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땅이 채 녹기도 전부터 쿵쾅거리던 중장기의 기계음이 초봄의 기분을 망치기에 충분했다. 초봄의 밭갈이부터 늦가을의 가을걷이까지 베란다 의자에 앉아 바라보던 정겨움이 올해는 없어질거라는 불안한 생각은 딱 들어맞는듯 했다. 다소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 비탈을 중장기들이 오고가며 평평한 대지로 탈바꿈하는 모습에서 얼마지나지 않아 들어설 회색빛의 아파트 단지를 상상하곤 했다. "에라이~ 이사가기 전까지 짓지 말지" 하는 다소 이기적인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근데, 어느날 아침 왁자지껄한 목소리에 잠이 깨어 떠들썩한 베란다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 이게 뭔 풍경이냐. 콘코리트 작업이 진행되리라 생각했던 그곳에 형형색색의 수건을 둘러쓴 할머니들의 모습이라니. 다시는 생명이 자라지 않을거라 생각한 그곳에 또 다시 씨가 뿌려지다니. 그곳에서 감자 하나 옥수수 하나 캐올 일은 없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던 풍경이었는데...뜻하지 않은 감개무량함에 다소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뭐랄까, 영원히 잃어버릴것만 같았던 풍경을 다시 찾은 기분이랄까. 들뜬 기분탓인지 바람이, 햇살이 그저 부드럽고 포근하게만 느껴지던 어느 늦은 봄날의 풍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란다 너머의 풍경은 이렇게 짙어지리라. 창문으로 불어들어오는 바람은 또 얼마나 싱그러울까. 방바닥을 너울대는 햇살은 또 얼마나 부드러울까>

<새벽녘 유독 안개가 많이 낀다. 몽환적 기분이랄까. 이른 새벽 안개속에 앉아 있으면 현실이 아닌 무릉도원에 온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안개속에서 유유자적 책장을 넘기는 호사로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