아시겠네요. 박지성이로 인하여 평발이 더 구박받음을...평발도 다 "사랑해요 지성"이 처럼 뛸수 있다고 생각하나봐요.

혜경님 / 설마, 혜경님도 평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모든것을 싫어라 합니다.

체셔냥 / 평발에 대한 편견을 버리세요. 우리 지성이도 있잖아요.

비로그인 2007-08-21 12:27   좋아요 0 | URL
ㅎㅎ 지성군은 원래 좀 좋아했어요.

프레이야 2007-08-21 12:42   좋아요 0 | URL
저 말고 옆지기요.ㅎㅎ
그래서 오래전 군에서 훈련 받을 때 참 불편했다고 하더군요.^^

잉크냄새 2007-08-23 12:35   좋아요 0 | URL
체셔냥 / 그럼 지성이를 버리세요.

혜경님 / 아마 행군이 가장 어려웠을 겁니다.

비로그인 2007-08-21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페더러랑 샘프라스랑 11월에 테니스 매치 있답니다
것도 한국, 잠실에서요! 캬오-

은비뫼 2007-08-22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발의 슬픔이네요. 글이 참 좋아요, 잉크냄새님. :)
제가 아는 친구와 언니도 평발인데 많이 걸으면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쉬엄쉬엄 내미세요~

잉크냄새 2007-08-2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냥 / 진짜 세기의 대결이라 할만하네요. 개인적으로 샘프라스의 우승을 바라지만 나이를 속일수는 없을것도 같네요.

은비뫼님 / 슬픔이라고 까지야...ㅎㅎ 지성이 때문에 자주 내밀수가 없어요. 요즘은 "지성이도 평발인데.." 이 말이 통용되기 때문에 내밀기 무안해요.

2007-08-23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07-08-27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발이신분은 인라인 못타시려나요?^^
아들아 평발을..은 지금 상병으로 복무중인 남동생이 첫 휴가나온 마지막날밤. 누나인 제가 읽어준 글이랍니다.. 눈물을 감추려 기어코 돌린 옆모습 그러나 조금씩 들썩이던 어깨. 그래서 잊지 못하는글이지요.^^

가시장미 2007-08-27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화발과 치욕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늘 우리 주위에.. 으흑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드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 떠오르는군요.
무서운 것이던 드러운 것이던,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겠죠.
전 그 대처에 대해 많이 미숙한 사람인 것 같은데, 잉크님은 안 그러신 것 같네요. ^^

잉크냄새 2007-08-28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일단 불편한 신발을 신고 하는 운동은 다 별로입니다. 누나가 읽어주는 김훈의 저 문구들,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가시장미님 / 하하, 어리숙한 평발 대처법을 읽으시면 아시듯이 저도 참 미숙합니다. 다만 그 미숙함을 부끄러워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2007-08-29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9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넓은 밭이, 자그마한 숲이 집앞에 있는 탓일까, 유독 집안에 보금자리를 트는 곤충들이 많다. 끈적거리를 피부를 가진 양서류와 파충류를 제외한 모든 생물을 좋아하는지라 그들이 내 옆에 튼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왠만해서는 건들지 않는다. "넌 어떤 인연이기에 여기 나의 삶 곁으로 다가온 것이냐" 하고 지켜볼 따름이다.

매미

여름이면 어김없이 베란다 한구석에 둥지를 튼다. 한여름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그의 울음은 소음이라기보다는 절규에 가깝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생명이 그를 그토록 울다 텅 비어 세상을 떠나게 만드나보다. 텅 비어 바스락거리는 그의 몸을 땅 한켠에 묻어주는, 혹은 어느 나무 등결에 살며시 얹어주는 장례식은 다소 서글프다.

