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일로 미국 비자를 신청할 일이 생겼다. 여권 만기가 6개월 미만이지라 갱신하려면 여권 사진이 필요하다. 여권 발급 조건이 까다로와졌는지 여권 사진 또한 흰색 배경이 필요하다. 삼십대 초반 찍어놓은 사진은 푸른색 배경이라 무용지물이다. 사진을 찍으러 들른 사진관에서 사진사의 요구에 이리 저리 몸을 돌린다. 이 어색함. 이 부자연스러움. 문득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것이 언제이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 앨범을 떠올려봐도 기억나는 것은 최소한 3~4년전의 모습이다. 최근 3~4년 동안 사진을 찍은 기억이 거의 없다. 아니, 가끔 디카로 찍은 기억은 나지만 왜 디카의 기억은 이리도 엷고 가벼운 것인가. 그 3~4년의 간극이 왠지 단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 여기 저기를 찾아보면 분명 그림 파일로 몇장의 사진을 남아있을텐데, 그것은 내 안의 기억이나 추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그냥 즉흥적인 크로키일뿐.얼마전까지만 해도 디카은 생소한 단어였다.그러나 불과 몇년사이 핸드폰이 우리의 기억을 잠식해버리듯 디카는 필름의 풍경을 잠식해버렸다. 인스턴트 시대의 대변인인듯 하다. 

디카는 그 즉흥성과 스피드로 구형 필름의 시대를 잠식해가고 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바로 기록할수 있고 DEL키 한방으로 빠른 취사선택을 할수 있다는 것이 그 장점이라 할수 있다. 순간 포착이 아닌 취사선택의 문제. 내가 나의 모습과 풍경을 편집할수 있다는 것이 그 매력이라 한다면 그 뒤에 남는 이 허전함은 뭘까. 그리움, 기다림...다소 진부한 이런 단어들이 아닐까 싶다. 사진을 찍고 필름이 현상되기 전까지의 설레임과 기다림의 시간들. 다소 빛바랜 흑백 사진만이 가질수 있는 묘한 그리움의 여운들. 디지털의 시대가 가지지 못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은 아닐런지. 왠지 책상위, 서랍속의 낡은 사진과 그 속의 편집하지 못하는 그 어느날 한순간의 표정이 문득 그리워지고 흐뭇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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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28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카는 찍어서 맘에 안 들면 그자리에서 삭제도 가능하니 아무래도 아날로그 카메라보다
찍을때의 마음부터 달라요. 대상이나 풍경을 마음에 담는 자세부터 인스턴트적이에요.
전 아날로그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때의 그 소리가 참 좋아요. 아직 찍을 줄은 잘 모르
지만 가끔 옆지기의 그것을 눌러보면 펑~하고 공기를 터뜨리는 것 같은 그 가볍지 않은
소리요.. 님, 비상으로 바쁘시군요. 그리고 미국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paviana 2007-06-2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카사진은 여간해서는 인화도 안하게 되는거 같아요.그냥 메모리째 이동해서 컴에 저장시켜 놓게 되니까요. 인화되서 내 손에 있는 사진이 주는 그 매력이 분명 있어요.

비로그인 2007-06-2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난끼발동 체셔냥이는 그냥 이렇게 말하죠.
백문이 불여일견,
사진을 올려달라! 올려달라!

3=3=3=3=3=3

icaru 2007-06-28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달라! 올려달라!

잉크냄새 2007-06-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 바로 혜경님의 부군이 찍으시는 풍경이죠. 뷰파인더에 담아내시는 풍경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아, 셔터 누르는 소리는 다시 들어봐야겠어요.

파비아나님 / 인화하고 기다리는 시간, 잊어버렸던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 필름위에 인화매수를 하나하나 적는 조심스러움. 그 매력은 너무 많죠.

체셔님,이카루님 / 그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춤추는인생. 2007-06-28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집하지 못하는 한순간의 표정과 함께 꼭 우연찮게 찍혀진 사람들이 함께 있었드랬죠. 준비되지 않는 그허망한 눈동자들 ..
USA가신다구요? ㅎㅎ
알리바마주에 가실것 같은 예감이.^^

울보 2007-06-28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는 우리 옆지기는 그래서 필름카마라를 아주 애지중지 하는데 저는 디카로 찍어도 절대 손대지 않아요 그냥 그모습대로 현상해서 앨범속에 담아두지요,,,,
우리옆지기 필름카메라는 손으로 감는 카메라라 참 멋드러지는 느낌이 들때가 많던데,,
갑자기 오늘은 비오는 풍경을 그 사진기로 찍어보고 싶어지네요,,,,

잉크냄새 2007-06-28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그 허망한 눈동자가 사진을 더 의미있게 만들기도 하지요. 미국은...알리바마가 아니라 디트로이트가 될것 같네요.

울보님 / 손으로 감는 카메라. 참 오랫동안 보지 못했네요. 알라딘에는 필름카메라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것 같군요.

춤추는인생. 2007-07-02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작년인가요 알리바마주에 현대 자동차 공장을 건설했다는 소식이 들은적이 있어서요.
혹시 알리바마 주에 가시는지 했드랬죠^^

잉크냄새 2007-06-29 17:36   좋아요 0 | URL
자동차 관련업계의 저보다 많이 아시네요. 전 A/BAG 관련된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회사에 볼일이 있어서요. 갈지 안갈지는 아직 미지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