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밭이, 자그마한 숲이 집앞에 있는 탓일까, 유독 집안에 보금자리를 트는 곤충들이 많다. 끈적거리를 피부를 가진 양서류와 파충류를 제외한 모든 생물을 좋아하는지라 그들이 내 옆에 튼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왠만해서는 건들지 않는다. "넌 어떤 인연이기에 여기 나의 삶 곁으로 다가온 것이냐" 하고 지켜볼 따름이다.

매미

여름이면 어김없이 베란다 한구석에 둥지를 튼다. 한여름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그의 울음은 소음이라기보다는 절규에 가깝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생명이 그를 그토록 울다 텅 비어 세상을 떠나게 만드나보다. 텅 비어 바스락거리는 그의 몸을 땅 한켠에 묻어주는, 혹은 어느 나무 등결에 살며시 얹어주는 장례식은 다소 서글프다.

너무나 울어
텅 비어버렸는가
이 매미허물은
-바쇼-

올해의 첫 매미 울음
인생은
쓰라려,쓰라려,쓰라려
-이싸-

여름 매미,
나무를 꼭 껴안으며
마지막 울음을 운다
-이싸-

매미 한마리 우는데
다른 매미들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이 늦은 가을
-이싸-

가을에 우는 매미 소리
그 목소리에
죽기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소세키-

한적함이여
바위에 스며 드는
매미 소리
-바쇼- 

귀뚜라미

그녀는 세들어 사는 삶이 약간은 쑥스러운것일까. 집주인의 기분을 상하게 않으려는지 내가 움직이는 시간대에는 고요하다. 책을 읽던지, 잠이 들던지 한동안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면 살며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어딜까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그녀를 찾으면 또 고요히 숨어버린다. 그녀와의 숨바꼭질은 늦가을 서리가 내릴때까지 계속된다. 그녀의 장례식은 보통 한참이 지난후이다. 죽음마저도 나에게 알리지 않는다. 고독한가보다.

우리가 기르던 개를 묻은
뜰 한구석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시키-

허수아비 뱃속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이싸-

죽은 자를 위한 염불이
잠시 멈추는 사이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소세키-

돌아 눕고 싶으니
자리좀 비켜주게
귀뚜라미여
-이싸-

내가 죽으면
무덤을 지켜주게
귀뚜라미여
-이싸-

죽어가는 귀뚜라미
얼마나 삶으로 충만한가
그의 노래는
-바쇼-

거미

내 집에 재건축을 하는 녀석이다. 그의 집에 아침이슬이 송송 맺히는 그림같은 장면을 기대하지만 보통 하루살이들로 대신한다. 내가 다니는 길목만 아니면 강제철거 시키지는 않는다. 어느날 일언반구 말도 없이 떠나는 냉정함이 엿보인다. 집을 가진 자의 당당함이려나.

걱정하지 말게, 거미여
나는 게을러서
집안 청소를 잘 안하니까
-이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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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7-0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쇼의 하이쿠는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딱인거 같아요.
저도 요즘 읽고 있는데 일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어요.^^

춤추는인생. 2007-07-03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자연속에서 살고 계시는군요.
그나저나 왜 귀뚜라미는 그렇게 찾으셨나요?ㅎㅎ `마음이 자욱하여 셔츠를 빨아넣었더니.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눈물같은밤. 이시의 제목 기억하세요?
이야기좀 할수 있을까요? 그러셨나요^^

잉크냄새 2007-07-03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 하이쿠 = 촌철살인 이군요. 류시화 시인의 "한줄도 너무 길다"라는 책 제목이 생각나네요. 그 여백만으로 충분하기에 한줄도 너무 긴가 봅니다.

춤인생님 / 야심한 밤, 방안 어디선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린다면 저뿐 아니라 누구든 방바닥을 기며 그 노래의 주인공을 찾으려 들겁니다. 인사말은,,,글쎄요 직접 만나봐야 할듯...
아, 그리고 위에 소개한 밤에 셔츠 빠는 시 좀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