너무나 울어
텅 비어버렸는가
이 매미허물은
-바쇼-

올해의 첫 매미 울음
인생은
쓰라려,쓰라려,쓰라려
-이싸-

여름 매미,
나무를 꼭 껴안으며
마지막 울음을 운다
-이싸-

매미 한마리 우는데
다른 매미들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이 늦은 가을
-이싸-

가을에 우는 매미 소리
그 목소리에
죽기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소세키-

한적함이여
바위에 스며 드는
매미 소리
-바쇼- 

귀뚜라미

그녀는 세들어 사는 삶이 약간은 쑥스러운것일까. 집주인의 기분을 상하게 않으려는지 내가 움직이는 시간대에는 고요하다. 책을 읽던지, 잠이 들던지 한동안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면 살며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어딜까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그녀를 찾으면 또 고요히 숨어버린다. 그녀와의 숨바꼭질은 늦가을 서리가 내릴때까지 계속된다. 그녀의 장례식은 보통 한참이 지난후이다. 죽음마저도 나에게 알리지 않는다. 고독한가보다.

우리가 기르던 개를 묻은
뜰 한구석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시키-

허수아비 뱃속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이싸-

죽은 자를 위한 염불이
잠시 멈추는 사이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소세키-

돌아 눕고 싶으니
자리좀 비켜주게
귀뚜라미여
-이싸-

내가 죽으면
무덤을 지켜주게
귀뚜라미여
-이싸-

죽어가는 귀뚜라미
얼마나 삶으로 충만한가
그의 노래는
-바쇼-

거미

내 집에 재건축을 하는 녀석이다. 그의 집에 아침이슬이 송송 맺히는 그림같은 장면을 기대하지만 보통 하루살이들로 대신한다. 내가 다니는 길목만 아니면 강제철거 시키지는 않는다. 어느날 일언반구 말도 없이 떠나는 냉정함이 엿보인다. 집을 가진 자의 당당함이려나.

걱정하지 말게, 거미여
나는 게을러서
집안 청소를 잘 안하니까
-이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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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7-0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쇼의 하이쿠는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딱인거 같아요.
저도 요즘 읽고 있는데 일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어요.^^

춤추는인생. 2007-07-03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자연속에서 살고 계시는군요.
그나저나 왜 귀뚜라미는 그렇게 찾으셨나요?ㅎㅎ `마음이 자욱하여 셔츠를 빨아넣었더니.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눈물같은밤. 이시의 제목 기억하세요?
이야기좀 할수 있을까요? 그러셨나요^^

잉크냄새 2007-07-03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 하이쿠 = 촌철살인 이군요. 류시화 시인의 "한줄도 너무 길다"라는 책 제목이 생각나네요. 그 여백만으로 충분하기에 한줄도 너무 긴가 봅니다.

춤인생님 / 야심한 밤, 방안 어디선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린다면 저뿐 아니라 누구든 방바닥을 기며 그 노래의 주인공을 찾으려 들겁니다. 인사말은,,,글쎄요 직접 만나봐야 할듯...
아, 그리고 위에 소개한 밤에 셔츠 빠는 시 좀 올려주세요.^^
 

회사일로 미국 비자를 신청할 일이 생겼다. 여권 만기가 6개월 미만이지라 갱신하려면 여권 사진이 필요하다. 여권 발급 조건이 까다로와졌는지 여권 사진 또한 흰색 배경이 필요하다. 삼십대 초반 찍어놓은 사진은 푸른색 배경이라 무용지물이다. 사진을 찍으러 들른 사진관에서 사진사의 요구에 이리 저리 몸을 돌린다. 이 어색함. 이 부자연스러움. 문득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것이 언제이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 앨범을 떠올려봐도 기억나는 것은 최소한 3~4년전의 모습이다. 최근 3~4년 동안 사진을 찍은 기억이 거의 없다. 아니, 가끔 디카로 찍은 기억은 나지만 왜 디카의 기억은 이리도 엷고 가벼운 것인가. 그 3~4년의 간극이 왠지 단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 여기 저기를 찾아보면 분명 그림 파일로 몇장의 사진을 남아있을텐데, 그것은 내 안의 기억이나 추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그냥 즉흥적인 크로키일뿐.얼마전까지만 해도 디카은 생소한 단어였다.그러나 불과 몇년사이 핸드폰이 우리의 기억을 잠식해버리듯 디카는 필름의 풍경을 잠식해버렸다. 인스턴트 시대의 대변인인듯 하다. 

디카는 그 즉흥성과 스피드로 구형 필름의 시대를 잠식해가고 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바로 기록할수 있고 DEL키 한방으로 빠른 취사선택을 할수 있다는 것이 그 장점이라 할수 있다. 순간 포착이 아닌 취사선택의 문제. 내가 나의 모습과 풍경을 편집할수 있다는 것이 그 매력이라 한다면 그 뒤에 남는 이 허전함은 뭘까. 그리움, 기다림...다소 진부한 이런 단어들이 아닐까 싶다. 사진을 찍고 필름이 현상되기 전까지의 설레임과 기다림의 시간들. 다소 빛바랜 흑백 사진만이 가질수 있는 묘한 그리움의 여운들. 디지털의 시대가 가지지 못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은 아닐런지. 왠지 책상위, 서랍속의 낡은 사진과 그 속의 편집하지 못하는 그 어느날 한순간의 표정이 문득 그리워지고 흐뭇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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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28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카는 찍어서 맘에 안 들면 그자리에서 삭제도 가능하니 아무래도 아날로그 카메라보다
찍을때의 마음부터 달라요. 대상이나 풍경을 마음에 담는 자세부터 인스턴트적이에요.
전 아날로그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때의 그 소리가 참 좋아요. 아직 찍을 줄은 잘 모르
지만 가끔 옆지기의 그것을 눌러보면 펑~하고 공기를 터뜨리는 것 같은 그 가볍지 않은
소리요.. 님, 비상으로 바쁘시군요. 그리고 미국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paviana 2007-06-2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카사진은 여간해서는 인화도 안하게 되는거 같아요.그냥 메모리째 이동해서 컴에 저장시켜 놓게 되니까요. 인화되서 내 손에 있는 사진이 주는 그 매력이 분명 있어요.

비로그인 2007-06-2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난끼발동 체셔냥이는 그냥 이렇게 말하죠.
백문이 불여일견,
사진을 올려달라! 올려달라!

3=3=3=3=3=3

icaru 2007-06-28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달라! 올려달라!

잉크냄새 2007-06-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 바로 혜경님의 부군이 찍으시는 풍경이죠. 뷰파인더에 담아내시는 풍경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아, 셔터 누르는 소리는 다시 들어봐야겠어요.

파비아나님 / 인화하고 기다리는 시간, 잊어버렸던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 필름위에 인화매수를 하나하나 적는 조심스러움. 그 매력은 너무 많죠.

체셔님,이카루님 / 그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춤추는인생. 2007-06-28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집하지 못하는 한순간의 표정과 함께 꼭 우연찮게 찍혀진 사람들이 함께 있었드랬죠. 준비되지 않는 그허망한 눈동자들 ..
USA가신다구요? ㅎㅎ
알리바마주에 가실것 같은 예감이.^^

울보 2007-06-28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는 우리 옆지기는 그래서 필름카마라를 아주 애지중지 하는데 저는 디카로 찍어도 절대 손대지 않아요 그냥 그모습대로 현상해서 앨범속에 담아두지요,,,,
우리옆지기 필름카메라는 손으로 감는 카메라라 참 멋드러지는 느낌이 들때가 많던데,,
갑자기 오늘은 비오는 풍경을 그 사진기로 찍어보고 싶어지네요,,,,

잉크냄새 2007-06-28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그 허망한 눈동자가 사진을 더 의미있게 만들기도 하지요. 미국은...알리바마가 아니라 디트로이트가 될것 같네요.

울보님 / 손으로 감는 카메라. 참 오랫동안 보지 못했네요. 알라딘에는 필름카메라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것 같군요.

춤추는인생. 2007-07-02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작년인가요 알리바마주에 현대 자동차 공장을 건설했다는 소식이 들은적이 있어서요.
혹시 알리바마 주에 가시는지 했드랬죠^^

잉크냄새 2007-06-29 17:36   좋아요 0 | URL
자동차 관련업계의 저보다 많이 아시네요. 전 A/BAG 관련된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회사에 볼일이 있어서요. 갈지 안갈지는 아직 미지수고요.
 

언땅이 채 녹기도 전부터 쿵쾅거리던 중장기의 기계음이 초봄의 기분을 망치기에 충분했다. 초봄의 밭갈이부터 늦가을의 가을걷이까지 베란다 의자에 앉아 바라보던 정겨움이 올해는 없어질거라는 불안한 생각은 딱 들어맞는듯 했다. 다소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 비탈을 중장기들이 오고가며 평평한 대지로 탈바꿈하는 모습에서 얼마지나지 않아 들어설 회색빛의 아파트 단지를 상상하곤 했다. "에라이~ 이사가기 전까지 짓지 말지" 하는 다소 이기적인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근데, 어느날 아침 왁자지껄한 목소리에 잠이 깨어 떠들썩한 베란다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 이게 뭔 풍경이냐. 콘코리트 작업이 진행되리라 생각했던 그곳에 형형색색의 수건을 둘러쓴 할머니들의 모습이라니. 다시는 생명이 자라지 않을거라 생각한 그곳에 또 다시 씨가 뿌려지다니. 그곳에서 감자 하나 옥수수 하나 캐올 일은 없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던 풍경이었는데...뜻하지 않은 감개무량함에 다소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뭐랄까, 영원히 잃어버릴것만 같았던 풍경을 다시 찾은 기분이랄까. 들뜬 기분탓인지 바람이, 햇살이 그저 부드럽고 포근하게만 느껴지던 어느 늦은 봄날의 풍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란다 너머의 풍경은 이렇게 짙어지리라. 창문으로 불어들어오는 바람은 또 얼마나 싱그러울까. 방바닥을 너울대는 햇살은 또 얼마나 부드러울까>

 

<새벽녘 유독 안개가 많이 낀다. 몽환적 기분이랄까. 이른 새벽 안개속에 앉아 있으면 현실이 아닌 무릉도원에 온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안개속에서 유유자적 책장을 넘기는 호사로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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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6-0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래전 기억속에서 다시 쭈르륵 땡겨오는 사진입니다.
2004년도였던가...아직, 저 풍경이 그대로라니...고맙고 따듯합니다.
안녕, 잉크님 우리 이제 새로 지은 다가구셋집에서 만나야 하는건가요?^^
계속 잘 지내보아요

겨울 2007-06-05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사는 일시정지 상태인가요? 저 풍경 저대로 천년만년 바라볼 수 없다니 비극입니다. 고향 가는 길 푸른 숲 사이로 생뚱맞게 들어앉은 가든이니 모텔을 보면 정말 화납니다.

잉크냄새 2007-06-0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와, 대단한 기억력....년도까지 정확하네요. 올해 풍경이 왕창 바뀌겠구나 싶었는데 다시 이랑을 일구고 씨를 뿌리더군요. 만세~

우몽님 / 글쎄요. 일시인지 영구인지 모르겠네요. 자꾸 줄어드는 자연을 볼때마다 기분이 좀 그렇죠. 전국 곳곳에 눌러앉은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을 볼때마다 "참 사람의 욕심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춤추는인생. 2007-06-05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나오는곳에서 책을 읽는다는건 어떤 기분일까요?
방바닥에 너울대는 햇살이라.... 아주 오래전 동쪽창에서 잠을 적시곤 하던 파란색 새벽빛을 저역시 잊지 못해요.. 그저 좋은곳에서 오래사시길. .. 공사가 중단되길 바란다면 너무 야속할까요 ㅎㅎ

icaru 2007-06-06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얍~ 잉 과장님... 초록의 시원한 전망 ^^
베란다에서 무진기행--하시겠네~ 시상이 절로절로...아니실까나..

잉크냄새 2007-06-06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누구나 가슴에 자신만의 풍경 하나쯤 품고 사나 봅니다. 님의 풍경은 파란색 새벽빛이군요.ㅎㅎ 아마도 이 땅을 밭으로 그냥 두지는 않을것 같네요.

이카루님 / 베란다에서 읽으면 금새 잠이 들어버려요. 자꾸 풍경에 한눈 팔게 되고요.ㅎㅎ
 

부스럭 부스럭 서랍을 뒤지다 훈련소 빛바랜 군인 수첩속의 일기를 발견하다. 희미한 백열등 아래, 달빛 아래 한자 한자 적어간 스물 세살의 소중한 기억이구나. 훈련소 초기는 바쁘고 힘들었나보다. 훈련소 마지막 열흘의 기록이다. 전우라는 단어를 이처럼 어색하지 않게 마구 쓰고 있었다니 왠지 쑥스럽기도 하다.

1993.3.31.수. 24:12

또 다시 불침번의 임무가 나를 깨운다. 꿈의 세계를 막 노크할 찰나 누군가 어깨를 치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지금은 불침번 근무중. 내무반을 왔다갔다 전우의 취침 상태를 조사 그 외의 별다른 일은 없다. 근무중에도 어김없이 나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은 고향 생각. 나의 모든 사랑하는 이들의 생각. 나는 완전한 군인은 되지 못하나 보다. 아직 향수를 잊지 못하다니. 사랑하는 사람들아. 나는 지금 이 순간 당신들의 꿈속을 왔다갔다 불침번 근무중인지도 모른다.

1993.4.2.금. 05:30

밤새 꿈에 시달리면서도 왠지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전우들의 코 고는 소리에 동요됨이 없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있다. 그런데 가슴 한 구석에 숨어있는 답답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자고 있는 전우들을 바라보면 벌써부터 작별의 아쉬움이 엄습해오고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훈련기간 속에서 나도 모르는 어떤 시간의 연장을 바라는 묘한 감정이 떠오른다.

1993.4.5.월. 02:17

심한 기침으로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깨어나다. 어제 한 전우가 폐렴으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며칠전부터 창백해보이고 힘들어했던 그의 모습이 선한데 격려와 위로의 말 한마디 못한 것이 죄스럽다. 진정 필요할때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한 인간이 어찌 전우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가. 부끄럽다. 나도 걱정이 된다. 기침이 너무 심하여 가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아무 일 없어야 할텐데. 지금 밖은 달이 무척 밝다. 달에게 전우의 회복을 빈다.   

1993.4.7.수. 23:12

잠을 자는둥 마는둥 뒤척이다 잠을 깨었다. 모두 잠든 내무반에 있으려니 조금 전에 세면장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3소대 어느 전우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던 다른 전우들도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버님, 이 곳에서 어머님만큼 그립지는 않지만 고향에서 고생하시고 계신 것을 생각하면 한없이 가슴 아픕니다. 아버님, 불쌍하신 아버님. 오래 오래 건강하십시오.

1993.4.9.금. 02:44

지금은 동초 근무 중. 이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동초 근무가 될것 같다. 달빛에 의존해 글을 쓰면서 오늘 달이 밝은 것에 감사한다. 달빛에 실려온 추위는 내 몸을 휩싸고 전우가 피우는 담배는 빨갛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제 10분 가량 남은 시간. 솔직한 심정으로 기쁨보다 아쉬움이 크다. 때때로 인간의 시간 개념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달빛에 드러누운 나의 총 멘 그림자가 제법 군인티가 난다.

1993.4.10.토 04:29

지금 몇촉인지도 분간할수 없는 희미한 백열등 아래서 펜을 든다. 시간은 지나면 짧은 것인가. 벌써 훈련소의 마지막 날이다. 짧게 깍은 머리를 쑥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던 때가 어제같은데.  내 머리가 짧음을 잊고 산 지가 벌써. 오! 시간의 위대함에 경배한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정확한 시간 개념은 불가능한것 같다. 모두 잠든 전우들의 얼굴 속에 알지 못할 아쉬움이 피어난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자꾸 떠오르고 벌써부터 그리움의 꽃망울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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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7-05-28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얼마만의 과장님 페이퍼래요?^^ 희미한 달빛아래 한자한자 적어내려가는 스물셋의 군인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요 .
잉과장님. 지금 듣고 싶은 노래 없으세요? 저는 갑자기. 잠못드는밤 비는 내리고가 너무 듣고 싶어졌어요. 그페이퍼읽을때 가슴이많이 아팠어요 저.

잉크냄새 2007-05-28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아, 그 페이퍼요. 훈련소에서 재검후 다시 끌려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듣던 노래였죠. 그날 밤도 비는 주적주적 내리고 참 참담한 심정이었는데, 비 내리는 밤, 얼차레 받느라 잠을 못잤다죠.^^ 이 노래 한번 올려줘요.^^

ceylontea 2007-05-29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갑자기 잉크냄새님.. 나이를 막 계산해버렸다는.. ^^
예전의 잉크냄새님은 여전히(?),, 그때부터 로맨틱하셨군요.. ^^

춤추는인생. 2007-05-2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건모- 잠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사실 오늘 페이퍼에는 더 애잔한 음악이 어울릴듯 싶은데.

그래도 이노래. 님께는 남다른 추억을 가지신 음악이시니. 이곳에 올리고 갈께요



초봄에 비까지 왔으니 얼마나 추웠을까요.

그 스물셋의 군인은..


 

어떠세요?

 

이추억은 아름답고 재밌었다기 보다는

좀더 애틋해서 자꾸만 보듬아 주고 싶은 추억이 아니신지요^^



잉크냄새 2007-05-29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 / 음, 역시 추론하시는군요.ㅎㅎ 알라딘 서재에 둥지를 튼지도 벌써 4년이 다 되어가니 시간의 관념은 역시 여기서도 어렵네요.

춤인생님 / 좋은 노래 감사드려요. 그래요 추억은 아름답던 고통스럽던 자꾸 보듬어 주어야죠. 그래야 먼 훗날 희미한 미소와 함께 떠올릴수 있을테니까요.

비로그인 2007-05-2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이) 춤인생님하고 잉과장님하고 잘 어울리시는데 데이트 한 번 하심이;
3=3=3=3=3

stella.K 2007-05-29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군요. 이런 일기도 쓰셨다니...! 남자들 군대 얘기 떠벌릴 줄말 알았지 이렇게 쓰는 군발이는 없지 않을까요? 저도 갑자기 잉크님 나이가 궁금해졌다는...!

잉크냄새 2007-05-2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 뜬금없으시기는^^... 노구를 이끌고는 짱구 엉덩이를 5개나 그리면서 뛰어갈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체셔님은 왠지 여전사 타입, 훈련소의 막강 여군 스타일일것 같네요.(뜬금없이 -,.-)

스텔라님 / 남자분들 군대 이야기 하는것 애교로 봐주세요. 그래도 푸르른 날에 2~3년을 보낸 곳인지라 아쉬움과 그리움과 분노와 허전함이 교차하는 미묘한 공간입니다. 김일성 때려잡으러 북한에 파견된 공작원 수준이라는 뻥만 아니면 그냥 웃어주세요.ㅎㅎ

겨울 2007-05-29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뜬금없이 다음 생은 기필코 남자로 태어나 군대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요......

비로그인 2007-05-29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유~ 제가 그런 스탈이었음 맘에 둔 남자 그냥 보쌈해버렸을걸요? ㅠㅠ...

파란여우 2007-05-2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 읽으면 옛날 남친 생각이 나요...잘 살고 있다 하더이다..흐흐
그나저나 서재개편되면 잉크님의 저 아리따운 지붕이 사라질 위기에!
아유, 내가 저거 만드느라 한여름에 포샵질에 열공했었는데요. 다 까묵었으!!!

paviana 2007-05-29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이 만드신거였어요? 와 잉과장님이랑 너무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93년에 제대하셨군요...그때 모하고 살았나 잠시 생각하다 갑니다..

잉크냄새 2007-05-2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몽상님 / 전 군대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먼저 생각하는지라 도시락 싸들고 말리고 싶네요. 다음 생엔 군대가 뭔지도 모르는 세상이기를 바래야죠.^^

체셔님 / 보쌈했다는 소문이 훈련소에 돌던데요.ㅠㅠ

여우님 / 그러게요. 저 지붕 받은지 햇수로 3년이군요. 맞나? -,.- 참 오랫동안 빛바래가며 서재를 지켜온 지붕인데 사라진다니 왠지 아쉽네요. 어떻게 개편될지는 모르지만 모 싸이트의 알록달록 블로그 형식은 아니었음 합니다. 그저 사랑방 그 수준이 딱이죠.

파비아나님 / 93년 제대라니요. 훈련소라고 몇번을 말씀드렸는데. 훈련소와 제대의 차이는 무려 2~3년이나 난다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